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75화 (17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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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0. Lon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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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사라졌다.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오직 혼자서 쓸쓸하게 떠나갔다. 그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슬픈 길을 혼자서...

다시는...돌아올 수 없는..그 길을..외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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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서 돌아오고 난 후에 우리는 마지막으로 오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버스가 막히지 않는 시간대였다. 그것이 아슬아슬한 막차시간대이긴 하였지만은..

"…오늘은 정말로 고마웠어"

"아니요. 저야말로 고마웠어요"

"뭐가?"

"그냥…저에게 말을 걸어주셔서…"

나에게..관심을 주어서...

"…선생님인걸. 네가 선생을 싫어하지만…나는 너의 담임선생이야. 그 정도 역할은 해야되는 거야"

"그게 고마운 거예요"

"…너도 나를 의지하는 거야?"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다행이야"

"뭐가 다행이라는 거예요?"

"…너도 나도 서로 의지하는 거잖아"

외톨이끼리..의지하는 것인가...

"…그러게요…"

"그리고 너도 나를 이제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싫어하지 않아요"

오히려..좋아하는 쪽이랄까...

"나도 널 싫어하지않아"

"왜요?"

"닮았거든. 나랑 너와는…그러니까 미워할 수 없어"

그 곳에서 돌아오고나서 우리들은 그런 이야기만을 나누고 있었다. 애초에 선생과 제자끼리 뭐하는 짓이겠냐만은 나와 그녀는 그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버스정류장에 있었다.

저 앞에서 그녀의 집으로 가는 버스가 오고 있었다.

"정우"

"예"

"갈게. 내일 학교에서 보자"

내일 보자라는 말이..내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이제는 정말로..그녀를 떠나보내야 하는것이다. 정말로 그녀에게 '내일'이라는 것이 있다면..그것은 정말로 내가 바라고 있던 일이지만..

그녀의 안에 있는 다 커버린 검은 닭은 공간이 너무나도 좁은 모양인지 접혀진 날개를 푸드득하며 바깥으로 나오기위해서 그녀의 안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한 그녀를 보면서 나는 어떠한 말을 해주어야 하는 것일까. 그 동안 즐거웠다고 잘 가라고 이별의 메시지를 해야하는 것일까. 그녀가 사라진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그런 말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네. 내일 봐요"

내가 해줄 말은 이것 뿐이다. 내일 보자라는 말. 내일도 평상시처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않고 지각한 나를 무표정으로 그녀가 보고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녀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구해줄 수 없지만...그녀 스스로라도 마음의 위안을 얻어서 살아남기를 바란다.

'희망'을 품고 있었다.

부우웅...

그녀를 태운 버스는 떠나간다. 아무도 없는 버스에서 그녀 혼자 좌석에 앉아 집을 향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버스정류장에 멈춰서서 한없이 그녀를 태운 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타쿠"

집에 돌아오고 보니 벌써 1시를 훌쩍 넘겨버렸다. 집에 돌아오지도 않고 그녀와 시골로 갔었으니 늦은 시간에 돌아온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민정이가 이 시간까지 안 자고 있다는게 참 별일 이었다.

"민정아…안 자고 뭐하고 있어?"

"그 우리집의 어떤 초둔감바보오타쿠씨가 안 들어오고 있어서…"

"…미안. 내가 너무 늦었지?"

"알고 있었다면 일찍일찍 왔어야 될 거 아니야!"

"미안…"

"오타쿠따위…안 기다리는 게 나았는데…"

"그 동안 기다려줬던 거야?"

"흥! 그 누가 누구를 기다려준대? 나는 그냥 tv보고 있었을 뿐이야!"

"…이 시간 때에는 자고 있어서…"

"누가 맨날 이 시간대에 자는 줄 알아? 안 자는 날도 있잖아. 잠이 오지 않아서"

"다들 자고 있어?"

"서현언니는 오타쿠기다린다고 기다리다가 졸려서 잠들었고 지현언니는 아직 들어오지않았어"

"…그렇구나"

"그건 그렇고. 왜 집에 안 들어온 거야? 혹시 다른 여자랑 몰래 데이트하다 온 것은 아니겠지?"

"…데이트라니 무슨…"

"게다가 학교끝나고 바로…뭔가 수상해"

"뭐가 수상하다는 거야?"

"정시하라고 불리는 언니도 그렇고…세희언니도 그렇고…대체…"

"뭐가?"

"어쨌든 수상하다고!"

"…하아?"

"앞으로 한번만 더 늦게 오기만 해봐! 가만 안둬!"

"…예이예이"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

"알면 됐고! 빨리 들어가서 자기나 해. 졸릴텐데"

"너야말로 피곤했을텐데 들어가서 자"

"…그 정도로 밖에 얘기해주지 않는 거야?"

