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23화 (12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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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8. jealousy · forlorn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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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민정이를 깨우러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그 동안 세수도 하고 샤워를 했다. 더운 날씨라 차가운 물로 몸을 시원하게 적시며 비누칠을 한 타올로 구석구석 몸을 닦고 있던 와중이었다.

끼익....

"지현언니는 뭐야…왜 아침부터 부모님 산소에 가자고…"

"…!!!!"

"…피곤한데…어?"

"…"

"…"

서로의 모습을 확인한 우리들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옷을 아무것도 입지 않고 샤워 중이던 나를 졸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민정이의 표정은 순식간에 급변했다.

"꺄아아악!!!!!!"

"…!!!"

바로 비명을 내지르는 민정양. 그 소음에 나는 재빨리 아랫부분을 손으로 막았다.(이미 늦어버렸지만)

"변태!!!! 치한!!!!!!"

네가 멋대로 들어왔으면서 나보러 변태..치한...

"변태 오타쿠!!!!!"

"진정해!!!"

"진정이 될 것 같냐고!!! 으앙!! 눈 버렸어!!!!!"

심지어 눈 버렸다니...

"빨리 안 나가고 뭐해!!!"

"나가면 되잖아!!!!"

그러고서 문을 닫고 다시 나가버리는 민정이. 에휴..또 민정이에게 미움 받는 거 하나 더 생겼구만..

"…"

"…"

엄청나게 어색했다. 원래 민정이와 지현누나가 여태까지 부모님 산소에 다녀왔는데 이번 해에는 나까지 가게되니 어색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아까 전에 일어났었던 아침의 소동 덕분에 더 어색해졌다.

"민정아"

"왜?"

"정우랑 무슨 일 있었어?"

"…별 일 없었어"

"그런데 너네 둘이 많이 조용한 것 같아서…"

"…기분 탓이야. 기분 탓"

"정우. 진짜로 별일 없었던 거야"

"그럼그럼. 아무 일도 없었지"

"???"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안 그러냐 민정아?"

"그…그럼!! 아무 일도 없었지…"

그러면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민정양. 그래 미안하다..너한테 못볼 꼴 보여서...

"?"

영문을 모르는 지현누나는 나와 민정이를 번갈아가면서 이상해하고 있었다.

고속버스를 타려고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명절과 같은 특별한 날들이 아니라서 메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버스터미널에 있었다. 당연히 사람들이 많으니 민정이와 지현누나의 외모는 튀기 마련이었다. 주위 남자들은 모두 지현누나와 민정이에게만 시선을 고정시켜 다른 데 볼 틈이 없었다. 게다가 그 중간에 낀 들러리인 나에게 살기를 내비쳤다.

"어째서 저런 놈이 미녀들이랑 같이…"

주위 남자들의 시선덕분에 안 그래도 더운데 뜨끈뜨끈해졌다. 하하...정작 장본인인 두 자매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지들끼리 걷고있었지만. 그렇지만 그들에게도 어색함이 존재했다. 보통이면 같이 떠들고 있었을텐데..오늘따라 대화하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민정이가 왠지 지현누나를 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지만서도 그 사이좋던 두 자매의 관계에 뭔가 냉기류가 형성되고 있었다.

버스터미널에서 청소년 세 명 왕복표를 끊었고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이 우리들은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좌석표는 맨 뒷자리 세개였다. 뒷자리라 차멀미는 하지 않을까 걱정이있었기는 했어도 어차피 가까운 데였으니 안심했다.

"민정이랑 지현누나가 구석에 들어가서 붙어 앉아. 나는 중간에 앉을게"

"오타쿠"

"응?"

"여기에 앉아"

민정이가 가리킨 좌석은 맨 오른쪽 구석 바로 옆자리였다. 그럼 지현누나와 민정이가 떨어져 앉아야 되는데...?

"…그냥 앉아"

민정이는 진심으로 여기에 앉기를 바라는 듯 보였다. 지현누나도 이런 민정이에 대해 왜 그러는 거지하고 궁금해하는 눈치였지만 딱히 자리에 대해 옥신각신 할 필요는 전혀 없기에 민정이가 하자는 대로 앉자고 하였다.

내 오른쪽에는 지현누나가 앉고 왼쪽에는 민정이가 앉았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며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저런 미인들과 아는 사이라니 부러운 자식이라는 표정이 다 드러날 정도였다.

나는 이래저래 욕만 먹고 있었다.

버스가 도착지를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그 동안 나는 계속 상념에 빠져있었다. 8년 만이다. 한 번도 찾아가지 못했던 내가 8년 만에 부모님을 뵈러 갔다.

"…"

지현누나때문에 가는 거지만 착잡했다. 그냥 가지 말걸..하고 후회를 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달리고 있었고 여기서 내려달라고해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나는 무조건 그 곳으로 가야했다.

만감이 교차한다. 산소에 찾아가면 나는 먼저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툭.

