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30화 (1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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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8. jealousy · forlorn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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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현언니의 눈이 커지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안돼"

나는 언니에게 말해버렸다. 오빠를 사랑하는 마음은 언니 뿐만이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야라고.

그 동안 나는 언니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언니는 사람들한테 '여신'이라고불릴 정도로 내가 봐도 정말로 예쁘고 말을 잘 하지 않았지만 배려심있고 사려가 깊어 그 누구도 언니를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성적도 전교권을 항상 맴도는 모범생.

나도 모르게 언니를 보면서 스스로 나와 언니를 비교하고 있었다. 어느 것도 내가 앞서는 것이 없었다.

'이기심이었고. 질투이기도 했다'

나는 확실히. 언니를 질투하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밀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오빠'마저 언니 곁으로 가버린다는 생각에...

"…정말…정우를…"

"오빠가 아니라 남자로써 사랑해"

"…"

언니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이런 말을 들은 것에 대해 충격을 많이 먹은 듯 보였다.

"안되는건…안되는거야…"

"민정아"

"응"

"너는 고백…할 거야?"

"기회가 된다면"

"나도…마찬가지야"

"안돼"

"왜 안되는 건데?"

"'오빠'만큼은 언니에게 양보해 줄 수 없어"

"…"

"언니는…10년동안 오빠한테 너무 가혹하게 굴었어…"

"그건…"

"마음을 숨기기 위해서 일부러 냉정하게 굴었다?"

"…"

"그 '냉정'이 지나쳤다고 생각하지 않아?"

"…"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그건 아니잖아"

"민정아…"

"변명하려하지마!"

"…!!"

"정말로 오빠를 사랑했다면…말 한마디라도 더 오빠랑 많이 대화를 했어야했어"

"…"

"정말로 사랑했다면…그렇게 무자비하게 굴지 말았어야했어"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알아. 나도 오빠한테 몹쓸 짓을 많이 한 거"

"…"

"하지만…언니만큼은 아니야"

"…"

언니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오빠한테…그러지 말란 말이야…"

"…"

"'연인'인 척…하지마…"

"…민정…"

"그러니까…절대로 양보못해…언니에게만큼은…"

"정우를 정말로 사랑하는가 보구나…"

"아파"

"…?"

"오빠가 언니에게 자장가를 불러줄 때. 나를 그저 '동생'이라고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 줄때. 자기 스스로 한심한 오빠라면서 나에 대해 체념할 때. 얼마나 아픈 지 알아?"

"…"

"아프고 아파서…숨을 쉴 수가 없어…"

"…"

"무엇보다도…오빠한테 잘해주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아. 말을 좀 더 다정히 하려고 해도 항상 생각과 반대로 나와. 행동도 생각과 반대로 자꾸만 오빠에게 차갑게 굴어"

"…"

"그게…얼마나 아팠는지 알아?"

"…"

"언니와 오빠가 함께 있는 것을 보면서…자꾸만 가슴앓이를 해…"

"…"

"오빠가 언니의 품에 안겨있을 때…차라리 오빠를 안고 있는 사람이 나였으면 하고…"

"…"

"그런데 안되잖아. 오빠는 나에게 언니처럼 다정히 군 적이 없었는걸…"

"민정아…"

"나도 화해하고 싶어. 친해지고 싶어. 그러면서 좋아한다고. 나는 오빠를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싶단 말이야!!!"

눈물이 끝내 왈칵 쏟아지면서 말하고 있었다. 지현언니는 묵묵히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며서서히 나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고 있었다.

"'친남매'따위 필요없어. 사람들이 근친이라고 욕해도 좋아.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어"

"나도…마찬가지야"

"나…정말 바보 같아…그런 오타쿠 오빠를 사랑하게 되다니…"

"정말로…바보야…우리들은…"

"둔감한데다가 오타쿠인데다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오빠인데…"

"그런 정우를…우리들은 사랑하게 되어버렸잖아…?"

"창피해"

"나도 창피해"

"언니에게 이런 말해서"

"민정이에게 이런 말해서"

"미안해"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나도 모르게 흥분해버려서…"

"당연한 거야"

"칫…"

"삐진 거야?"

"왠지. 언니랑 말하기 싫어져"

"'질투'?"

"이렇게 대화하고 난 후에는…우리들은 왠지 서먹서먹해지게 되잖아?"

"…어쩔 수 없는 거야"

"알아. 그래도 소중한 언니인데…"

"소중한 동생인데…"

"…"

"…"

어색해진 분위기. 언니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차갑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는..우리들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았기에.

앞으로는..서로 진정으로 웃으면서 대할 수 없기에..

언니가 또다시 부모님때문에 힘들어하는 오빠를 안아주는 것을 보면서..비로소 깨닫게 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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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그녀의 안에는 작고 검은 물고기가 헤엄친다.

외로움이라는 어항. 그 어항 속에서 홀로 헤엄친다.

그 작은 물고기는 자신과 똑같은 '동료'가 필요했다.

그래야..'상어'를 만났을 때와 같은 시련을 극복할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없다. 자신만 홀로 남겨져 있다.

어항 속에 갇혀서 탈출하려고 애를 써도 벗어날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혼자 쓸쓸히 어항에 갇힌 채..죽음을 기다리며..버려진 채로..

그런 물고기에게는 동료가 필요했다..

그래..가족이 필요했다. '외로움'을 아는 똑같은 가족이 필요했다.

'고아'라는 처지에서 받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들을 극복하기 위해선..똑같은 처지의 가족들이 필요했다.

"막내라서…많이 힘들었겠구나…"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었다. 그래서 그것을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했다.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혼자 남겨져버렸다.

그래서 우리들이..민정이를 제대로 돌봐주었어야 했다.

나는 민정이를 힘들게 만든 '계기'를 알아야했다.

그리고 그 계기를 알게 되는 건..얼마 지나지 않아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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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ornness-쓸쓸해 보이는, 버려진, 황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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