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96화 (196/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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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2. Whereabouts of Mind(마음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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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누나가 차려준 밥을 모두 다 먹고 난 이후에 양치질을 하고 방에 들어가서 조그만 소파에 앉아있었다. 사색에 잠겨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생각도 없이 감정없는 사람처럼 있는다.

한 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산들바람이 살랑살랑 흘러가고 있다는 분위기랄까. 상당히 안정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이러한 평화가 계속되는 것일까. 가족들끼리 화기애애하고 화목하는 것이 계속 지속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서현누나와와의 관계가 더 진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모순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빠져도 너무 빠진 것인지…"

머리를 긁적거리며 나의 이러한 바보같음에 자책을 한다. 그래도 참아가야겠지. 이 평화절대로 깨기 싫었으니까. 언젠가 자신들의 가정을 꾸려나갈 때까지 이 울타리는 계속 지속되어야하니까. 고작 나의 이런 치기어린 마음으로 그러면 안되는 거야.

흔들리겠지. 계속 나를 포기하게끔 만들겠지. 아까 전까지만 해도 무너져버렸으니.

저릿저릿 통증이 밀려온다. 그녀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아픔. 몸은 속여도 심장은 못 속이는 것이 진짜인 듯 날카로운 가시로 찌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통증조차도 웃어넘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것은 내가 반드시 해야 할 '변화'. 다른 말로는 '성숙'일 것이다. 이 과정을 겪기 위한 시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서현누나…"

이름을 부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 저절로 그녀의 상냥함이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자기자신을 위안하고 달랜다. 잊기위해서. 그녀에 대한 감정을..

지워버리기위해서.

밤. 아직은 일찍 저물지 않는다. 한 8시 쯤이 되어서야 날이 저물어간다. 그러고보니 겨울도 머지않았고..그렇다고는해도 침대에서 뒹굴뒹굴 할 짓없이 놀기만 하는 나에게는 하루하루라는 시간들은 부질없었다.

흐르는 강물과 같다. 천천히 흐르는 것과 같았지만 어느 샌가 저 멀리 흘러가는 것처럼. 시간은 느리는 것과 같이 보이면서도 빠르게. 지나가면 지나갈 수록 더더욱 빠르게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들을 소모시켜간다.

틱..틱...

서재에는 조용히 시계초침이 뱅글뱅글 원을 그리며 조금씩 움직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거실에 있는 시계와 똑같은 시계. 그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2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지현누나가 돌아올 시간이려나..

수능을 보는 11월. 한 달도 남지 않은 급하기만한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지현누나라면 충분히 잘볼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지현누나의 뒤를 도와주는 것. 그리고 응원해주는 것 뿐이었다.

끼이익..

"…어라?"

보통 새벽 2시쯤이 되어서야 돌아오는데..오늘은 조금 일찍 오는 것 같았다. 나는 현관문열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방에서 나와 거실에서 그녀를 맞았다.

"지현누나"

"…응…"

요새 지현누나의 안색이 안 좋다. 수능도 얼마남지 않았다는 초조함인지 몰라도 그녀의 얼굴은 나날이 수척해져만 갔다. 안 그래도 수능은 체력관리라는데..수능 보기 전에 정말 쓰러지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솔직히 지현누나가 운동은 해 왔던 편이라 버텨낼 줄 알았는데 역시나 여자라서..거의 한계까지 온 것 같다.

"괜찮아?"

"응…괜찮아…"

전혀 괜찮지 않아보이는 데...

"너무 피곤해보인다. 빨리 씻고 잠을 자는 것이 좋겠어"

"응…"

그녀는 힘들어보였지만 나에게 내색을 하지 않으려 밝은 미소를 지어주고는 방에 들어갔다.

"후유…"

한 20분 쯤 지나고 나서였을까. 화장실에서 다 씻고 나온 지현누나가 내 문을 노크했다.

똑똑.

"지현누나?"

"응. 정우…"

"들어와"

오늘은 여기서 자려는 걸까..어젠..같이 잠 못 잤지...

"오늘…여기서 자도 돼…?"

이미 자려고 파자마차림에 베개까지 들어온 것 보면 내 허락 없이도 여기서 잘 기세 같은데요.

"응. 지현누나가 여기가 편하다면야…"

도통 이해가 가지를 않지만은.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여기서 나랑 굳이 잠을 자려고 하는 것일까. 나랑 같이 있으면 잠이 잘 온다고 얘기는 했었지만..꼭 그러한 이유만으로 같이 자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면…"

그녀는 바로 침대에 들어가서 이불을 덮고 누웠다. 이거..나는 아무래도 새벽내내 거실에 있어야만 될 것 같구만...

"…정우…"

"응…?"

"같이…잘 거지…?"

"후…"

"여태까지 계속 같이 잤으면서…게다가 어제는 같이 못 자기도 했고…"

"아하하…"

"이제는…나랑 같이 자기 싫은 거야?"

"…그것은 아니지만…"

"그럼…빨리 들어와서 불 끄고 자자…"

"…"

뭔가..상당히 위험한 발언같다...

"응…? 정우…"

상당히 보채는 듯한 그녀의 말투. 안 그래도 피곤한 것 같은데 나랑 같이 자면 정말 도움이 되기는 커녕 방해가 될 것만 같았지만..이 집의 자매들은 모두 고집이 세서 절대로 물러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나는 이쯤에서 물러나기로 하였다.

나는 불을 끄고 침대에 들어갔다. 그녀는 안쪽으로 들어가고 나는 바깥쪽에서 잠을 잤다.

"잘자…"

"누나도 잘 자…"

그녀는 언제부터인지 내 품으로 꼬물꼬물 들어와서 나를 껴안고 바로 깊은 잠에 들었다.

