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107화 (107/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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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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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된다"

"예?"

"안된다고"

"…안된다니요?"

"아무리 네가 부모님 없다고 해도 가야 된다니까?"

이런 망할...기껏 아침 일찍 교무실로 찾아가서 담임선생한테 수련회를 빠진다고 얘기를 했는데 보기좋게 퇴짜맞았다.

"저기…안 가면 안될까요?"

"안된다면 안돼"

"…예"

담임선생의 태도는 완강. 나는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섰다. 내가..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선생은 진짜로 '2-C'학생 전부를 수련회에 보낼 것이라는 것을..

후...진짜로 가야되나? 뭐 집에 있어도..민정이 말대로 미연시나 하고 있겠지..

절대로 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수련회를 가야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만 갔다. 수련회 전 날, 학교가 끝나고 나는 마트에 들렀다. 민정이랑 지현누나의 밥 재료도 사 갈겸, 수련회에서 먹을 과자같은 거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우리가 가는 곳에 매점이 있을 것이 뻔하긴 하였지만..그건 다 먹었을 때 사면 되고..

집에 돌아오면 오늘도 어김없이 TV를 보고있는 민정양.

"오타쿠. 오늘은 일찍 왔네?"

"…잠깐 마트에 들렀다가"

"뭐 샀어?"

"그냥 반찬 재료들이랑…과자 조금"

"반찬재료?"

"너 먹을 거 해놓고 가게"

"진짜 밥 해놓고 가게?"

"그러면? 너는 계속 나 없는 동안 사 먹으려고 그랬냐?"

"…당연하지"

"그냥 밥 먹어라…"

"…알았어! 오타쿠가 그렇게 말한다면…까짓거 오타쿠가 해놓은 거 먹어줄게"

"뭐냐 그건…"

"그…그…그냥 오타쿠 성의 생각해서 먹어주는 거 뿐이니까!"

"그럼 너는 여태까지 내가 해놓은 밥은 안 먹었다 이거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뭐가 다르다는 거야?"

"이번에는…오타쿠가 스스로 우리 밥 해주는 거 잖아"

"…?"

"여태까지…지현언니랑 내가 요리를 못해서 마지못해 밥 해놓은 거 뿐이잖아…"

"…"

"그러니까! 먹어주겠다고! 돈 안 쓰고!"

"예예…"

"뭐야 그런 반응은!!!"

퍼억!!!

"끄헉!"

"…먹어준다고 하면 고맙게 여길 것이지!"

"…어이어이…"

"흥이다!"

바로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민정양.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는 거야...게다가 특별히 먹어주겠다고? 그건 또 뭔 소리인지 원...

생각해보면 요새 민정이와 많이 대화하는 것 같다. 여태까지 '필요'할 때에만 말을 나누는 민정이와 나였지만(대부분 민정이가 밥 하라고 하던가 청소하라고 하던가 민정이가 나한테 시킬 때지만..)근래에 들어서 부쩍 대화가 많아졌다. 아직도 나를 싫어하는 눈치는 여전한 듯 보였으나..이 정도면 민정이와도 꽤나 발전한 거겠지...

그런데 저 녀석의 성격이 툭하면 성질부리고 짜증을 부리니까..내가 힘들어하는 건 당연한 노릇이었다. 전에는 '오빠'소리도 간간이 들었었는데..지금은 '오타쿠'로 계속 불리고 있는 실정. 그래서인지 나와 민정이는 절친하게 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언젠가 사회생활을 해서 형제들이 뿔뿔이 나눠진다면..연락조차도 안할 수도 있다. 지현누나와도 민정이와도 유학 중인 서현누나도..게다가 나라는 존재는 여전히 이 '가족'에서 이방인이었기에..

지금이라도 민정이와 나름대로 대화를 나누어야했다. 언젠가는..모두 헤어져서..자신들만의 새로운 가정도 생기고..서로 바쁘게 지내다보니 형제 간의 연락도 못하고..먼 미래에서일어날 일 같지만 나에게는 '머지않아'와 같다.

시간은 흐르면 흐를수록 빠르게 지나가기에. 특히나 '나'의 경우에는..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아침 8시 30분 나는 늦게 학교에 도착했다.(단순히 나의 게으름때문에 늦었다) 교실에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학교 운동장에서 모이라고해서 갔더니 관광버스가 줄줄이 늘어져 있었고 반 별로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있었다. 3학년을 제외한 1.2학년이 같은 날에 가서 사람은 더 혼잡했다.

