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85화 (18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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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1. Sad Conf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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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어릴 때의 민정이. 그녀가 나에게 달려온다.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귀여운 얼굴. 그녀. 박민정은 나에게 환한 웃음을 지어주며 달려왔다.

와락.

그녀가 나에게 달려들어서 안기면 그녀는 '헤헷~♡'하고 혀를 살짝 내밀며...

"팬더오빠~"

라고 불러준다. '팬더'. 불면증으로 인하여 다크서클이 눈밑에 어릴 때부터 짙게 끼게 되자 어린민정이는 나에게 그런 별명을 붙여주었다. 원래는 눈주위가 모두 새까맣게 되어야팬더와 비슷한 눈이 나오겠지만은 어린민정이는 그렇게 나를 불렀다.

"우웅~나 업히고 싶은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던 민정이. 그녀는 내가 회색빛 눈을 가지고 있었어도 나를 차갑게 굴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가 '나'라는 사람의 실체를 정확히 알게 되었을 때까지.

"응…"

이런 순수한아이에게 나는 다정히 대해줄 수 없었다. 뭐랄까..친하게지내지만..그래..그녀가 두려웠었다. 나라는 어두침침한 놈에게 그런 빛나는 아이가 나와 어울리면서 더럽혀지게 만들 수는 없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정적으로 살아왔고 그리고 그 부정이 민정이에게 해를 입힐까봐 민정이를 일부러 꺼려했었다.

"팬더오빠~"

"…어?"

"나…아이스크림 하나만 사주면 안돼…?"

"어? 어…"

"꺄아~♡"

"켁…숨 막혀…민정아…"

"헤헷~"

"맛있어?"

"웅!"

"그래…다행이다…"

"오빠는 안 사먹어?"

"나…? 나는 별로…"

"…여기!"

"어?"

"이거 먹어!"

"지금 네가 먹고 있잖아"

"괜찮아! 한 입은 얼마든지 줄 수 있으니까!"

"…괜찮아"

"정말로 괜찮아?"

"응…"

"그러면 말구…"

나를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민정이가 귀여워서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려고 했는데..잠깐 멈칫해버렸다. '나는..지금 뭐하고 있는 짓일까?'하는 생각에. 나는 그녀와 더 친하게지내지 말아야한다는 것에. '오빠'로써. 나는 그녀를 지켜야하지만..그녀가 소중한 가족이었지만..더 다정하고 친근하게 굴고 싶었지만..그러지 못하였다.

"오타쿠"

그녀는 변해간다. 내 예상대로. 나의 이런 한심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런 오빠를 두었다는 것에 기분이 나쁜 거겠지.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던 바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씁쓸한 웃음을 지으며..어쩔 수 없다고..이런 건 각오하고 있었다고 체념했다.

나의 '8살 이전의 기억'은 거의 없다. 회색빛 눈을 얻기 전의 그 아득하고 머나먼 기억. 왜 이런 눈이 나에게 생겼는 지 아직도 모른다. 다만 그 회색빛 눈때문에 나의 인생은 더 나락으로 떨어졌다.

부모님과 가족으로부터의 '소외'. 친구들로부터의 '무시'. 다른 사람들과의 '이질감'. 그것이 나의 목을 죄여왔다. 어렸을 적의 민정이는 그 회색빛 눈을 보면서 아무렇지 않아했는데..나이를 먹어가고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나를 점점 더 '이방인'으로 보기 시작했다.

더욱이 그녀는 나와 같은 찌질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렸고 그 속에서 빛을 발하였다. 초등학교 에서. 그리고 중학교에서 가끔 그녀의 모습을 볼 때면 그녀의 곁에는 항상 친구들이 있었다.

그래서 미연시에 빠져있는 나를 더욱 싫어하는 거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거다…그래…어쩔 수 없는 거야…'

나는 그녀의 오빠였기에. 이렇게 한심하고 한심해도 오빠였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녀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었다. 빨래를 하고. 밥을 챙겨주고. 대신 민정이의 방을 청소해주고. 아무렇지않게 민정이가 명령을 하여도 나는 그런 소리에 한 마디도 불평불만을 하지 않고 그녀의 말을 따라주었다.

솔직히말해서 나를 평생 싫어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좋아해주고 있었다.

행복했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계속 필요로 해준다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가끔가다가 나에게 성질을 내고..때리기는 해도..그것이 그녀가 나를 진짜로 싫어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기에..받아들여주었다.

하지만 이것은 무엇일까.

그녀가 나를...이성으로써 보고 있는 것. 그녀는 정말로 나를 한 명의 남자로써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에 큰 충격을 느꼈다.

그녀의 키스조차도..거부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녀도 내가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 마음에 닿기 위해서…'

단순히 그 이유때문에. 여태까지 그녀가 했었던 행동들은 모두..

나를...사랑하고 있어서....친오빠인 나를...사랑하고 있어서...

묻고싶었다. 왜 나를 사랑하는 것이냐고. 단순히 좋아하게 되었다고 해서 사랑한다고 왜 고백을 하냐고. 왜 하필이면..나에게...

나는..그녀의 친오빠다. 피가 섞인 가족이고. 혈연이다. 그것을 알고있음에도..내 마음에 닿으려고..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나에게 고백을 하였다.

눈치채지못하였다. 아니 예상조차도 하지 못했다. 내가 그녀를 소홀히 한 면이 있었기때문에 민정이가 상처를 받은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답답해서...이런 마음을 몰라주는 내가 미워서..

이것은 '금단'. 절대로 하지 말아야할 행동. 내가 설령 그녀를 받아들여준다고해도..그녀만 더 상처를 받을 것이다. 그녀가 더 아파할 것이다. 나는 얘기해야했다.

