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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Reminisc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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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오렴"
"…아빠는…어디 나가셨…"
"아침 일찍 어디 가더구나…어디로 가냐고 물어도 대답을 해주지 않고…"
"…그래요…?"
"시하야. 혹시 아는 것이라도 있니?"
"…아니요"
"…그렇구나. 저녁시간 때 집에 밥 먹으러 올거니?"
"아마도"
"그럼 오랜만에 아빠 들어오시면 외식이라도 할까?"
"저야 좋죠"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
"네"
가방을 메고 학교로 등교하던 나는 저 앞에서 머리카락이 엄청나게 긴 남자를 발견했다. 우리학교 교복인데 저렇게 머리를 길게 기르면 두발단속에 걸릴텐데...아니. 딱 한 사람 있었지.
'박정우'. 같은 반에 있는 녀석.
등굣길도 아직 머나멀고 혼자가기에도 심심한데 저 녀석이랑 얘기 좀 해볼까? 나는 살짝 뛰어서 그 녀석과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정우군"
"…"
툭!
내가 어깨를 건드리고 나서야 뒤를 돌아본다. 이 녀석은 왜 이렇게 눈치가 없는 건지..
"…정시하?"
"뭐 새삼스럽게 이름을 다 불러. 그냥 시하라고 말해"
"…무슨 일이냐?"
"그냥. 심심해서. 같이 학교나 얘기하면서 가자고"
"…"
나는 그의 곁에서 걷고 있었다. 행여 남자친구가 봐도 그냥 '아는 사람'이야 라고 말한다면 믿어주겠지..
"…정우군"
"…"
"정우군?"
이 녀석...정말로 대단한 녀석이다. 어떻게 걷는 와중에도 졸 생각을 하다니.
툭툭.
"…?"
"…정우군 정신 차려"
"…"
"위험하지 않아? 걸으면서 조는 거"
"…별로…"
"아무리 졸려도 그렇지…"
하암~
"…상관없잖아"
내 말은 끝까지 무시하면서 졸면서 등교하는 그 였다.
오늘도 창가 쪽 맨 뒷자리에 앉은 그는 창문을 열고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맞으며 꾸벅꾸벅 조는 것이 아니라 책상에 엎드려 숙면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이런 그의 만행(?)을 저지하는 선생들의 시간이 수두룩한 오늘이었다. 1교시부터 4교시까지 콤보로 모두 그를 깨우려고 아직도 눈물겨운 투쟁을 하고 있는 선생들과 5교시에 들어오는 선생은 뭐..그냥 포기 했고. 6교시부터 7교시까지 다시 그를 깨울 것이다.
그렇다고해도 그는 절대로 안 일어났다. 일부러라도 안 일어나려고 하는 듯 보였다. 점심시간까지. 그는 계속 잠을 잤다.
점심시간. 그는 보통이면 7교시까지 한 번도 일어나지 않고 풀로 자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오늘은 특별하게도 점심시간 종이 치자마자 일어났다. 결국 일부러 안 일어났다는 것이다. 등에 매를 몇 번이나 맞았어도 꿋꿋이.
시간이 흘러서 우리 반에도 어색한 기운은 사라지고 끼리끼리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수다를 떨고 같이 급식을 먹으러 갔다. 나도 물론 친구들(대부분 일진)이 생겨서 그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갔다. 남자친구가 '같이 먹자!'하고 우리 반에 갑자기 들이닥치는 그런 것은 없었지만 매일 남자친구와 식당에서 같이 먹는 것은 사실이었다.
반면에 아직도 친구가 없어서 그저 애들무리에 간간이 끼어들어 얘기만을 듣고 있는 이 불쌍한 아웃사이더는 급식실에 한 번도 오지 않았었다. 단 한 번도. 급식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왜? 배고프지 않아? 라고 질문을 그에게 한 적이 있었는데도 묵묵부답.
내가 생각한 바로는 그는 점심시간에도 잠을 자서 였다. 그 망할 불면증 때문에.
그는 한참 동안 창가를 바라보고 있다가 자신의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들었다.
주섬주섬 꺼내든 무언가가 보따리에 쌓인 채 책상으로 나왔다. 그가 보따리를 풀어보니 겹겹이 쌓인 플라스틱 통이 나왔다.
'도시락'
처음으로 그가 학교에 도시락을 가져왔다.
