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35화 (13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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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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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을 제대로 맞고 난 후, 나는 옆을 돌아봤다.

"지현누나…?"

짜악!!!

다시 뺨을 맞았다.

"…"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짜악!!!

"…"

"위험했잖아!"

"미안…"

누나가 뺨을 때린 덕에 달려들었던 동네건달은 살아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자 '히이익!'하며 허겁지겁 칼도 내버려둔 채 도망쳤다.

"내가 칼에 찔려도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

"정우가…정우가…"

"…"

"살인자가 될 뻔했어…"

"미안해"

"그렇게 나를 지켜주는거라면…난 바라지 않아"

"…"

"이렇게…손에 피 흘리는 것도 보기 싫어"

"…미안"

"나 때문에 이렇게 상처받을 거라면…나는…"

"…"

"나는…"

"지현누나…"

"아프지않아? 손이 베였는데도 아프지 않아?"

"괜찮아. 이 정도 가지고"

피가 뚝뚝 흘러내린다. 시하가 휘두른 칼에도 맞고 두번째였다. 사실 그냥 지혈하고 붕대만 감으면 될 일이었다. 그녀는 지참하고 있던 휴지로 내 손에 흐르고 있는 피를 닦아주었다.

"집에…돌아갈까?"

"…그래"

우리는 결국 별로 공부하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 안으로 돌아가자 민정이는 벌써 자고 있는 듯 싶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서 베인 부분을 꾸욱 누르고 있었다.

"나는…"

또다시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했다. 그것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머리 속에선 광기에 미친듯이 웃어대었던 '그 날'이 떠올랐다.

"제길…"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고 맹세했다. 나는 더 이상 그 날의 악몽을 꾸고 싶지 않았기에. 하지만 미쳐버려서 사람의 목을 조를 때마다..

'쾌감을 느껴버렸다'

"후…역시 나는 안되는구만…"

딸칵.

"지현누나?"

노크도 없이 그녀는 침대에 앉더니 구급상자에서 붕대를 꺼내 내 손에 감아주고 있다.

"…"

"내 말…들리지 않았어?"

"들리지 않았다니?"

"네가 사람 목을 조를 때…계속 멈추라고 얘기했었는데…"

"…들리지 않았어"

"미안"

"뭐가 미안해?"

"괜히 나 때문에…"

"누나는 항상 자기 때문에 내가 피해본다고 생각하는거야?"

"…"

"전혀 그렇지 않아. 나야말로 누나한테 항상 미안한 걸"

"…"

"이런 나같은 동생을 둬서…"

"바보구나"

"…엥?"

"정우는 바보야"

"왜?"

"그냥 바보야…둔감한 데다가…정말로…"

"…"

"너라는 동생이 있어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 지 알아?"

"…??"

"나한테 이런 동생이 있어서…정말로 기쁘다고 생각하는데"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그녀는 손에 있는 붕대를 다 메더니 갑자기 나에게 포옥하고 안겨들었다.

"…누나?"

"잠시만 이러고 있어"

"…"

"…이렇게 안을 수 있는 동생이 있어서…기뻐…"

"…"

"아프지마. 나 때문에 아파하지 말아줘"

"별로…아프진 않은데"

"너 자신에게…상처를 주지 말아…"

"상처…"

"그저 너는…그냥 있으면 해"

"…?"

"내 곁에 있으면 해"

"…곁에?"

"응. 곁에서. 이대로…"

"…"

"영원히…"

"???"

"자! 붕대 다 묶었어"

그녀는 내 곁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가려하고 있었다.

"…??"

"정우"

"…응?"

"잘 자"

"누나도 잘 자"

"응"

그녀는 싱긋 미소짓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곁에 있어줘…이대로…'

나는..그녀한테 많이 위로를 받고. 도움을 얻고있다. 10년 동안의 차가웠던 시간이 지나가고 나와 그녀 사이엔 '가족'이라는 인연이 엮여있었다.

유대. 아니면 남매라는 가족애였는 지도 몰랐다.