커튼을 치지않아서 달빛을 통해 시야가 가려져있었는데도 그녀의 얼굴이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이러면 서현누나같은데 말이야…"

지현누나와 서현누나는 상당히 닮았다.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서현누나가 조금 더 성숙해진 모습이라면 지현누나는 아직 소녀의 느낌이 남아있는 것이랄까.

그런데 이 와중에도 서현누나를 생각하는 나는 뭐냐.

'…만약에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서현누나였다면…'

나도 모르게 그런 상상까지 해버린다. 무방비하게 잠든 그녀에게서 나는 서현누나를 겹치게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로 옆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 지 모른다. 당장에 욕망이라도 품어버려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짓까지 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친가족이었는데도..가족에게까지 욕망을 품게 만들어버리는 신이 내린 외모.

나는 그런 그녀에게 발정나버려서..안 그래도 욕구불만인데...

"…나 대체 왜 이러냐…"

미쳤지 내가. 정말로 또라이 다 됐네. 불쑥불쑥 계속 꼬셔오고 있는 유혹에 나의 인내심은밑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든 그녀의 얼굴에 손을 내밀어 부드럽게 만져갔다.

'아기피부같아…'

그녀의 얼굴은 정말 부드럽다. 머리 만지는 것도 습관이 된 것 같은데 이제는 얼굴 만지는것이 습관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볼을 만지고. 머리를 걷어올려서 이마는 물론이고 코와 입술까지.

'이래서는 안 되는 거다…'

안된다고 하면서도 이율배반적으로 행동을 하고 있는 나.

"우웅…"

아차. 내가 너무 만져버려서 깨어났나?

미안 지현누나.

"우우…정우…정우…"

"…"

"가면 안돼…언제까지고 내 곁에 있어준다고 했잖아…제발 떠나지마…제발…"

"…지금 옆에 있어 지현누나"

"…거짓말…"

"여기 있잖아? 그리고 곁에 계속 있어준다고 했잖아?"

"정우는 거짓말쟁이야…"

"지현누나…"

"정우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라서…하나도 못 믿겠어…그러니 내가 믿을 수 있게…"

"…지현누나?"

꿈인지 진짜로 말하고 있는 건지 분간이 안 갔다.

"키스해줘"

"…!!!!"

"어느 동화에서 나오는 것처럼…키스해줘 정우…"

"…"

"그러면…믿을 수 있을 것 같아…"

뭐지...대체 꿈을 어떻게 꾸고 있길래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거지..?

키스라니..키스라니...

지현누나와 키스를 했던 건 두 번. 한 번은 야구장에서 살짝. 다른 한번은 꿈에서였지만..

"…거짓말 안해. 곁에 있어줄게"

"이러지않으면…정우가 떠나갈 것만 같아…어디론가 홀연히…날 버려두고…"

"…아니야"

"정우는…나를 좋아하잖아…좋아한다고 얘기했잖아…"

"…응. 좋아해"

"그러니까…키스해줘…내가 정말로 널 믿을 수 있게…"

손을 잡아달라거나 안아달라했으면 나는 기꺼이 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태까지 그녀와 키스를 한 것에 대해 심히 죄책감을 느끼고 또 그녀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는데...

"…지현누나…"

"그리고 정우가…날 버리고 떠나질않게…"

"…"

아직도 나에 대해서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어떤 악몽때문에 그녀가 지금 이렇게 불안해하고 있는 것인가.

'후…'

이거..어쩐다...?

두근.두근.

뭐야. 왜 이렇게 심장이 뛰고 있는 거야..?

두근.두근.

머리가 어질했다.

게다가 내 시선은 그녀의 입술에게로 고정이 되어있었다.

이거 뭐야...

이러다가는 정말 꿈에서처럼...

지현누나와...해버리게 되잖아...

'하지만 나는…'

이미..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정우…"

에...?

왜 갑자기...그녀의 얼굴이 자꾸만 서현누나로 보이게 되지..?

그 사랑스러운 얼굴....

멈춰. 제발 그만멈춰.

정말 이것은 아닌 거야. 가족이잖아. 서로 피로 이어진 인연이잖아.

그런데 나는 왜 지금...

'그녀와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거리가 가까워.

한 없이 가까워진 나와 그녀 사이의 거리. 안 그래도 그녀가 내 품 안에 있어서 가까웠는데. 몇 센치만 더 가까이 가면 그녀와...정말로...

"…아…"

그녀의 붉은 입술을 자꾸만 보면. 욕심을 부리게 되고. 이성은 놓아지게 되어버려.

얼굴을 그녀의 얼굴에게로 가져다댄다.

지금 나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자기암시였다.

나는 지금..사랑하는 사람과 하고 있다고...

입술을 서서히 맞춘다.

가벼운 프렌치키스. 그렇지만 부끄럽기만 하다.

키스를 하면...어떤 느낌인지 구체적으로 얘기하지는 못하겠지만...

달콤하다.

'미안해…미안해…'

미안해..지현누나...

지현누나를...서현누나로 대신 생각하고 있어서..

이것은 대리만족. 나는 그녀에게 하지 말아야할 짓을 하고 말았다.

입술을 서서히 떼어내고.

"…정우…"

나는 지금 뭐하고 있는 있지...왜 자꾸...자꾸...참을 수 없게 되어버리는 건데...?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자꾸만...감정으로 쏠리게 되어버린다. 이상야릇하고도 미묘한 마치 독을 숨긴 사과처럼 황홀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리고 그녀는 웃고 있었다. 키스를 해서 기쁜 듯...

나는 그것이 아닌데...

나는 지현누나를 보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

나는...

"정우…좋아해…"

"…"

그 빛과 같은 환한미소에 나는....끝없는 '죄악감'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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