대부분 애들이 급식실로 빠져나간 터라 학생들도 아무도 없던 상황. 그는 같이 있던 젓가락과 수저를 꺼내들더니 플라스틱 통 뚜껑을 열어서 밥과 반찬들을 유일하게 보이고 있는 입 부위로 냠냠 먹고 있었다.
"…왠일로 도시락을 갔고 왔네?"
우물우물.
"…너 말야. 왜 이렇게 내 말을 씹는 거야?"
우물우물.
"일단 다 씹고 얘기해"
우물우물.
빠직!!!!
뭔가 내 신경부위 중 일부가 끊어진 느낌이 들었다.
"정.우.군.?"
우물우물.
"…?"
"그.러.니.까. 나.랑.얘.기.좀.하.시.죠?"
우물우물.
"…에휴"
"뭘 얘기해?"
"이제야 다 씹었어?"
"대충은"
"도시락. 왜 갔고 온 거야?"
"배고프니까"
"여태까지 가져오지도 않았잖아?"
"갔고 왔어"
"언제?"
"매일"
"그런데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었는데?"
"내가 안 꺼냈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아하…"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도시락. 사온 거야?"
"아니"
"그럼 엄마가 만들어 준 거야?"
"아니"
"그럼…다른 가족이 만들어준 거야?"
"아닌데?"
"설마…네가…?"
"어"
이 녀석이 요리에 재주가 있을 줄이야...그의 도시락 통에는 통 마다 먹음직스런 반찬들이 수두룩하게 있었고 그는 정말로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이게 모두 만든 것이라고...?
"내가 만들었는데?"
"너…요리 잘하는 구나…"
"별로…그냥…배고프니까…"
배고파서 요리를 익혔다는 소리는 무슨 소리일까?
"나도 먹어도 돼?"
급식이 맛이 없었어도 배고파서 먹었었는데 이번에 그가 도시락을 가져오니 뭔가 먹고 싶기도 하고...그가 만든 요리의 맛은 어떠한지 궁금하기도 하고..대충 그런 이유에서 나는 급식실로 가지 않기로 하였다. 지들끼리 알아서 잘 먹겠지...
"…맘대로"
선심좋게 먹으라는 그. 이렇게까지 착한 인간은 아닌 것 같았는데.
"젓가락 좀 빌릴게"
나는 그가 들고 있던 젓가락을 빼앗아서 그가 만들었다고 주장한(?) 부침개 한 조각과 김치 하나를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가 만든 요리는 정말로 맛있었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하게 보여서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하였는데 이만하면 '도시락셔틀'을 시키고 싶을 정도였다.
"맛있어"
"…맛있게 먹었으면 다행이고"
"진짜로 네가 만든 거야? 가족들이 만든 게 아니고?"
순간 '윽!'하며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기라도 한 듯 그의 얼굴은 어둡게 변해가고 있었다.그렇다고 정곡을 찔린 것 같지는 않았고..'가족들이 만든 거'라는 소리에 표정은 갑작스럽게 변해버리긴 했는데..
"…내가 만든 거야"
"헤에…정우군한테 이런 재주가…"
"…불만있어?"
"아니~ 그냥 남자가 요리 잘 한다는 게 신기해서~"
"너는 나한테 항상 신기하다고만 얘기하는 것 같다?"
"신기하잖아. 너라는 존재 '자체'가 신기한 거 같아"
"그냥 특이한 놈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냐?"
"아니아니. 이 정도면 tv 속에 나오는 기인으로 나와도 될 것 같아"
"…그거 진심이야?"
"설마 진짜겠어? 그냥 얘기가 그렇다고. 진짜 신기해"
"…"
"도시락"
"…뭐?"
"내 꺼 점심. 이걸로 때울래"
"…급식은 어떡하고?"
"맛 없어…이게 훨씬 나아"
"누구 맘대로?"
"내 맘대로지"
나는 젓가락을 그에게 다시 돌려주지 않고 도시락 통에 있는 밥과 반찬들을 열심히 집어먹었다.
"…어이…잠깐…설마 다 먹으려고…"
"히힛~♡"
나는 결국 다 먹어버렸다. 하나의 남김도 없이. 모조리. 쬐끔한 찌꺼기도 남기지 않고..
"…"
그는 할 말을 잃어버렸는지 책상에서 멍하니 있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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