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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Reminiscence
외전 계속 해서 쓰고 있습니다..(현재 4편까지 써놓았구요..)
많이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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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식이 끝나고 담임선생의 간단한 종례와 함께 학생들은 모두 귀가했다. 모두 웅성웅성거리며 시끄럽게 교실 문을 나가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이 녀석은 정말로 잘 잤다. 쿨쿨..코를 골지는 않았지만 피곤한 지 돌아가려고 하는 애들이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애들은 '알아서 일어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포기하고 빠져나갔다. 이상하게도 나는 애들이 모두 나가는 바람에 맨 마지막으로 교실을 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맨 오른쪽 줄 끝에 앉아있는 그는 책상에 엎드려서 여전히 새근새근.
"깨워? 말어?"
나도 그냥 냅두고 돌아갈까했었다. 그런데 이 교실에선 나와 그 말고 다른 사람이 없었다. 복도를 둘러보아도 휑하였고 다른 반 교실에도 아무도 없었다.
"일어나"
보다못한 나는 그를 깨우기로 작정하고 책상에 엎드려있는 그를 열심히 흔들었다.
"…"
"일어나라니까. 애들 다 갔어"
"…"
"일어나래도!!"
"…"
이 녀석은 무적이야...아니면 감각이 없는 거야? 진짜 시체네 시체...
나는 계속 흔들어깨웠다. 이왕 시작한 거 이 녀석을 깨워보자였다. 게다가 오기가 생겨서 몇 분이나 이 녀석을 흔들어보고 때려도보고 발로 차보기까지 했다.
"…"
"헉…헉…"
절대로 안 일어난다. 되려 내가 깨우느라 탈진해버렸다.
"좋아…네가 계속 그런다 이거지?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구!!!"
여기에서 질 내가 아니다. 반드시 이 녀석을 깨우겠어!라고 해도 포기할까?라는 생각이 앞섰다. 어차피 이 녀석과 나는 아무 관계도 아닌데 뭣하러 내가 오지랖을 떨어서 이 녀석을 깨워?
에휴..그냥 돌아가자..내가 한게 잘못이지..인정한다 인정..You win! 이겼다고!
할 까보냐!!!! 내가 질 것 같아? 난 정시하라구!!!!
나는 비장의 수로 교실 안에 있던 철양동이를 화장실에가서 물을 꽉 채운뒤에 이 녀석한테 물을 퍼부으려고 했다.
"어이! 셋 셀동안에 안 일어나면 이거 뿌려버린다!!!"
"…"
대체 내가 왜 이런 짓 까지 해야 되는거지?
"1…2………"
"…"
"난 잘못없다. 안 일어난 네가 잘못이야!"
촤악!!!
나는 있는 힘껏 물 양동이를 그한테 부어버렸다. 처음 만난 사람한테 이런 짓까지 하는 것은 어찌보면 미안한 짓이었지만..그것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으…차가워…"
오. 반응 있네. 드디어 나의 노력이...
"…좀 일어나"
"끄…흐…음…"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정신차렸어?"
"차가워…"
"물 맞았으니까 그렇지"
"네가…그랬냐?"
"어"
"왜 그런 짓을…"
"네가 안 일어나니까"
"…그랬었나…"
"주위 좀 둘러보지?"
"…왜 아무도 없지…"
"개학식이라서 애들 모두 일찍 다 갔어"
"나는 자느라 그것을 못 들은거고?"
"어"
"…일단 깨워줘서 고맙다"
"그런데 어쩔거야? 옷은?"
"네가 책임져야지"
"내가 왜?"
"…엉?"
"내가 왜 책임져야되냐구"
"네가 물을 퍼부었으니까 그렇지"
"나는 계속 흔들어깨웠어. 그런데 네가 안 일어나니까 어쩔 수 없이 그런 거라니까?"
"그래서…책임 없다?"
"응"
"…무책임하구만…"
"이렇게 깨워준 것 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판에 그런 소리를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
"이딴 소리는 그만하고 이제 어쩔거야?"
"뭘?"
"너 옷"
"그냥 가야지"
"지금 3월이야. 춥지 않아?"
"어쩔 수 없지. 그냥 이렇게 가야하는 수 밖에…"
"자."
"…뭐야 이건?"
"옷은 몰라도 얼굴이라도 닦아"
"…그거 고맙군"
그는 내가 건네준 손수건을 받고 머리를 걷고 얼굴을 닦았다.
그 순간, 나는 머리로 숨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순간적이었지만.
"…!!!"
"…왜 그런 표정으로 봐?"
"…아니…아무 것도 아니야"
"손수건 잘 썼어"
"…응"
"그럼 갈게"
"잠깐…!!!"
그는 나의 말을 무시하고 가방을 메고 바로 교실 뒷문을 빠져나가 뛰어갔다. 나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안하고 그 모습을 한 동안 지켜보고만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바로 내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풀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워있으면서 그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잘 생겼는데…"
이 정도로 잘 생긴 사람은 나는 처음으로 봤다. 내가 사귀었던 남자들과는 완전히 천지차이. 그렇다고 내가 외모만을 보고 그에게 반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신경이 쓰일 뿐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본 그의 얼굴을 다시 상기시켰다. 누구보다도 미남인 얼굴. 하지만 그의 눈가에는 짙디 짙은 다크서클과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라 외국계 혼혈아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외국 사람이라도 절대로 '그런 눈동자'는 갖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회색빛…눈…"
그의 허무한 듯한 회색빛 눈동자가…자꾸만…자꾸만…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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