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18화 (118/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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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8. jealousy · forlorn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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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집안일을 정리하고 있었다.

세탁이며..청소며..그것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부엌의 사정을 보자마자 나는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내가 없는 동안 대체 무엇을 '만들어' 먹으려고 했었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물체들이 싱크대에 둥둥 떠다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식탁에는 먹다남은 인스턴트음식들. 나는 그저 한숨만 내쉬고 설거지와 인스턴트음식들을 버리고 음식물쓰레기를 버리고 왔다. 아침 일찍 집에 돌아왔는데..이것저것 창고정리도 하고 옷 정리도 하다보니 오후가 한창 지나가고 있었다.

아..피곤하다...한숨 잘까...

낮잠이나 잘까해서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딸칵하고 현관문이 열렸다. 검정색의 단발머리를 하고 교복을 입은 한 소녀가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거의 3일만에 보는거지 아마...나는 민정이를 보자마자 인사를 했다.

"안녕 오타쿠"

그러고서 바로 휙하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민정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평소에도 나에게 대충대충 인사하던 민정이였지만 이렇게까지 냉정하게 인사한 적은 없었는데 말이지..

뭐..괜찮겠지..

나는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누웠다. 3일만에 이렇게 편하게 누워본다. 그리고 곧바로 눈을 감았다. 수련회도 다 끝났고..집안일도 모두 끝났으니..이제 나는 쉬어도 되겠지라는생각에 맘을 놓아버려 잠이 들었다.

일어나면. 밤이 되어있겠지.

"오빠"

"…"

"오빠"

"…응"

"엄마랑 아빠 어디갔어?"

"…"

"엄마랑 아빠…어디로 가버린 거야?"

"…"

나는 어린 민정이에게 아무런 대답을 해 줄수 없었다. 그저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쓱쓱하고 쓰다듬을 뿐이었다.

그녀는 아무 것도 몰랐다. 어렸다. 나와 2살 차이 밖에 안 나지만 그래도 어렸다.

"…잠깐 여행을 떠났어"

"…어디로?"

"…아주…머나먼 곳으로…우리가 갈 수 없는…"

대화를 듣고 있던 서현누나가 민정이에게 다가와서 안아주며 부모님은 여행을 갔다고 얘기해주었다. 누나는 민정이를 안아주며..눈물을 조용히 흘리고 있었다.

"엄마랑 아빠 곧 있으면 돌아와?"

"응. 민정이가 착한 일 많이하고…많이 먹고…많이 놀고…열심히 공부하고…그러면 꼭 돌아오실 거야"

"…그럼 나는 착한 일 많이 해야겠네?"

"응…"

서현누나는 민정이를 더욱 더 안아주었다. 민정이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누나의 마음도 전혀 모른 채..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부모를 그리워하고 있구나..'라고.

나와 다르게. 그들은 부모님에게서 사랑을 받아왔기에.

천천히 자매에게서 돌아서서 건물 밖으로 나가서 밤 하늘을 바라보았다.

"…꿈"

꿈에서 깼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과거의 기억'의 한 조각을 보고있었다. 평소에 낮잠을 자면 그저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었는데..요새 '과거의 기억'을 너무 잘 보는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7시 30분. 내가 저녁을 차릴 시간이었다. 방문을 열고 부엌에 가보니 일본여행에서 돌아온 지현누나가 식탁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정우"

"…여행 잘 다녀왔어?"

"…응…정우는…수련회 잘 다녀왔어?"

"…어"

"…처음…가 보는 거였지?"

"…아마도"

"…수련회하니까…어때?"

"괜찮았어. 나름대로 즐거운 추억도 쌓았고"

"…그렇구나…"

"일본여행…좋았겠다"

"…좋은 호텔에서도 자고…유명한 곳도 가보고…일본음식도 먹어보고…"

"…"

"정우랑…단 둘이서 가보고 싶을만큼…"

"…어?"

"…아니…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누나…지금 무슨 요리하고 있는 거야?"

"…어?"

"…이거…"

정체를 알 수 없는 요리가 그녀의 손에서 탄생된다. 획기적이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그리고 세계 최초인 요리가 지금 눈앞에서 조리되고 있었다.

"…이거…대체 뭐야…?"

"그러니까…닭볶음탕"

"…"

이게 정말로 닭볶음탕입니까...?

"…인터넷에서 나오는 그대로 했는데…"

"나 없는 줄 알고 만든거야?"

