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04화 (20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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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2. Whereabouts of Mind(마음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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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수고가 많았다"

중간고사가 드디어 모두 끝이 났다. 그 동안 처절하고도 처절하였던 벼락치기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었다. 시험 마지막 날. 담임의 종례시간에서 담임이 말한 말 한 마디에 나는 그제서야 시험이 끝났구나..라고 느껴지게 되었다.

"…그럼 해산!"

종례는 3분 이내. 쿨하게 끝내서 좋은 남자담임선생이었다. 그 전에 담임을 했었던 그녀는 아예 하지 않았었지만..

"차렷! 선생님께 경례!"

"안녕히계세요!"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 의자를 올리고는 차례차례 교실을 빠져나갔다. 나도 주섬주섬 책가방을 챙기고 있었는데 콕콕하고 손가락으로 내 옆구리를 찔러오는 누군가가 있었다.

"정우야"

이번 중간고사에서 나의 구세주였던 웨이브를 준 갈색머리의 소녀가 옆에 있었다. 나의 친구를 가장하고서 정작 친구를 사골로 고아서 삶듯이 나를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는 한 마녀이기도 하였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조금 성적이 떨어졌어도 그녀덕분에 최악의 사태는 면할 수 있었다.

"…응?"

"시험…잘 봤겠지?"

"뭐…네 덕분에 최악의 사태는 면한 것 같습니다만은…"

"그럼 네 차례인 것도 알지?"

"아…약속한 것은 지켜"

"그래…그러면 다행이야…"

"…오늘 말하려고?"

"남자가 왜 그렇게 급해? 이럴 때는 천천히 기다려줘야 되는 거 아니야?"

"아니 뭔가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불길한 예감이라니?"

'그걸 차마 입 밖으로 낼 수도 없고…'

"뭐?"

"아무 것도 아니다. 먼저 갈게"

"…어…"

"내일 보자"

나는 세희와 대화를 끝마치고 교실 뒷문을 열어서 집으로 향하였다.

"…바보…"

뒤에서 그녀가 말하는 그 한마디는 듣지 못한 채.

10월 셋째 주. 날씨는 점점 추워져만 갔다. 이젠 반팔티는 입을 수 조차 없었다. 어째 이번해의 날씨는 극과 극을 오가는 것 같았다.

"하아…"

2개월만 있으면 이 2학년도 끝이 나는구나..시간..정말 빨리 흘러가네...

"그 만큼 나의 시간도…이제 얼마남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거겠지…"

떠나야 되는 이별의 준비. 내 자신의 '업보'로 인한 속죄. 그걸 행해야 하는 시간이 성큼성큼 내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말이야…"

떠나는 날은 아마도 지현누나의 수능일 이후랄까나...지현누나가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것을 보고나서 떠날 작정이다. 무슨 가출하는데 계획까지 세울 필요도 아예 없었지만은 무언가 그러한 날짜를 잡지않으면 차일피일 넘기다가 결국 떠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너무나도 이 집. 이 가족에 대한 미련이 많아서. 이 '인연'을 절대로 놓고 싶지 않아서였다.

애초에 사람의 인맥이라는 것도 없는 내가 유일하게 터놓을 수 있는 관계였다. 이런 인간조차도 사랑해주는 상냥한 사람들. 나는 그러한 그들과 되도록이면 오래 있고 싶었다.

끊임없이 나오는 미련. 욕심. 이기심.

나는 그런 감정을 컨트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자신을 제어하고 묶어서라도 그런 감정들은 재빨리 지워버려야했다. 마음도. 감정도 모두 지우고 깨끗하게 물러나야한다.

'그러면 떠나간 이후에는…어떻게 살아갈 거야? 혼자서 어떻게 살아갈 거야? 너는 어떠한 것도 없잖아. 그런데…어떻게 살아갈 거지?'

그 '미련'에서 이러한 물음을 해왔다. 떠나간 뒤에는 어떻게 살 것이냐고. 분명히 못 살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고. 이러한 따뜻한 집을 냅두고서 외롭기 그지없는 타지에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않고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는 질문에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은 생각하지말자…그 때 제대로 생각해보면 되겠지 뭐…'

지금은 그저 살아가자. 이 평화를. 이 일상을. 가족들과의 화목함으로 살아가다가.

이런 '꿈'에서 깨어날 준비가 될 때까지. 나는 그저 이 '꿈'을 즐기고 싶다.

