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71화 (17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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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0. Lon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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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앉아도 될까요?"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앞자리에 턱하니 앉았다. 결국에는 자기 마음대로 앉아버린 것이다. 헤헤하며 바보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이 남자. 왠지 이상하게 보인다.

"…마음대로 하세요"

나는 그 남자가 앞에 있건 없건 상관을 하지 않았다. 그런 남자를 신경쓸 필요도 없었다. 이 곳 도서관은 책을 찾아서 읽거나 공부를 하는 곳이기에 그에 대해 별로 상관하지 않기로하였다.

"하핫! 그러면 염치불구하고…"

그도 자기가 공부할 것을 갖고오더니 필기를 시작하였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나와 그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서로의 공부에 전념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교육에 있어서의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다음 날 강의시간이었다. 변함없이 맨 앞자리에 앉아서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들은 내용을 필기하고 있었다.

끼익...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떤 학생이 지각을 하였는지 교수와 학생들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빨리 들어가서 앉으세요"

"네"

그 지각한 학생은 바로 앞자리로 와서 냉큼 내 옆자리에 앉아버렸다. 그러고서는 소곤소곤 하는 말.

"또 만났네요?"

"…네"

그는 나에게 치근덕거리는 것 같았다. 사실 이전에도 몇몇 남자학생들이 나에게 와서 몇 번 추근거리다가 제 풀에 지쳐서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었는데 이 남자도 마찬가지 인 것 같았다.

강의시간이 끝나고나서 나는 곧장 도서관으로 향했다. 내 옆자리에서 소곤거렸던 그는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나는 귀찮지않게되어서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도서관에서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겠다 싶었다.

교육학 서적 몇 권을 고르고 맨날 앉는 자리에 앉아서 바로 책을 펼쳐들었다. 책에 집중하려고 하던 순간. 탁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책상에 올려졌다.

"마셔요"

책상에 있던 것은 자판기에서 나오는 커피 하나. 자판기에서 내 것까지 사 온 것일까.

"저는 괜찮은데…"

"사 온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마셔요"

"…그럼…"

계속 안 마신다고 뻗대다가는 이 사람과 트러블이 발생할 것 같아서 마지못해 음료수를 마셨다.

"이제 여기에 계속 앉아도 되겠죠?"

내 앞자리에 계속 앉겠다고...?

"마음대로 하시라고 얘기했었잖아요"

"아 그렇지! 깜빡하고 있었네!"

'뭐야 저 사람…'

"그럼 여기에 계속 앉을게요. 그리고 있잖아요"

"…네?"

"이렇게 계속 보게 될 얼굴인데 통성명이나 하는 것이 어때요?"

"통성명이요?"

"제 이름은 장호석이라고 합니다"

"…윤혜연이예요"

"혜연씨입니까? 이름도 예쁘네요"

"이름도 이쁘다니요…?"

"아 모르셨습니까? 혜연씨가 우리 대학내에서는 최고 퀸카라고 이름이 높은데…"

"퀸카…?"

"혜연씨가 워낙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으시니 잘 모르는 건 당연한 거겠죠"

"…그래서요?"

"그냥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이런 분이랑 친하게 지내면 어떡할까하고 온 거에요. 아니 혜연씨가 마음에 들어서라고 해야할까…첫 눈에 반했다고 얘기해야할까…"

"저랑…친해지고 싶다구요?"

"당연하죠! 이런 미인이랑 친해지는 건 사나이들의 로망이니까요!"

"…로망?"

이 사람..뭐 잘못 먹었나...?

"그리고 그 동안 저랑 과를 같이 다녔었는데…모르고 계셨습니까?"

내가 알 리가 없었다. 같은 과에서 누가 다니든 나는 그들과 친해질 수 없었기에 줄곧 혼자였다.

"…저는…"

"하핫 그 동안 몰랐던 건 상관없습니다! 앞으로 혜연씨랑 친하게 지내면 되는 거니까요!"

호탕하게 웃으며 그는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얘기하였다.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뭔가 이런 사람은 부담스러웠다.

내가 보기에는 이 사람은 잘 생기지도. 그리고 똑똑하지도 않아보였다. 하지만 이런 누구나에게 외면받으며 지내왔었던 나에게 미소지으며 말을 걸어주고 있었다. 그 미소는 누구라도 저절로 웃음을 짓게 만들만큼 매력적인 미소였다.

그렇다고는 해도..이 사람은 머지않아 나에게 질려버려서 말을 걸지도 않아주겠지...어차피 나는 혼자인데...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 사람은 한달 내도록 내 앞자리에서 함께 공부를 하였다. 내가 별로 말을 하지도 않는데도 알아서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친구처럼 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길게 누군가와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것은 처음이다. 이렇게 길게 얘기하고 있는 것도. 이렇게 나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주는 것도.

알고보니 그는 가난한 고학생이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신지 오래이고 늙은 홀어머니를 고향에 두고 왔다는 그. 그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서 지금도 아픈 몸으로 농사를 짓고 계신다며 걱정을 마지 않았다. 그 어머니를 위해서 안정된 직장을 얻어서 모시고 살겠다는 소박한 꿈을 지니고 있었던 그였다. 또 자신은 생활비를 벌기위해(학비는 나와 마찬가지로 장학금으로 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대학에 있는 시간 빼고는 일을 하고 있었다고한다.