"엉…?"

"걱정해줘서 고맙다라던가…잘 자라던가…좀 더 다정하게…"

"…?"

"에잇!"

퍽!!

"크윽!!"

오랜만에 민정이의 스크류펀치를 맛보았다. 오랜만에 맞았어도 위력은 여전하였다.

"됐네요! 이런 초둔감바보오타쿠에게 뭘 바라겠어!"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알 게 뭐야!"

쾅!

"…에고…"

민정이에게 또 미움받아버렸네...나는 결코 민정이와 더 친하게 지낼 수는 없는 건가...

집에 돌아오고나서 몸을 씻고 평상시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제 곧 있으면 지현누나가 독서실에서 돌아올 것이다.

"설마 또 여기서 같이 자는 것은 아니겠지…?"

에이 설마...정말로 지현누나가 계속해서 이 곳에서 잘까. 그냥 어제는 피곤해서 그런 것이니 자기 방에 들어가서 자겠지...라고 나는 생각했다.

끼이익...

얼마 되지 않아서 지현누나가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녀는 내가 늦게 들어왔다는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알기라도 했다가는 나를 걱정해주느라 공부도 못할 것같아서 그래서 다행이었다.

여전히 피곤해보이는 표정. 과로로 쓰러질 것만 같이 보여 안쓰럽기만하다. 안 그래도 연약한 몸인데 이렇게까지 몸을 혹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을 못했다.

"…정우…"

그녀는 집에 오자마자 바로 내 방에 들어왔다.

"왔어?"

"응…"

오늘따라 그녀는 너무나도 피곤해보였다.

털썩!

"지현누나!"

순간 다리가 풀려서 그녀가 주저앉아버리자 나는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

"…나는 괜찮아…"

전혀 괜찮지않아보인다.

"누나는 빨리 옷 갈아입고서 자야겠다"

"…"

그녀는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땅바닥에서 주저앉은 채로 잠이 들었을까.

"지현누나. 지현누나?"

"…잠깐만…너무 피곤해서…이대로 잠깐만…"

"옷은 갈아입고 자야지"

"…"

"하아…"

이렇게 계속 내버려둘 수도 없는 상황이고..어떡한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녀를 안아올렸다. 두 번째로 그녀를 안아올리는 것이지만 정말로 그녀는 가벼웠다. 나는 그녀를 공주님안기자세로 안아올린 뒤에 조심조심 그녀를 내 침대위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방에 불을 끄고 새근새근 잠든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면서..새벽을 보내고 있었다.

"박정우?"

"…예"

"들어가서 앉아라"

희망은 산산조각 깨졌다. 그녀가 사라질 것이다라고 알고는 있었어도 끝까지 믿고 싶지않았던 현실을 나는 겪어야했다. 혹시나 그녀가 아파서 결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같은 반놈 한 명을 붙잡고 이야기를 하였다.

"윤혜연이라고 지금 우리반 담임 혹시 오늘 결근했어?"

"어이 시체. 지금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이름이 윤혜연이라니? 지금 우리담임 선생님이름은 한태석이라는 거 뻔히 알고 있잖아"

"…한태석이라니…?"

"저 앞에 있는 선생이 우리 반 담임이잖아. 대체 뭔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야 시체. 잠 아직도 안 깬거야?"

"네가 맨날 담임보러 이쁘면 장땡이라고 얘기했었잖아"

"하아…? 내가 게이야? 호모야? 내가 무슨 그런 소리를 해? 나는 노멀이야!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혹시 너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

"시체. 너 잠 아직 안 깬것 같다"

"…"

...사라져버린 것인가...결국 '기적'이라는 건 일어나지않은 것인가...

나는 학교에 있는 내내 멍하니 있었다. 당연히 수업내용같은 건 들리지도 않았다. 잠도 자지 않고 창문바깥에 있는 광경을 그저 아무런 집중된 초점도 없이 그저 멍하니...

"시체 대체 왜 저래?"

"아까 전에 윤혜연이니 뭐니 그런 이름을 가지고 있는 우리 학교에 새로 온 선생을 알고있냐고 묻던데?"

"돈 거 아냐? 무슨 개 헛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새로 온 선생중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었잖아"

"무엇보다 이쁜 선생이라던데…우리 학교에 이쁜 선생이라는 게 있었나?"

"크흑! 남자들의 로망인 미인여선생이 없다는 것이 비참해!"

"미인여선생과의 아찔한 로맨스! 생각만해도 불타오른다아!!!"

"그런 선생이 우리 학교에 있을 리가 있냐"

"저 녀석 개학식때 선생얼굴 보았을텐데 대체 왜 저런다?"

