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02화 (20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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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2. Whereabouts of Mind(마음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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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지금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져있다.

"이게 어찌된 일이야…"

"우웅…정우…"

내 왼팔을 베고 잠들어있는 지현누나는 내 품안에서 꼬물꼬물. 서현누나는 내 오른팔을 베고서 잠이 들었고..그리고 민정이는...

"zzz…"

민정이마저 내 침대에 누워서 서현누나와 내 오른팔을 공유(?)하고 내 허리를 감싸안으면서 잠을 자고 있었다.

"다들 자기 방 들어가서 자지않고 왜 하필이면 내 침대에서 비좁게 같이 자냐고요…"

한 침대에서 네 명이 자고 있으니 좁기도하고 무엇보다 엄청나게 불편하였다. 게다가 창문을 열어놓았는데도 후덥지근도 하였다. 그렇게 좁은 침대에서 자고 있으니 살과 살이 접촉을 하는 이상야릇한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지현누나는 왼쪽허리를 감싸고 다리를 척하니 내 다리위에 올려놓았고 민정이는 그 반대편에서 똑같이 하고 있었다. 이게 양손의 꽃인건가...라는 행복한 상상을 하기에는 그 상대가 너무나도 안 좋았다. 반면에 잠버릇이 안 좋던 서현누나가 나와 조금 떨어져있는 상태에서 얌전히 자고 있었으니 그나마 그게 다행이었다.

아니 애초에 서현누나가 이 침대에 들어와서 잔다는 것이 말이 안되는 것이었지만은.

솔직히말해서 이 상황. 남자인 나로써는 행복하다고하면 엄청나게 행복한 상황이다. 당장에라도 '할렐루야!!!!'라고 외쳐야 할 판이다. 근데 말이지..

"왜 남매끼리…"

어렸을 때라면 이해가 가겠지만 나이도 먹었겠다. 몸도 컸겠다. 게다가 어느 정도 생각을 깊이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겠다. 왜 이러고 있는건지 전혀 이해가 안 갔다.

서현누나나 지현누나는 예전에 같이 잤으니 상관이 없겠다만은..민정이마저 이러고 있었으니 내 머리가 아파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일단 이 상황부터 먼저 정리해볼 필요가 있었다. 지금 나는 불면증이다. 그래서 잠을 잘 수 없다. 게다가 민정이와 지현누나는 내 몸을 칭칭 감아서 움직일 수 조차 없다. 한 마디로 이러고 계속 있어야 된다는 얘기. 그리고..지금 몸과 몸이 아주 가깝게 맞닿아있는 상태라서 다 느껴진단말이지..다리라던가..가슴이라던가..심지어 그녀들의 머리카락에서 나느 샴푸향까지 맡을 수 있었을만큼 지척이었다.

"하아…"

다시 한숨.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이 집을 떠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다. 나는. 전혀 이렇게 어울릴 가치조차도 없었다.

"내 마음조차도 모르고…"

그녀들은 새근새근 자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보니…어떻게 된 것이었더라…?"

그것은 아마..몇 시간 전..의 일..이었지..? 잠시 오늘과 내일새벽에 걸쳤던 일을 다시 돌이켜보기로하였다.

[몇 시간전]

"흐흠…"

연세희의 노트를 참고로 나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지금은 시험기간. 게다가 준비는 거의 하지않았다. 어쨌든 벼락치기라도 제대로 해야 될 거 아니냐?는 생각에 조금은 급하게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연세희의 노트를 보면서 이 녀석. 철저한 구석이 있었구나..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9월에 보았던 모의고사조차도 정리를 해 놓았던 것이다. 사실 교과서 필기한 내용을 적은 노트를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이런 것까지 적어서 나한테 줄줄이야. 물론 그 만큼의 일을 해야겠다는 한탄도 나오고 있었지만.

하루종일 책상에 들러붙어있어서 그런지 몸이 뻐근도하였다. 보통이면 낮잠을 자야했는데말이야..급하다보니 잠 조차 잘 시간도 없었다.

"정우야~"

이럴 때에 불청객은 정말로 사양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서현누나였다.

"응…"

"지금 뭐해~?"

귀여운 표정으로 내 책상에 놓여져있는 노트들과 교재들을 보고 있는 서현누나. 정말 이런 사람이 내 누나가 아닌 여동생이면 어떨까하는 상상도 들었다. 물론 여동생에 걸맞지않게 성숙한 몸매를 하고계시는 서현누나였다.

크으..너무 귀엽단 말이야..

"우리 정우! 공부하고 있었구나!"

"하하…응…"

"칫…"

엉...? 왜 갑자기 혀를 차는 이유는...?

"정우랑 같이 데이트하려고 했는데!!"

"…엥?"

"나 심심하다구!!"

"…"

당장에라도 하던 거 때려치우고 서현누나랑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유혹이 강하면 강할수록 '이러면 안된다'라는 이성도 강해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공부하고 있으니…히잉…"

"서현누나…"

"방해꾼은 사라져줄게…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조금 있다가 밥해줄테니까…"

"서현누나"

"응…?"

