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9 / 0318 ----------------------------------------------
Part 5. Reminiscence
===============================================
"정우군"
아침. 그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
"오늘. 데이트 할래?"
"…데이트?"
"우리 사귄 지 3주나 지났는데 데이트 한 번 못했잖아"
"…그랬었나…"
"칫. 정우군은 여자친구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나 보지?"
"…미안…"
그는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어디…갈까?"
"어디라니? 이럴 때에는 남자가 리드해야 되는 거 아니야?"
"…데이트는 처음이라서…"
"정우군. 쑥맥이야?"
"…"
"그러면. 오늘 내 맘대로 할래!"
"…왜?"
"그 동안 여자친구한테 무관심 했던 죄"
"…"
"오늘 확.실.히. 책임져 줘야 돼?"
"…알았어"
"히힛~♡"
방과 후. 우리 둘은 함께 교문을 나섰다. 아직 손도 한 번도 잡지 못했따. 보통이면 사귄지3일이나 4일 쯤 되면 손도 금방 잡을 수 있었는데 우리는 몇 주가 지나도록 손 한번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바보인건지…이럴 때 손 잡아줘야 되는데 무심하게 거리를 두고 걷고 있었다.
"…칫"
내가 꼭 해줘야 돼? 나는 그의 손을 턱하고 잡았다.
"…!!!"
"정우군. 왜 그렇게 놀라는 거야? 손 한번 잡았을 뿐인데…"
"…아…"
"바보 정우군"
우우우웅...
"이게 무슨 소리지?"
"아! 문자 왔나 보다! 잠깐만…"
「어디야?」
"…"
"…무슨…내용인데?"
남자친구의 문자. 하지만 지금은 별로 응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별 거 아니야. 어서 가자~ 정우군~"
나는 한시 바삐 그의 손을 잡고 내가 가고 싶어하던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고 싶어하는 곳이…"
"웅! 여기!"
나는 평소에 '동물원'에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사귀던 남자친구들과 데이트를 할 때마다 '동물원'보다는 유치하다면서 '영화관'이나 '놀이공원'이나 가자고 절대로 가지 않았었다.
"…"
그도 의외여서 놀랬는지 아니면 싫은 건지 침묵.
"왜…싫어…?"
"아니…싫다기보다는…"
"치. 가기 싫다는 거 잖아"
"아니…그게 아니라…"
"그러면 뭐야?"
"동물…"
"동물이…뭐?"
그는 속이 메스꺼워서 '욱!'하며 연신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정우군!"
"쿨럭! 쿨럭!"
"정우군…대체 왜 그러는 거야?"
"쿨럭! 쿨럭! 괜찮아…"
"괜찮기는 뭐가!!!"
"조금 있으면…쿨럭! 괜찮아지니까…쿨럭! 잠시만 기다려…"
그는 서둘러 화장실로 뛰어나갔다.
"…후…"
조금 시간이 지나 화장실에서 돌아온 그는 이제야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대체…"
"신경쓰게 해서 미안…조금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안 좋은…기억?"
"신경쓰지마. 동물원 가고 싶어했지?"
"응…하지만…"
"들어가자"
"정말…괜찮은 거야?"
"괜찮으니까…오늘은…네 맘대로 하는 거잖아? 들어가자"
"…응"
그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남자친구들과 다르게 나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주고 있었다.(그것이 우유부단 한 것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은...)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났냐는 듯. 우리들은 동물원 여기저기 구경을 하며 돌아다녔다.
"여기! 여기! 일로 와봐!"
나는 그를 끌고다니며 정말로 즐겁게 구경하였다.(반면에 그는 즐거운 건지 안 즐거운지 도통 알 수 없었다)평소에 데이트할 때와 다르게 억지로 재미있어하는 것이 아니라 사파리차를 타고 가다가 맹수가 갑자기 차에 올라타면 '꺄악!'하고 그의 가슴에 안겨보기도 하고 함께 원숭이들한테 먹이도 던져줘보고..나의 입가에는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정우군"
"응?"
우리는 저녁을 먹은 뒤에 손을 잡고 한적한 길가를 걷고 있었다. 그 뒤에는 바로 러브호텔로 가거나 남자친구의 집으로 가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않고 그냥 걷고있었다. 오늘따라 가슴 뭉클할 정도로 좋았던 날은 없었다.
그저 즐겁고..그저 웃고..그저 기뻤다.
다른 남자들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두근거림'이 그에게는 느껴졌다.
폐인같고 음침해보이고 우유부단하고..뭐 그렇지만 착하고 배려심있고 그리고 나를 순수하게 바라봐준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욕망'으로 나를 쳐다보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나…사랑해?"
"무슨 말…"
"내가 사귀자고 했을 때. 그 때 너도 나 좋아해서 사귀자고 얘기했냐구"
"…"
"…?"
"…어"
"진짜로?"
"그냥…뭐라고 해야 할까…첫 눈에 반했던 것은 아니야…"
"치. 그러면?"
"그저…너랑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나에게…흥미를 느꼈다는 거야?"
"어…좋아한다라던가 사랑한다던가 그런 감정은 나도 잘 모르겠지만…'흥미'였어"
"…아까 전의 말은…?"
"그 흥미가…'좋아함'이었는지도 몰라…차차 좋아하게 되는…"
"…그런데 사귀자고 했을 때 왜 이렇게 뜸 들인거야?"
"믿기지가 않아서. 너 같이 예쁜 애가 나에게 고백했다는 것도 믿기지가 않았고. 대체 무슨 이유로 나에게 고백했을까? 하고 궁금하기도 했고"
"…나도…똑같은 이유"
"…재미있을 것 같아서?"
"너란 애. 진짜 신기해서. 그리고 너에 대해서 알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재미있을 것 같잖아? 이렇게 음침하고…비밀에 쌓인…"
"…"
"여자…처음 사귀어 보는 거야?"
"…어"
"후훗. 그럼 내가 '첫사랑' 인거네?"
"…어"
"역시 귀여워~♡ 우리 정우군~"
"귀엽다고 말하지는 마라…"
"왜~~~? 부끄러워~?"
"…"
"진짜 부끄러운 가 보네? 히힛~"
"…그만 놀려…"
"싫은데~"
"그만 배웅해줘도 돼"
아파트 현관 앞에서 우리는 멈춰섰다. 이제는 헤어져야했다.
"여기야?"
"응. 오늘 정말 즐거웠어"
"즐거웠으면…다행이네…"
"너도…즐거웠어?"
"나름"
"꼭 그렇게 말해야해?"
"재미있었어"
"진작에 그렇게 말했어야지…"
"그럼. 내일 학교에서 보자"
"응! 다음에 또…"
"…응"
이 처음이자 마지막 데이트는 끝이 났다.
그 이후. 나와 그는...다시 좋게 만날 수 없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