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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0. Lon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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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안경왔다"
"쉿 조용히해. 다 들리잖아"
"쟤는 맨날 공부만 하는 거야?"
"그러게나말이야…질리지도 않나?"
"게다가 애들이랑 말도 안 한다지?"
"그리고 전교 1등…"
"엘리트네"
"애들이랑 상종할 가치도 없다는 건가?"
"재수없어!"
사람들에게 있어서 나의 평은 이랬다. '공부만 하는 애'. '애들이랑 얘기하지도 않는 년'.
'거만한 년'. '딱딱한 년'
길을 걸으며 책을 읽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은 나보러 전부 재수없다는 둥 모범생인 척한다는 둥 욕을 쏟아내었다. 원래 내가 말이 없었던 것은 내가 잘 사람들에게 잘 나서지도 않고 부끄러워했기때문이다. 성격이 원체 내성적이다보니 사람들과 어울려 잘 놀지도 못하였고그리고 사람들은 전부 다 나를 안 좋게 생각하였기에 나는 그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씨...익...
집에 돌아와서는 항상 거울 앞에 서서 웃는 모습을 하였다. 표정이 너무 딱딱하고 무표정밖에 없다고해서 손가락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연습을 하였다.
역시나 억지로 하는 건 잘되지 않았다. 입꼬리를 올려도 거울 앞에 보이는 내 모습은 진정으로 웃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집의 내력이 그런 것이었을까. 우리 집 모두다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았다. 아니 잘 못한다는 것이 더 옳았다. 아버지는 항상 근엄하고 무뚝뚝하셨고 어머니는 그나마 감정표현을 하시는 분이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는 하지 않으셨다.
"공부를 해서 선생님이 되어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세뇌를 시키듯 누누이 하셨던 말이었다. 아버지 역시 선생님이셨고 사람들에게는 참된 교육자라고 존경을 받고 계신 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분이셔서 항상 무뚝뚝하였다.
나는 한번도 아버지가 웃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한번만이라도 아버지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었지만 아버지가 웃는 모습은 20살이 넘어서도 볼 수 없었다.
어머니는 그러한 아버지의 곁에 묵묵히 계셨다. 몸이 약해서 투병생활을 하시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들 뒷바라지와 아버지의 내조를 하시느라 안정을 취하셔야했는데도...계속 무리를 하고 계셨다.
그러다 결국에...
"혜연아…"
"…네"
"부디…행복하게 살으렴…"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어머니"
"…아니야. 내 몸은 내가 더 잘 알잖니"
"…어머니"
"그리고 혜정이를 잘 부탁한다…"
"어머니…!!"
"…울지마려무나…그런데 아버지는…?"
"일…하고 계세요…"
"그 이는…원래 그러잖니…"
"…오래사셔야죠. 제발 힘을 내세요…"
"후훗…혜연아"
"예 어머니"
"혜연이는…웃는 모습이 보기 좋은데…"
"…"
"…그 웃음을…절대로…잊…지…마……"
"어머니…!"
"…렴…"
어머니는 그렇게 웃으시면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내 동생과 나를 그렇게 남겨두고. 그리고 그토록 평생을 사랑하시던 아버지를 남기고...
장례식에서는 이미 눈물은 모두 흘러내렸다. 흘러내리고 흘러내려서 눈이 퉁퉁 불어버리고 눈물샘미 메말랐다. 그런데 장례식을 책임져야할 아버지는 오지 않으셨다. 여태까지 단 한번도 어머니의 병문안을 간 적이 없는 아버지였지만 장례식에서는 계속 있으시겠지라고 나는 기대를 했었지만 어머니가 떠나는 것임에도..아버지는...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일을 마치고 아버지는 장례식장에 찾아오셨다. 이 때만큼은 난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병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수발하시던 어머니셨다. 아버지에게는 얘기하지말라며 진통제를 먹으면서 집안일을 하시던 어머니셨다. 아버지를 위해서 온갖 고생을 겪으셨던 어머니를 이렇게까지 아무 것도 모른 척하는 아버지가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참된 교육자'? 어머니를 그렇게 외면하셨던 분이었다. 그러고서 참된 교육자라고 불릴 자격이 계셨을까. 그러한 와중에도 아버지는 전혀 슬픈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일관된 무표정으로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시신을 관에 모셔 양지 바른 곳에 묻었을 때. 나는 '이제 정말로 어머니가 떠나셨구나…'하고 느끼게 되어버렸다. 내가 있는 앞에서 눈을 감으셨을 때에는 잠이 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이렇게..묘를 보고 있으면 정말로 어머니는 우리의 곁을 떠나셨구나하고...
