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19화 (119/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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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8. jealousy · forlornness

그냥 연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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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나는 오늘도 삐르릉하고 우는 알람시계를 끄고 방을 나왔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끄적끄적 냉장고에 있는 반찬통들을 꺼내고 어제 먹고 남았던 닭볶음탕을 가스레인지에 데우기 시작했다.

"…"

데워지는 동안 화장실가서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소파에 멍하니 앉았다. 그리고 어제 밤에 일어났던 일을 떠올렸다. 지현누나와 식사를 마치고 누나는 바로 독서실로 공부하러 나갔고 집에는 나와 민정이 밖에 남아있지 않았었다. 지현누나가 나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바로 거실로 나오는 민정이.

"…밥 먹어"

"별로…생각없는 걸"

민정이의 얼굴은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눈가에는 눈물자국도 선명히 있는 거 봐서..그녀는 방에서 혼자 울먹인 것이다.

"너…"

"뭐?"

"얼굴 씻는 게 좋을 듯 싶은데"

"뭐…뭣?"

"얼굴 씻는게 좋을 것 같다고"

"…오타쿠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

"거울이나 보고 얘기해라"

"언제부터 나한테 관심을 줬다고…"

"내가 느낀 대로 얘기했을 뿐이야. 나쁜 의도는 없어"

"쳇…"

그녀는 툴툴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쏴아아하고 씻는 소리가 끊긴 잠시 후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부엌 의자에 앉았다.

"밥 먹으려고?"

"당연하잖아?"

조금 전에는 생각없다고 하지 않았었나?

"아까 전에 먹었으면 될 것 가지고…"

"…오타쿠"

"엉?"

"…밥…같이 먹자"

"…왜?"

"그…그냥…생각해보면 오타쿠랑 같이 밥 먹은 지 꽤나 오래 된 것 같아서…"

"…"

"그…그렇다고 착각하지마. 오늘 하루만 같이 먹자는 것 뿐이니까…"

"너.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냐?"

"…아니"

"그러면…"

"그저…오늘은 그러고 싶을 뿐…"

"뭐냐 그건…"

"그러니까! 이유는 묻지말고 같이 먹어!"

더 이상 그녀에게 캐물었다가는 그녀의 기분만 상하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왠지 이미 밥먹었다고 얘기해서는 안되는 느낌도 들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그녀는 '누군가가 같이 있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았기에..

"이거. 오타쿠랑 언니가 같이 만든 거야?"

"어"

"…그래?"

"맛 없냐?"

"으응. 맛있어. 이거 진짜 언니가 만든 거 맞나하고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

"오타쿠"

"왜?"

"엄마랑 아빠…돌아가신 지 벌써 8년이 지난 거 알아?"

"딱히 세보지 않아서…"

"하기야. 오타쿠는…그런 거에도 관심이 전혀 없으니까"

"…"

"부모님 기일도 모르지? 오타쿠는…"

"몰라. 그런 거"

"오타쿠는 엄마랑 아빠 싫어하니까…"

"…어"

"왜 싫어하는 거야?"

"…"

그들은. '부모'라고 불리우는 존재는 나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똑같이 싫어하는 거다. 자매들과 똑같이 배 아파 낳은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유없이 나를 거부했다. 사고로 돌아가기 이전까지 나는 그들에게 '사랑한다'는 소리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세월이 흐르며 그들을 그리워하고 있지만..그것은..

자식으로써의 어쩔 수 없는 마음이었다.

"…부모님 생각한 거냐?"

"…"

"그래서 기분이 안 좋은 거고?"

"뭐가 기분이 안 좋다고 그러는 거야?"

"네 표정에 다 쓰여있어. 오늘 나 건드리지말라고"

"…별로"

"밥이나 먹자"

"응…"

그녀는 오늘따라 유약해보였다. 그녀답지 않게도..

"잘 먹었어 오타쿠"

"…"

"다음에도…기회되면…"

"…뭘?"

"아무 것도 아니야"

"뭐야…"

"그냥…고맙다고 얘기하는 거 뿐이니까…"

"응?"

"못 들었으면 됐어! 흥!"

그녀는 그렇게말하고는 양치하러 화장실로 다시 들어갔다. 만약에 셋이서 같이 먹었으면 그녀의 기분이 풀렸을까? 아니 모른다. 그녀가 학교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 지도 모르고 그녀 당사자도 우리들에게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숨기고 있었으니까.

이제와서 그녀가 새삼스레 부모님 얘기를 꺼낸 건 다소 의외이긴 하였지만은. 게다가 여태까지 그녀는 나랑 같이 밥 먹는 것을 아주 싫어했는데..나랑 밥 먹자고 얘기를 꺼낼 정도로..

그녀는 오늘 심히 '외로움'을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오타쿠"

"엉?"

"지현언니…집에 없어?"

"당연히 공부하러 독서실에 갔지"

"…그래?"

"너 오늘 진짜 이상하다?"

"뭐…뭐가 이상하다는 건데?"

"지현누나가 나가자마자 네가 방에서 나왔잖아?"

"그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그럴 수도 있지"

"아니…이상해"

"대체 뭐가?"

"지현누나가 분명히 너한테 같이 밥 먹자고 얘기를 했을텐데…"

"…그게 뭐?"

"지현누나가 너한테 밥 먹자고 얘기를 했을 거 아니야. 그 때는 왜 안나왔어?"

"…생각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밥 먹고 있잖아"

"지금은…"

"…?"

"내…내가 왜 오타쿠한테 그런 것까지 얘기해줘야 되는 건데!!!"

퍽!!!!

"컥!!"

"내가…왜 그런 것 까지…"

"아니…얘기하기 싫으면 얘기하기 싫다고 말하던가…왜 폭력을 쓰는 거야…"

"그…그건…"

그녀는 붉으락푸르락하며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몹시 흥분하고 있었다.

"그…그건…다 오타쿠 때문이야!!!"

"엥?"

"다 오타쿠 때문이라고!!"

"뭐냐…그 말도 안되는 변명은…"

"오타쿠가…오타쿠가…"

"내가 뭘 어쨋다는 건데?"

"말 못해! 죽어도 말 못해!!! 어쨋든 다 오타쿠때문이야!!!"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하고 닫았다.

"어이…"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이러면 나만 나쁜 놈 되는 거잖아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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