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91화 (19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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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2. Whereabouts of Mind(마음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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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쏴아...

지금 난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샤워를 하고 있었다. 옷을 대충 걸어두고나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아가며. 멍하니 있는다.

"…후우…"

오른손을 내 가슴위에 얹어놓는다. 몸을 적시면서 정신을 차갑게 하려고 하는데도. 크게 심호흡을 몇 번이나 내쉬었는데도 가슴은 진정되지 않는다.

"큭…!!"

아릿한 통증에 나는 욕조에 주저앉았다. 아니 널부러져있다는 것이 옳은 말일 거다.

그녀에 대한 생각이 멈추지않는다. 브레이크가 풀린 것처럼 그녀에 대한 것만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걸 기억하고 보면 볼 수록 통증은 심해져만갔다.

사랑하고 있다. 그녀를. 그것도 아주 깊이. 어느샌가 그녀가 내 마음을 꽉 채우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거…"

아니 이것이 사랑일까. 나는 내 감정을 신용하지 못했다. 정작 진정으로 이것이 사랑인지조차도 몰랐다.

아프다. 정말로 아프다. 그래도 참아내야한다. 참고 참아내서 언젠가는 이것이 잊혀져갈 것이다. 마치 식어버린 화산재와 같이 이 감정도..그렇지만 이것을 버텨내는 것이 힘들다. 너무나도 힘들었다.

앞으로도 이것을 버텨내야하는데..기한조차도 정해지지 않는 나날을 보내야하는데...

왜 그녀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어버린 것일까. '가족'으로써의 '애정'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녀는 내 소중한 가족이기에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지만..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그녀를 '이성'으로 보고 있었다. 단 한명의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 자신도 느끼지못하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미친놈…"

어째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 너는 절대로 품지 말았어야할 마음을 품고 있어. 이런 쓰레기같은 자식...! 아무리 욕구불만이라도 그렇지 친누나에게 그런 감정을 품고 있냐! 이 미친놈아!

퍽! 퍽!

주먹으로 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있는 힘껏. 내 손이 아픔에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도 벽을두드린다.

"헉…헉…"

조금 있다가 피가 줄줄 물과 함께 흐르고 있었다. 어딘가를 잘못쳐서 피가 나오는 거다.

"크크크…"

실없이 웃는다.

하하..나는 정말 '구제불능'이구나...사람들의 말이 옳네..나는 정말 쓰레기야...정말 구역질이 나고 역겨운 놈이야...

"…크크크…"

물은 떨어져내린다.

아프다. 그 떨어져내리는 물방울 조차도.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그녀를 사랑하지않았으면..이렇게 되지도 않았을텐데...

이 멈출 수 없는 마음을. 알리지 못한다는 것이 억울한 것일까..?

"서현누나…"

내가 사랑하게 되어버린 그녀의 이름을 읊조린다.

"서현…누나…"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 부를 수록 그녀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는 더 이상..걷잡을 수 없는 이 마음을 멈출 수 없었다.

당장에라도 내 방에 잠든 그녀를 껴안고 싶다.

당장에라도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싶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그녀가 없으니까 텅 비어버린 것만 같다.

'정우야~'

보고 싶다. 정우야라고 외치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보고 싶다.

그렇지만 안된다. 안되는 건 안되는 것이다. 절대로 감춰야한다. 이 마음을. 너무나도 간절해져버린 이 마음을 짓밟아서 다시는 일으킬 수 없게 만들어야한다. 내 스스로 컨트롤하고 자해를 해서라도 멈춰야한다.

아아..어째서 난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그녀는 내 친누나이자 나에게 가장 위안이 되는 사람. 그 이상은 아니었는데. 혹시 나를 생각해주는 그 마음이 너무나도 고마워서 내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일까..?

그것도 맞았지만. 반해버린 거다. 그녀에게. 그 동안 그녀에게서 느껴왔던 감정이 '어느순간'부터 사랑으로 변한 것 뿐이다.

'확실하게 각오를 해 박정우'.

이 마음을 끝까지 숨기려면..이 마음을 지워지게하려면...나는 그녀에게 더 이상 다가가서는 안된다. 더 이상 친근하게 굴수도 없다.

네가 스스로 자초했어. 이 모든 것은 너의 잘못에 의해서 그러는 거야. 이것은 대가. 너무나도 가혹한 값을 치뤄야 해.

"후우…"

다시 심호흡을 길게 내쉰다. 이제부터는 절대로 그녀를 철저하게 '가족'으로 대해야 된다.안 그러면 내가 버티지 못하니까. 그녀가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될 때까지..나는 그녀를 '가족'으로써 대하게 될 것이다. 행복했던 데이트도 없을 것이고. 그녀가 이제 내 방에서 자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옳은 일이야…그리고 이것이 내가 해야할 행동인거야…"

화장실 문을 나서고 내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지현누나가 여전히 거실에 나와있었다.

"정우…"

"지현누나…? 안 자고 뭐하고 있었어…?"

"정우…"

"응?"

"…"

그녀의 시선은 내 손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

꽤나 심하게 긁혔나본지 피가 여전히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런..수건에도 피가 묻어있겠네...

"아아 이거? 별 일 아니야"

"…"

"괜찮대도? 이런 거 금방 연고 바르고 밴드 붙여주면 돼"

"…"

"지현누나…?"

"거짓말"

"…거짓말아니야"

"거짓말이야"

"왜 내가 지현누나에게 거짓말을 하겠어?"

"너는…거짓말쟁이야…"

"지현누나. 그게 아니라…"

"연고를 바르고 밴드 붙인다고 해서…해결이 될 것 같아…?"

"…이런 거야 금방 회복…"

꾸욱!

"끄윽…!!"

"정작 아픈 곳은…이 손이잖아…이 상처가 아닌…"

"…아하하…"

"대체 무엇때문에…이렇게 되었어…?"

"하하 그게…"

"얘기해줘"

"그냥…샤워하다가 미끄러졌는데 미끄러지면서 손이 물 나오는 데랑 세게 부딪혔나봐. 그래서 이런 상처도 생긴 거고…"

"…"

"이런 상처야 뭐…계속해서 겪어봤으니…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

"…그래도…"

"이런 건 알아서 할게. 그리고 누나 걱정하지않게 병원에도 가고"

"…정우…"

"괜찮아 지현누나. 이런 거야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사고였는데 뭘 새삼스레…"

"…"

"늦었는데다가 피곤할테니 자야지. 내일 학교도 가야하고"

"…"

"나 먼저 잘게. 잘 자"

"응…정우도 잘 자…"

그녀는 나에게 같이 자자고 얘기하지 않았다. 그러고서 조용히 민정이가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미안해…"

나는 뒤에서 이런 말 밖에 해줄 수 없었다. 이런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나..그런 나를 걱정해주는 그녀에게 미안해서...

나는 내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내 방에는 그녀가 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피하고자 나는 지금 거실에서 궁상이나 떨고 있었다.

"하아…"

소파에 누워서. 팔을 내 머리위에 놓고. 자꾸만 나를 짓누르고 있는 이 답답함을 풀어내려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풀려지지 않는다. 그저 숨이 턱하니 막히기만 하다.

각오는 이미 굳혔는데. 그런데 자꾸만 흔들린다.

다시 마음을 굳게 먹자. 이 정도에 제발 흔들리지 말자.

나는 뒤에서 그저 그녀의 행복을 바라면 된다.

어디까지나 가족으로써. 그녀를 바라봐야만 한다.

그러면 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나는 그녀를 절대로 사랑하지 말아야하니까...그래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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