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83화 (18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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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1. Sad Conf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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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원래 서현누나와 같이 바깥으로 나가게 계획이 잡혀있었다.('박정우인간개조계획'이니 뭐니한 일로 말이지..) 그런데 갑자기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만 같았던 민정이가 돌연 불참을 선언했다.

"민정아…"

"얘기했었잖아? 서현언니랑 지현언니랑 오빠랑 '사이좋게'. 다녀와"

"정우랑 싸웠어? 대체 왜…"

"…아무 것도 아니니까…그냥 몸이 안 좋을 뿐이야…"

"약 사다줄까?"

"아니. 괜찮아. 어차피 병원은 늦은 것 같기도 하니…집에서 푹 자두고 있을게"

"…민정아"

"그럼. 잘 다녀와"

이제는 나의 말을 무시하고 나의 시선마저도 회피한 채 지현누나와 서현누나에게만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었다.

"…"

이건 뭐..완전히 옛날과 다를 바 없잖아...

"그냥 오늘은 집에 있자"

"…괜찮다니까?"

"정우를 개조시키려면 민정이의 힘이 필요해. 그러니까…오늘은 쉬자"

"그럼…난 독서실에 다녀올게"

"알았어 지현아"

10월. 수능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 수능준비를 해야하는 지현누나였기에 시간만 나면 무조건 공부를 해야했다. 사실 나는 지현누나가 수능공부나 했으면 좋았다. 누나의 아까운 시간을 고작 나를 위해서 사용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웅…나 혼자 밖에 안 남았네…?"

서현누나는 주말시간이 널널했다. 아르바이트는 평일만 했었고 지금 현재는 직업을 갖지않아서 한 마디로 '백수'였기때문이다.

"서현누나"

"…웅?"

"나를 위해서 이렇게 해주는 것까지는 고마운데…괜찮아"

고맙기는 하지만 사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실은 나를 개조시킨다고 해서 조금 거부감이들기도 하였고. 귀찮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서현누나가 정말로 나를 위해주는 마음이어서..

"정우야…"

"괜찮아. 서현누나. 내 스스로 바꾸어나가야 하는 거야"

이런 거는 가족들 모두에게 걱정만 끼치는 민폐중의 민폐였다. 나에게 '변화'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내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했다. 이렇게 소중한 가족들에게 걱정만 끼치게 하고 신경쓰이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스스로 '변화'에 대응해야했다.

"그렇지만…"

하지만 서현누나는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나는 도통 사람들과 어울려하지않고 늘 혼자서 미연시를 하거나 집에 처박혀서 살아가는 은둔형 폐인의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서현누나는 그걸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괜찮아"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이건 내가 해결해야할 문제. 서현누나가 도와주지 말아야한다.

"…알았어"

그녀는 나의 거절의사때문에 결국 그녀의 방으로 돌아갔다. 서현누나가 얘기했었던 '박정우인간개조계획'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이제는 서현누나에게 호언장담을 했던 대로 내가 하나하나씩 바꾸어야했다. 내 스스로를. 나 박정우라는 인간을 천천히 뜯어나가야했다.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다. '변화'라는 것이 엄청 힘들다는 사실은 알고있다. 인간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성격이 강했다. 아무리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고 할 지라도..변화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실행이 되지는 않는다.

두렵기때문에. 짐짓 겁을 내고 바꾸어나가려고 노력조차도 하지 않기때문에.

변화를 하기 위해서 내딛는 한 걸음은 너무나도 어렵다. 혼자서 나아갸야한다면 더욱이 그걸 내딛으려고하지 않는다. 그 한 걸음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까라는 '선택 후에 찾아오는 미래'를..나는 두려워한다.

그러기에 나는..겁쟁이였다.

막연히 시간이 많았다. 어째서인지 시간도 잘 흐르지도 않는 것 같았다. 특히나 주말에는 맨날 빈둥빈둥 침대에 누워있거나 미연시를 하곤 했었는데 이제 미연시를 하지 않으니..

