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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Reminisc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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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우'. 여태까지 내가 봐온 녀석들 중에 가장 이상한 녀석이었다. 키도 크고 잘 생겼는데 항상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여자아이들이 다가가기 싫게 만드는 데다가 왠지 스스로 '왕따'를 자처하는 분위기였다.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지 않으면 절대로 대화하지도 않았고 조용했다.
어두침침하고 폐인같은 분위기. 그리고 그 녀석과 얘기하는 사람들의 부류를 살펴보면 오타쿠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같았다. 우리와 전혀 별 세상 얘기를 하는 듯이 지들끼리 쑥덕쑥덕. (그렇다고 그 녀석은 말하지 않고 그저 그 오타쿠들의 얘기를 이해한다는 듯 가만히 듣고만 있었지만)
그 녀석은 진짜로. 뭔가 머리에 부품하나가 빠져서 이상한 것 같이 보였다.
'다크 서클', '회색빛 눈'
그 녀석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중의 특징. 우리 반 중에서는 나 만이 그 녀석의 용모를 알고 있었다. 아무도 얼굴을 몰랐다. 그 녀석과 같은 중학교에 나온 애들도 자신도 그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녀석들의 얘기로는 '중학교 때부터 왕따였다'라고..
내가 왜 이런 녀석한테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그 녀석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남자들은 모두 똑같다'라는 나의 사고방식에 다른 변화를 줄 것 같아서였을까.
그러니까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새로이 생긴 '놀이거리'라는 거다. 그 녀석이라는 존재는..
하지만 이미 나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 당연히 일진 중 한 명의 여자친구가 되었다. 앞으로 3년간의 고등학교 생활의 편리함을 제공해줄. 뭐 그런 사람이었다. 잘 생기기도 했고(그 녀석보다는 아니었지만) 공부도 잘 하는 편 같았고..쉽게 말해서 '엄친아'분위기가 나는 그런 녀석과 사귀고 있었다.
벌써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 된지 어느 덧 3개월. 서서히 더워지는 6월이었다.
어찌보면 나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남자친구와 사귀고 있는데 그 사람한테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냥저냥 평범한 여자친구의 행동을 보여주고 있었을 뿐. 그 남자친구에게는 흥미가 전혀 가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가 가는 쪽은 '이 쪽'이었다.
특이하고도 특이한. 어떻게보면 또라이같은 녀석.
나는 그 녀석과 많이 친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하다보니 나와 그 녀석은 항상 붙어있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맨 오른쪽 줄 끝에 앉아있다면 그 녀석은 분명히 옆자리나 뒷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녀석이 학교에서 정신을 차리는 날은 정말로 내가 셀 수 있을 정도로 진짜 희귀하다. 수업을 듣는 것 조차도 '기적'이라고 부를 정도로. 별명은 당연히 '시체' '좀비'. 게다가 그 녀석 특유의 다크포스 때문에 진짜로 '시체'로 착각해서 학기 초반. 기절한 여선생도 있을 정도였다.
"정우군"
오늘은 정말 가끔씩 찾아오는 그 녀석이 말짱한 상태에서 수업을 듣는 날이었다. 그 날은 유일하게 내가 그 녀석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날이기도 하였다.
"…?"
나는 '정우군'이라고 호칭을 정해버렸다. 그냥 '정우'라고 부르면 될 것이지 굳이 '정우군'이라고 할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순전히 나의 '특별취급'에서였다.
"응…그러니까…"
딱히 할 말이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에 대해서 뭔가 서로 통하는 화젯거리를 찾지 못하였다. 원체 말이 없는 놈이라서 더더욱이 나는 대화를 하기가 힘들었다.
"뭔데?"
정말로 딱딱하다.
"…있잖아…"
다른 남자아이들은 착하면서도 부드럽게 말을 해주는 데 말이야..이 녀석도 그렇게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딱딱한 느낌이 드는 건 왜지..
"…뭐?"
