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64화 (16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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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0. Lon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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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눈에 띄고 싶어할 뿐이야"

"…"

내가..사람들 눈에 띄고 싶어한다고..?

"마치…나처럼…"

순간 그녀의 표정이 슬프게 보이는 것은 내 착각이었을까.

"…그건…아닙니다"

내가 왜 사람들 눈에 띄고 싶어하는 거야..? 나는 그러지 않아.

"박정우"

"예"

"너는…후회하지 마"

"…"

"그 정도로만 알고 있어"

"…?"

지금 우리 반 무슨 시간이지?"

"…일본어…"

"일본어 선생한테는 얘기해둘테니까. 그럼"

그녀는 벤치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향했다.

"…"

도시락은 나 먹으라는 듯 남겨두었다.

"동정…이군"

그녀가 왜 나에게 이러한 배려를 해주는 것인지 모르지만...상당히 거슬린다. 뺨 때릴 때에는 언제고..그렇게 차갑게 말하면서...어째서...

"…위선자"

저절로 반발심이 생겨난다. 결국에는 '위선'이었기 때문이다.

"당신도 똑같은데…다른 선생들과 다를 바 없는데…"

'나랑…똑같네'

그런 말을 어떻게 내뱉을 수가 있는거지..? 자신과 똑같다고...?

착각이라고. 그런 거? 어떻게 내가 선생과 똑같은 사람이야..?

좋은 학력이 있고..예뻐서 사람들한테 인기도 있고..안정된 직업도 있는데..혼자..?

'마치…나처럼…'

나는 하나도 알지 못했다. 왜 그녀가 나에게 이렇게 구는 것인지를.

"담임과 나 사이의 간격은…천지차이야…"

나는. 선생이 남긴 도시락을 먹지 않고 들고 와버렸다.

"시체 어디갔다왔냐?"

"어디 다녀왔어?"

"…양호실"

"아파서?"

"…응"

쉬는시간에 내가 들어오자 이상하게 여기는 애들이 어디갔다왔냐고 물어서 양호실을 다녀왔다고 거짓말을 한 후에 나는 바로 책상에 엎드려버렸다.

'모르겠어…'

머리 속이 혼란스럽고. 복잡하기만 했다.

'잊어버리자'

그래. 선생과 나눈 대화를 나눈 일을 모두 잊어버리는 거다. 잠이라는 것을 통해서. 잠시나마라도 잊자. 이 혼란을. 이 불안함을.

"야 시체 일어나"

"종례시간이야"

툭툭.

"끄응…"

벌써 종례시간인가...하기야 내가 5교시끝나고 들어왔으니...

"차렷. 선생님께 경례"

"안녕히가세요!"

종례시간은 간단히 끝난다. 어떠한 말도 없이 그냥 들어오자마자 회장이 인사하면 종례시간은 끝.

"…"

도시락을 돌려줘야했다. 먹지도 않았던 도시락을.

"하아…"

이것은 돌려줘야한다는 생각에 가방을 둘러매고 나는 그녀를 따라나섰다. 하지만 선생님이라고 용기있게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그저 그녀가 계단을 내려가면 나도 따라서 계단을 내려가고 그녀가 교무실에 들어가면 나도 교무실로 따라 들어갔다.

교무실에 있던 선생들은 당연히 나를 보자마자 아연실색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제 어떡한다…?'

그냥 책상에 도시락만 올려놓고 말 없이 가자. 그녀는 마침 교무부장에 불려가서 교무부장과 상의를 하던 중이어서 나는 그 틈에 도시락을 얹어놓고 사라지려고 하였다.

"…"

그녀의 책상에는 해바라기 한 송이가 있었다. 여자선생답지않게 그렇게 꾸미지도 않은 간단한 책상에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만이 있었고 해바라기 한 송이만이 있었다.

그리고...어떠한 젊어보이는 남자의 사진이 있는 사진액자가 컴퓨터 옆에 있었다.

'남자친구인가?'

뭐 당연히있겠지...게다가 내가 상관할 것도 아니고..

"박정우"

어느새 교무부장과의 대화를 끝냈나본지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

"…뭐하고 있지?"

"…"

"도시락 돌려주려고 왔어?"

"…예"

"도시락. 안 먹은 것 같은데"

"…"

"…그래도 도시락통 돌려줘서 고마워"

저런 사람한테서 고맙다는 소리를 들었다.

"안녕히계세요"

나는 인사만을 하고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선생들은 나와 담임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 듯 우리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는데 대화가 끝나자마자 아무렇지 않은 척 자신의일에 열중하였다.

"…"

여기서 무슨 사고칠 까봐 그런 거였군...

"기다려"

"…뭡니까?"

"나도 곧 퇴근하니까"

"…무슨 볼일이라도?"

"…기다려"

나는 어쩔 수 없이 기다렸다. 머지않아 그녀는 옷을 입고 선생들한테 인사를 한 뒤에 가방을 챙겼다.

"…가자"

"…"

"…"

얼떨결에 같이 가게된 나와 그녀. 그녀는 학교건물을 빠져나오다가 꽃밭을 보고 꽃밭에 앉아버렸다.

"…"

정말 이상한 습관이다. 꽃이야 널리고 널렸는데 유독...해바라기만을 보고 있었다.

"…이상해보여?"

"…"

차갑기 그지 없는 그녀의 모습에서 한 줄기 슬픔이 보였다.

'해바라기…'

"박정우"

"…예"

"줄곧 보고 있었지?"

"…뭐를요"

"맨날 내가 꽃밭에 앉아 해바라기 보는 거"

"…!!!"

"…해바라기 꽃말이 뭔지 알아?"

