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10화 (11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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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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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묵고 있는 방에서 자라고"

"…농담이지?"

"진담인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내가 어떻게 그 곳에서 묵냐?"

"여자애들이랑 같이 자면 되잖아"

"…그게 말이 안 된다고"

"네가 잘 곳이 없으니까 우리 방에서 자라고 얘기하는 거잖아. 혹시 부끄러워?"

"부끄럽다기보다는…같은 숙소의 애들이 당연히 허락을 안 할 거 아니야? 자기들 방에 어떤 불청객과 다름없는 남자가 쳐들어와서 자겠다고 하면 받아줄리가 있겠냐고"

"내가 잘 설득하면 되잖아"

"…고맙기는 한데…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안 되는거야?"

"안 되는 건 안되는 거지"

"만약에 거기서 자게되면 여자애들 덮칠까봐?"

"…"

"네가 절대로 안 덮칠 거라는 건 내가 잘 알고있어"

"…"

"불편한 점이야 있겠지…화장실 문제라든가…공간문제라든가…그렇지만…너의 잘 곳이 없잖아? 나는 그것을 볼 수가 없다는 얘기야"

"…"

"혹시 그 여자애들도 자신을 싫어할까봐 그러는 거야?"

"…"

"너는…항상 혼자라고 얘기했지. 자기 스스로 왕따라고 나에게 네가 얘기해주었어. 그래서 이 왕따에서 벗어나야 될 거 아니야? 기껏 자기를 소외시킨다고해서 도망쳐버리면…이런 생활이 계속 될 것이 뻔하잖아"

"…"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고 나한테 일깨워주는 것은 바로 너야. 누구나 사람들은 욕을 먹고 그리고 분노할 때도 있고 좌절할 때도 있고 그리고 기쁠 때도 있는그런 다양한 감정을 누구나가 지니고 있다고 얘기해 준 사람도 너야"

"…"

"그렇게 나에게 얘기해놓고서 정작 자신은 도망치고 있는 거야?"

"…"

"솔직히 실망했어. 박정우"

"…"

"어떠한 단단한 벽이 있을 지라도, 계속 부딪치다보면 균열이 생기기 마련이야. 하지만 너는 그러한 노력조차도 하지 않고 있잖아"

"…"

"정작 남자애들에게 다가가기 힘들다면…조금이나마 덜한 여자애들과 친해지면 되지 않아?"

"…"

"…그것조차 하지 않는다면, 너는 진짜로 이런 사회에 적응해 나갈 수 없어"

"…"

"너만 욕먹는 줄 알아? 나는 전국단위로 욕을 먹고 있어. 너처럼 한 학교의 학생들이 아니라. 스케일이 다르단 말이야"

"…"

"예전에는 누구나가 나를 좋아해주었지. 하지만 그 누구누구의 변태오타쿠씨 덕분에 안티카페도 생기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이 생겨났어"

"…하지만 마음이 홀가분해. 더 이상 그런 가식을 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

"…그래서 나는 계속 버틸 수 있는거야. 너는…고작 그 정도로 지쳐버린거야?"

"…"

"나는…'친구'가 아닌 거야?"

"…"

"너는 날 도와주었어. 그리고 나를 진정으로 '친구'라고 여겨주었잖아. 나도 너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어. 나한테 그런 얘기조차 하지도 않고…"

"…"

"사실 모두 너를 싫어하는 건 아니야. 몇몇 애들은 네가 '그 소문'과 다르게 말수가 적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지만 착하다고 여기고 있어"

"…"

"너는…혼자가 아니야"

"…"

"그러니까 이렇게 혼자라고 궁상떨지 말고! 숙소로 돌아가자"

그녀. 연세희는 손을 내밀었다. 아아..나는 정말 찌질하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나를 이렇게 '친구'라고 여기는 사람이 와서 나를 도와주고 있다. 내가 그녀에게 아무런 얘기도 꺼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란 이런 존재일까? 서로가 서로에게…조금이나마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갈 때 잠깐 쉴 수 있는 곳.

