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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8. jealousy · forlorn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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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버스터미널로 돌아왔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고 쉴 틈도 없이 나는 약국이 있는 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돌아다니다 매표소 근처에 약국 한 곳을 발견했다.
"어서오세요. 무엇을 드릴까요?"
"저기…밴드랑 연고 그리고 붕대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밴드랑 연고 붕대를 주자마자 나는 대금을 지불하고 다시 그것을 들고 민정이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게다가 나는 경사가 급한 산을 올라가야했다. 젠장..안 그래도 못났는데 여기서 지친다면 나는 더 못난 놈이 된다는 생각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고통을 호소하고 심장이 덜컹거려도 나는 꾹 참고 산도 뛰어서 올라갔다.
이것이라도 해주어야 나는 '오빠'로써의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숨을 헉헉거리며 힘들어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척 지현누나와 민정이가 있는 곳에도착했다.
"정우…뛰어갔다왔어?"
"응"
"힘들지않아?"
"별로…"
솔직히 힘들어 죽겠다.
"…"
민정이는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도움따위는 바라지도 않았는 듯.
"지현누나"
"말해"
"상처부위에 연고발라주고…손에는 밴드 붙여주고"
"응"
"민정이는…나를 싫어하니까 지현누나가 도와줘"
"…"
"…일어날 수 있겠어?"
"…못 일어날 것 같아?"
그녀는 몸을 움직여 일어서려고 했지만 역시 굴러 떨어지면서 발목을 삔 듯 싶었다.
"…이럴 줄 알았어"
나는 딱히 상관하지 않으려고 했지만..어쩔 수 없었다. 나는 민정이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퉁퉁부은 부위를 발견해 살짝 눌러주었다.
"아파?"
"아파!!!!"
퍽!!!
"끄…"
역시 폭력은 본능인 건가...
"일어날 수 있으니까! 참견하지마!"
그러면서 일어나려고 했지만..얼씨구..?
"일어나지도 못하는 주제에…이러고도 내 도움이 필요없어?"
"없어! 변태폐인오타쿠한테 볼 일 없어!"
"…"
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발목 부위에 약국에서 사 놓았던 붕대를 감아주었다. 허접하기 짝이 없는 붕대감기였지만 나는 그래도 많이 해봐 어느정도 모양새는 갖출 수 있었다.
"이걸로 대충은 응급처치"
"정우"
"응?"
"민정이…그래도 일어서지 못하는 것 같은데…"
"어이"
"뭐?"
"업혀"
"뭐…뭣?"
"업히라고"
"내…내가 왜 오타쿠 등에 업혀야 되는 건데?"
"아직도 땡깡 부릴래?"
"…!!!"
"닥치고 업혀"
나는 몸을 낮추고 어부바자세를 민정이 앞에서 했다.
"빨랑 안 업히고 뭐하고 있어?"
그녀는 죽어도 내 등에 올라타기 싫은 눈치였다. 그렇지만 그녀도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어서 머뭇머뭇거리며 내 등에 올라탔다.
"…이…이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알고있어"
"…"
"지현누나"
"…응"
"올라가자"
"…괜찮겠어?"
"괜찮아.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와서 집으로 돌아갈 일 있어?"
"…"
"별로…내키지는 않는 일이지만"
"…"
"그래도 이 곳까지 왔으니. 인사 안 드릴 수 없겠지"
산을 올라가다보면 여러 다른 묘가 많이 있었다. 누구의 무덤인지는 모르겠어도..이 조용하기 그지없는 야산의 황량함은 쓸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여기야"
올라가다 지현누나의 발걸음이 멈춰섰다. 그녀가 멈춘 곳에는 두개의 묘가 서 있었다.
"8년…"
돌아가신 후. 부모없다고 얼마나 서러움을 겪었던가. 안 그래도 나는 외톨이였는데..
"저 아이…고아지?"
"그러니까 말이야…부모가 없어서 아주 예의가 없어요 예의가"
"저 쓰레기같은 왕따자식이 고아라면서?"
"푸하하!! 저 머리카락 치렁치렁 긴 새끼가 고아야? 그럴 만도 하겠네…하는 꼬라지 보면"
"부모한테 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인간말종새끼"
"우리 애들이랑 절대로 상종하지 말아라. 쓰레기"
"저 부모 없는 새끼가 왜 학교를 다니는 겁니까? 어서 이 학교에서 쫓아내보내세요!"
"…"
나는 민정이를 천천히 내려놓고 잡초가 꽤 자란 부모님의 무덤가에 다가갔다.
"…정말 오랜만에 왔습니다"
나는 절대로 전해지지 않을 메시지를 그들에게 나지막이 말하기 시작했다.
지현누나에게도. 민정이에게도. 그 누구에게 말하는 것이 아닌. 혼잣말이라고 해도 될 만큼.
"…8년만이군요. 8년이라는 어찌보면 기나긴 시간이 지났어도 저는 과거나 현재나 여전히 당신들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왜 저를 무시하고 모멸하였는지..왜 나에게는 자식취급을 해주지 않았는지..저는 아직도 그 정확한 이유를 모르고 있습니다"
"…"
"…"
함께 있던 두 사람은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회색빛 눈'을 가진 이방인이라서..?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한 외톨이라서..?"
감정이 격화된다. 따뜻한 말 한마디 조차도 듣지 못하고 떠나가버렸는지..적어도 단 한마디라도. 단 한마디라도. 하다 못해..
단..1초라도..
그들은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었으면 했다.
"어째서…어째서…어째서…저를…사랑해주지 않았습니까…?"
"…"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감정을 철저히 절제하고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아니다. 당장에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화가 나고.
무엇보다 슬퍼서.
목이 메여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자꾸만 감정때문에 눈에는 눈물이 떨어질 것 만 같았다.
"당신들의 사랑으로 태어난 아들이지만…저는 가족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한 지붕에 살고있던 '이방인'이었습니다"
"…"
"알고계십니까? 당신들은 단 한 번도 다정하게 '정우야'라고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가 쓰레기라는 거 잘 알고있습니다. 병신이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정신병자라는 거 잘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저를 제외하고 5명이서 행복하게 살았어야 했습니다…어찌보면…"
'저는…이 세상에 존재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 이유에 여기에 오기 싫었습니다. 무덤에 와서 이런 한탄을 해봤자…아무것도 안된다는 것을 알고있어서. 모조리 잊어버리고 싶었습니다"
당신들과의 기억까지 모두...
"하지만…과거는 너무나 잊기 힘듭니다…특히 나에게는…잔인하고…잔인해서…절대로 못 잊습니다…이런 빌어먹을 기억…"
무덤을 부여잡고 털썩하니 주저앉았다.
이런 소리없는 외침에도. 그들이 돌아올 것도 아니다. 그들이 나에게 얘기해주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런 외침에 응답하는 건..
'공허함' .
내가 이렇게 말하고 있어도 받아주는 이 없이 너무나도 허무하기 짝이 없는...
헛소리에 불과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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