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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Reminisc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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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군"
"…?"
종례시간이 끝나고 모두가 교실에서 빠져나가고 있을 때. 나는 그를 조용히 불렀다.
"…잠깐…시간있어?"
"어. 시간은 있는데?"
"할 이야기가 있어서"
"여기서 말해줘도 되잖아?"
"아니…조용한 곳에서…"
"…알았어"
나는 그를 그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그러니까…너는 어떻게 해야하냐하면…"
"…"
"그 새끼한테 헤어지자고 말해. 매몰차게 차란 말이지…나처럼…"
"…!!!!"
"…왜…싫어…?"
"…"
"하지만 그 전에. 학교 끝나고 강당 쪽의 체육창고로 끌고 와"
"어떻게 하려고…?"
"그건 봐야 알아"
"…절대로 때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걱정하지마. 나는 그저 '경고'할거니까…"
"네가 약속한다면…데리고 올게"
"그런다음에 헤어지자. 이제 너는 필요없다고…자신의 '재미'를 위해서 심심풀이로 이용했다고…이제 너랑 놀기도 질렸으니 헤어지자고…"
"…!!!!"
"그렇게 말하면 되는 거야. 간단하지? 만약에 그런 말을 못한다면…"
"…"
"나는 그 새끼 보고 어떤 짓을 할지 모르니까"
"…"
"왜. 하기 싫어? 하지마 그러면. 하지만 장담못해 오늘 그 새끼가 살 건지 말 건지는 너의 손에 달려있으니까"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건 내 마음이고. 너는 닥치고 박정우 그 새끼 데리고 와"
"…"
"데리고 오지 않을 시에는. 어떻게 되는 지 알지?"
"…그 아이에겐 아무 잘못도 없는데…"
"얘기했잖아. 남의 여자 건드린 죄"
"…그건…"
"이 걸레년아. 쫑알쫑알 말대꾸하지 말고 닥치고 하란 말이야!!!!"
"…!!!"
"설마 너 그 자식이랑도 했냐?"
"…"
"했냐?"
"…안 했어"
"좋아. 좋아. 그 자식이랑 놀아나지 않았단 말이지?"
"…"
"잘해보라고. 정시하양. 내가 왜 너를 안 건드리는 줄 알아?"
"…"
"그래야 네가 더 고통스러워 할 것 같아서 말야…자신이 아닌 자신의 소중한 사람에게…"
"…나쁜 놈"
"네가 자초한 거라고 말했잖아. 그럼 방과 후. 체육창고에서 기다릴게"
"…알았어"
초조하다. 불안하다.
그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나를 따라와주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지도 않는 듯 그와 나는 체육창고로 가고 있었다.
그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미안해서 나는 그의 얼굴도 볼 수 조차 없었다.
나 때문에...나 때문에...그가 이런 위기를 겪게 되었으니까.
'나의 감정'으로 상처를 받고 있으니까.
내가 '헤어지자'라고 말한다면. 그는 어떻게 반응할까?
분노할까? 나를 증오할까? 수 많은 욕들을 나에게 쏟아낼까?
아니면. 차갑게 돌아설까? 반응도 없이..
나에게 원망의 말들을 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는 좀 더 가벼운 마음이 될 테니까.. 나는 그에게 죄를 짓고 있는데. 그 대가로 그가 수 많은 욕들을 해도 나는 그를 감사히 생각 할 것이다.
이제 와서...나는 '진정한 재미'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잘 모르겠지만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지루함'에 빠져있던 나에게 그는 새로운 활력소였다. 특이지만 착하고 배려심있는..그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었으므로. 어찌보면 나는 나와 동류인 사람에게 더욱 이끌리는 건지도 모른다.
겨우 찾았는데..이제 진짜로 행복해 질 거라고 생각했는데...재밌어 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끼이이익..
체육창고의 문을 열었다. 안에는 그 녀석을 비롯한 패거리들이 몰려있었다. 13명이 이 광경이 재미있다는 듯이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
"여. 왔냐?"
"너네들은 누구지?"
"글쎄?"
"시하. 아는 사이야?"
"…응…"
"…아는 사이라…아는 사이가 맞긴 한데…"
그 녀석은 뚜벅뚜벅 걸어와 나와 정우의 앞에 섰다.
"보시다시피…우리는 아는 사이를 넘어서…"
갑자기 나의 허리를 감싸안고 품으로 끌어안더니 강제로 입술을 덮었다.
"…!!!!!"
"…이런 사이야"
"…"
"처음보네. 박정우라고 했지? 반가워. 우리 '시하'가 꽤나 신세를 졌어…"
"…"
"오늘 너를 여기로 부른 건. 시하가 할 말이 있어서래"
"…시하?"
"…정우군……우리…우리…"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헤어지자고. 이젠 너는 필요없다고. 이미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절대로 얘기하지 못했다.
눈에서는 물기가 서서히 고인다. 안돼..시하야...냉정해져야 해...
