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94화 (19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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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2. Whereabouts of Mind(마음의 행방)

예상외로 독자님들께서 텍본에 긍정적인 답변을 해주셔서 급당황...

그렇지만 '텍본'에 관한 문제는 아직 '연재'중이기때문에 완결이 다 되고나서 다시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아직은 텍본제작에 관해 성급하다는 생각이기때문에..

그리고. 200회가 머지않아서 제 3차 표지이미지를 구해볼까합니다..관심있으신 분들께서는 제 뜰 이미지란에 표지이미지를 올려주세요. 좋은 이미지면 바로 채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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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일까. 그녀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그녀와 '연인'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확실히 내 마음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가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내가 거절하면 그녀가 상처받는 것이 뻔한데도..너무나도 모순적이고도 뻔뻔한 마음이었다. 친구를 잃고 싶지않다는 두려움에. 이런 어떻게보면 순수하기도 한 이 녀석에게..나는..

"…정우군"

사실 이런 부탁에 이렇게 심각히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어찌보면 내가 너무 비약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건 충분히 '친구로서'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잖아?

"알았어. 같이 공부하자"

"정말…?"

"응"

"다행이다…정우군이 안 받아줄줄 알고 얼마나 두려웠는데…"

"…"

"다행이야…아직은 나에게도…"

"…"

"정우군"

"…응"

"그럼 오늘부터…해도 되는 거지?"

"어…"

"헤헷~정우군~"

그녀는 내 팔짱을 끼고서 자기네 집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나는 그것에 끌려가다시피 하는 거였지만 딱히 제지를 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너무나도 기쁜 듯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기때문에..

"어서와~정우군~"

은근히 발걸음이 빠른 그녀덕분에 빨리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내가 그녀의 어머니부탁으로 이 곳에 오게 된 이후로 두 번째였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그녀는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는 모양인지 방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오랜만에 온 이 집을 두리번거렸다. 여느 평범한 가정집. 가족사진으로 보아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시하 셋이서 살아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기다렸어?"

방 안에서 그녀가 교복이 아닌 사복으로 나왔다. 역시 이 녀석도 확실한 미소녀. 어떤 옷을 입든 어울리고 예쁘다.

"목 마르지? 물 좀 갖다줄까?"

"어…?"

"물 갖다줄게"

그녀는 부엌에 있는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더니 물컵에 쪼르르 물을 담고 다시 나한테 와서 물을 건넸다.

"여기"

"어…잘 마실게"

"헤헷…"

나는 물을 마시고 나서 책가방에서 주섬주섬 공부할 것들을 꺼내놓았다. 그녀도 내가 꺼내놓는 동안 거실에 있는 탁자에 자기가 방에서 갖고 온 교재들을 올려놓았다.

"…그럼…뭐 부터 공부할까?"

"첫 날에 뭐 보는 건데?"

"…우응…뭐였지…?"

"…아하하…"

"그냥. 수학부터 하면 되겠지 뭐!"

뭔가 될 대로 되라는 식이다.

"그러면 공부하다가 묻고 싶은 거 있으면 물어봐"

"응!"

나는 필통을 꺼내고 노트에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나와 마주보고 앉아서 공부를 시작한다.

조용하게. 마치 도서관을 보는 듯. 자기가 할 공부를 한다.

사각사각..사각사각..

노트에 글자적는 소리만이 이 집안을 채운다. 아직까지는 질문을 할 사항이 없는 지 그녀는 나에게 말 한마디 꺼내지않고 노트의 공간들을 채워나갔다.

그녀는 여전히 행복하다는 듯 웃음을 짓고있었다. 뭐가 행복한 것인지 모르겠어도 지금 그녀의 기분은 좋다는 것을 알 수는 있었다. 나는 그러한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정우군?"

"아…응…"

"나한테 할 얘기 있어?"

"아니…"

"흐흥~?"

"미안…"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정우군~?"

"그게 그러니까…"

"나를 이상야릇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거~?"

