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5 / 0318 ----------------------------------------------
Part 12. Whereabouts of Mind(마음의 행방)
------------------------------------------------------------------
처음은 호기심이었고.그 다음은 흥미였고.그 다음은 집착이었고.그 마지막은 사랑이었어.
-------------------------------------------------------------------
어둡다.
그녀의 집 밖으로 나온 후. 어둡기 그지 없는 이 밤길을 걷고 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가로등의 불빛. 건물들의 네온사인. 도시의 야경을 비추는 거짓된 빛들은 그저 어떻게든 이 밤을 밝게보이려고 노력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 쯤이면 각오하고 벌인 일이 아닌가. 그녀도 나에 대한 생각을 빨리 정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했고 또 그렇게 만들었다.
"정말로 홀가분해질줄 알았는데…"
그것은 단순한 내 착각. 나는 그녀때문에 '조여지고 있다'라는 구속감을 느꼈는데 정작 그녀에게서 벗어나고보니 이렇게 허전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그녀와 친구사이로도 돌아갈 수 없다. 그것은 확정된 일.
"나는…정말 미움만 받아야 되는 것 같네…"
자신을 부정하고 부정한다. 어차피 이런 놈이라며 자기부정에 휩싸인다. 사람들에게 미움과 증오를 받는 것이 이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아니 이런 가까이있던 사람들마저 떨어져나가니 이것이 내 운명인가하고 체념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자신을 자학하고 몰아세우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질 것이다라는 것에 나는 또하나의 내 자신을 몰아붙인다. 단순히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 이렇게 나를 몰아세워야내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제 스스로 납득하고 합리화할 것 같아서.
가로수가 우거진 짙은 그림자길을 따라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고 고단하다. 심란함과 미묘한 중압감에 휩싸여 이 돌아가는 길도 한 없이 길어보이고 멀어보인다.
쉬고싶다. 몸도 마음도 너무나도 지쳐서 쉬고싶었다.
그다지 힘든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정신적인 압박에 힘들어서..
"집으로 돌아가면…"
이런 와중에도 나는 그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 박서현이라는 나의 친누나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순간 그녀에게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나의쉼터이자 같이 있어줌으로써 나에게 위안을 주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기대어선 안되었다. 그러다간 이 끈질기게 버티는 것도 무너져버릴 것만 같다.
대체 사랑이라는 것이 무얼까. 사랑이 뭐길래 이렇게 사람들을 모두 힘들게 만들어버리는것일까. 이런 '사랑'이라는 감정. 모두 지워져버렸으면 했다. 차라리 몰랐으면 했다. 눈치채지않았으면 했다. 그런데 이렇게 눈치채버려서...
터벅.터벅.
몸을 마치 끌고가는 듯 걷는다. 무언가 무거운 것을 짊어지는 사람과 같이...
그래..죄수처럼.
집 앞에 서서 차임벨을 누르려는 데 순간 멈칫하였다. 지금 이 집에는 아마도 민정이와 서현누나가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은 나에게 사랑을 준 사람이었고. 한 사람은 내가 사랑하고있는 사람. 주저한다. 그래도 들어가야만했기에 꾸욱하니 벨을 딩동하고 누른다.
"누구세요~"
"…나야"
"정우~?"
끼이익.
"정우야~어서 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안겨오는 서현누나.
"…응"
나는 애써 떼어내려고 했지만은 그녀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왜 이렇게 늦었어~?"
"…그냥…"
"부우!! 말 돌리려하지말구 어서 얘기해!! 정우 밥 차려주고 얼마나 기다렸는 지 알아!!"
내가 대답하기를 주저하자 뭔가 자신에게 숨기고 있다는 것에 삐진 듯 서현누나는 볼을 부풀리면서 말했다.
"그냥…친구네 집에서 공부하다가…"
"그러면 연락이라도 했어야지!!"
"미안…"
"부우!! 한번 더 그러면 정우 밥 안 줄거야!!"
"미안해…"
"…정우…?"
"…응"
"왜 그래…? 왜 이렇게 대답에 힘이 없어…?"
"…아…"
"무슨 일…있어?"
"아니…아무 것도 아니야"
"무슨 일 있잖아. 대체 무슨 일이야?"
"…아무 것도 아니야"
"정우야…"
"조금 피곤해서 그런가봐. 미안 서현누나…"
나는 그녀를 떼어내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했다.
탁.
그렇지만 그녀가 내 손을 잡는 바람에 내 움직임은 멈췄다.
"얘기해 정우야. 정말로 무슨 일 있었던 거지?"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왜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는건데?"
"…"
"내가 얼마든지 도와주겠다고했잖아. 정우가 힘든 일 있으면 내가 곁에 있겠다고 했잖아.그런데도 얘기해주지…"
버티지못한다. 이러한 상냥함에 나는 결국 무너져내린다.
나는 그녀를 껴안아버린다. 그것도 꽈악하고 몸과 몸이 밀착이 되도록.
"…!!"
어떠한 변덕이었는지 모른다. 각오도 했다. 사랑하지 말아야할 사람을 사랑해버려서 나는그것을 참아가겠다고 다짐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쳐버렸다. 나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이렇게 나는 심약한 인간이었던가. 아니면..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내가 포기해버리는 건가.
"정우…야…?"
"잠시만…아주 잠시만…"
그녀를 안으니 따뜻함이 물씬 느껴진다.
"정우…"
그녀는 내가 갑자기 안아버리자 의아해하는 것 같았지만 머지않아 그녀는 내 등을 쓸어넘겼다. 차라리 지금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버릴까. 그러면 나아지는 것일까.
