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68화 (168/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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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0. Lon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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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물줄기가 그녀의 얼굴을 타고 떨어졌다. 그녀는 눈에선 눈물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 처량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펑펑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쏴아...쏴아...

비는 그녀의 심정이 더 슬퍼지라고 염장을 지르는 듯이 더 쏟아내려져가고 있었다. 번개를 동반한 천둥은 없었지만 비는 더더욱 무심하게...

"일어나요"

"…그래…일어나야지"

그녀는 천천히 일어섰다. 조그만 우산은 두 명을 보호해주기에는 너무도 작았다.

"건물까지 데려다줄게요"

"고마워"

나는 그녀를 건물까지 함께 가주었다. 건물에 도착하니 비는 더 이상 맞을 필요도 없었으니 이제 나는 돌아갈까 했었다.

"…잘 가"

"네. 안녕히계세요"

나는 그녀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다시 비가 쏟아지는 교문 쪽으로 향해 걸었다. 조금 있다가 다시 학교에 돌아올 테니까..뭐..인사할 필요도 없었나?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지현누나의 도시락을 챙겨주기 위해 씻은 뒤에 옷을 갈아입고부엌으로 가서 저녁을 만들었다.

"흐음…도시락통이 어디있지?"

부엌서랍장을 뒤적뒤적하다보니 3단으로 된 도시락통을 발견하였다. 이걸로 담으면 되겠다는 생각에 식탁에 놓아두고 그 전에 저녁을 어떤 것으로 만들어야할지 냉장고를 열어서확인해보았다.

"맛살이랑…햄이랑…계란이랑…콩나물이랑…시금치…"

슬슬 요리재료도 거의 없어져가던 시점. 저녁밥 만들어주고나면 재료가 모두 떨어져 마트에서 반찬거리를 사와야했다. 그래도 재료가 남아있었으니 저녁밥만들기에는 충분.

"그럼…계란후라이에 볶음밥. 콩나물국. 시금치랑 맛살 넣어서…"

차근히 지현누나가 먹을 저녁을 정하고 만들어갔다.

"됐다. 이제 도시락통에 담아낸다음에 전해주면 되겠네"

요리가 완성되고나서 바로 도시락통에 넣었다. 그리고 비가 여전히 그칠 줄 모르고 있었으니 베란다에서 큰 우산을 꺼냈다.

"…"

나는 우산을 세 개를 들고 갔다. 하나는 내가 들고 갈 것. 하나는 지현누나 것. 그리고 어쩐이유에서인지 담임선생의 것까지 가지고 현관문을 나가버렸다.

"모르겠다…"

그냥 전해주고 나중에 돌려달라고 하면 되겠지...이건 그냥 설렁탕에 대한 답례야 답례..내가 아무리 선생을 싫어해도 이 정도의 답례는 해주어야 해...이로써 자기합리화는 끝을내고 걸어가려했다.

"지하철을 타야되겠네…"

비가 너무 와서 지하철을 타기로 하였다. 지하철계단을 내려가서 1인용교통카드를 1500원내고 끊은 뒤에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덜커덩..덜커덩...

봄쯤에 옷을 사러 동대문운동장에 지하철을 타고 간 것을 제외하고는 오랜만에 지하철을타게 되었다. 차 내에 들어서자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내 모습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당황해하거나 신기해하며 나를 보고 있었지만은 머지않아 나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렸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This stop is…"

역에 도착했다. 2분 정도 밖에 소요되지 않는 것을 보면 지하철이 상당히 편하구나..하고 느껴졌다. 걸어서 30~40분 거리를 단 2분만에 도착하다니.

1회용 교통카드를 반납해서 500원을 환불받고 다시 계단을 올라가서 학교를 향해 걸어갔다.

교문주위의 분위기는 을씨년스럽다. 방과 후였는데다가 이 시간에는 사람들이 아무도 나가지 않았기때문이다. 몇몇 퇴근하려는 차들이 교문 밖을 나섰지만은 사람들은 눈곱만치도 볼 수 없었다.

