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56화 (156/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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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0. Lon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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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난 후. 상당한 피곤함이 몰려왔다. 낮잠이나 한숨 잘까..아직 해도 지지도 않았고..저녁 먹을 때쯤 되면 알아서 일어나겠지..

"어라? 정우야?"

"…한숨 잘까해서"

"오타쿠는 맨날 잠만 퍼자?"

"불면증인걸 어떡하라고"

"그런 건 불면증이 아니지"

"밤에는 잠 못자는 거 알잖아"

"맘대로하세요…"

"그럼 나랑 같이 잘까?"

"사양하겠습니다 그건"

또 그런 걸 2번씩이나 겪고 싶진 않습니다요..

"서재라…"

여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어두침침했던 창고를 개조한 내 방과 달리 창문을 통해서 빛이환하게 방을 비추고 있었고 나름대로 고즈넉한 풍경이라고해야할까...? 특히나 노을이 끼면 뭔가 멋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휴식을 취하곤 했었던 조그만 소파가 내 눈에 들어왔다. 푹신해보여서 앉아보았더니 내 예상그대로 푹신푹신했다.

"잠깐 여기에서 눈 좀 붙여야겠다…"

그대로 앉아버린 채로 눈을 감았다. 침대에 가서 눕기에는 좀 그렇고..그냥 이 곳에서 자는 것도 상관없겠지...

"…응?"

어두웠다. 나 밤까지 자 버린거...아니다..그런데 지금은 밤이 아니었다. 아직 태양빛이 서재를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시야가 트여져있었는데..

그런데 왜..

"…!!"

내 앞에는 지현누나의 얼굴이 보였다.

"…지현누나?"

"아…그게 아니라!!"

분명히 지현누나의 얼굴이 엄청나게 가까이 있었는데 말야..마치..

'야구장에서 했었던 키스처럼'

크..그거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빨개진다. 옆머리를 손으로 넘긴 상태에서 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었나..? 그리고 시야가 왜 이렇게 잘 보이지..

머리를 매만져보니 머리가 걷어져있었다.

"…지현누나"

"으…응?"

"얼굴. 너무 가까운데"

"아…미안!!"

화들짝놀라서 뒤로 재빨리 물러나는 지현누나. 나도 상당히 부끄럽다. 이런 미연시에서 볼 법한 외모가 내 바로 눈 앞에 있다면..게다가 그 사람과 키스까지 했다면.

'친누나인데 말이야...'

죄책감은 항상 남아있었다. 뒷머리를 긁적긁적거리며 애써 그녀의 시선을 외면 중.

"언제 왔어?"

"응…? 아까 전에…"

"독서실에서 공부한 거 아니었어?"

"아…저녁먹으려고…"

"…흐응…"

"정우"

"응?"

"내가 이 집에 있는 게 싫어?"

실망과 슬픔을 가진 듯한 그녀의 표정. 그렇게 들렸나..

"미안. 그런 건 아니었어. 그냥 수능생이라서…"

"…"

"하하…"

"사실…"

"??"

"…아무 것도 아니야"

"뭐야 그건…"

"정우"

"어?"

"내…내가 집에 없으면…"

"…??"

"ㅁ…뭐…뭐라고해야할까…"

"뭔데?"

"심심하지 않아…?라고 해야할까…"

"…?"

"그러니까…나…ㅂ…보고 싶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푹 숙여버린 지현누나.

"대체 무슨 말이야?"

"…"

왜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건데...?

"…지현누나"

"으…응"

"혹시 배고파?"

"응?"

"그러고보니…저녁 먹을 때 된 것 같아서…"

"그…그렇지"

"tv라도 보고 있어. 난 밥 준비하고 있을게"

"…응"

살짝 어두운 표정을 지으면서 서재를 나서는 지현누나.

"…뭐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서현누나와 밥을 만들고 넷이서 모처럼 저녁식사를 하게되었다. 그 동안 가족간의 쌓아왔던 이야기들을 꺼내는 즐거운시간. 서현누나의 유학하는 동안 있었던 에피소드라던가. 민정이의 학교생활이라던가. 지현누나는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서 듣는 입장이었지만..나는뭐..'잉여'지 잉여.

서현누나와 민정이는 정말 죽이 잘 맞았다. 조용한 지현누나와 달리 그 둘은 뭔가 여자들만의 수다를 잘 떨었다. 저녁 이후의 시간도 마찬가지. 서현누나와 민정이가 웃으며 즐겁게 얘기하고 있었다. 살짝 미소지으며 조용히 듣고 있는 지현누나. 반면에 나는 방에서 미연시만 줄창하고 있었다. (그런 대화에 끼어들기에는 부담스럽기도하였고..)

"흠…여기같은 경우에는…"

1. 따라간다.

2. 집에 남아있는다.

어떡하지..? 따라간다를 하면 호감도를 높일 것만도 같은데...끙...

내 방에서 서재로 옮긴 22인치 모니터덕분에 정말 만족스럽게 미연시를 즐길 수 있었다.

"…끙…"

"뭘 그리 고심하는 거야?"

"응?"

옆에는 방긋웃고 있는 서현누나가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여긴 왜 왔어!!"

나는 급놀람. 문을 분명히 걸어잠갔는데...