"…"

"'그리움'이야"

"…"

"그래…그리움…누군가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

차갑던 그녀의 표정은 풀리고.

그녀는 나를 '연민'의 감정이 담겨져있는 눈빛으로 봤던 것처럼 꽃을 보고 있었다.

아니. 그와는 다른. '그리움'이 담겨져있다.

"…"

"…미안해"

"…"

"가자"

"어디로 저를…"

"배고프지?"

"…괜찮습니다"

나한테 밥 사주려고 그러는 건가...

"안심해. 동정이 아니니까"

"…"

"가자"

나는 결국 그녀의 뒤를 따랐다.

"…대체 어디로 가는 겁니까?"

"…"

행선지도 알려주지 않고 또각또각하고 가고 있는 그녀. 그냥 확 도망쳐버릴까..?

됐다. 밥 사주려고 그러는 거 같으니까 그냥 얻어먹으면 되겠지..내가 아무리 그녀를 싫어해도 그녀가 내비치는 나에 대한 '선의'는....

어째서일까.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선생이라서..? 어른의 말을 들어야한다는 그런 말 때문에..?

거부하면 어떤 후환이 있을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아니면...

'그녀가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 슬픈 표정이 너무나도 마음에 걸려서?'

"…"

"여기"

막연히 30~40분은 걸었던 것 같다. 도착한 곳은 한 허름한 식당.

"…들어와"

"…"

그녀가 들어가자 나도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아! 우리 예쁜 애기 오랜만이구나!"

우리가 들어오자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친근하게 그녀를 맞이하여주었다.

"…그 동안 안녕하셨어요?"

"그럼그럼. 나야 잘 있었지. 그 옆에 있는 얼굴 가려져 있는 애는 누구? 남자친구야?"

"설마요…"

그 딱딱하기 그지 없었던 그녀가 할머니에게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자자. 일단 여기 앉아"

"네"

"그런데. 항상 옆에 붙어있었던 그 싸가지 놈팡이는 어쩌고?"

"…"

그 소리를 듣자마자 급작스럽게 어두워진 그녀.

"…그렇군"

뭔가를 눈치챈 듯 할머니는 씁쓸하게 웃고 있었다.

"인생만사가 그러는 거지. 그렇게 풀 죽어 있을 필요는 없는거니. 일단 여기서 밥 먹고 기분풀어"

"…네"

"회자정리라고. 사람에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지는 거지"

"…네"

"사람 사이의 인연이라는 건.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고 웃어 넘기면 되는 거야"

"…"

"웃어. 애기는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

"…네"

"후후. 이쁜 애기. 오늘 뭐 먹으려고 여기 왔누?"

"…여기에 뭐 먹으려고 왔겠어요"

"그렇지그렇지. 옆에 있는 아이야. 너는 뭐 먹으려고?"

"저는…"

"같은 걸로 주시겠어요?"

"그래그래. 오늘 이쁜 애기 공짜로 해줄터이니 많이들 먹어~"

"…고맙습니다 할머니"

"에궁~우리 사이에 고마움은 무슨"

"그 동안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해요"

"이쁜 애기가 많이 바빠서 찾지 못한 거 아니 미안해하지 말구"

"…"

할머니는 따스한 미소를 짓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주방으로 돌아갔다.

식당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덩그러니 있는 식탁들과 의자. 낙서가 덕지덕지 있는 허름한벽. 천장은 갈라지고 갈라져서 비라도 내리면 많이 샐 것 같았다.

"…이런 곳 싫어하니?"

"…아니요"

나는 사람 많은 곳보다 조용한 곳을 좋아했다. 무엇보다 그 할머니에게서 예전에 나를 아껴주었던 할머니가 겹쳐보여서 그런지 정감이 갔다.

"예전에 매일매일 왔었던 곳이야. 맛은 보장할게"

"…"

그녀가 나를 이런 곳까지 끌고와서 밥을 사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

"…"

게다가..이렇게 친근하게 구는 이유도...대체 왜...

"자. 따끈한 설렁탕 왔다~"

"…잘 먹을게요"

"그럼그럼. 이쁜 애기 많이 먹어라~옆에 있는 아이도"

"…잘 먹겠습니다"

"후후"

그녀는 웃더니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먹자"

그녀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술 떠서 마셨다.

"…"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고 악의는 없다는 것으로 판단. 나도 설렁탕 한 그릇을 비우기 시작했다.

설렁탕을 먹으면서 나와 그녀는 어떠한 대화도 하지 않고. 그저 숟가락 소리만이 가게 안을 메우고 있었다.

"여기요"

"에이 그러지말구 어여 가"

그녀와 할머니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돈을 내려는 그녀와 괜찮다면서 오랜만에 와서 서비스한거라고 돌아가라는 할머니.

"그러면 제가 미안해지잖아요"

"괜찮어~ 이쁜 애기랑 저 아이가 맛있게 먹은 걸로 셈 한 걸로 쳐"

"그래도…"

"이럴 때는 할머니가 용돈주신거다라고 생각하고 고맙습니다라고 하면 되는 거야"

"…할머니"

"어여. 집으로 들어가"

할머니는 웃음을 잃지 않으며 끝내 계산을 받지 않았다.

"…잘 먹었습니다"

"아이가 예의도 바르네~보통 이렇게까지 인사는 안 하는데"

"…"

"또 올게요 할머니"

"그럼그럼. 또 와"

"네"

"아이도 또 오구"

"…네"

"잘 가려무나"

가게 밖에서 손까지 흔들어주며 배웅해주는 할머니였다.

이 하루.

작지만 너무나도 따뜻했던..

한 끼의 인정과 사랑이 담긴 설렁탕과..할머니의 그 웃음은...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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