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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Reminisc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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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군"
"…?"
"나랑…사귀지 않을래?"
진심 반. 재미 반. 정확하게 말해서 진심이 더 쏠려있는 말. 어디까지나 나도 모르게 뱉어버린 말이었다. 순간 나에게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도 까먹고 그와 이어져있는 이 '끈'을. 그리고 오랜만에 나의 '흥미'를 채워줄 사람을 만났다는 기쁨에 말해버렸다.
말하자면 나는 새로운 '장난감'을 찾은 것이었다.
"…"
그가 나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당황하고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하니 숙였다.
후훗..이 녀석 꽤나 귀여운 면이 있네..나는 조금 더 장난을 쳐보기로 하였다.
"정.우.군.♡?"
나는 그의 옆자리에 바싹 붙어앉아 그의 귓가에 숨을 '후~'하고 불어넣었다.
"…!!!"
나의 이러한 적극적(?)인 행동에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귀.여.워.~ 정우군~♡"
"…"
그는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대답은?"
"…"
그는 심사숙고 하고 있었다. 정말로 심각히 고민하는 듯 보였다.
"…장난…같은 데…"
"그런 것도 있는 거 맞지만…진짜로 한 번 너랑 사귀고 싶은 마음도 있어"
나는 한 번도 남자들에게 스스로 고백을 한 적이 없었다. 모두 남자들이 먼저 나에게 고백을 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사귀고 싶은 마음'이 든 적도 처음이었다.
나와 뭔가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해. 나는 흥분하고 있었다.
"…너…남자들한테 인기 많잖아…어떻게 나같은 놈한테…"
"재미있을 것 같아서. 너랑 사귀는 거"
"…별로…"
"네가 재미없다고 생각할 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그냥 해보는 거야. 그리고 나만한 여자는 어디든 찾아봐도 없을 걸?"
"…"
"몸매좋지. 얼굴 예쁘지. 성격좋지. 나 같은 여자 어디있다고"
"그런 말을 자기 스스로 말하냐…"
"그럼! 내 자신감인걸!"
"…그러냐…"
"그래서. 너는 어때?"
"……"
"에이. 재미없게 오래 끌지 말고. 싫으면 싫다. 좋다면 좋다. 얘기해"
"…"
"…거절…이야…?"
"…"
정말 애가 타도록 이 녀석은 우유부단했다. 그냥 좋다고 얘기하면 될 것을...
"…사귀자"
"…에…?"
"사귀자면서. 사귀자고"
"…진짜…사귀자고…?"
"나라도 괜찮다면. 얼마든지"
"…"
나는 그렇게 해서 그와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나의 이중생활은 시작되었다. 예전부터 있었던 남자친구와 데이트 하는 시간도 쪼개야했고 그리고 새로이 사귄 그와의 시간도 쪼개고 쪼개서 배분을 잘 해야했다.
다행히도 박정우. 나의 두번째 남자친구는 핸드폰이 없었고 그리고 스스로 데이트 하자는 소리도 없어 나는 끈질기게 데이트를 즐기고 싶어하는 첫 번째 남자친구와 여유롭게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뭐야...사귀자고 말했으면서 이렇게까지 관심이 없는 건 또 뭐야...?
그에게 살짝 서운한 마음이 생기기도 하였다.
"…시하야"
"…왜?"
첫번째 남자친구의 집에서 둘이서 즐기고 있다 옷을 다시 주섬주섬 꺼내 입고 있는 나에게 갑자기 그가 질문을 해왔다.
"…요새 많이 바빠?"
"…바쁘다니?"
"아니. 왠지 네가 바쁜 것 같아서"
"전혀. 이렇게 너랑 데이트도하고 섹스도하고 다 하는 데 왜 이렇게 바쁘게 보인다는 거야?"
"…아무 것도 아니야"
"…싱겁긴"
"그런데…오늘 부모님 안 돌아오셔. 자고 갈래?"
"…아니. 집에 돌아가야 해"
"그러지말고 자고 가. 여태까지 사귀면서 너. 한번도 우리집에서 잔 적 없었잖아?"
"밤에도 계속 나 괴롭히는 거 아니고?"
"…그럴지도…"
"응큼해"
"…사귀고 있는 사이면 얼마든지 하잖아? 그러니까 자고 가"
"미안. 집에 돌아가야 해. 부모님 기다리고 계시거든"
"네가 언제부터 부모님 생각도 하고 그랬냐?"
"…"
"…아…"
"갈게"
나는 차갑게 옷을 다 입고 현관문을 빠져나가려 했다.
"…미안해…"
그는 현관문 앞까지 쫓아와서 나에게 사과를 했다.
"아니…괜찮아. 네 말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일 봐"
"…어…내일 봐…"
나는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집을 빠져나왔다.
이 남자도 똑같은 부류였다. 자신의 쾌락만을 우선시하는 그런 부류. 그리고 해야할 말과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였다. 이 남자는 조금은 다를 거라 생각했었지만 전혀 아니었다.
'박정우'. 그라면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줄 수 있을까?
처음으로 만난 나와 '같은 부류'. 이 남자라면...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런 생활에서 해방 될 수 있을까?
문득 그가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그의 집주소. 연락처. 성격. 좋아하는 것. 취미 등. '박정우'라는 사람을 설명해줄 수 있는 그러한 모든 것들.
그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아무 것도 모르는. 그 기나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꽁꽁 숨긴 것처럼..모든 것이 비밀스럽기만 한 그를.
나는..이 소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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