추리닝과 일상용 옷을 입고 왔는데 왜 이렇게 구분이 가는 지..대부분 애들은 청바지에 모자쓰고 잘 꾸민 채로 애들이랑 모여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나는 남들이 'yes'라고 말할 때 나는 'no'라고 말하는..? 아니 그게 아니라...유난히 튀었다. 혼자서 이런 후줄근한 옷을 입고 왔으니..애들도 '빈민'을 보듯 냉정하게 보고 있었다.

"박정우 왔냐?"

"아직 안 왔는데…"

"이 녀석 왜 이렇게 늦는거야? 8시 10분까지 모이라고 했건만…"

"세희도 왔는데…그 녀석은…"

"안 간다고 하지 않았었냐?"

"내가 허락을 안했다"

"선생님이 허락 안 하셨다고요?"

"그래. 그 녀석 분명히 귀찮아서 부모님 없다고 하고 빠질 게 뻔했으니까"

"안 오면 어쩌시려고요?"

"당연히 무단결석 처리해야지"

"…그 녀석 은근히 결석 자주 하지 않냐?"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를 빠지다보니…출석이…"

"저기 오는 것 같은데?"

"시체 저 새끼 아주…"

"시체라서 느린 거야. 썩어 문드러져서"

"…그건 또 뭔 소리냐?"

"미안. 농담이야"

"박정우"

"예"

"너…못 들었냐? 8시 10분까지 오라고 했을텐데…?"

"못 들었는데요"

"…그 때 자고 있었어요"

"…에휴…됐다. 왔으면 되었지 뭘"

"지금 출발 안 해요?"

"교장선생님 훈화말씀 계실꺼야"

"그러면 왜 이렇게 일찍 와요?"

"…모르지"

"원래 수련회 가기 전에 하잖아. 불만 갖지 말어"

"그렇다고 해도…"

"시작한다"

교장선생(전에 내가 협박했던)이 운동장 단상 위에 서서 그냥 평범한 말을 마이크를 통해 말하기 시작했다. 애들도 듣는 둥 마는 둥 모래만 파며 지루하게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도 멍하니 있던 와중에..

"야"

"…"

"정우야"

"…?"

멍하니 있다가 옆을 보니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이 서 있었다.

"오랜만이야!"

"…아…오랜만이다"

지루하디 못해 반응도 건성으로 대답했다.(솔직히 귀찮아서)

퍼억!!!!

"…끄헉…"

"오랜만에 인사했더니 반응을 꼭 그딴 식으로 해야겠어?"

"…잘 지냈었냐…?"

"덕분에. 잘~지냈지"

"…미안하다"

나도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바로 사과. 그녀는 싱긋 웃었다.

"친구…잖아…?사과 할 필요는…"

"…내가 멋대로 행동 한 것으로 인해서 너에게 피해를 끼친 거는 사실이니까"

"죄책감 가질 필요 없대두?"

"그냥…양심 상…"

"…"

"그 동안 어떻게 지냈어?"

"나야…잘 지내고 있었지…바쁘게 여러가지 하다보니…"

"교장선생님께 경례!"

"감사합니다!"

"우리도 움직이자. 버스에 타야지"

"…정우야"

"…?"

"가자"

나는 그녀를 따라서 2-C반 행렬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먼저 들어가기 전에 모래부터 털고 들어가"

"나랑 같이 앉자"

"그러지 뭐"

거의 마지막 순서로 버스 안으로 들어왔더니 누구 옆에 앉을 것인지 우왕좌왕하는 애들이 있었다. 담임이 조용히하고 빨리 앉으라고 해도 남녀공학이다 보니까..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앉으면 될 것가지고 이렇게 소란을 피울 필요가..

아. 있지. '연세희'라는 존재가.

나는 맨 앞에 앉았다. 이미 뒷 좌석은 모두 꽉 차있었다. 어차피 애들도 맨 앞에 앉을 리도 없을 뿐더러..게다가 나는 애들로부터 외면받고 있으니 상관없으려나?

안으로 들어가 창문을 통해 운동장을 보고 있었다. 벌써 움직이고 있는 버스들도 있었다.교장과 여러 선생들이 버스 지나가는 통로 옆에서 우리를 웃으며 마중하고 있었고..

그런 '위선자'들을 나는 차갑게 보고 있었다.

"정우야"

"엉?"

"옆에…자리 비어?"

"…!!!!"

"…자리 비어?"

"너 설마…내 옆에 앉으려고…?"

"응!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냥…다른 자리 얼마든지 많잖아. 굳이 내 옆에 앉을 필요가…"

"그래서…싫어?"

"…"

시끌시끌하던 버스 안의 분위기는 삽시간에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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