"…"

"정우군이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보고있어도 되는데~"

"…미안"

나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노트에 애써 써내려갔다. 그녀는 나를 보면서 쿡쿡 계속 웃고있었다.

"정우군"

"응…?"

"내가 왜 갑자기 같이 공부를 하자는 건지 알아?"

"…아니"

"그건 말야…이번 기회에 정우군이랑 더 친하게 지내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

"그런데 그것 말고도…알고 싶었어"

"뭐가…?"

"정우군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

"…"

"나는 기다렸어…정우군이 언제 받아줄까하고…그런데 생각해보면…정우군이 전혀 받아주지 않을 것만 같았어"

"…"

"또 우연히…정우군이 누군가와 데이트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

"어제…정우군이 누군가와 같이 걸어가는 것을 봤어…"

'그래서였나…'

그래서 그녀가 '조급해'하고 있었던 것인가..그녀가 이대로 나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인가하고 불안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같이 공부하자라고 말한 것은 어디까지나 구실로 정작 그녀의 목적은 나의 진정한 마음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 사람…누구야? 지현언니야?"

"…아니야"

"그러면?"

"첫째누나"

"첫째…누나?"

"…지현누나말고도 그 위에 누나가 한 명 더 있어. 얼마 전에 미국유학에서 돌아와서…"

"…"

"데이트로…오해한 거야?"

"…정말이야?"

"…?"

"정말 그 사람이 정우군의 첫째누나야?"

"응"

"정우군"

"어…?"

"정우군은…가족한테 상냥하구나…"

"…"

"…나는 왜 그러한 것에도 질투를 느끼고 있는 것일까?"

"…정시하"

"기다렸어. 줄곧 기다렸어…정우군이 언제 대답해주려나하고…항상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어…그런데 정작 정우군은…매일 가족들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고…"

"…"

"나도…그 가족들만큼 소중히 대해주면 안돼?"

"시하…"

"'시하야'라고 불러달라고했잖아. 친근하고 다정하게 '시하야'라고 불러달라고 했잖아"

"…"

"정우군은 사실…내 마음 받아줄 의향도 없었던 거지?"

"…"

"어쩌면 내가 헛되이 기다렸는지도 모르겠어…정우군은 항상 다른 곳만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나에게는…'친구'이상의 시선으로 바라봐주지 않으니까…"

"…"

"한 가지만 물어볼게 정우군"

"…응"

"정우군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

"그래서 받아주지 않았던 거야?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

"정우군…!! 대답해!!"

"…그래"

나는 결국 대답을 하고야 말았다. 이미 나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미 박서현이라는 사람이 내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고.

"그랬구나…그랬었던 거 구나…"

허탈해하는 그녀.

"이 기다림도…나는 차마 외면하고 싶어서 그랬던 거구나…"

"…?"

"나는 왜 어째서 안 되는 거야 정우군…? 이렇게 기다렸는데도…!! 왜…왜…"

감정이 북받쳐올라 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정시하…"

"왜…내가 같이 공부하자고 했을 때 받아줬던 거야…?"

"그건…'친구'로서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었기 때문이었어"

"…'친구'?"

"그래. 친구"

"여자친구가 아니라?"

"그래…"

"어째서…"

"나는 너와 어울리지않아"

"그렇지않아! 나는 정우군을 좋아하는 걸! 그거면…충분하지 않아? 아직도 '그 일'때문에이러는 거야?"

"아니야"

"그러면!!"

"나는 네가 행복해지길 바래"

"나는 정우군이 없으면 전혀 행복하지않아!!"

"…그건 일시의 감정일 뿐이야"

"그 일시의 감정도 감정이 아니야? 내가 왜 정우군을 좋아하면 안 되는건데!"

눈물방울때문에 그녀의 노트는 글씨를 쓸 수 없을 만큼 젖어있었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찢으러 이 곳에 온 것이 아니었는데..어째서 갑자기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어디까지나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 일이었는데..