"내가 어떻게 알겠냐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겠지"

막상 그녀가 진짜로 사라졌다고하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제까지만해도 보았던 그녀였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이별에 대비하고 있었다고 해도..마음 한 구석은 텅하니 비어버렸다.

방과 후에 학교건물을 나서는 나에게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그녀가 매일매일 쭈그려앉아서 보고 있었던 꽃밭이었다.

나는 무엇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녀가 앉곤 했었던 그 장소에 가서 쭈그려앉아 그녀가 했었듯이 나도 꽃들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 그녀가 좋아하던 '해바라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너무나도 허무하게...마치 그녀와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버스정류장을 지나가고 있었다. 어제 마지막으로 그녀를 보았던 장소. 나는 그 곳에 다가갔다.

"하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녀는 사라졌다. 어떠한 흔적조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생전에도주변에 아무도 없었던 그녀였다. 그리고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한다고 해서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데.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나에게 사주었던 그 따뜻한 설렁탕이 생각나서였다.

"아이고 어서와라!"

할머니의 그 다정한 말은 여전하였다.

"안녕하세요"

"그럼그럼. 또 왔네?"

"예…"

"자! 일단 앉아! 설렁탕 한 그릇 바로 가져다 줄테니"

"고맙습니다"

"후훗"

"할머니"

"응? 왜 부르누?"

"혹시 이쁜 애기…기억하세요?"

"이쁜 애기?"

"할머니가 매일매일 부른 사람 있잖아요. 저번에도 저랑 같이 왔었던…"

"그게 무슨 소리여?"

"…기억 안 나세요?"

"내가 애초에 이쁜 애기라고 부르는 사람도 없었고…저번에 왔을 때에는 너 혼자 오지 않았었나?"

"…!!!"

"요새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수도 모를터인디…아무튼 내가 이쁜 애기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어"

"…그렇군요"

그토록 살갑게 대해주던 할머니도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에 대한 기억만이 지워진것이다.

"자자 설렁탕 한 그릇 왔다!"

"잘 먹을게요"

"그럼그럼. 많이 먹으려무나. 많이 먹어야 더 살도 찌우고 그러는 거지!"

"네…"

나는 혼자서 설렁탕 한 그릇을 비워냈다.

"또 오려무나!"

"예. 또 올게요"

계산을 끝마치고 나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여전히 멍한 상태. 일종의 패닉이자 공황상태였다. 할머니의 기억 속에서도 그녀란 존재가 없어진 것이라면...

그 남자는 기억이라도 하고 있을까. 그 '윤혜연'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자신은 그 윤혜연이라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는데..그 사랑때문에 그녀와 헤어졌다는 것도 기억할까?

그리고 그녀가 아직도 그를 잊지못하고 그를, 그와 함께했었던 행복한 추억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을까?

아니라면..기억하고 있지 않다면...그녀는 정말로 불쌍하게 되어버린다.

자신이 이 곳에 있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도 그녀를 모두 잊어버렸다.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 그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오직 나만이. 오직 회색빛 눈을 가진 나만이 그녀를 기억한다. 그녀의 흔적을. 그녀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증거들을 기억한다. 그녀의 외모. 그녀의 겉모습. 그녀의 이야기. 나만혼자서 그녀를 기억한다. 그녀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도 못하는 나만이..

그녀와 똑같은 '외톨이'인 내가..혼자서...그녀를..

결국에 나의 위로는 그녀의 마음에 닿지 못했다. 나는 애초에 그녀를 구할 자격조차도 없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녀를 구할 수 없다고 단정을 지어버렸으니까. 나는 그녀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니까...

만감이 교차하고. 마음은 허전하고 텅 비어버린 것처럼 공허하다.

주변의 사람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렇게 되기 마련이었다. 대신에 눈물이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나는 주변 사람들을 잃어본 적이 있었기에 적응이 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나아진다. 사람의 심리란 그런 것이다. 지금은 슬프지만 언제까지고슬퍼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은 '과거'가 되고 '추억'이 된다. 조금은 슬픈 추억이.

밤이 되었다. 도시의 밤하늘은 여전히 별이 보이지 않는다. 옥상에서라도 보면 보일려나.

길을 걷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녀의 미소가 떠오른다.

그 은은하고 아름다웠던 미소가 나를 마음아프게 하고 있었다.

그 때 그녀는 느끼고 있는 감정이 '행복'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얘기했었다. 그래서 그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그러면 된 것이다. 그녀는 사라졌어도..그 때 그녀는 행복해보였으니까.

이제야 완전히 나는 그녀를 떠나보낼 준비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잘 가요"

나는 진정으로 이별의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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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0. 종료입니다.

Part 11. Sad Confession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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