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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8. jealousy · forlorn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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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응…"
나는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어깨는 뻐근하고 몸 전체는 찌뿌둥.
"…자 버렸네…"
전에 계속 들려왔었던 '또 다른 나의 목소리'는 악몽이었었나...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목소리가 확연히 기억이 나서..
'너는 어둠이야'
"어둠…인가…?"
아마. 꿈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느라 스쿼시도 못 갔다. 젠장...스쿼시장에서 실컷 치면서 스트레스나 풀려고 했었지만 그러한 계획도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후..설거지나 하러 가볼까..지현누나는 분명히 밥만 먹고 설거지는..안 해놓지..
나는 폐인과 같은 몰골로(원래 폐인) 흐느적 흐느적 방에서 나와 부엌으로 가봤다. 그런데 싱크대가 물기에 젖어있었고 식탁에 놓았던 접시가 건조대에 있었다.
"정우?"
"응"
"아. 설거지…내가 했는데…"
"그래?"
"그냥…우리는 정우한테 항상 시키기만 하고…"
"…민정이는?"
"…"
식탁에는 민정이가 먹을 음식이 식은 채 덩그러니 남겨져있었다.
"방에 있어?"
"…"
그녀는 민정이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녀는 방에 혼자 있다는 얘기.
"…생각 없대?"
"…"
"민정이랑…또 싸웠어?"
"아니…"
"그러면?"
"민정이…나랑 한 번도 얘기하지 않았어…"
"…"
저 녀석의 마음을 푸는 것은 지현누나조차도 안된다는 건가..
"정우"
"응?"
"미안하지만…정우가 나에게 민정이를 도와달라고 얘기했었지?"
"응"
"그거…못 하겠어"
"…!!!"
"미안"
"…"
"내가 아닌 네가 필요해"
"내가 필요하다니? 민정이는 나를 싫어하잖아?"
"…싫어하는 것은 아니야 오히려 민정이는…"
"??"
"민정이는 너를 좋아해"
"…그렇다면 좋겠지만…"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야"
"…"
"그러니까. 너도 도와줘야 해"
"…"
"민정이에겐…'너'라는 존재가 가장 절실히 필요할 때니까…"
"어째서? 오히려 지현누나가…"
"아니야"
"…"
"나는…아마 민정이가 두려운 거야…그래서 제대로 도와주지도…"
"…민정이에게서 '어떤 말'을 들었기 때문에?"
"…"
"오빠구실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가…어떻게 도와줘야 된다고…"
"…그건 단순한…너의 자기비하야…"
"…"
"민정이에게있어서 너는…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거…"
"…"
"그거. 알아두었으면 해"
"…"
'소중한 존재'. 나는 그 녀석에게는 가장 별 볼일 없는 존재였을 거다. 그녀가 민정이와 어떠한 트러블이 있었기 때문에..남은 사람은 나 밖에 없어서..
민정이가 그녀에게 어떠한 말을 했는 지는 나는 모른다. 앞으로도 계속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토록 친했고 친했던 둘의 관계를 어색하게 만든 원인이었을 것이다.
'나 때문에…'
민정이는 자기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어리광일 뿐이라고..
"지현누나"
"…응"
"민정이가 지현누나에게 했던 말. 내가 들을 수 없는 거겠지?"
"…!!!"
"그것은 '나'와 관련된 말이었을거고"
"…"
"괜찮아. 더 이상 묻지 않을게. 이건 그냥 '확인절차'일 뿐…더 깊이 파고들 생각은 없어"
"…"
"이것으로. 나는 그녀를 도와줘야 될 '이유'가 될 테니까"
"동기부여…인거야…?"
"그런 것으로도 볼 수 있고. 하지만 나는…"
"…"
"죄책감…때문일거야…"
"…"
"나야 오타쿠고 한심한 오빠이니…그 녀석을 여태까지 돌봐주지 못한…"
"정우…"
"나에 대한 '죄책감'이야"
"…"
"원래는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어. 아니 도와줄 생각조차 없었는지도 몰라"
"…"
"단지 절망했다라는 이유하나로…"
"…"
"민정이의 세계에서는 나는 '없는 사람'이거든"
"…""
"먼지보다 못한 존재…일 테지…"
"…"
"지현누나가 나한테 위로해주는 것은 고맙지만…나는 내 사정을 잘 알고 있거든…"
"…"
"그래도 그 녀석의 고집을 꺾어야만 될 것만 같아"
"…"
"나는 그 녀석의 '오빠'니까"
"…"
"그것이 잘 될런지 모르겠지만은…"
"잘 될거야"
"…"
"…나는 너를 믿어"
"그거. 최고의 신뢰인데?"
그녀는 나에게 미소짓고 있었다. 여태까지 어둡던 표정을 던져버리고..그녀는 나에게 믿고있다고 얘기해주었다.
지현누나에게는 여러모로 미안하고 고마운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어찌보면..나는 그녀에게 줄곧 '구원'받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일요일 새벽. 지현누나와 민정이의 방은 불이 꺼져있었다. 그 녀석..안 배고픈가..아니면 먹을 생각이 없는 건가..먹을 생각이 없는 거겠지..
끼이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때 거실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
"…오타쿠?"
"…민정이냐?"
"오타쿠가 왜 새벽에…아…"
"잠이 오지 않아?"
"…아니"
"그러면?"
"…뭔 상관이야…"
젠장..이럴 때 하필이면...
"…혹시 배고파?"
"…"
"…지금 시각에 먹는 거는 그렇고…녹차라도 줄까?"
"…마음대로"
이럴 때 하필이면..민정이에게도...'존재의 존속'이 걸린 위기가 찾아오냐고..
"…"
나는 부엌으로 가서 주전자에 물을 따라서 따뜻하게 물을 데우고 있었다.
"…오타쿠"
"…어"
"…냉…냉녹차가 좋아"
"…그러냐"
나는 데우는 것을 멈추고 냉장고의 문을 열어서 얼음을 동동 띄운 냉녹차를 그녀에게 주었다.
"자"
"응…고마워…"
"…"
"오타쿠"
"…왜?"
"…"
"왜 그래?"
"…"
"어이…"
그녀의 눈망울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보여주기 싫은 가본지 얼굴을 홱하니 돌리고 냉녹차를 마시고 있었다.
"…"
"오타쿠. 잘 마셨어"
"…"
"들어갈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나는..뭘 해야 하는 것일까...
이미 그녀의 감정은 쌓일 대로 쌓여버려서...
그녀의 안에는...
작고 검은 물고기 한 마리가 혼자서 헤엄치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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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민정이는 물고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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