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22화 (12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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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8. jealousy · forlorn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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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가슴에 안겨있다보니 가슴의 느낌(?)이 전달되고 있었다. 뭉클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기분 좋게 만들었다. 아니아니..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나 진짜 욕구불만인가..

"누나…"

"응?"

"숨 막히는데…"

"아…미…미안!!!"

그녀는 황급히 품에서 나를 떼어놓았다. 이러다가는 내가 부끄러워져서 숨 막힌다고 얼버무렸다.

사실..아쉽긴 하였지만..계속 안기고 싶을 만큼.

"…"

품에서 빠져나왔다고는 해도 누나의 얼굴이 내 지척에 있었다.

검정색의 눈동자. 새하얀 피부. 앵두같이 붉은 입술. 기나긴 검정색 생머리.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또 얼굴이 붉어질 것 같다.

"정우?"

"응?"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개…?"

"…!!!!!"

이미 빨갛게 되어있었던 거냐!!!!!

"??"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하하 아무 것도 아니지"

"…??"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아하하하…"

결국 병신이 되어버린 나다.

"산소…같이 가는 거지?"

"어?"

"부모님산소있잖아…"

"…"

"안…되는거야?"

그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부디 같이 가달라는 표정을 지어주면..결국에는 갈 수 밖에 없게되잖아..

"후. 알았어"

"다행이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짓고 있었다. 뭐가 다행이라는 거지..?

"언제 가는 거야?"

"지금…"

"…"

"혹시 약속 있어?"

"아니"

"그럼 준비하고 가자. 민정이도 부르고…"

"…어"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나는 한 번도 그들의 산소에 찾아간 적이 없었다. 지현누나와 민정이는 기일이 될 때마다 가기는 했었지만..나는 그 동안 줄곧 미연시에만 빠져사느라 산소에 꽃 한 송이 조차 놓지 않았다.

"…8년 만인가"

8년 전, 장례식장에서의 일들이 생각났다. 나는 그 때 10살이었다. 서현누나는 15살. 민정이는 8살. 지현누나는 11살. 모두가 어리기만 했었던 과거. 장례식장에서는 조문객들이 많이 찾아왔다.

유명한 대기업간부는 물론이고 국회의원 등 굵직굵직한 인사들이 다녀갔었다.(사실 그 때의 나는 전혀 알지 못하고 나중에서야 그들이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일가친척도 없었고..남겨진 사람들은 우리 남매 뿐.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도와준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거짓'.

그들은 우리에게 상속된 돈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는 우리에게 다정히 찾아와서 감언이설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었다. 너네들이 성인이 될 때 까지만 책임지겠다고.

나는 그러한 목적으로 찾아온 줄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들의 안에는 뭔가 시커멓고 추악하디 추악한 목적이 있음은 알고 있었다.

그 때의 나는 혼자여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심지어 '가족'조차도..믿을 수 없었다.

오직 서현누나에게만 마음을 열고 있었다. 회색빛 눈을 얻은 지 2년 째. 나는 극심한 소외감을 겪었었고 항상 외로워했다.

"가주세요"

서현누나는 안 그래도 부모님이 죽은 상태였는데 힘들어했지만 그들을 한사코 거부했다. 계속 우리들한테 찝쩍거리면 경찰을 부르겠다고까지 얘기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우리들을 보살핀다고..아무 것도 모르던 우리와 다르게 누나는 그들의 목적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너는 미성년자이지 않니?"

그들은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계속 거부하다가는 장례식장에서 강제로 힘으로라도 하려고 한 모양이었다.

"꺼져"

나는 괴로워하는 서현누나를 보다못해 그렇게 얘기했다. 조그만 10살짜리 꼬마애가 꺼지라고 얘기를 하니 그들은 모욕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해 화가 욱하고 북받쳐 올랐다.

"이 꼬마새끼가!!!"

퍽!!!!

나는 내동댕이 쳐졌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이래서 어른들이란...

