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81화 (18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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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1. Sad Conf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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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이와 서현누나는 나에게 'Wellcome to hell!!'이라고 외치는 듯 나에게 살인미소를 보여주고 계셨다. 어째..또다시 연수합격을 펼칠 것 같았다.

"…후우…"

서현누나는 의문모를 한숨을 지었다.

"여기쯤에서…그만둘까? 지현이도 깨어있겠다…"

"짐승오타쿠는 더 맞아야 해!!"

여전히 분노로 가득 찬 눈빛의 민정양. 내가 대체 뭔 잘못을 했길래 왜 이렇게 살기를 내뿜고 있는 건지..

"…잘못했다잖아 민정아"

"그…그렇긴 하지만…"

"정우야"

"넵"

"다시는…안 그럴 거지?"

서현누나의 말은 강요와 협박같았다.

"…안 그럴게요"

나는 억울했지만 서현누나를 절대로 거역하지 못했다. 에휴..내가 이런 말까지 해야겠냐고..어찌되었든 지현누나도 일어났겠다. 이렇게 일이 풀린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지..

"그럼…아침부터 먹을까?"

일단 밥부터 먹는 것이 순리다. 모처럼 모두 집에 있는 토요일 주말의 아침. 이제 슬슬 가을이 오려는 듯 더위는 그렇게 심하지않고 바람은 선선했다.

"…정우야"

"…옙"

여전한 서현누나의 두려움에 나는 저절로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알고보니 이 가족의 최강의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은 서현누나였다. 즉. 먹이사슬의 최고봉인 것이다.

내가 최하이고..그 다음에는 민정이와 지현누나..정점에는 서현누나. 겉으로는 귀엽고 발랄하기 그지없어서 이 사람 정말로 23살 맞아?라고 의문점을 가지게 만들었지만..오늘에야 서현누나의 진정한 내면포스를 볼 수 있었다. 그 자애로운 미소 속에 숨겨져있는..흉흉하고 엄청난 포스..

"오늘 시간많지~?"

"…넵"

"그럼 어제 약속대로 '박정우인간개조계획'을 실행해볼까~?"

'내가 로봇도 아니고…'

"인간개조계획? 그거 무슨 말이야?"

"서현언니…대체 그것이…"

"말 그대로. 박정우라는 내 친동생을 바꾼단 이 말이지~"

"…뭐를?"

"그게 대체 뭐야 서현언니?"

민정이와 지현누나는 '박정우인간개조계획'이 무엇인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나도 심히 궁금하다. 나를 바꾼다는 얘기였지만..대체 뭘 어떻게 바꾼다는 얘기인지...

"정우의 모든 것을 바꿀거야. 성격. 습관. 생활태도.등등…여러가지를"

"찬성! 오타쿠 좀 탈바꿈 해야해!"

"…나도 찬성"

얼래...지현누나마저도 이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계획에 찬성표를 던지네...? 게다가 이거 뭐야..결국 내 동의도 없이 강제로 계획을 짜놓고서 자기들 멋대로 나를 바꾸겠다는 얘기아냐..?

"그러므로 오늘부터 '박정우인간개조계획'을 실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

"…오"

서현누나의 선동에 민정이는 손을 번쩍들며 외쳤고 지현누나는 소심하지만 이 계획에 참여를 한다는 뜻으로 역시 살짝 손을 들었다.

이거..대체 뭐지...

"일단 밥부터 먹구!"

나는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고 소곤소곤 자기들끼리 얘기를 나누는 3자매의 아침을 차려야했다. 서현누나와 민정이야 그렇다쳐도..지현누나까지 나와 관련된 이상한 계획에참여한다는 것이 조금 충격이었다.

성격이 하루아침에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사실은 알고 있었다. 서현누나는 나를 위해서 그러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보면 내가 민폐여서 서현누나가 그걸 바꿔주려하고 있는것인지도 몰랐다. 지현누나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빛'을 주기 위해서.

이런 칙칙하고 어둡기 짝이 없는 나에게..구원의 빛을 주기 위해서.

민정이는 평소부터 내가 오타쿠라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들어서 참가하는 것 같았다. 그녀도..미연시라는 허무한 세계에 빠져있는 나를 구하기위해서라는 거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구제불능인 나에게..그런 것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밥 먹어"

내 방에서 이런저런 회의(?)를 나누고 있는 세 자매를 불렀다. 밥 먹으라는 소리가 나오자마자 부리나케 튀어나오는 서현누나. 배고픈 모양인지 바로 의자에 앉아서 내가 차린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뒤에 민정이와 지현누나도 따라나와서 의자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고..