모든 장례의 과정이 끝나고 사람들은 모두 떠나갔다. 어머니와 친하게 지냈었던 친구분들도 아버지의 지인분들도 모두 떠났다. 묘지에서는 나와 내 동생. 아버지 셋이서만이 있었다.
이제는 우리들도 떠나야 할 때. 돌아가신 분은 돌아가신 것이고 우리들은 다시 삶을 살아가야했다.
"…돌아가자"
똘망똘망한 눈으로 어머니의 묘를 바라보고 있는 동생의 손을 잡고 돌아가려고 했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그 자리를 내내 지키고만 계셨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아버지의 손으로 어머니를 묻어드린 이후로 멍하니 묘를 바라보며...
아버지에게서는 아무런 감정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모르게 아버지가 바라보는 눈빛에는 '슬픔'이 있었다.
"아버지…"
"…내가 원망스러우냐?"
"…아버지?"
"이 못난 아비가 원망스러우냐?"
"…"
"…혜연아"
"네. 아버지"
"이 못난 아비를…원망해다오…"
그 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보게 되었다. 결코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지는 않았지만...그는..아버지는...가슴으로 눈물을 흐르고 계셨다.
나는 대학에 합격했다. 아버지가 나에게 바라시던 선생의 꿈의 시작이 될 서울에 있는 사범대에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합격하게 되었다.
"쟤는 왜 저렇게 공부만 하지…"
"차가워 너무…"
"왠지 저 사람 건드려서는 안될 것 같아…"
"엄청 미인인데…범접할 수 없는 포스랄까?"
"누구 저런 미인 없나?"
나는 대학에서도 혼자였다. 마땅한 친구라고는 볼 수도 없었다. 사범대에 있는 과 선배나 동기들과도 어울릴 수 없이 나는 혼자서 있었다.
이제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나는 웃을 수도없었다. 오로지 선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 길만을 달려가고 있었다. 대학을 다니면서대학생들이 꼭 가곤 하는 MT도 아프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다.(나는 그 덕분에 선배들의 눈총을 많이 받아야만 했다)
"저기…혜연양…"
"…네?"
"아니.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가 반응을 해줘도 그 남학생은 나 살려라하며 도망을 쳤다. 대학에 도서관을 가도 멀지감치 아무도 없는 구석진 곳에 앉아서 공부를 하였다.
대학생활의 로망도 나에겐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누구나 꿈꿔왔을 법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에게는 오로지...'선생이 되겠다'는 일념 하나 뿐이었다.
그렇게 내 대학생활은 그렇게 끝날 줄 알았다.
"쟤 전 과목 모두 만점이라지?"
"장학금으로 학교 다닌대!"
"부럽다~부러워~"
"누구는 학자금 벌려고 알바를 죽으라고 하는데 누구는 전액장학금이라니…"
"엄청난 미인에! 전 과목 만점이라는 엘리트에! 완벽하구만~"
"쟤 임용고시도 쉽게 패스할 것 같지 않아?"
"그러면 뭘 해! 선생이 가지고 있어야 할 것도 모르는데!"
"선생이 가지고 있어야 할 것!"
"말을 안 하잖아! 그렇게 많은 학생들 앞에서 가르치려면 열심히 떠들어야하는데 그렇게 말을 안 하면 되겠어?"
"…하기야 그렇지…"
"아무리 공부를 잘 하면 뭘 하겠어? 대인관계도 원만해야 선생생활도 잘 되는데…"
나도 알고 있다. 사람들 앞에서 얘기할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는 없었다. 애초에 선생이라는 직업과 나는 맞는 점이 없었다. 그리고 선생생활하면서 다른 선생들과 친하게 지내야하는데 그렇지도 못하는 나였다.
"저런 지식위주로 가르치는 수업은 딱딱해지기 마련이야. 다 졸려 할 걸?"
"수업을 재미있게 이끌어야 학생들이 잘 따라가주는 거지"
"저런 무표정한 얼굴로 잘도 학생들을 가르치겠다…"
"그래도 학생들이 좋아할 것 같잖아?"
"학생들이 열광하겠지…저런 미인선생이 있으면…"
주위에서 나에 대해서 수군수군 거리며 그리 좋지 않은 말들만이 오갔다. 이 대학에서도 나는...
'외톨이'였다.
어느 덧 나도 2학년이 되었다. 2학년이 된 봄의 일이었다. 나는 어김없이 도서관에서 임용고시를 치르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내 전용 고정석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이구석 진 자리에서...
끼익.....
"여기 앉아도 되나요?"
"…?"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나에게 홀연히 찾아왔다.
더 없이 태양과도 같은...
밝은 미소를 지어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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