집에는 나와 서현누나 그리고 민정이가 있었다. 어째서인지 둘이서 다정하게 tv를 보지않았다. 잠깐 서현누나가 민정이를 자기 방으로 불러서 대화를 나누는 것은 보였다만은 그 후에는 각자의 방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서현누나는 아마도 토익공부를 하고 있겠고..민정이는 뭐하고 있을까. 민정이도 나처럼 빈둥빈둥 침대에서 구르고 있을까.

"…나는 그걸 알 가치도 없지"

한숨을 지었다. 민정이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이제 민정이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막막하기만하였다. 옛날로 돌아가버린 듯한 나와 민정이의 관계. 이대로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었는데 나는 어떻게 민정이와 또 화해를 해야할지 몰랐다.

그래. 민정이가 지금 어떻게 있는 지 알 가치도 없는 놈이다 나는. 나는 그녀를 소중한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또 좋아하고 있었지만...민정이는..

"민정이는 나를…"

좋아한다고 했다. 이런 한심한 오빠를 좋아한다고했다. 가족으로써 소중한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그런 그녀의 믿음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정말로 바보다…"

민정이의 말대로 나는 바보다. 아무 것도 모르고 게다가 어찌보면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아하는지도 몰랐다. 조금 더. 민정이와 친하게 지냈어야하고 관심을 더 줘야했는데..

쏟아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다고..그저 후회만 하고 있다.

똑똑.

"…?"

서재에 있는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방에서 빈둥빈둥 구르고 있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러다가 노크소리가 들리자 벌떡 일어나버렸다. 혹시 민정이일까..?

"정우야"

"…서현누나?"

"들어갈게"

"어"

딸칵.

서현누나가 방에 들어왔다. 기나긴 생머리를 뒤로 묶고 편한 옷으로 입고 있는 그녀.

"무슨 일이야?"

"그냥…심심해서"

심심할 때마다 나를 찾는 것인가..내가 무슨 심심풀이땅콩도 아니고...

"민정이는?"

"부우!!!!"

갑자기 볼을 부풀리는 서현누나. 왜 갑자기 볼을 부풀리고 나 삐졌음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왜 그래?"

"부우!!! 내가 귀찮아서 민정이랑 놀으라고 하는 거지?"

"…그것은 아니지만…"

"결국에는 내가 귀찮은 존재인 거지!!"

"…아니야 서현누나"

"그러면 놀아줄거야?"

"…옙"

"정말?"

"그렇다니까"

"헤헷~♡"

그녀는 활짝 웃었다. 나랑 그렇게 노는 것이 좋은 건지..

"…그래서 어떻게 놀 건데?"

"정우야"

"응"

"민정이랑…얘기해봤어"

"…응. 그런데?"

"아무래도. 이건 내가 어떻게 하지 못할 것 같아"

"…!!"

"이건 민정이와 정우사이의 일. 가족인 나라도 끼어들을 수 없는 일이야"

"…서현누나"

"나한테 잘 부탁한다고 했지…?"

"응…"

"이건…정우가 해결해야 할 일이야"

"…그렇지만 나는…"

"지금 넌 도망치고 있는 거잖아"

"…"

"자신이 어떻게하지 못할 것 같아서 나한테 부탁한 거잖아"

"…그럴 지도"

"정우야"

"…응"

"민정이를…정말로 좋아해?"

"응"

"그렇다면…정우가 해결해"

"…내가 어떻게…"

"정우는 충분히 민정이를 달랠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는 하지만…"

"민정이. '여자로써'는 어때?"

"…에?"

"만약에. 만약에 있지…민정이가 '가족'이 아닌 '한 명의 여자'였다면…민정이를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아?"

"…?"

"바보. 그래서 민정이가 상처받는 거지"

"…응?"

"다시한번 물어볼게. 민정이에게 단 한번이라도 '여자'로써 느낀 적이 있어?"

"…그게 무슨…"

"후우…이거 어떡해…민정이가 이러면 더…"

"…?"

"비참해지잖아"

"…대체 그게…"

"정우야"

서현누나는 진지하게 나를 불렀다. 순간 장난기있던 모습은 사라지고 진지하면서도 그리고..무언가 나에게 바라고 있는 듯한 모습.

"…응"

"민정이에게 더 상처주기 싫으면…"

"…응"

"네가 확실히 얘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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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이의 마음을 눈치 챈..서현누님이군요..

또 새벽에 쓰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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