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29화 (129/318)

0129 / 0318 ----------------------------------------------

Part 8. jealousy · forlornness

================================================

작고 검은 물고기가 그녀의 안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이제는 물고기까지 나오는 거냐…"

'알'에서 깨어난 지는 별로 되지 않은 듯 싶었다. 그녀가 무엇때문에 감정의 상처가 쌓이고 쌓였는지는 몰라도 이것은 필시 안 좋았다. 안 그래도 민정이와 심각하기만 한데 머지않아서 그녀의 존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마저 닥쳐왔다.

시간제한마저 걸려버린 이 시점에서 나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빨리 대책을 세워야 했다.

'외로움'

그녀는 외로움을 겪고 있다.

'고아'

그녀는 나와 똑같은 고아다. 그리고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 그로 인해 부모님이 없는 것에대한 정신적 공황은 컸다. 게다가 오늘은 부모님 기일. 마음의 상심은 더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다.

"민정이는…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라…"

그렇다면..그녀는..'가족의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가족 구성원들끼리의 깊은 관심. 애정.

그녀는 가족과의 소통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얘기해주지 않았다.

지현누나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남은 건 나 하나 뿐인데 오랫동안 관계가 끊어져있었는데 가족과의 소통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그녀는 그러한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의 안에 있던 마음의 상처가 '알'의 상태로 구현화되었다.

그렇다면 그 '계기'를 찾아야했다. 그녀가 상처받은 '계기'.

"학교…"

수련회에서 돌아온 날. 민정이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 없었다. 내가 모르는..민정이의 학교생활.

'고아'

그녀는 나처럼 고아. 즉..나와 똑같이...

'아이들의 시선을 의식한다'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차별된 시선을 받고 있었다. 비록 나처럼 '모멸'이 아니긴 하였지만 버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현누나는 왜 그렇지 않는 것일까..? 지현누나도 고아인데...

'계기'

그녀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남으로써 그 시선이 공공연히 확인이 되었다. 그래서 민정이가 상처를 받았다는 것으로 한다면 가설은 성립.

하지만 어째서일까..그것이 모든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민정이가 지현누나에게 한 '그 말'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그 말'은 나와 관련이 되어있다.

'그 말'은 나는 절대로 알지 못한다. 민정이도 지현누나도 얘기할 리가 없기에.

"그렇다면 나보러 어쩌라는 거야…"

당장가서 민정이에게 사과를 하면 마음이 풀어질까?

아니면 지현누나에게 '그 말'이 대체 뭐냐고 따져야 되는 것일까?

빠져있다. 이 일을 해결할 결정적인 퍼즐조각이 빠져있다.

"정우가…도와줘

'얘기했잖아? 나는 너를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나는 그녀를 도와줘야했다. 구해야만 했다. 그러기로 결심했다.

"나는…너의 '오빠'니까 말야…"

나는 내가 할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이 '외로움'이란 어항에 갇혀 혼자 헤엄치고 있는 한 물고기를 구하기 위해서'

-----------------------------------------------------------------

오빠의 방에서 다정히 있는 지현언니.

지현언니를 위해 오빠가 자장가를 불러주고 있는 것을 보고..울고있어...나는...

"뭐야…"

나는 지금 뭘 느낀 거지..?

'지현언니를…질투하고 있어…?'

아니야. 나는 이러지 않아. 나는...오빠를 싫어하는데...한심하다고 여기고 있는데...

"싫어…"

나 어떻게 되어버렸나..? 왜 나는 지현언니를 '미워하고' 있는 거야?

설마 오타쿠인 오빠때문에..? 설마 지현언니만을 위하는 한심한 오빠때문에..?

"싫어…"

지현언니랑은 화해했잖아..이렇게 다정히 대해주고 있잖아...

그런데..나는 왜 그렇게 대해주지 않아..?

보고싶지 않아. 이런 모습은 나는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아.

나는 애써 '친해진 남매끼리 그러는 것일뿐…'이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돌아서려고 했었다.

"발걸음이…떨어지지 않아…"

그 모습을 보면서 순간 이런 상상까지 해버렸다.

'지금 오빠 곁에 자고 있는 사람이 지현언니가 아니라 나였으면'

나를 위해..자장가를 불러줬으면..

왜 그러는 거야...박민정...너는 이런 아이가 아니야...이렇게 나약하고도 나약한 사람이었어? 아니야. 잠시 충격을 받은 것 뿐이야. 제발 정신차리자 박민정.

그렇지만 불안하기만 해. 혹시나 지현언니와 오빠가..'금단의 선'을 넘어서버리는 것이 아닐까하고 여기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겠어. 한 침대에 같이 누워있었으니까. 게다가 지현언니는..

'오빠를 남매가 아닌 이성으로써 사랑하고 있으니까'

나는 그 사실을 깨달은 이후부터 지현언니와 다정하게 지낼 수 없게 되었다. 항상 친하게 지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무언가 서먹서먹하기만 했다.

그 진실을 믿을 수 없었다. 머리로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럴 리가 없어라고 끝까지 거부하고 있었다.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어버리게 된다면..

'나는 외톨이가 되어버려'

셋 밖에 안 남은 우리 가족. 지현언니와 오빠마저 사라져버린다면 나는 혼자.