그렇게 힘든 상황인데도..이런 웃음이 나올까..? 자신의 이런 슬픈 사연을 얘기하면서도..내가 그와 같이 이런 상황에 처해진다면..나도 이렇게 웃을 수 있을까..?

"혜연씨는 웃는 모습이 예쁠 것 같은데…한번 보고 싶어요"

"웃는…모습이요?"

"네! 이런 차가운 얼음공주가 웃으면…그 누구보다도 환한 웃음인걸요?"

"…얼음공주요?"

"우리 과에서 혜연씨는 모르겠지만 얼음공주로 불리고 있어요. 아무와도 얘기하지않고 도도하게 모든 학점을 만점으로 받은…"

"…?"

"하하! 이런 건 잘 모르시려나? 혜연씨"

"네"

"혜연씨도 사람들과 좀 어울려보세요. 어울리다보면 재밌다니까요?"

"…그렇지만 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용기예요. 예전에 저도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잘 나서는 성격이아니었지만 보세요! 저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잖아요?"

그는 그의 말대로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었다. 그의 주변에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그 누구라도 그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혜연씨도 용기를 내시면…사람들도 마음을 열어줄 거예요"

"…호석씨…"

"저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기 위해서 먼저 이렇게 했어요"

"무엇을요…?"

"웃는 거!"

"웃어요…?"

"웃는 사람한테는 침도 못 뱉는다잖아요. 웃으며 사람들을 대하다보면 사람들도 웃으면서 나를 대하게 되는 걸요? 그러면서 관계를 쌓아가는 거죠"

"…"

"처음부터 잘 되는 것은 아니예요. 시행착오도 있는 것이고. 사람들이 그렇다고 무조건 마음을 열어주는 것도 아닐 것이고. 하지만 있죠? 계속 두드리다보면 답은 나오게 되요"

"답…"

"이렇게 지금도 혜연씨의 마음을 열으려고 저는 이렇게 두드리고 있잖아요"

"…"

"좀 느끼한가…? 하하…혜연씨"

"네…"

"저는요. 혜연씨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아요"

"…!!"

"글쎄 뭐라고 해야할까…그냥 처음 만난 순간부터 팍 번개가 내리쳤다고해야할까…"

"…"

"그런데 잘 용기가 나지를 않더라고요. 남자들한테 말을 잘 걸지만 여자한테 말을 거는것도 처음인데다가 잘 못하는 쑥맥중의 쑥맥인데 말이죠…"

"…고백…인가요?"

"네. 고백이예요. 한달동안 열심히 두드렸으니…이제 열어야 될 때가 된 거죠"

"…"

"혜연씨"

"네"

"아니 이제는 혜연아라고 부를게. 혜연아"

"…네"

"좋아해"

"…"

난생 처음으로 들어보는 고백. 나는 어찌해야할지를 몰랐다.

"내…여자친구가 되어주겠어?"

항상 말을 똑바로 하던 그도 긴장을 하였는지 이 순간 만큼은 말을 떨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그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남자라면...괜찮지 않을까..?

오히려..내가 부족한 상황이 아닐까..? 이런 남자라면..다른 어떠한 여자들도 좋아할 것 같은데..왜 나를...

"…좋아요"

나는 확인해보고 싶었다. 일종의 모험이었는지도 몰랐다.

이런 사람과 함께라면...나도 웃을 수 있지 않을까하고....

"정말…나랑 사귀어주는거야?"

"…네"

"정말…인거지?"

"네. 정말이예요"

"야호!!!!!!!!!"

내가 그의 고백을 받아들이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내가 부끄럽게 사람들이 모두 있는 가운데서 환호성을 지르며 막 내 주위를 돌며 뛰고 있었다.

그렇게 기쁜 것일까..이런 내가 받아들여줘서...?

그런 모습에 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왠지 귀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제 윤혜연은 내 꺼다!!!!!!"

그는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그렇게 외쳐댔다. 사람들도 전부 의아해하고 놀라워하는눈치들이었다.

"가자 혜연아"

그는 손을 내밀었다.

"…네"

"이제는 네가 아니고 응이라고 말해. 어차피 동갑인데…그리고 우리는 사귀는 사이잖아?"

"…응"

"더 듣기좋은 걸?"

"…"

"푸하하하!! 혜연이도 부끄러운가 보네?"

"…놀리지 말아줘…"

"알았어 알았어. 그런데 나 배고픈데 뭐라도 먹으러 가자"

"뭐…?"

"내가 엄청 단골인 곳이 있거든? 시골에서 올라오면서부터 들락날락 했던 곳이야"

"어딘데?"

"어떤 엄청난~욕쟁이할머니가 계시는 곳이야"

"욕쟁이…할머니?"

"어! 얼마나 욕이 걸걸하고 구수한지…내가 왔다하면 나한테 얼마나 욕을 얼마나 쏟아내는 지 몰라!"

"…푸훗!"

"아~? 지금 웃은 거지? 웃은 거 맞지?"

"…내…내가 뭘…"

"지금 비웃은 거 맞잖아!"

"비웃은 거 아냐"

"그럼…웃겨서 웃은 거지?"

"…?"

"거 봐. 웃으니까 더 예쁘잖아"

"…호석…?"

"혜연아"

"응"

"앞으로는 더 많이 웃을 수 있게 해줄게"

"…!!"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행복해할 수 있도록…"

"…"

"내가 만들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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