"정우"

"응"

"안 먹어…?"

"아. 나는 조금 있다가"

"…같이 먹지 짐승오타쿠?"

어째 말과는 다르게 '다가오지마!'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정우! 같이 먹자!"

서현누나는 아까 전의 그 무시무시한 기운은 어디로가고 다시 평소의 서현누나로 돌아왔다.

"…난 딱히…"

어색하다. 확실히 어색하다. 서현누나가 오기 전에 자매들과 화해를 하였어도 같이 밥을 먹었던 적은 있기는 하지만 별로 없었다. 게다가 서현누나마저 들어오니 상당히 어색하였다. 원래였다면 난 저 구석진 창고였던 내 방에서 혼자서 먹어야 했던 것이 옳았다.

"왜 그래?"

"왜 그런 거야 오타쿠?"

"정우…?"

"셋이서 먹어. 난 조금있다가 먹을게. 밥맛이 좀 없나보다. 설겆이도 다 먹으면 알아서 나와 할 테니까 밥 다 먹고 쉬고있어"

"오타쿠…잠깐만…!!"

민정이가 무언가 나에게 말을 하려는 것도 듣지 못하고 그런 말을 하고서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갔다.

"하아…"

이것은 또 하나의 '변화'였던 걸까. 넷이서 모여 단란한 아침식사를 하는 것. 예전에는 그런 적이 있었을까. 아니였다. 처음 있는 일이다. 옛날엔 난..가족들의 무시를 받아왔었으니까..같이 식사를 하긴 하였어도 내가 있으니 내 눈치를 살펴보면서 나를 제외하고 남은가족들끼리 대화를 나누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은 내가 10살. 회색빛 눈을 얻은 지 2년이 지난 후였다. 그 2년동안나는 부모님과 세자매들과 함께 밥을 먹었었다. 하지만..

나는 애초부터 '없는 존재'였다. 나는 그러한 식사에도 끼어들을 수 없어서 스스로 빠져나와서 혼자 먹었다. 아니. 아침은 항상 굶었다. 가족들이 모두 있는 시간대였으니까.

"밥 먹어라"

어머니는 문을 살짝 열고 아침식사를 담은 쟁반을 내 방에 놓아두었다. 그래도 자식은 자식이라고 생각했었는지 몰라도..부모님이 있는 날(대부분 해외출장으로 집에 있는 날은 적기만 했었다)에는 아침식사를 그렇게 내어두고 자신들 할 일을 하였다.

"…"

나는 그런 것이 더 싫었다. 그냥 나를 버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불쌍하다는생각에 알량한 동정심을 품는 것이 싫었다. 외톨이에게..'동정심'은 치욕이다.

'무관심'. 그것이 훨씬 더 행복했다.

"으아아아아!!!!!!!!!!!!!!!!"

나는 그 쟁반에 화풀이라도 하려했던 모양이었는지 그걸 냅다 걷어차버렸다. 음식파편들이 여기저기 방 안에 흩어졌다.

"…끄흑…흑흑…"

나는..정말로 가족일까..아니 그들이 나를 가족이라고 생각할까...?

"크크큭…크크크크…"

울다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눈물이 끊임없이 나오는데..웃음이 나왔다.

나는 왠지 인간도 아닌 취급을 받는 것 같았다. 그래..마치 '동물'이랄까..? 이런 어두침침한 방 안에 갇혀서..먹이만을 받고 있는..그러한 느낌이었다.

마치 죄를 지어서 독방에 갇혀버린 '죄수'와 같이.

"나는 아직…"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어안이 벙벙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모른다. 세 자매가 웃음꽃을 피우며 밥을 먹는 것을 보면 너무나도 눈이 부셨다.

빛을 가진 사람들의 단란한 식사. 나는 그 식사에 끼어들 자신이 없었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두 모였는데..그것이 행복하다고 느끼는데..정작 나는...가족들과 함께할 수 없었다.

이것은 내 '두려움'이었고 '절망'이었다. 이러한 가족들의 식사조차도 함께할 용기도 없는겁쟁이다. 과거처럼 '소외'와 '무시'를 받을까봐. 나로 인해서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냉랭해질까봐.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두려워서..

어찌보면 난 '꿔다 논 보릿자루'가 되고 싶지 않은 듯 싶었다. 세자매가 대화를 하는데 내가 끼어들 틈은 전혀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같이 아침을 먹을 수 없었다.

변명. 변명. 변명.