나를 내버려두고 둘이서 행복하게 지내겠지. 게다가 지현언니가 오빠를 사랑하기에 금기를 깨고 '남매'가 아닌 '한 명의 여자'로써 오빠를 대하겠지.

그리고 언젠가...내 곁을 영원히 떠나버리겠지...오빠는...

"그런 거였구나…"

알아버렸어.

어렸을 적에 나는 그에게 항상 업어달라고 졸랐었다. 오빠의 등이 너무나도 편안해서..

시간이 흐르며 내가 오빠를 한심하다고 여기고 무시했어도 그는 항상 묵묵히 화 한번 내지 않고 나를 받아들여줬다. 내가 청소해라던가 밥해와 같은 명령적인 말을 그에게 했어도. 그를 항상 비웃고 있었어도...

그런 그를 더 이상 볼수없다는 두려움에 나는 이렇게 아파하고 있어.

"나도…오빠를…"

나는 다음날 아침에도 언니를 배웅해주던 오빠를 언니가 껴안은 다음에서야 현관문을 나선 것을 보았다. 이걸로 확실. 언니는 정말로 오빠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명백해졌다.

자꾸만 늘어가는 확인사살에 나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였다.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만했다.

"하지만 나도…지지않아…"

언니가 없는 이 기회에 나도 나름대로 오빠와 친해지기 위해서 강구하고 있었다. 비가 무척 쏟아지는 날에 우산을 안 챙기지 않았을까해서 우산을 쓰고 마중가기도 했었다.

"착각하지마! 오타쿠가 감기 걸리면 나만 손해니까!"

나는 왜 이러한 말들만 하고 있는 걸까..나도 오빠한테 잘해보려고 하는데...

"너한테는 뭐…바보 같은 오빠니까…"

"…나야…오빠구실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거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오빠는 왜 그러한 말들만 하는 거야? 그렇다고 단정지어 버리는 거야?

제대로 오빠구실 하고 있었으면서..왜 자꾸만 자기비하만 하는 건데?

항상 바보같은 오빠다. 오빠구실 제대로 하지 못한다. 한심한 오타쿠다 하면서...

나를..계속 외면하고 있잖아...제대로 봐주지 않고 있잖아..내 마음도 모르고...친해지고 싶어하는 내 마음도 모르고..

이렇게 오빠를 좋아하는 내 마음도 모르고...

언니가 일본여행에서 돌아온 날. 나는 언니의 진심을 알고 싶었다.

"언니"

"응"

언니는 밝은 모습으로 대답해주었다.

"할 말 있어"

"얘기해"

"나에게…솔직하게 얘기해줄 수 있어…?"

"응. 할 얘기가 뭔데?"

"언니는…"

"나는 왜?"

"언니는…오빠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

"솔직하게 얘기해줘. 언니는 오빠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

언니는 침묵했다. 역시...언니는...

"사랑해?"

"…!!!"

"오빠를 사랑해?"

"…"

"'남매'가 아니라 '이성'으로써 오빠를 사랑해?"

"…민정아"

"대답해!!"

"…민정아 그건…"

"피하려고 하지마. 대답하란 말야!!!"

"…"

"나에게도 얘기해줄 수 없어?"

"…"

"사랑하고 있는 거지? 오빠를…"

"…"

"꼭 숨겨야 했어?"

"…"

"처음 화해한 뒤에. 사이가 좋아진 것을 보면서 보기 좋았어. 하지만 그것이 자꾸만 의심으로 바뀌어나갔어. 언니가 오빠에게 하는 행동은…"

"…"

"자꾸만 연인이 하는 행동처럼 보였으니까"

"…"

"그리고 봐버렸어"

"??"

"언니가 오빠한테 재워달라는 거. 그래서 오빠가 자장가 불러준거. 그리고 그 다음날에 언니가 오빠와 포옹한 뒤에 가 버린거"

"…봤구나"

"그래. 그걸로 확실해졌어. 언니는 오빠를 사랑하고 있다고"

"…"

"아직까지도 숨기려는 거야?"

"…맞아"

"맞다니?"

"민정이 너 말대로 나는 정우를 사랑해"

"…!!"

"그것이 잘못된 것인 걸 알아. 그래서 여태까지 참아왔어"

"여태까지…?"

"줄곧 사랑했어. 어렸을 적부터 정우를 계속 사랑했어. 이것이 '금단의 사랑'이었고 무엇보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금기'라는 것도 잘 알고 있어서 숨겨왔어"

"그런데? 왜 이제와서…"

"참을 수 없으니까"

"…"

"이 마음 참으려고 해도 숨길 수도 없고. 참을 수도 없으니까"

"고백이라도 할 꺼야?"

"그래"

"…!!!"

"때가 되면 정우에게…고백할 거야"

"오빠가 받아들일리 없잖아?"

"알고있어"

"알고있으면서…왜…"

"표현…해보고 싶었어"

"표현?"

"마음을 참으려고 그에게 항상 차갑게 대해왔으니까…그래서…"

"그 마음이라도 전해보고 싶다…이거야?"

"…"

"안돼"

"…!!"

"그 고백은 내가 용납못해"

"…민정아?"

"나도 오빠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