"…우리…헤어지자"
"…!!"
"이젠 질렸어…너랑 함께하는 거…"
거짓말. 모두 거짓말.
"…"
"미안해. 사귀자고 해서. 나는 그 전에 이미 남자친구가 있었어"
"…재미…였냐?"
"…그래…전에도 얘기했었는데 너에게서 흥미가 있었어. 하지만 이제 재미가 없어졌어. 그래서 헤어지자고 얘기하러고 한 거야"
"…진심…이냐?"
"…이제는…이제는…"
"…"
"필요없으니까. '너'란 존재는…"
"…"
그는 너무나도 고요히 있었다.
허무. 배신감. 충격. 분노.
갖가지 감정에 휩싸여 그는 너무나도 가만히 나의 이별통보를 곱씹고 있었다.
"푸하하하!!!!!"
단체로 웃고 있다. 이게 웃겨...? 웃기냐고...사람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고 웃음이 나와..?
"이거 어쩌나? 박정우…너의 소중하디 소중한 여자친구가 갑자기 헤어지자고 얘기하니…"
"…"
"충격이 꽤나 큰 모양이네…좋아…시하 수고했어…"
"…수고…했어…?"
"야. 아직도 깨닫지 못했냐? 시하는 우리들 편이라고…너의 편이 아니라…"
"…"
"그럼. 하이라이트를 해야지?"
슥..슥..
모두 방망이는 물론이고 숨겨두었던 무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 잠깐!!!"
"뭐 정시하?"
"이러지 않는다고…"
"아. 그 약속? 나는 안 건드려. 나는 충분히 대가를 받았으니까. 하지만 이거 어쩌지? 내 친구들은 보시다시피 손이 근질근질하는 것 같은 데?"
"…!!!"
"…시작하자고"
그 소리와 함께 그 녀석이 나를 갑자기 안고 뒤로 빠졌다. 그리고 무리들이 정우 주변을 에워쌌다.
"…"
그는 조용히 있었다.
"스트레스. 확실히 풀어보라고"
퍽!!!
먼저 나무방망이가 그의 복부를 강타했다.
"크억!"
그는 복부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걸 시작으로 쓰러진 그를 단체구타하기 시작했다. 연장으로 부족했나본지 손으로. 주먹으로 그를 밟기 시작했다.
"그만…그만해…"
나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만하라고. 제발 부탁이니까 멈추라고. 하지만 그 외침은 입막음과 동시에 '웁!'하고 사라져버렸다.
파각! 파각!!! 콱!!!
퍼걱! 빠각!!!
소리가 크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의 몸은 피투성이가 되어갔다.
10분이 지난 뒤. 쉬지 않던 구타가 이제 지쳤나본지 잠깐 소리가 멈추었다. 그의 몸은 모래와 피로 얼룩져있었고 그의 주변에는 피웅덩이가 고일 정도 였다.
처참했다.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 새끼. 존내 약하잖아?"
"그러게. 이 정도 가지고 기절하다니. 우린 지치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저 여자 건드린 거야? 우효~ 진짜 개념없는 새끼네"
"그러니까 이 모양 이 꼴 된 거 아니야. 이젠 불쌍해지려고 한다"
"어이어이. 우리는 스트레스 풀려고 왔잖아? 더 즐겨보자고"
"기절 한 놈을 패는 건 재미없어…"
"정…시하…"
"뭐야. 이 새끼 기절하지 않았잖아?"
"정시하 부르는데? 어이. 네 이름 부른다"
"시…하…"
그가 나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 녀석이 옆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
"정우군…"
"시하…너…정말로 나를…좋아했어?"
"…"
옆의 시선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에라도 얘기하고 싶었다. 좋아한다고. 사랑하고 있다고.
'만약에 좋아한다고 얘기하면 그 자식은 죽는다'
귓속말. 협박.
나는...그것에 굴복하고 말았다. 결국은...
"…아니"
"…'장난감'…이었겠지?"
"…"
"…?"
"…어…"
자꾸만 나오려고 하는 눈물을 애써 억누르고 최대한 냉정하게 말했다.
"하하…하하…결국에 너도…하하…"
그는 비틀비틀 거리며 일어나고 있었다. 허망한 웃음을 지으며.
"이 녀석 미쳤나? 왜 웃고 있어?"
"그러니까. 정신 차린 거 같은데?"
"하하…크하하…"
"이 새끼가 미쳤나!!!"
휘잉!
어떤 애가 나무방망이를 휘둘렀다. 맞을 줄 알았는데 너무나도 쉽게 피해버렸다.
"크크큭…크크크…"
빠각!!!
방망이를 휘둘렀던 애는 갑자기 휘두른 그의 주먹에 널부러졌다.
"…!!!"
"크크큭…낄낄낄…크크크…"
말도 하지 않는다. 단지 웃음을 짓고 있었다.
"크크크큭!!!!!!!!!!!!!"
광기어린 웃음과 함께.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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