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73화 (17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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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0. Lon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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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안에 있었던 병아리가 자라서 닭이 되었다. 자신이 갇혀있어서 답답하다는 것인지날개를 푸드득거리며 나가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었다.

'나는…'

어찌할 수 없다. 그녀가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때문에 그녀의 안에 검은 닭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하는 것일까. 곧 있으면 선생님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지도 모른다고 얘기해야 하는 것일까. 되려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내 입으로 그녀를 싫어한다고 직접 말해놓기까지 했었는데.

'…나와 똑같으니까'

똑같으니까. 똑같은 외톨이이니까. 누군가에게 미움보다는 동정을 더 받기 싫어한다. 욕을 수 천번 수 만번 먹는 것보다 '위선'으로 동정을 받는 것이 더 치욕적일 것이다.

외톨이는 미움만을 먹고 살아가니까. 오히려 그게 적응이 되고 아무렇지 않게 된다.

'나는…위선자가 아니야…'

그런 생각은 든다. 이 선생은 유일하게 나한테 평범한 학생으로 취급해준 사람이었다. 그차가운 얼굴의 일면에서는 남 모르는 슬픔과 한 줄기 따뜻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구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움직일 수가 없다. 내가 움직이면..내가 움직인다고해서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여태까지처럼 어떠한 감정때문에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가 살아났었던 내 가족. 내친구들처럼..그녀도 살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나는 맨 처음부터 '안된다'고 생각한다. 여태까지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자신이 죽는 그 순간까지 대체 무엇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것인지 모르고 죽는 사람이 허다했다. 사람들 무리에 섞여서 사라지는 것만을 기다리는...

그녀도 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쓸쓸할 뿐이다. 아무도 없어서. 자신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데..사라져버리게 되니까...

생전에도. 그리고 사라진 후에도 자신은...

'혼자'니까.

점심시간. 나는 급식실로 가는 도중에 잠시 교직원용 식당에 들렀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녀는 저 멀리 혼자서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주위 선생들이 숙덕숙덕거리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그러고보니..우산을 돌려받지 못했다. 내가 지현누나 도시락 갖다주면서 그녀에게 우산을 빌려줬었는데...

그녀는 식사를 다 끝마친 모양인지 식판을 반납하고 교무실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박정우"

"…!!"

나를 눈치채고 있었나보다. 내가 식당에서 서성거리던 것이 걸린 것 같았다.

"나에게…무슨 할말 있니…?"

갑자기 그녀가 그런 말을 하니 당황하였다.

"…그게 아니라…"

"박정우"

"…예"

"잠깐…얘기나 하러 갈까?"

뭔가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 때 만나서 5교시 수업을 땡떙이치고 학교 산책로를 나란히 어색하게 걷고 있는...상당히 뻘쭘하기 그지 없는 그런 상황.

"…박정우"

"…예"

"…너에게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있니?"

"예…?"

"가족이라든가…좋아하는 사람이라든가…"

내가 소중히 여기고 있는 사람이라...그나마 나와 인연이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을 소중한사람이라고 얘기해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고 하면..

"가족…입니다…"

"그럴 것 같았어"

"…"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고…"

"…"

"나도 그랬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아버지랑…동생이랑…"

"…가족들 중 일부가 없으면 남은 사람들끼리 뭉치게 되니까요"

나는 그 뭉치는 기간이 너무..오래 걸렸지만...

"가족들 말고는…없는 거야?"

"…예?"

가족들 말고는...이라니..?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거나…"

"…없습니다"

"…그렇구나…"

"선생님"

"너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려지는 거…처음 듣는다"

"그 남자친구되는 분을 아직도…"

"…"

"잊지…못하고 있습니까?"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잊지 못하기 때문에...당신이 사라질 지도 모르고요...

"그렇다면…"

그녀는 차갑게 미소지었다. 그 미소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지만 여러가지 의미가 내포되어있었다.

♬~♪~♬~♩

"들어가자"

그 때 5교시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와 그녀는 더 이상 얘기를 나누지 못하고 각자자기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쓸데없는 짓이었나…"

5교시 이후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서 어느 새 방과 후였다. 종례를 끝마치고 교실 문을 빠져나가는 나를 그녀가 붙잡았다.

"…우산. 돌려줄게"

그 같은 말과 함께 그녀는 교무실로 내려가고 나는 영문을 모른 채 그녀를 따라갔다.

"잘 썼어"

"…예…"

교무실에 와서 그녀는 내가 저번에 빌려줬었던 우산을 다시 돌려주었다. 깜빡하고 안 갖고온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같이…돌아갈래?"

"…예?"

"나도 지금 퇴근길이니까…방향도 맞고…"

"…"

나는 그녀의 제안에 순순히 응해주었다. 무슨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뭔가 그리해야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게 했다. 이것이 결국 동정이라는 것을...알고 있으면서..

그녀가 아직 젊은 선생이라 자가용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어쩌다보니 그녀와교문을 함께 나서게 된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않고 마냥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 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끼리 함께 걸으면 무슨 사이에 벽이라도 있는 마냥 거리를 상당히 두고서 나란히 걷고 있었다. 아까 전에는 앞뒤로 걷고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 좋아진것이었만 그래도 그녀는 여지없이 차갑기만한 무표정이었다.

교문에 들어서면서..그녀의 안색이 갑자기 바뀌게 되는 것을 나는 아직까지 전혀 눈치채지못하고 있었다.

"…혜연아"

정문 앞에서 어떠한 한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체구도 나와 비슷할 정도로 여리하게 보였고 그리고 뭔가 호감이 가는 얼굴의 한 남자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나지막이 부르고 있었다.

"…!!"

그리고 나는 이제서야 그녀의 안색이 변했다는 것을 눈치첐다. 머지않아서 저 교문 앞에서 있는 남자때문에 그녀의 표정이 확연히 바뀐 것이라고 알게 된 것도...

그 남자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우리를 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나와 나란하게 걷고 있던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녀의 인상은 놀람에서 다시 극도로 차가워져갔다. 우리가 있는 곳으로 그는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그녀와 마주하게 되었다.

"오랜만…이지?"

"…응"

"내가 조금…방해한 건가 하하…"

남자가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남자의 얼굴은 내가 교무실에서 보았던 사진의 얼굴과 확연히 일치하였다.

'이 사람이…연인이었던 사람…'

그리고 그녀를..위기에 처하게 만든 장본인....

"…무슨 일로…왔어?"

"…그냥…왠지모르게…"

"나에게…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 그냥…오랜만에 얼굴이라도 봐둘까 해서…"

"…돌아가줘"

"…"

"할 얘기가 있는 것이 아니면…돌아가"

"…그 때에는…"

"이미 지나간 일이잖아? 돌아가줘"

"…미안하다고 얘기하려고 왔어"

"…"

"그래야. 편해질 것 같으니까"

"…돌아가줘"

"시간 방해해서 미안했어. 그리고 옆에 있는 학생도 혜연이 제자로 보이는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그는 바보같은 미소만 짓고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그 떠나가는 남자를 지켜보는 그녀의 표정은 아까 전의 극도로 냉정한 차가움이 아닌..

하나의 조그만 '아련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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