일단 지현누나가 있는 곳을 찾아야했다. 자율학습실에서 공부를 한다고 했었으니까..학생관쪽으로 가면 되겠네.

학생관 옆에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 곳에 자율학습실이 있었다. 아예 독서실을 하나 만든 셈이었다. 그런데 공부를 하려고 여기에 온 이용자가 너무 많다보니 지현누나가 이 곳을 이용하지 않고 가급적이면 조용한 사설독서실을 이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들어가야되냐…"

여기에서 따로 지현누나를 불러낼 수도 없고..들어가긴 들어가야되는데...

"여기서 뭐하고 있냐?"

"으앗!"

갑자기 뒤에서 나오는 목소리때문에 깜짝놀랐다.

"왜 그렇게 깜짝놀래…어 너는…?"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왔냐?"

내가 박정우라는 사실을 알고나자 선생의 눈초리가 변하였다. 이 선생은 맨날 내가 자서 특히나 나를 싫어했던 선생이었다.

"지현누나를 만나러…"

"가라"

"예?"

"여기에 공부하러 오지 않았으면 가라고"

"…"

그냥 볼 일이 있어서 만나겠다는데 이것마저도 막아버린다.

"네가 들어가면 주위사람들이 방해가 되잖아"

"…그럼 선생님이 불러와주시면…"

"가라"

아..화나네...

"그러면 지현누나한테 이걸 전해주세요"

나는 선생한테 우산과 내가 만들었던 도시락을 건넸다.

"이거만 전해주면 되는 거지?"

"…네"

"그럼 빨리가기나 해"

나를 내쫓아보내려고 안달이 난 선생. 하지만 마땅한 반박논리를 찾아낼 수 없어 나는 돌아가야했다. 방해가 되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기분이 나쁜 건 사실이었다. 꼴도보기도 싫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으며 가라고 재촉하는 저 선생을 보면 당장에라도 패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

"에휴 안돼지 안돼…"

마음을 추스리고 나서 볼 일을 보았으니 돌아가려고 했었는데 아직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한 개 남아있었다.

"담임한테 줘야 되나…?"

마음의 갈등이 일어났다. 이걸 전해주기도 안 전해주기도 그런 애매한 상황.

"그냥…전해줘야겠다…"

우산도 이미 갖고와버렸으니 선생한테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비를 맞을 걸 각오하고나서 퇴근했으면 어떡하지..? 그러면 내가 뻘쭘해지잖아...

교무실로 가서 담임선생이 있는 지 확인해보았다. 문을 조그만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서 선생이 있는 지 확인해보았다.

"누구 찾는 거니?"

"…아!"

나는 오늘 이래저래 깜짝 놀라는 구만...

"누구 찾으려고 왔어?"

"아…"

한번도 보지 못했던 새로 온 선생이었다.

"응?"

"저기…윤혜연선생님이…"

"윤혜연선생님? 혜연선생님은 잠깐 화장실에…조금만 기다리면 오실거야"

"아 그렇군요…"

다행히도 퇴근은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박정우?"

때마침 복도에서 담임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여기엔 왜 왔어?"

"…"

..이제 어쩐다냐...?

"여기 우산이요"

"…우산?"

"선생님 우산 없으셔서…"

"…나한테 우산주려고 여기에 온 거야?"

"마침 학교에 다시 와야할 일이 있어서…"

하아..대체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 이건 답례다 답례..

"…고마워. 잘 쓸게"

"네. 그럼…"

나는 담임한테 꾸벅 고개를 숙이고 허둥지둥 학교에서 도망쳐나왔다.

"후유…"

마음이 심히 심란했다.

"나 지금 완전히 저 선생 동정한 거잖아…"

그렇게 슬픈 모습을 한 선생이 가여워서..동정을 한 것이다.

'나랑 비슷하게 보였기 때문에? 그래서 그랬던 거야?'

단지 처지가 비슷하다는 이유에서...그런 행동을 했던 것일까..?

모르겠다. 전혀 모르겠다.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쳤나보다 내가…"

그냥..미친 짓을 하였다고 생각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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