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63화 (16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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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0. Lon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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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벽을 지새운 나는 조회시간이 끝나자마자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잤다. 영어시간이야 거의 매일매일 있었으니 그 담임선생과 만나야한다는 것이 곤욕이긴 하였지만은 그래도 상관하지 않았다.

"저 새끼 또 자네…"

"정신 안 차리는 거 봐"

"담임한테 찍혔는데도 아주…"

"막나간다는 거지 뭐…"

"저 새끼가 원래 저러지"

"혼자 청소했다면서?"

"새 담임이랑 거의 3개월 정도 남았는데 그 동안 어떻게 지내련지 몰라?"

"우리가 알 바 아니야 어차피"

"지가 자겠다는데 우리가 상관해야겠어? 내버려둬"

"맞아. 그냥 무시하자"

"차렷. 선생님께 경례"

"안녕하세요"

"출석부터 부르겠어. 1번?"

"네"

"2번?"

"네"

........

"13번?"

"…"

"13번 박정우?"

"자요"

"…"

"깨울까요?"

"아니. 됐어. 14번?"

"포기했다 포기했어…"

"대체 왜 저러는 거야 저 새끼?"

"선생한테 안 좋은 꼴 보여서 뭐한다고…"

"다 생활기록부에 남잖아 저런 거는"

"무단결석만 해도 8일동안 저지른 놈이야"

"대학 안 가?"

"그러게 말이야…"

나는 점심시간 때쯤 되어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배고파해서 급식먹으러 가려고 했더니 이미 시간은 지나가버렸다.

"또 자버렸네…"

이러면서 끼니를 굶은 거는 여지껏 있었던 일이다. 매점에서 빵이나 하나 사먹어야겠다는생각으로 교실 문을 나섰다.

"아. 시체 일어났네"

"시체 어디가?"

"쟤 밥 안 먹었지?"

"좀비자식…배고파지니까 죽은 척하다가 일어나네"

"인간먹을 시간이다~크아~"

"재밌냐?"

"죄송…"

애들이 모두 밥을 먹은 이후에서였는지 매점에는 사람이 북적북적거렸다. 아직 더웠던 9월이라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아이들이 부지기수. 판매대 앞에서는 자기들이 먼저 사먹기위해서 몸싸움이 한창이었다.

나는 그런 몸싸움도 하기 귀찮아서 그냥 나지막이 기다렸다. 몸싸움을 하는 아이들도 모두 자기들 먹을 것을 사고 빠져나가 황량해진 매점.

"이봐 학생. 수업 안 들어가?"

수업시간 종이 울려퍼져서야 나는 빵 하나와 우유 하나를 살 수 있었다.

"괜찮아요"

"밥 안 먹었어?"

"네"

"왜 밥을 안 먹어. 밥을 먹어야 공부를 할 힘이 생기지. 그렇게 축 늘여서는 제대로 힘을 쓰겠어?"

"하하…"

"자. 서비스 빵 하나다. 어차피 빵은 애들이 별로 안 사가"

"감사합니다"

"그래그래. 예의바른 학생이구만. 다른 놈들은 아주 지들 꺼 먼저 사려고 몸싸움하고 도통 양보를 하지 않더니 학생은 기다리고 있었지?"

"그냥 기다리면 차례가 오겠지 싶어서요"

"원래 그래야 되는 거여. 지들 바쁘다고 양보를 안 하는 것이 문제지"

"…"

"그런데. 정말로 괜찮은 거여?"

"네. 괜찮아요"

"학생이 말한다면야 그렇겠지만은…어여 들어가. 늦으면 선생이 혼쭐내니까"

"네. 잘 먹을게요"

"그래 학생. 들어가~"

"네"

나는 빵 두개와 우유 하나를 들고 먹을 만한 장소를 찾고 있었다. 교실로 돌아가도 이미 늦었을 것이고 다 먹고 양호실 갔다왔다고 하면 된다.

가까운 벤치에 앉아서 빵을 우적우적 먹고 우유 한 모금 들이키며 점심을 때운다.

"…"

저 앞에 있는 벤치에 누군가가 있었다.

"…담임…"

담임이었던 그녀가 혼자 벤치에 앉아서 조용히 도시락을 먹는 모습이 보였다. 수업을 안 들어가고 뭐하는 짓인지...

"…"

눈이 마주쳐버렸다. 담임도 나를 보았다. 제길...나는 애써 외면하고 빵 한입을 베어 물었다.

또각.또각.

발걸음소리가 들려오면서 그녀가 저만치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피할까?'

그러면 괜한 의심을 더 받게된다. 그냥 남아있기로 하였다.

"…"

그녀는 나를 말 없이 바라보더니 내 옆에 앉아서 같이 가져온 도시락을 먹었다.

"…"

서로에게 말을 하지도 않았고. 그저 자신들의 점심을 해결하고 있는 중. 빨리 먹고 교실로돌아가야겠다. 이 곳에 오래있다가는 선생에게 또 한 소리 듣는다.

"…"

"…?"

그녀는 자신의 도시락을 내게 건넸다.

"선생님 드시죠?"

"…배고프지 않아?"

"…괜찮습니다"

"…수업 안 들어가고 뭐 해?"

"들어가려고 했습니다만"

"잠깐 얘기 좀 할래?"

"교과 선생님들한테 욕 먹습니다"

"이미 늦었잖아. 마음 먹고 여기서 빵 먹는 거 아냐?"

"…"

왜 이렇게 말이 많아졌어 이 선생...?

"난 배부르니까 이거라도 괜찮으면 먹어"

"…"

"…"

"…괜찮습니다"

"…"

"그럼"

"…나랑 얘기 좀 해"

"…선생님이랑 얘기할 건 없습니다"

"…어제는 미안했어…"

"뭐가요?"

"어제…"

"…"

"네…뺨 때린 거…"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은 것 뿐.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송합니다"

"…"

"제가 이상한 소리를 지껄여서 선생님 맘 상하게 만든 거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죄송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미안하다고 사죄하였다. 하지만 냉소적으로 얘기하며..고개를 숙인 내 표정은 싸늘하기 그지 없었다.

"…너는…"

"…"

"너는…혼자니?"

"혼자…?"

"넌 항상 혼자 있잖아"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혼자구나"

"…"

"혼자라서…다른 사람을 거부하는 거구나"

"…아닙니다"

"나랑…똑같네"

"…?"

"아니.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닌가"

"…"

"잠깐…산책할까?"

"…???"

"일단…걷자"

학교는 정말 넓다. 산책로도 있었고. 숲도 있었다. 나는 졸지에 선생과 함께 산책을 하게되었다. 내가 전혀 바란 상황도 아니었고 교실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

"…"

"…"

여전히 그녀의 표정은 차가웠다. 아까 전에 얘기를 할 때에도...그녀는 항상 차가웠다.

"…부모님이 없다면서?"

"…"

"몇살 때…돌아가셨어?"

"…"

"…지현이가 네 친누나였지?"

"…지현누나를 아십니까?"

"지현이 반에서 수업 들어가"

"…"

"…"

나는 다른 방향을 쳐다보며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가끔가다가 힐끔쳐다보면 그녀는 정면을 보며 딱딱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박정우"

"…네"

"너는 정말로…나쁜 아이야?"

"…예?"

"스스로 나쁜사람이라고 생각해?"

"…"

'광기에 물들어버린 정신병자'. 나쁜 사람이 맞았다. 그것도 아주 흉악한.

"…네"

"…아니야"

"…?"

"너는 그저…"

"…뭡니까?"

"사람들 눈에 띄고 싶어할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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