"조금…모르는 것이 있는데…"

나도 서현누나랑 같이 있고 싶다. 적어도 이런 '행복한 시간'이 유지되기 전까지는. 되도록이면 오래도록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 그래서 이런 수를 써서라도 붙잡고 싶었다.

"모르는…거?"

"응…그러니까 조금 도와주면 안될까?"

"…응! 모르는 거 있으면 내가 다 알려줄게!"

그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이 문제…"

나는 교재에 손가락으로 문제를 가리키며 가르쳐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개념이라던가 그러한 것들도 가르쳐줌으로써 더 서현누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고 싶었다.

사실은 이런 거. 다 알고 있었지만. 억지로 모른 척한 것은 넘어가기로 하자.

저녁을 먹고 난 이후에도 공부는 늦은저녁임에도 계속된다. 저녁이후에는 서현누나와 방에서 같이 있지않고 혼자 공부를 하다가 시계를 보니 11시. 이상하게 공부를 하다보면 시간이 잘 갔다. 집중력 있게 해야한다는 조건이 붙긴 하였지만 이것 나름대로 시간보내기가 쏠쏠하다.

이제는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자야할 시간이었다. 11시~12시쯤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수면을 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렇지만 시험을 앞두고 있거나 또 시험 중인 사람들은 절대로 잠들 수 없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지현누나는 오늘도 독서실에서 공부 중. 수능이 이제..5주? 4주 반? 그 정도 남은 것 같았다. 지현누나의 수능이 끝나고 나는...

'더 이상 이 가족에게서 쓸모있는 사람이 아니다'

내년이면 민정이는 고등학생이 되고. 지현누나는 대학생활을 시작할 것이며. 서현누나는사회인으로써 일자리를 찾고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년이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나도 내년이면 고3. 지현누나의 뒤를 따라서 수능을 봐야될 시기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말이지..

이제 더 이상 가족들이 자기 각자의 생활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는 거야..그러면 서로 볼 시간도 없어지고 대화량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어가겠지...

그러는 나에게 더 이상 '역할'이 주어질까? 아니다. 나는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된다.

민정이에게는 애써 가지않을거라 거짓말을 했지만..나는 확실하게 '떠날 결심'을 하고 있었다. 가족들로 남아있기에는 내가 너무나도 '위험한 인간'이다. 그러니 사라져주는 것이가족들에게는 이익이 될 것이고 오히려 좋은 일인데다가 더 행복해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된다면야. 나는 미련없이 떠날 수 있다.

민정이의 이러한 믿음을 '배신'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하였지만은..차라리 내가 배신을 함으로써 나를 진정으로 미워하게 만들 수 있다면..

나에게 빨리가라고 어서꺼지라고 재촉할 수 있을테니까.

이번에는 내가 스스로 '미움'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이로써 나는 만인의 악이 된다. 가족들에게조차도 상처를 줘버린 악. 그 자체인 사람.

"나는…이러한 나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어…"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 민정이에게 상처를 주고. 지현누나의 마음을 이용하고. 서현누나에게 '갖지 말아야 할 감정'을 가져버린 나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가족 모두를 기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하지는 않았지만..결국에는 이렇게 된 것이었다.

조용하게 사라져버리면 그만. 그리고 떠난 후에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갈 것인지에 대해 묻고 생각해보았다.

그렇지만 떠나고 싶지않다는 미련함에 '그래…조금있다가…조금있다가 때가 되면은 그 때 다시 생각해보자…'라고 묻어버린다.

평화로운 일상. 이 평화로운 일상이 이렇게 소중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그저 지루하기만한 하루로밖에 보지않았던 나인데 이제는 이 1분 1초도 서서히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떠나기로 결심을 해서 그런지 가족들의 얼굴을 유심하게 자꾸 지켜보게 된다. 그래서 계속 그들의 모습을 세밀히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런 거 지지리궁상이라고. 책임회피라고 나를 욕할 지라도 상관이 없었다. 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회의를 가지고 있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인간이었기에 이런 자기책망을 하고 있어도 나는 그것을 넘길 수 있었다.

가족들의 웃는 모습을 지켜주고 싶어서라고 가장하고 '이제 나는 필요가 없기에 사라져야한다'라는 떠날 결심. 이토록 가출을 하는 것이 두렵게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어렸을 때에는 그렇게 밥 먹듯이 했던 게 가출이었는데..

떠나고 난 후에. 그들은 슬퍼해줄까? 찾겠다고 난리를 부리는 것은 아닐까? 그러지않았으면 하였다. 그냥 내가 없었던 것처럼..마치 세 자매끼리 계속 살아왔던 것처럼..

그렇게 살아주었으면 하였다. 나는 '그림자'였고 '어둠'이니까.

그래..그런 이유니까...

째깍..째깍...