"너는 좋은 사람이야. 그래서 나와 어울리지 않는 거야"

"그건 단순한 변명이잖아!! 사랑하는 사람 있다면서!! 그것이 진정한 이유아니야?"

"저번에도 얘기했었잖아. 너는 얼마든지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이러한 나보다 훨씬 더 좋고 멋진 남자를 만날 수 있어. 이런 바보같고 쓰레기 같은 놈을 좋아하지말고 다른 사람 찾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고. 사실 나는 너에게 어떠한 감정을 가져야 될 지 모르겠어. 이렇게 나한테 다가오는 너를…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어. 하지만…나는 계속 갈등하고 갈등했어. 만약에 내가 너를 또다시 차버린다면…네가 상처를 받는다는 생각에…"

"…"

"그렇지만 얘기해야되겠어. 미안해. 나는 너를 받아들일 수 없어. 어디까지나 좋은 친구로 남자고 했으면 좋겠지만. 이런 거를 바래서는 안 되겠지? 너도 나같은 놈한테 질릴대로 질렸으니까.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나를 싫어하게 되니까. 나는 네가 상처를 입지않길바랬고 이러한 순간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 않았지만…더 이상 끌어서는 서로 힘들어질 뿐이야.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얘기하면 될 것을 이렇게 구구절절 변명을 하고있냐고 묻고 있다면…내가 우유부단하기 때문이야"

"…"

"잃고싶지않아. 단순히 '친구'를 잃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에서였어. 그렇지만…우리는 어쩌면 '그 일'이후로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 했을지도 몰라…그렇게 시간이 흘러가서…서로가 잊을 수 있도록…"

"…정우군…"

"나를 미워해 정시하. 이렇게 너의 마음을 부셔버리는 나를 증오하고 미워해"

"…어째서…그렇게…"

"그것이 너에게 편하다면…나는 얼마든지 그런 역할 할 수 있으니까"

"…"

"나는…계속 미움만 받으며 살아왔으니까…그런 거야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정시하. 나에게는 첫사랑이었던 너야. 첫사랑은…이제 추억이 되어야하는 거야…"

나는 할 말을 다했다. 이제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나는 어째서 소중한 사람들한테 상처만을 주는 것일까. 민정이도 시하도 모두 상처만을 주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도 부족할 지경인데 이렇게 둘의 마음을 찢어버리는 나는..

아아..'최악'이다. 나는 정말 최악인 인간이었다.

"헤헷…뭐야…뭐야 정우군…정우군이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지 모르겠어…"

"…미안해. 시하야"

"그렇게 다정히 불러주지 마 정우군…정우군이 그러면…나는 널 미워할 수 없게 돼…"

"너에게 상처만을 주는 나를 용서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아. 저번처럼 칼 휘둘러도…뭐라하지않을게"

"정우군…정우군…"

그녀는 눈물을 손으로 닦는다. 나는 그녀를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안하다. 나는 그저 미안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어…"

"가…"

"…"

"가 버려 정우군"

"…"

"이제 다시는…정우군 붙잡지 않을 테니까…가버려…빨리 가란 말이야!!!"

"…"

"어서…꺼져…붙잡지 않으니까…앞으로 정우군 절대 보지 않을테니까…"

"그래…"

나는 올려놓았던 교재들을 책가방에 챙기고 가방을 매었다.

"잘 있어"

나는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빨리 꺼지기나 해"

"…"

나는 씁쓸히 웃고는 현관문을 연다.

마음이 홀가분하진 않다. 이렇게 하면 홀가분해질 줄 알았는데.

..그녀에게 너무나도 미안하고 미안해서..

차라리 이렇게 꺼지라고 얘기하는 그녀가 고마웠다.

이제는 이 집도 다시 들어올 기회가 없겠지.

"…안녕. 시하야"

한 톨의 미련에 결국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 말하고는 현관문을 닫는다.

그리고...

"…안녕…정우군"

문이 닫히는 틈으로..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날. '첫사랑'이자 '친구'한 명을 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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