딩동하고 현관문 벨을 눌렀는데 반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 집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열쇠로 문을 따고서 현관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섰다.

"…"

정말로 아무도 없네. 서현누나도 아르바이트 갔을까..?

요새 생각해보면 세 자매와 내가 함께 내 방에서 자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아니 정확하게말해서 매일매일 넷이서 함께 자고 있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나는 그러한 그녀들의 전용 팔 베개가되어줘야했고 아침마다 나는 항상 팔의 통증으로 깨어났다.

그 통증때문에 불쾌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은 가족들이 내 팔에 누워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바로 삽시간에 그러한 불쾌한기분도 가라앉았다. 게다가 예전부터 함께 잤었던 지현누나의 반응도 이상해졌다. 뭐라고해야할까..민정이와 서현누나도 나와 함께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표정이 갑자기 변하기도 하였다.

'잘 잤어?'하고 지현누나가 나에게 상냥하게 인사하고 미소짓다가도..민정이와 서현누나를 보면 무표정으로 일순 돌변하고..조금은 아쉬워하거나 씁쓸해 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나는 내 방에서 교복을 갈아입으려고 방문을 열었다.

"…아직도 자고 있었나…"

침대에서는 서현누나가 잠을 자고 있었다. 이불도 다 흩뜨려놓고서 무방비한 자세로 잠이든 그녀를 보고 있으면 '으윽!'하고 순간 움찔하게 만들었다.

매끈한 다리. 옷을 입고 있어도 굴곡이 확연히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몸매. 그렇지만그러한 이기적인 몸매를 하고서 전혀 다르게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자고 있는 그녀.

"젠장…이불 좀 제대로 덮고 자든가…"

나는 그녀에 대한 '욕망'을 애써 자제하고 이불을 조심조심 덮어주었다.

덥썩!

"…엉?"

"헤헷――♡ 잡았다 정우!"

'드디어 걸렸다~'라는 기쁜 모습을 하고서 내 손을 잡으며 웃고 있는 서현누나.

"깨어…있었어?"

나...낚인 거지..? 응..? 낚인 거 맞지..?

"당연하지! 시간이 몇 시인데!"

시계를 보니 11시. 아무리 늦잠을 자더라도 이런 늦은 아침시간이라면 깨어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왜…"

"물론! 정우가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나는 왜 기다…"

그녀는 갑자기 나에게 안겨오더니 침대로 강제로 눕히게 만들었다.

"헤헹~♪ 드디어 정우랑 단 둘이네~"

"…서현누나? 대체 왜…"

"민정이랑 지현이랑 같이 자는데 걔네 둘이 정우랑 나를 떼어놓잖아! 나도 정우한테 안기면서 자고 싶은데!"

"…하아?"

"그래서! 정우가 오늘도 일찍 올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지~"

"…"

"헤헤~♡ 정우야~"

그러고서 나를 껴안는 그녀. 내 몸과 그녀의 몸이 서로 맞닿아있었고 그녀는 내 허리를 팔로 감싸안았다.

"…서현누나"

"웅?"

이러고 있으면..자꾸 그녀에 대한 '욕망'을 품게 되잖아...참자..참자...

"왜엥~정우야~?"

애교섞인 목소리에 크리티컬데미지. 이러다가 서현누나를 덮쳐버릴 것만 같았다.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어서. 하지만 그러한 최악의 선택을 면하려고 내 머리에는 다른 생각으로 애써 꽉꽉 채워놓으며 그러한 '욕망'조차도 생각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리려고 해도..그녀의 이러한 사랑스러운 모습에 무너져내리는 나였다.

"우웅? 대체 왜 그래?"

"아니다…내가 실언을 했나봐"

"…웅?"

"서현누나"

"왜 그렇게 내 이름을 자꾸 부르는 거야?"

"조금 피곤해서…나 이대로 잘 게…"

"…에?"

나는 그대로 서현누나의 품으로 얼굴을 묻고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에에…정우야…?"

"피곤해 누나…나 이러고 자면 안 될까…?"

"…정우야…"

"그냥…이대로…"

이렇게라도 욕구를 채워주지않으면 안된다. 서현누나에 대한 갈망을 이 정도 선에서 만족해야했다.

"어리구나…아직도 누나의 품이 그리웠던 거야…?"

그녀는 내 머리를 천천히 쓸어넘겼다.

"서현누나…"

"…정우야…"

우리는 그렇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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칫. 부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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