"왜 왔냐니~정우가 지금 뭐하고 있는 지 궁금해서 왔지"

"…저기요…"

그런 지나친 관심은 사생활의 침해가...아닌가..?

"정우야?"

"…넵…"

"정우는 지금 뭐하고 있지?"

"끄힉…"

"내가 분.명.히.이런 게임은 휴지통에 버리라고 얘기하지 않았었나~"

너무나도 방긋 웃으며 유독 '분명히'를 강조하시는 서현누님.

"그…그게 아니라…"

"어머나~우리 정우는 게임을 언제 또 깔았을까~?"

어째 그런 성격이 되셨습니까요..

"우리 조금 더 기나긴 대화가 필요할 것 같지 않아~?"

"아…아닙니다…"

"에이 그러지 말구~"

"저…반…반성했는데…"

"이게 반성한 정우의 태도일까나~?"

너무 무섭다..너무 무서워...

"마침 방도 걸어잠갔고~우리 둘 뿐이네~"

"…흐억…"

"정우에게는 '보충훈계'가 필요할 것 같네~"

...그냥 각오해야겠구만...에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촌철살인이었다. 성질을 절대로 내지 않는 서현누님이었지만 유들유들하게 나를 타이르는 듯 하면서도..뭔가...내가 절대로 반박할 수 없게끔 나를 죄이며..

"다시는 안 할게요…"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

"넵…"

끄흑..겨우겨우 구한 게임이었는데 또 휴지통의 나락 속으로..끄헝헝...

'훈계모드'의 서현누나는 너무나도 무서웠다. 이번엔 2시간이 아니라 4시간 넘게 거침없이 천천히 나긋나긋하게 말할 수가 있냐고요..

"부우~정우가 나랑 한 약속 안 지키면 실망할 거얏!"

"예예…"

어린아이와 어른의 모습을 절묘하게 왔다갔다하는 서현누나. 이런 게 매력이라면 매력이지..아니 확실한 매력이지..얼굴도 이쁘지..몸매 좋지..이런 귀여움은...

"…그런데 나는 지금 뭔 생각하는거야?"

훈계를 4시간동안 받고 있으면 정신도 오락가락하는 모양이다. 벌써 새벽 1시.

"…"

미연시도 못하고..이제는 뭐하면서 지내지...그렇다고 잠을 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늘도 나랑 같이 자자"

이 때 갑자기 문을 벌컥들어오며 폭탄발언을 해주는 서현누나.

"절대 사양입니다"

"부우~왜~"

"지현누나한테 또 그런 오해 받기는 싫거든요…"

"왜엥~지현이 지금 자고 있어~"

"…에휴…"

"조심해서 자면 되잖아~"

"…그냥 누나 방 들어가서 자"

"부우!!!"

그만 볼 부풀려주세요...

"여기서 잘 거야!"

이건 또 뭐다냐...멋대로 침대에 누워버리는 서현누나.

"…저기요?"

"zzz~"

잠든 척 하지 마시구요...

"서현누나?"

"zzz~정우야…"

아무래도 안 되겠다..내가 거실에 있어야지 원...

덥썩!

"…서현누나?"

"나가면 안돼…음냐음냐…나가면 내가 혼내줄거얏…음냐음냐…"

왜 이렇게 어린애가 되어버린 건지...아니면...

'나를 위해서 일부러 여기에서 자는 건지'

서현누나는...뭐..변한 건 없네..많이 귀여워졌다는 거 빼고는...지금이 어떻든..

우리들의 '엄마'인건 변함이 없으니까..

"정우"

"…!!"

"나도 여기서…자면…어…서현언니…?"

"…"

파자마차림의 지현누나. 여기는 왜 들어오냐고요...

"…서현언니까지…"

"…"

에고..이를 어쩐다냐...

"…"

나에게 서운하고도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지현누나.

"…나는 안되겠지?"

"지현누나…"

"미안. 방에 돌아가서 잘게"

쓸쓸히 방문을 나서려는 순간에는 나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다. 그녀의 이런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 자도 돼"

"뭐…?"

"저번처럼 민정이 잠버릇때문에 잠이 안 오는 거 잖아?"

"그…그건…"

"서현누나랑 같이 자"

"정우는?"

"알잖아?"

"…"

"…내가 지현누나 싫어하는 것같이 보여?"

"…"

"좋아해"

"…!!"

그런 말 듣자마자 얼굴이 화악 붉어지는 지현누나.

"아니면…내가 미움받는 건가…?"

"그건 아니지만…"

"침대. 꽤 넓으니까 둘이서 자도 충분할 거야. 안심하고 자도록 해"

"…"

"저번에는 절대로 오해였다니까…내가 뭐 병신도 아니고…아 병신 맞지"

"…정우"

"내가 아무리 병신이라도…아무튼. 아무런 일도 없었어"

"…"

"그럼 잘자"

"…응"

그녀는 이제야 안심했다는 표정을 짓고는 나에게 밝은 미소를 지어주고는 서현누나 옆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서현누나가 들어오면서 이 집이 왁자지껄해지면서..많이 시끄러워지기는 했어도..

드디어 가족이 모두 모였고..화목하다고 해야할까..

좋은현상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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