그러한 장소가 '친구'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고맙다"

"…고맙기는 뭘. '친구'…잖아?"

"…응…"

나는 그녀와 함께 숙소로 돌아갔다.

나는 그녀와 함께 산에서 내려와 나의 모든 짐을 싸고 숙소건물로 돌아갔다. 숙소건물로 돌아가면서 보이는 모든 2학년 애들이 나와 연세희가 붙어있는 것을 보고 수군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러한 수군거림에도 무시하고 우리는 2층계단으로 올라갔다.

"잠깐…기다려주겠어?"

"…"

"애들. 설득하고 올 테니까"

"…"

나는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념무상. 설사 설득에 실패한다고 해도 나는 그것으로도 만족한다.

그녀에게 도움을 받았으니까 말이지..

머지않아 내가 있던 계단으로 그녀가 돌아왔다.

"…허락 받았어"

"…엥?"

"허락 받았다니까. 애들이 찬성했어"

"…전원이?"

"응"

"…네가 강제로 설득한 거 아냐?"

"에이…나는 민주적인 사람이라구? 애들이랑 얘기해 본 결과 너는 우리 숙소에서 묵어도돼. 하지만 만약에 네가 우리 숙소에 있다는 것이 걸리기라도 한다면 책임은 절대로 못 지겠지만"

"…"

"들어…갈래?"

"…어"

"가자"

나는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다행히도 복도에는 아직 식사를 하느라여자애들이 없어서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어떻게 나를 맞아줄까..? 조금은 차갑게 쳐다보겠지..묵을 곳이 없어서 여자애들 숙소로 정하는 병신이라고..세희가 착해서 그러는 것이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틀림없다.

내가 거기서 정말로 묵어도 될까? 하는 회의감도 들기 시작했다.

"데리고 왔어"

"…"

방 안에는 6명의 여자애들이 나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잘 부탁해"

나는 어찌어찌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엄청 창피해 죽겠다..

"세희야"

"응?"

"정말로 이 녀석 믿어도 되는 거지?"

"걱정 마. 우리들한테 어떤 음흉한 짓을 하는 녀석이 절대로 아니니까. 그건 내가 보장할게. 정말로 이 녀석이 그런 짓을 했다가는…내가…"

"…"

"그건 정우가 잘 알고 있을 거야"

"…"

"그리고…정우는 잠을 못 자니까"

"…잠을…못 잔다고?"

"불면증이야"

"…그래서 맨날 학교에서 자는 거구나…"

"진짜로 잠 안 자는거야?"

"…어"

"그러면…세희가 말했던 대로…"

"우리는 안전하게 잘 수 있다는 거네?"

"…어?"

"안전하게 잘 수 있다고"

"…어떤 이유에서?"

"불순한 의도를 가진 남자애들이 몰래 쳐들어오니까. 특히 이 곳에는 세희가 있잖아? 그래서 네가 있으면, 남자애들도 왔다가 되려 화만 당하고 돌아가는 거지"

"…그래서…"

"너도 여기에서 자려면 대가는 치러야지. 안 그래?"

"…"

역시 의도가 숨겨져 있었어..이 녀석...감동받고 있었는데..그걸 산산조각..

"한 마디로 우리들의 보디가드가 되어달라는 거야"

"…"

"저번에 보디가드가 되어주었잖아? 정우는…"

"보디가드라니?"

"그런 일이 있었어~"

"경비가 되어달라…이건가?"

"그렇게로도 볼 수 있구~"

"…"

"정우야?"

"…?"

"다시 한번 말하는데…우리들이 자는 동안…네가 제대로 감시 안 하고 있거나…네가 우리들한테 어떤 짓을 할 경우…"

"…"

"쪽수로도 밀릴 뿐더러…무엇보다 각오해야 될 거야…너를 믿고 있기는 하지만…만에 하나라도…"

"…"

"그러니까. 우리들 잘 지켜주어야 해? 응~♥?"

나는..주변에 아무도 없는 혼자였다가..마녀의 말에 넘어가버려서..

졸지에 집을 지키는 개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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