나는 끊임없이 변명을 한다. 수 많은 자기합리화와 변명으로 나는 '빛'을 거부하고 거부한다. 스스로 '어둠'이라고 낙인을 찍고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있어선 더 편안했기에.

"…오타쿠"

어느 새 민정이가 내 방에 들어와있었다. 내가 너무 깊이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녀가 들어왔다는 것조차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다 먹었어?"

민정이가 내 방으로 들어온 것을 보니 아침식사는 다 끝난 것 같았다.

"오타쿠는…왜 우리들이랑 밥을 먹지 않아?"

"…"

"내가 아직도…싫은 거야?"

"…아니야"

"그러면 대체 왜…"

"…"

"오타쿠가 없으니까…왠지 대화가 잘 안되었어. 뭔가 어색하기도 하였고, 그리고 생각해보니까 우리 넷이서 먹는 거 참 오랜만이다. 그치?"

"…응"

"오타쿠"

"…어"

"미안해"

"…?"

"…오타쿠의 마음. 잘 이해하지 못하고…"

"뭐를…이해하지못해?"

"'벽'이 있는 것 같아"

"…벽?"

"아직 우리들 사이에 '벽'이 있는 것 같아서…그래서 오타쿠가 우리들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아"

'…"

"나에게…아직도 마음을 열어줄 수는 없는 거지?"

"…민정아"

"그래…그렇겠지…내가 오타쿠에게 얼마나 많은 잘못을 했었는데…"

"…그건…"

"변명하지 않아도 돼. 다 알고 있으니까"

"…민정아…"

"안되는 걸까? 나?"

"…"

"다가가려고하면…오타쿠는 저 멀리 가 있어. 또 다가가려고 하면…막연히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오타쿠는 있었어"

"…그건…아니야"

"뭐가 아니야?"

"민정이는…나에게 소중한 가족…"

"변명이야"

"변명 아니야"

"그러면…왜 나는 안되는건데…?"

"…뭐가 안되는 건데?"

"지현언니와 서현언니한테만…마음을 열어주고 있잖아"

"…뭐?"

"내가…소중한 가족이라고 오타쿠가 얘기하고 있지만…"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거야 민정아"

"나는 이렇게 밖에 하지 못하는 걸…나는 제대로 마음을 보여주고 싶은데…그게 어째서인지 잘 안되서 답답하기만 해…오빠가…오빠가…그걸 알고는 있는 거야?"

'오빠'라는 소리가 왠지모르게 나와 민정이의 관계를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것 같았다. 차라리 '오타쿠'라고 불리는 것이 더 친숙하게 들렸다.

"…민정아…"

"나도 도움이 되고 싶어! 나도 언제든지 오빠한테 도움이 되고 싶단 말야!"

"…!!"

"오빠는…나한테 맨날 상냥하게 해주고…맨날 도와주기만 했지…정작 나에게는 아무런 것도 바라지 않았어. 나도 맨날 도움받고만 살고 싶진 않았단 말야! 그런데…그런데…나도 오빠한테 힘이 되고 싶은데…"

"…"

그래서..이런 나를 바꾸겠다는 계획에 적극적으로 동참을 하기로 했던 것인가...

"…그렇지만 오빠는 나에게 아무런 것을 바라지 않아"

"…"

"나는…필요없는 사람이지? 오빠에게? 오히려 지현언니나 서현언니와 같은 사람이 오빠에게는 필요한 것이지?"

"그게 아니야…"

"나 때문에…같이 밥 먹는 거 꺼린다는 거 알아"

"…"

"…나는…오빠에게 피해만 입히지…정작 도움은 되지못할망정…맨날 때리기나 하고"

"…민정아 그게 아니야"

"왜 자꾸만 '아니야'라고 말하는 거야? 그러면 대체 뭐야? 오빠는 나를 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건데!"

"…"

"'가족'.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잖아"

"…민정아…"

"…그냥 허울좋은 '가족'이 되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지금 오빠는 나를 그저 여동생. 오빠인 내가 이 여동생을 지켜야한다는 것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잖아"

"…"

"하하…그렇지…나는 '필요'가 없는 것이지?"

"…너는 내 소중한 가족이야"

"소중한 가족의 기준이 대체 뭔데!!"

"…!!"

"나는 오빠한테 힘이 되고 싶었어. 그 동안 내가 오빠한테 했었던 모든 죄를 오빠에게서 속죄받고 싶었어. 하지만 그 기회조차도…오빠는 주지않고 있잖아"

"…어째서…너는…"

"오빠를 좋아하고 있으니까…좋아하게 되었으니까 난 오빠한테 힘이 되고 싶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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