12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데 바깥은 깜깜하다. 아직 거실에는 불이 켜져있는 걸 봐서는 민정이와 서현누나가 자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정우야~"

노크를 전혀하지 않고 방문을 열고 서현누나가 들어왔다. 사실 저녁먹고 과외선생을 자처하던 서현누나였으나 내가 한사코 만류를 하였다. 낮동안 계속 붙잡았었는데 계속 그러고있을 수는 없다고 그냥 편하게 tv를 보던가 컴퓨터를 하고 있으라고 얘기했다.

"응…"

"나 오늘 여기서 잘래~"

"…하아?"

"여기서 잘 거라구! 지현이랑만 맨날 같이 자니까 샘이 나기도 해서!"

"…에고고…"

"정우야~? 같이 잘 거지~?"

"나…공부해야 된다는 거 알고 있잖…"

"부우~"

볼을 부풀리며 삐진 서현누나를 달랠 여력도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알아서 하세요…"

"헤헷~♡"

백기를 들었다. 이러다가 밤에 서현누나를 덮치지는 않을까 내 스스로의 늑대본능에 물어본다. 서현누나가 자고 있으면..나도 틀림없이 자야된다는 얘기인데...으휴...

"그만 공부하고 같이 자자~웅~?"

"…"

"…안 돼?"

"알았어…조금 있다가 이거 끝내고 잘게…"

"너무 늦으면 안돼~?"

"그런데…이렇게 불 키고 자면 불편하지 않을까…?"

"괜찮아~정우가 일찍 자면 되니까~"

"…"

"그럼 나 먼저 잘게~"

그러고서 침대에 누워서 이불을 덮고 잠이 든 서현누나.

그러고서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지현누나가 들어왔다.

"정우"

"어서 와 지현누나"

"…시험 잘 봤어?"

"하하 그건…노코멘트랄까…? 아하하…"

유난히 내 성적에 신경을 써 왔던 지현누나라서 '나 시험 망했어요'라고 말하기에는..솔직히 조금 그랬다. 얘기하고 싶지 않달까..? 아무튼 숨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못 봤구나…"

"미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치채버린 지현누나때문에 나는 순순히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괜찮아…다음에 잘 보면 되니까…"

"…엥?"

"괜찮아 정우…힘 내…시험 아직 안 끝났잖아?"

지현누나가 왠일이냐...이런 말도 다 하고...

"그런데…서현언니…?"

"응…내 방에서 자겠다고 해서…"

"…정우"

"응?"

"잘 거지…?"

"뭘?"

"나랑 계속 같이 자주겠다는 약속…"

"…"

"나도…조금 있다가 들어와서 잘 테니까…"

..이거 뭐다냐...

"그러니까…같이 자자…"

"…"

"…응?"

"…씻고 와서 언제든지 자도 되니까"

"응…항상 고마워 정우…"

"고맙기는 무슨…"

예상대로 분홍색 파자마를 입고 지현누나는 내 방 침대에 들어갔다.

"어서 들어와서 자…"

"알았다니까…"

"정우…"

'에휴…'

나는 공부하던 것을 모두 덮어버리고 방불을 끄고 침대에 들어왔다.

"정우…"

"응…?"

"잘 자…정우…"

"…아. 누나도 잘 자…"

"응…내 꿈 꾸고…"

"…응?"

뭐지..? 뭔지는 모르겠다만은 닭살커플이 쓰는 말을 들어버린 것 같은데..?

"…"

"…?"

지현누나는 잠이 들었다.

'잠시동안이라지만…이러고 살아야 되는 걸까…?'

이런 회의감도 문득 들었다. 그냥 편하게 따로따로 자면 되는데..유독 나랑 같이 자는 것을 좋아하는 지현누나와 서현누나였다.

나는 잘라고 해도 영 눈을 감기가 꺼림칙하였다. 양 옆에 초미소녀라고 해도 될 만큼의 사람 2명이 붙어서 자고 있는데 잠이 오겠는가..? 절대로 잠이 안 오지...

게다가 그 때. 내 방문이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오빠는 자고 있을까…?"

왜 민정이마저 여기에 들어오냐고!!!!

"별…별로 함께 자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은 없지만…역시나…지현언니나 서현언니가 꼭 이 방에 들어와서 자고 있을 줄 알고 있었으니까…"

"…"

나는 눈을 감고 자고 있는 척을 하였다. 이러다가 민정이와 시선이 마주치기도 그랬다.

"…나도 언제까지 지고 싶지않으니까…"

내가 깨있나 안 깨있나 손으로 휘휘 내저으며 반응을 살피고 있다가 내가 반응을 하질 않자 그녀도 서현누나와 나의 틈새를 비집고 침대에 들어왔다.

..이 녀석 마저 내 방에서 자려는 건가..자기들 방도 다 있는데 무슨...

"오빠…"

"…"

"오빠 품…안으니까 너무 좋다…"

'하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나는 밤을 지새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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