시하를 거절했을 만큼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얘기해버리면..
"…서현누나…"
"응…정우야…"
"…아니다. 그냥 고맙다고"
결국 얘기하지않는다. 순간 고백하면 마음이 편해지겠지..라는 생각이 완전히 사라져버렸기때문이었다. 그냥 나를 잠자코 안아주는 그녀가 너무나도 고마워서..
"누나가 내 곁에 있어주어서…다시 한번 고맙다고…"
"…응"
"이렇게 위안을 줘서…고맙다고…"
"…응"
"이렇게 안아줘서…나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렇게 있고 싶다.
그녀와 맞닿아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함을 느낀다.
정말로 이 마음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로 향하는 내 마음은...내리막길에서 굴러가는바퀴처럼 하염없이 굴러만간다.
"…응"
'응'이라며 나에게 더 이상 어떠한 이유를 묻지않고 받아들여주는 그녀.
나는 차마 그러한 그녀에게 '사랑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이루어 질 수 없다. 그녀와는 절대로 이루어 질 수 없다.
지금 내가 말해버리면 이런 평화로운 관계도 모두 깨져버리는 것을 알기에. 나는 멈추고 주저하고 두려워한다.
내 등을 천천히 쓸어넘기면서 내가 쌓아놓았던 것들을 털어내라고 격려하는 그녀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지만..겨우겨우 참아낼 수 있었다.
"…정우…"
"…응?"
"답답해…"
내가 너무 껴안아버렸나보다. 나는 재빨리 그녀를 품에서 떼어내었다.
"…미안…"
"정우야"
"…에?"
그녀가 다시 살포시 나에게 다가와서 안겼다.
"이 정도면 되지 않겠어?"
"…아…"
부드럽다. 방금 전보다 훨씬 부드럽게 느껴진다.
"헤헤…나도 모르게 정우 품이 좋아서…"
"…서현누나…"
"헤헷~♡"
이래서 그녀에게 사랑을 느꼈나보다. 귀엽고. 때로는 엄마같은 그녀에게서.
그녀의 기나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스칠 때마다 비단과 같이 부드러워서 자꾸만 만져지게 되었다.
"아웅…그렇게 만지면 안된다구…"
"…미안…"
"자꾸만 미안해라고만 말할 거야? 무슨 죄 지은 사람도 아니구!"
"…미…"
그녀는 손가락을 내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미안해하지말라고 얘기했잖아?"
"아…"
"그리고…정우는 내 머리 얼마든지 만져도 돼"
"…?"
"그냥…정우가 만지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서…"
"…"
"이러면 다정한 오빠와 여동생같지 않아?"
"…그러게…"
"아니면…'연인'이라든가…"
그 말에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그럴 수도…있겠지…?"
"정우야"
"응?"
"이대로…쭉 함께 있자"
"…?"
"가족끼리 단란하게…영원히…"
"…결혼은 어쩌고?"
"그런 것보다…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좋고. 정우가 더 좋은 걸?"
"나도 그런 것이 좋지만…언젠가 좋은 남자를 만나게 될 거야 서현누나는"
"부우!! 정우는 내가 싫은 거야? 다른 남자만나서 확 결혼했으면 좋겠어?"
"아니…그런 것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우리 가족들이 화목하게 지냈던 때가 있었을까"
"…글쎄…"
"나는 가족들끼리 함께하고 싶은 것이 정말로 많은 걸? 가족끼리 바닷가도 가보고…한번은 외국으로도 가보고…산이나 계곡도 좋고…그리고 넷이서 단란하게 밥을 만들어서 한 식탁에서 먹어보기도 하고…편안하게 서로의 몸을 의지하면서 잠을 자보기도 하고…다른가족들처럼…평범하게 지내고 싶어…"
"…"
"우리에게는 부모가 없잖아? 부모가 없지만…그래서 더더욱…"
"…서현누나가 바라는 대로 되었으면…얼마나 좋을까"
"'바라는 대로 되었으면'이 아니야. 반드시 이루어 질 거야"
"…서현누나"
"이제 더 이상 혼자는 싫어…혼자서 살아가기는 싫단 말야…"
"…"
"그냥 가족들끼리 영원히 살아갔으면 좋겠어…그것이 내 꿈이야…"
"…응"
"그러니까 좋은 남자만나서 결혼하라든가 그런 말 하지마. 그런 것보다 그냥 정우가 곁에있어주는 것이 훨씬 더 좋아"
"…"
"아…밥도 다 식었는데…정우야. 일단 들어가자"
"…응. 서현누나"
"그런데 이렇게 계속 껴안고 있을 거야?"
"아…"
"헤헹~정우는 내가 안기는 것이 좋은 거지~?"
"응"
"…에?"
"기분이 좋아. 서현누나가 안겨있으면"
"…"
"그런데. 밥은 먹어야 되겠지? 그리고 시간도 너무 끈 것도 있고"
"…응"
"들어가자"
"응…"
서현누나의 얼굴에는 살짝 홍조를 띄고 있었지만 나는 그러한 것도 보지못하고 집 안으로들어갔다.
역시 집이 최고인 건가..편안했다.
"어서 옷 갈아입어. 밥 다시 데울테니까"
"민정이는…?"
"오빠. 어서와"
"…다녀왔어"
나는 웃었다.
이러한 고통들도 잠시지만 잊혀져간다. 어찌보면 서서히 치유되어지는 것 같다.
'가족'이라는 더 없이 상냥한 존재덕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