"아니…피곤했을 거고…그리고 집에 돌아왔을 때…집안일도 다 하고…이런 거로 정우한테 폐끼치고 싶지 않아서…"

"…"

뭐라고 얘기하지도 못하겠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좋은 의도로 하고 있는 거였지만..

다만. '결과'가 좋지 않을 뿐.

"…미안. 누나 괜히 고생시키게 만든 것 같다"

"아니야! 그게 아니라…"

"…?"

"…그냥…"

"…그럼…"

"…응?"

"같이…만들래?"

나도 모르게 같이 만들자고 말해버렸다. 이놈의 입방정을 어떻게 해야지..

"…응"

내가 한 어이없는 말에 그녀는 조금 부끄러운 듯 살짝 홍조를 띄우며 말했다.

뭐지 이건...

기쁜...건가...? 내가 이런 말 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직접 만든 요리는..도저히 안되는 이유도 있고..그녀가 나 생각해서 만든 건데..매몰차게 할 수도 없고..에라 모르겠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같이 만들면 손도 많이 안 가고..나만 좋지 뭐..

"완성!"

그녀는 요리가 완성되자 탄성을 지르며 기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처음으로 제대로 만든 요리니..더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수저랑 반찬 놓을 테니까…민정이 좀 불러와줘"

"응"

그녀는 방에 들어가 있는 민정이를 부르러 가고 나는 반찬과 수저,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식탁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나는 따로 밥을 비롯한 내가 먹을 것을 쟁반에 담아내 내방에 가져다 놓았다.

"정우"

잠시 후 내 방의 문을 열고 지현누나가 들어왔다.

"밥 안 먹고 내 방에는 왜? 민정이는?"

"…민정이는…밥 안 먹겠대…"

"…걔가 왠일이냐…"

"…민정이…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

그녀도 민정이가 심히 걱정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자연스레 그녀의 표정도 어두지고 있었다.

"…흠…그러면…지현누나라도 식탁에서 먹어"

"정우는?"

"나야 뭐…여기에서 먹으니까"

"식탁에서 같이 먹으면…안돼?"

"…"

"아직…부담…스러운거야?"

"…"

"같이…먹어…"

"…알았어"

그제서야 그녀의 표정은 조금 풀린 듯 싶었다. 집에 돌아올 때부터 민정이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그녀가 무슨 일을 겪은 것은 분명한 사실. 수련회에서 돌아오자마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나도 기운이 내려간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것도 오버하는 행동이었다. 사람이 안 좋은 일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일단 그녀를 내버려두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게다가..그녀는 나를 싫어한다. 그녀의 자존심상 내가 자신에게 간섭하는 것을 용납못할 것이다. 바로 폭력이 날아올 게 뻔하지..못난 오타쿠가 자신한테 오지랖 떨면..

"…정우?"

"…응"

"앉자…"

"응"

지현누나는 식탁에서 항상 민정이와 함께 밥을 먹었을 건데..10년만에 나랑 처음으로 밥을 같이 먹었다. 그렇다고 즐거운식사도 아니었다. 민정이의 상태가 이상했으니까 신경이 쓰였다. 지현누나도. 그리고 '가족'이라 생각하고 있는 나도.

"…맛있어"

그녀가 닭볶음탕 한 입 먹자마자 맛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래?"

"정우가 만든 요리는…항상 맛있으니까…"

"그렇게 칭찬해주니 고마워"

"…민정이도…같이 먹으면 좋은데…"

"…그럴 수도 있지 뭐. 사람이 항상 기분이 좋을 수만은…"

"그렇지만…"

"…차차 원래의 민정이로 돌아오겠지…"

"그랬으면 좋겠지만은…"

"식겠다. 빨리 먹자"

"응…"

이대로가다가는 분위기가 더 어두워 질 수 있어 그녀의 말을 가로막고서 나는 빨리 먹자고 그녀를 재촉했다.

"괜찮아 질 거야…그러니까 걱정하지마…"

"…"

지현누나는 그래도 끝내 민정이에 대한 걱정을 놓지 못했다.

그리고 나도..괜찮아 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나의 예상과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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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8은 민정파트입니다. 원래 주인공의 평범한 일상을 하려다가..

스토리상 급작스럽게 수정을 하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이번파트는 상당히 미흡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 민정파트를 Part 9에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따라서 이번파트도 상당히 고심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Part 5와 Part 6 이상으로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 스토리 내용이 좋게 구성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리면서. 이상 허접작가 Scribbler였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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