나는 '어른'이라는 존재에게 극도로 '증오'하고 '불신'하고 있었다. 죽은 부모님에게 조차도 절 한번 하지 않았던 나였기에 큭큭하고 때린 이들을 비웃고 있었다.

"이 꼬마새끼가 웃어?"

"때려. 얼마든지 때려봐. 하지만 지금 상황을 봐야 될 것 같은데?"

"이익!!!!"

다른 대기업간부는 물론이고 국회의원까지 있는 마당에 그들은 함부로 우리들을 건드릴 수 없었다. 게다가 그 곳에는...

"아동을 폭력하는 것은 범죄라는 사실을 모르나?"

경찰도 있었다.

"이런 곳에서까지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싶지 않네. 좋은 말로 할 때 가주게나"

그들도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었기에 함부로 체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조용히 사라졌다.

민정이를 제외하고 지현누나와 서현누나는 장례를 하는 3일동안 계속 울었다. 조문객들의 도움을 받아 버스를 타고 안장장소에서 관을 안치하고 무덤을 만들었다. 그리고 장례절차는 조용히 끝이 났다.

나는 맨 뒤에 숨어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안 그래도 그들의 시선에는 무례하기 짝이없는 데다가 부모님에게 절 한번 하지 않는 불효막심한 놈으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에 그들과 가까이 있고 싶지도 않았다.

땅을 파고 관을 놓을 때에 서현누나는 결국 혼절했다. 지현누나는 울다가 갑자기 쓰러진 그녀를 부축하고 있었고 민정이도 언니가 쓰러지자 일어나라고 울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아줌마로 보이는 중년여성들은 울고있었고..어른들도 고개를 숙이며 이승에서 떠나가는 부모님에 대해 조의를 표하고 있었다.

"정우야"

"네"

"정우는…부모님이 어디로 가신 지 아니?"

"…하늘나라"

"…부모님에게 잘 가라고…얘기해주지그러니…"

몇 번 우리 집에도 찾아온 적이 있는 부모님의 지인이 뒤에 있던 나를 불러다 사근사근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저는…그러지 못해요"

"어째서?"

"그러고 싶지도 않구요"

"그래도 너를 낳아주신 부모님이잖니?"

"…죄송합니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런 얘기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달리던 와중. 나는 서현누나와 마주쳤다.

"정우야"

"…"

나의 손을 잡고 바둥거리며 도망치려하고 있는 나를 놓지 않았다.

"정우야"

"…"

나는 그제서야 움직임을 멈췄다. 누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를 이제야 깨달았던 것이다.

"…정우는…"

"…"

"슬프지 않은 거야? 부모님이 없다는 것에 대해?"

"…"

"네가…그러는 거 이해해…하지만…"

"…누나?"

그녀는 나의 어깨를 잡으며 울고 있었다. 1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너무나도 큰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

그녀의 손을 잡고서 나는 어깨를 빌려주었다. 조금이라도 그녀가 슬퍼하는 것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나에게 있어서 그녀는..'부모님'이었다. 엄마였다. 그녀가 힘들어하는 것을 어떠한 방법이로든지 도움을 주고 싶다.

"정우야…"

"어?"

"…잠깐만…이러고 있어도 돼?"

"…"

"바보같아. 동생의 어깨에 기대게 되다니…내가 어깨를 빌려줘야 하는데"

"…"

"정우야"

"응?"

"부모님을…용서해"

"…"

"그 '용서'라는 단어. 너에게는 너무나도 잔혹하겠지만…"

"…"

"지금은 모르고 있어도 돼…하지만 언젠가는…"

"…"

"언젠가…"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내 옷은 그녀의 눈물에 축축해지고 있었다.

그것이 8년 전의 일.

"언젠가…라…"

나는 8년 만에. 부모님의 산소를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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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치명적인 실수를 범했습니다.

사실 부모님의 기일은 6월 말이었는데..118편에서 1월의 어느 추운 날로 설정을 해버렸더군요....

독자님들께 죄송합니다..118편에서의 구절은 지워버렸구요.

스토리 전개에 열중하다보니 그런 부분들은 놓치고 말았습니다..정말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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