"이제…'벽'은 없는 것인가…"

그녀와 나 사이에 존재하던 '벽'은 이제 완전히 허물어져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누나와 나는 그 이후에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거실에서 큰 식탁과 같은 것을 놓고 공부하였다. 원래 나는 평소대로 혼자 공부하려고 했으나 누나가 같이 공부하면서 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라고 해서 함께 공부하게 되었다.

"나도 같이 공부할 거야!!"

민정이는 나와 지현누나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자기도 시험기간이라며 끼어들어서 이제는 셋이서 공부 중. 이게 훨씬 낫네..

"오타쿠!"

"응?"

"지우개 좀 주워"

"갑자기 명령조냐…"

"민정아. 네가 더 가깝잖아"

"오타쿠 빨리 주워!"

"정우. 민정이가 줍도록 내버려둬"

"지현언니가 왜 갑자기 참견이실까…?"

"…"

그런데..왜 민정이와 지현누나는 눈에 스파크를 튀기면서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 같지...? 여태까지 말도 별로 안하지 않고 있다가..

이것은. 기말고사가 끝나기 전날 밤까지 계속되었다.

"와아!!!"

시험은 끝났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체감하지 못하고 벌써 기말고사는 종료되어있었다. 그리고 3일 뒤면..

'여름방학'

크크크..여름방학이라면 집에서 하루종일 미연시를 할 수 있겠군..기다려라 나의 히로인들아!!! 내가 모조리 공략해주겠다!! 음하하하!!!

좀 바보같나?

어쨋든. 나에게는 천국같은 시간이 허락되는 거다. 하지만 나에겐 치명적인 안 좋은 점이 있었으니..

'구석진 방에서 더위를 참아내며 게임을 해야 된다는 것'

참고로 우리 방에는 에어컨이고 선풍기고 뭐고 없다. 다른 방에는 모두 있는 데 반해. 창고를 내 방으로 개조해서 그런지 없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략할 거다!!! 불굴의 투지를 발휘해서 공략할 거다!!!!

나.. 더위 먹은 건가..?

이번 여름은 6월부터 시작되서 여전히 찜통이었다. 몇 일동안 비가 계속 쏟아진 날도 있었지만 여태까지 겪어본 여름 중 정말로 덥다.

"헉…헉…"

그냥 햇빛이 쨍~하고 비치는 더위였으면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하지만 빌어먹게도 비가 오고난 후의 영향으로 습기가 찬 더위.

"덥다…"

학교 매점에서는 아이스크림이 불티나듯 팔린다. 얼마나 더웠으면 하나도 아니고 한번에

2개씩 사가는 놈들도 부지기수였다.

"나도 한 입만!!!"

여기저기 승냥이떼가 몰려온다. 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놈들한테 얻어먹으려는 속셈을 가지고 들러붙었다. 쭈쭈바가 아닌 나무젓가락이 꽂혀져 있는 아이스크림이 녀석들의 주 목표.

"변태오타쿠"

"어?"

"아이스크림 하나 사줘"

"네가 사 먹어라"

"에이 그러지 말구~ 하나 사줘~~ 응??"

"어디서 앙탈이냐…"

"박정우"

"왜?"

"우리도 사주면…안돼?"

어이어이 이보셔들? 왜 나한테 몰려들어서 사달라고 조르고 있는 거야? 이 놈의 마녀때문에...

"박정우 개자식!! 여자애들한테 둘러싸여서…"

"하렘이냐! 하렘인 것이냐!!!"

"젠장…나한테 배춧잎 한장이 있었다면…"

수련회 이후. 세희와 같이 묵고 있던 룸메이트들과는 조금 친해졌다. 그나마 우리 반에 있는 녀석들 중 가장 친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안 사주면…수련회 때 남자방이 아닌 여자방에서 묵고 있었다고…"

이 협박은 두고두고 우려먹을 거다. 이 협박때문에 나는 이 녀석들의 부탁을 여러가지 들어주어야했었다.

"에휴…"

나는 그 협박에 굴해 세종대왕님 한 분을 녀석들에게 바쳐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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