'미안해'라고. 이러한 너를 받아들여 줄 수 없다고. 확실하게 끊어야 그녀의 마음이 나에게 닿을 수 없게 할 수 있다. 그래야지만 그녀가 받는 상처가 줄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 상처가 아물어 갈 것이다.

나는 가족들의 행복을 바라고 있는 사람. 그러니까...나는...

"사랑해…사랑해 오빠…"

그녀는 내 품에 안겨서..내 품에 얼굴을 기대고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

당장에라도 미안해라고 말해야한다. 하지만 망설여졌다. 내가 내뱉은 말로 인해서..그녀가 다시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 않을까봐. 나를..더 이상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을까봐.

"흑…흑…흐흑…"

그녀의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도 많이 고민하고 이러한 결정을 내렸겠지..라는 생각에 나는 더 가슴이 아파왔다.

"지현언니가 아니라…나를 봐줘 오빠…오빠를 사랑하고 있고 원하는 나를 봐줘…왜 지현언니야…왜 어째서 지현언니야…?"

"…민정아…"

"오빠…"

"…어"

"난 오빠를 위해서…"

"…!!"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데…"

"…"

"…나를 안아줘"

"…안아달라니?"

"난 오빠라면…괜찮으니까…날…안아줘…오빠의 여자로…만들어줘…"

"…민정아!!!"

"…오빠가 나랑…섹스하면…"

"그만해 박민정!!!"

"…알고있어…오빠가 나를 안아줄 리 없다는 거…그리고 나를 여자로 절대로 보지 않을 거라는 거…"

"…그걸 알고있으면서 왜…"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어서. 미친 듯이 오빠를 사랑하고 있어서"

"…"

"사랑하고 있어…사랑하고 있다구 오빠…왜 몰라주는 거야?"

"그게 아니야…"

"우리가 절대로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거? 그건 변명일 뿐이잖아…"

"…"

"상관하지않아. '근친상간'을 해도. 사람들이 수많은 욕을 쏟아부어도 상관하지않아. 나는 오빠를 사랑하는 걸? 그러니까…나는 그런 '금기'같은 거…필요없어"

"…"

"나도 한 명의 '여자'야…한 명의 여자라서…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한다구…"

"그렇다면…얼마든지 너를 좋아해줄 사람이 있잖아…"

"필요없어. 나는 오로지 오빠가 필요해…"

"…민정아. 그만하…읍…!!"

나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그녀가 다시 나에게 키스를 하였다. 입을 맞추고. 그녀의 혀가 내 혀를 이리저리 굴렸다. 오랜시간동안 혀와 혀가 얽혀있다보니 그녀의 입술이 떨어지자 나와 그녀의 사이에선 은색의 실선이 이어져있었다.

"하아…하아…"

"나도 이런 거 할 수 있어…나도 충분히 오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여자야…이제 더 이상 오빠의 뒤에서 숨어있는 그런 여동생이 아니란 말야…"

"…"

"왜 어째서…오빠를 사랑하게 된 것인지…나도 몰라…몇 번이고 의심을 하고 아니라고 고개를 내저어도…오빠를 볼 때면…가슴도 콩닥콩닥 뛰고…저절로 오빠의 눈을 맞출 수 없게되어서 시선을 살짝 피하게 되어버려…"

"…"

"항상 두근두근거렸어. 오빠랑 있을 떄마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였지만…속으로는 계속 참고 또 참아왔어…"

"…"

"그렇다고해도…오빠는 받아주지 않아…이렇게 사랑한다고 고백을 해도. 이렇게 딥키스를 한다고 해도. 오빠는…나를 여동생으로 밖에 보지 않아…"

"…"

"그래서 더 아파…이미 체념을 했는데도…가슴이 자꾸만 아파서…"

"…"

"이제 어떡하면 좋아…? 어떡하면 오빠에 대한 내 마음을 지울 수 있어…?"

"…"

"얘기해줘…어떡해야 내 마음에서 오빠를 지울 수 있는지…"

"…민정아"

"그렇게 상냥하게 불러주지 마…그렇게 다정하게 불러주면…나는 또 막연한 기대를 갖게되어버리잖아…"

"…민정아 나는…"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마"

"…!!"

"나는 오빠를 사랑해. 그것에 동정심을 갖지마. 미안해라고 말하면…나는 더 비참해져…"

"…"

"이럴 때에는…웃어줘"

"…"

"어렸을 때 나에게 가끔가다 보여주던…그 웃음을 지어주며…그저 날 안아줘…"

"…"

"오빠얼굴. 한번 더 보고 싶어"

"아…"

나는 머리를 걷어올렸다. 시야가 확 트여지고. 민정이의 얼굴이 더 자세히 보였다.

"오빠…"

그녀는 나의 얼굴을 손으로 만진다. 이마를 만지고. 볼을 만지고. 코를 만지고. 눈을 만지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더듬는다.

"오빠 만약에…"

"…응"

"내가…가족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날 사랑해줄 수 있어?"

"…응"

"정말?"

"그래…민정이는 사랑스러운 아이니까…"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그러면 난 오빠의 연인이 되어서…얼마든지 손도 잡고. 껴안을 수도 있고. 함께 데이트를 하면서…웃을 수 있고…게다가…키스도 할 수 있고…"

"…"

"그랬으면…너무나도 좋았을 텐데…"

그녀는 웃고 있었다. 이러한 상상이 즐거운 듯이. 하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에 그녀의 눈망울에서는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

나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웃어주며 그녀를 꼬옥하니 껴안았다.

"…오빠…"

그래.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그저..

그녀를 안아준다. 이것이 대답. 그래서..민정이가 나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 있도록.

그리고...

나를 미워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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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1 종료입니다.

Part 12.'Whereabouts of mind(마음의 행방)'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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