지현누나가 피곤한지 내 어깨를 베고 잠이 들었다. 버스로 이동하는 건 의외로 체력을 많이 소모하게 되는 터라 저절로 피곤해지게 되는 탓이었다.

"오타쿠"

중간에서 나를 외면하고 반대편 차창을 줄곧 바라보고 있던 민정이가 나를 불렀다.

"…왜?"

"오타쿠는…"

"뭘 그리 머뭇거려?"

"오타쿠는…지현언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뭐?"

갑자기 지현누나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고 있다. 대체 무슨 이유에서?

"말 그대로야. 오타쿠는 지현언니를…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당연히 친누나고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그런 것이 아니야!"

그녀의 말에는 뭔가 절박한 심정이 담겨져 있었다. 그냥 친누나이고 가족이라고 지현누나를 생각하고 있는데..민정이는 그런 대답을 바라지 않았다. 그녀는 진지하게. 정말로 심각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지현언니를…"

"…?"

"지현언니를…"

"왜 그래?"

"좋…아…"

"에. 곧 있으면 도착하오니 자신의 짐들을 모두 정리해주십시오. 00고속관광을 이용해주신 고객여러분께 감사드리며, 하차하실 때에는 빠진 짐이 없는지 꼭 살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아니. 됐어. 얘기하지 않을래"

"…뭐냐…"

"정우…"

기사의 말소리때문에 내 어깨를 베고 있던 그녀가 일어났다.

"일어났어?"

"응…도착한 거야?"

"…어"

나는 민정이를 살펴봤다. 그녀는 흥!하고 고개를 돌려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나 때문에 그러는 건가..아직도 아침에의 일 때문에 나한테 화난 거겠지 아마..

부모님이 안장된 곳은 이 버스터미널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나보다. 내가 택시나 버스를 잡자고 했을 때 지현누나가 그럴 필요가 없다며 도보로 가면 된다고 얘기하였다. 민정이는 여전히 화난 듯 나를 보지 않고 있었다.

부모님이 묻힌 산소로 가려고 산을 올라갔다. 꽤나 경사가 급해서 여자가 올라가기에는 힘들게 보였는데 지현누나는 운동을 해서 그런지 잘 올라갔다.

반면에 민정이는 가쁜 숨을 쉬며 올라가는 것을 힘들어했지만.

"여전히 올라가기 힘들어…"

"민정아"

"오타쿠가 왠일로 나를 부를까?"

이런이런..

"도와줄게"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돼…됐어! 누가 도와주길 바라고 있대? 지도 남자라고…"

역시나 저 녀석은 싫어하구만..게다가 저 녀석의 고집은...나는 지현누나의 뒤를 말 없이 따르고 있었다.

헉...헉...

민정이와 거리가 차차 벌어지고 있었다.

"지현누나"

"응?"

"민정이 힘들어하는데?"

"…응…"

지현누나도 민정이에 대해서 언급하면 표정이 어두워지는 경향이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꺄아악!!"

그 때 아래에서 민정이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내려다보니 민정이가 산을 올라가다 미끄러져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어이!!!"

나와 지현누나는 그 민정이의 비명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아래로 빠르게 내려갔다.

"아야얏…"

그녀는 무사해보였다. 하지만 미끄러져 넘어진 탓인지 바지에 흙이 많이 묻고 있었고 그녀의 손에는 작은 상처가 보였다.

"괜찮아?"

"오타쿠가 신경쓸 정도로 큰 상처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

역시 매몰차게 거절하고 있는 그녀.

"…!!!"

신경쓰지 않을 정도가 아니다. 그녀의 다리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치마를 입은 상태여서 다리는 무방비였는데 산에서 미끄러져 떨어져내렸으니..

"상처 심하잖아"

"…오타쿠가 신경 쓸 바 아니라니까. 내버려둬. 올라갈 수 있으니까"

"그만 고집부려"

"뭘 고집부리는 데?"

"내 도움따위는 필요없다는 거 알고 있으니까 지현누나한테라도 도움을 받으라는 얘기야. 알아? 나 신경쓰이게 만들기 싫으면 자기 스스로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청하라고. 뭔 말인지 이해가 안 가? 혼자서 고집부리지 말란 말이다!!!"

"…!!!"

"네가 바라는 대로 나는 도와주지 않아. 지현누나"

"…응"

"민정이 지혈 해줄 수 있어?"

"아니. 딱히…"

"…휴지 같은 거는?"

"휴지는 있어"

"그걸로 피 좀 닦아줘. 나는 연고랑 밴드. 붕대를 사올 테니까 누나가 해주고"

"…"

"저 녀석이 내 도움따위는 필요없다고 얘기했으니까. 누나가 좀 해줘"

"…알았어"

"갔다올게"

나는 산에서 벗어나 바로 가까이있던 버스터미널로 갔다. 버스터미널 혹은 그 인근에는 약국이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 망할 고집불통 녀석!!!!"

나는. 계속 뛰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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