"너의…그…뭐냐…'눈'…"
나는 그 녀석을 알아온 3개월 동안 한 번도 '눈'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 않았었다. 그 날. 내가 그 녀석의 얼굴을 본 날부터 계속 질문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어서 '다음에 얘기해야지…'하고 참고 참았다가 이제와서야 질문을 한 것이다.
"내 눈?"
"…응…"
"눈이 뭐 어쨋는데?"
"…네 얼굴 봤어"
"…언제?"
"음…내가 너에게 물을 끼얹었을 때? 그 때 내가 손수건 건네줬잖아. 그걸로 네가 얼굴을 닦다보니 순간적으로 얼굴이 보여서…"
"그래서?"
"어떻게 된 거냐고…'눈'이…"
"…"
침묵. 그는 묵비권을 행사할 작정이었나보다. 뭔가 알려주기 싫은 사연이 있다라던가?
"…보통 사람들이랑…다르잖아…그 눈…"
"회색…"
"…응…"
"회색이라서 신기해?"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해? 얼마나 신기한데…그래 마치…"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이 가진 눈같아서…'
"…마치?"
"으응…아무 것도 아니야. 그래서. 신기하다고. 네가 회색의 눈을 갖고 있다는 것이"
"…고작 그런 거 물어보려고 오랫동안 뜸 들였냐?"
"…?"
"너. 나랑 얘기할 때마다 뭔가를 말하려고 하지 않았어?"
"…맞아"
"그 얘기가 '이 얘기'야?"
"…응…"
"단순하기는"
"아니 그것 말고도…왜 이렇게 다크서클이 심한지…"
"다크서클? 아…당연히 잠을 못 자니까 그런 거 아냐?"
"…그거야 당연하지만…"
"불면증"
"…?"
"난 불면증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밤에는 절대로 잠을 못 자. 아침이나 낮에는 잘 수 있지만…"
"…왜…? 불면증은 아예 '잠'을 자지 못하는 거 아니었어?"
"나는 나의 이러한 증상을 그냥 '불면증'이라고 불러"
"…어째서? 왜 밤에만 잠을 자지 못 하는 거야?"
"매일 악몽을 꾸는 기분을 알아?"
"…??"
"악몽 몇 번이나 꿔 봤어?"
"…딱히 기억은 안 나지만…별로…"
"그것을 겪을 때…어떤 기분이 들어?"
"두렵고…나에게 진짜로 일어난 일 같고…불안하고…"
"그거를. 나는 매일 꾸고 있다는 거야"
"…"
"침대에 누우면 눈을 감아. 그리고 정신이 현실세계가 아니라 꿈의 세계로 갈 때. 그 꿈의 세계에서는 너무나도 공포스러운 세계가 나타나"
"…어떤 거?"
"…"
그는 또다시 말을 하지 않았다.
나의 고등학교 생활 1년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박정우라는 사람의 베일을 한 꺼풀씩 벗겨내는 시간'이었다고.
"무슨 생각해?"
"…어?"
"방금 전 까지 멍 때리고 있었잖아"
"아니…생각 할 게 좀 있어서…"
"즐거운 데이트 시간인데 그렇게 하면 안되지"
"너는 즐거워? 나랑 이렇게 있는 게?"
"어. 즐겁지 당연히"
"왜?"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손 잡고 걸어가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건지 알아?"
"다른 여자들이랑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 그런 거"
"너아니면 안돼. 그런 기분 못 느껴"
"…왠지 느끼한 말투다?"
"그렇게 느끼냐? 큭큭큭…어쨋든 시하야"
"…응?"
"너도 나랑 있으면 즐거워?"
"…응"
나는 그에게 거짓말을 했다.
"…즐겁다면 다행이다"
"뭐야. 기분이 착 가라앉았잖아. 즐겁게 데이트하자면서?"
"네가 잠깐 멍 때리고 있었으니까 그렇지"
"그랬었나?"
"붕어야?"
"뭐?"
"농담이야 농담. 그러고보니 영화시간 다 됐다."
평범한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 내가 왜 남자친구인 사람의 사귀자는 고백에 응해서 연인사이가 되었는지 아직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아마도 나는 이 '놀이'를 아직도 즐기고 싶은 것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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