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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Hypocri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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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합은 15점 3세트로 하는 것이 어때?"
"좋아요"
"자…서브권은 먼저 줄게"
"네"
그녀는 당찬 각오로 이 게임을 이겨보겠다는 심산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지기 싫어하는 강한 승부욕. 그녀는 그런 녀석이었다. 그녀의 서브와 함께 게임은 시작되었다. 여성들의 대결이라 부드럽게 오랫동안 치면서 상대방의 실수를 유도하는 일명 '머리싸움'이었다.
파캉!
"아웃! 10:3!!!"
"헉…헉…"
그녀는 지쳐버렸다. 오랫동안 치는 랠리. 그녀의 체력은 여태까지 계속 게임을 해오면서 경험을 쌓은 아줌마의 체력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그녀가 밀릴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 하지만 겨우 1세트가 진행 중인데 이렇게 지쳐버릴 줄은 몰랐다. 그녀가 오랫동안 스쿼시를 안 나와서 적응이 안되는 것일수도 있었지만 역시..무리였나..
"헉…헉…"
"힘드니?"
"아니요. 더 할 수 있어요."
"…"
"그러면 좀 더 힘을 내."
"네!"
그녀의 오기가 발동했다. 무뎌졌던 움직임도 다시 활기를 찾았다. 절대로 밀리지 않겠다는 자존심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그녀의 움직임은 점점 더 민첩해져가고 있었다. 그러다 온 찬스볼. 하지만 그녀는 너무 급하게 한 방에 끝내려는 생각에 너무 낮게쳐서 공이 맨 아래의 벽을 맞고 아웃이 되어버렸다.
"아웃!! 11:3!!!"
"제길!!!!"
그녀는 급한 마음에 쳐버린 자신을 자책하며 벽을 주먹으로 쳤다. 이러한 그녀의 행동에 그녀와 게임을 치던 아줌마도 그리고 지켜보고 있던 우리도 모두 의아해했다.(나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세희…왜 이렇게 화가 난 것이지?"
"…왠지 평소에 봐오던 세희가 아닌 것 같아요…"
"청춘이라서 울분을 참을 수 없었던 게지!! 껄껄껄껄!!!"
"예끼 이 녀석아. 손녀 뻘 되는 녀석한테 말을 그렇게 해도 되나?"
"아무렴 어때! 어차피 청춘인걸!!"
"왜 이렇게 청춘을 많이 말하세요?"
"글쎄다! 나도 모르겠어!! 껄껄껄껄!!"
"…"
"내가 알려주랴?"
"네?"
"에잉. 나이도 어린 데 귀가 먹었나…따라오기나 해"
"…왜 궂이 따라오라고…"
"…저 녀석은 감옥에서 지냈었다. 젊었을 적에"
청춘을 항상 말하는 할아버지의 친구할아버지가 나를 다른 장소로 끌고오더니 조용히 말을 했다.
"…감옥…이요?"
"우리 때에는 무척이나 가난했어. 가뜩이나 전쟁도 끝난 상황이었지. 저 녀석도 마찬가지야. 저 녀석도 가난에 못 이겨서 다른 사람들의 물건을 훔쳤어. 게다가 전쟁 중에 아버지를 잃은 상황이라서 저 녀석이 가장이었거든.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위해서…그리고 자신이 살아나기 위해서…생존의 몸부림을 쳤을게야…결국에 저 녀석은 꽤나 고가의 물건들을 많이 훔친 덕분에 10대와 20대 그리고 30대 중반까지 감옥에서 지냈어. 나이 40을 바라보고 나서야 출소 할 수 있었지…"
"…가족…들은요?"
"모두 뿔뿔이 흩어졌어. 저 녀석이 감옥에 가는 바람에 가족들과의 교류도 끊겼지…아직도 저 녀석은 가족을 못 만나고 있어…그래서 지난 날의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에게는 너무나도 아픈 기억들일게야. 자신의 하나뿐인 청춘의 시절을 모두 그 어두침침한 곳에서 보내야 했으니까…그래서 그 녀석에게 '청춘'이라는 단어는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이자,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그 아련했던 젊은 시절을 추억하려는 것일게야…"
"…"
"애써 밝게 청춘이야! 하며 바보같이 보이지만 나름대로의 사정은 있는게야…그러니까 저 바보같은 녀석을 이해해주려무나…사실 저 녀석이 과거를 밝혀지는 것을 싫어하거든…그래서 조용히 따로 불러낸 게야…"
"…할아버지도…그러세요?"
"…알고보면 이 곳에 오는 모든 사람들도 각자 어두운 과거하나 쯤은 가지고 있지…그래서 운동을 하는 게야. 지금 현재를 즐기려고 하는게지…나도…물론…"
"…"
"삶을 살다보면 굴곡은 항상 지게되어있어. 하늘 높이 치솟을 수는 없는 노릇이야. 행복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고 화가 날 때가 있고 살아보면 그런 것을 다양하게 느끼게 되지. 행복하기만한 인생은 절대로 없으니까…"
"…"
"…그런 침울한 표정 짓지 말라고. 지금은 모두 즐거워하고 있잖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쌓이고 쌓인 울분들을 여기서 풀어내는 게야. 그러니까 즐기려무나"
"…네"
"…그러고보니 세희의 저런 표정. 처음 보는 구나…"
"그렇죠?"
"저 아이는 우리에게 너무 착하게 보이려고만 했어…나를 비롯한 우리 식구들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
"에잉 이 녀석아. 이 늙은이가 그런 것도 눈치 못 챌 줄 알았나? 다 알고 있어…"
"…"
"그래도 오늘 표정은 살아있는 것 같아 안심이야…항상 밝게 웃는 척하고 있었지만 슬퍼하고 있었는데…애써 우리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
"우리들은 그것이 서운했어…저 아이가 어떤 사정이 있는 지 몰라도, 우리들은 언제든지 저 아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거든…"
"…그랬었군요…"
"저 아이…예쁘지?"
"네. 예쁘죠"
"우리들은 모두 저 아이를 손녀나 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이렇게 나이만 처먹은 사람들만 있는 곳에 귀여운 아이가 들어오니 당연히 우리들은 반길 수 밖에 없지 않겠나?"
"…"
"그런데…저 아이는 뭔가 우리에게 다가가려하지 않았어…거부감을 느꼈던게지…나이차이가 나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들에게 활발하게 말을 걸어왔지만 정작 그것은…사람들과 좋게 지내려는 술책에 불과했어…"
"…"
"그래도 저렇게 밝은 표정을 지으니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기분이야! 크하하하!!"
"밝다…니요…?"
"저 녀석은 우리에게 감정을 표현하게 된 게지…지금 지는 것 때문에 분해하고 있지않나?"
"…그것이 '밝다'랑 무슨 상관…"
"예끼 이 녀석! 어른 말좀 다 끝나고 말해야지!"
"…죄송합니다…"
"…밝다라는 것은 꼭 웃고 뭐 그런 것이 아니야…화나는 것도 '밝다'가 될 수 있지…"
"…?"
"에잉. 바보녀석 같으니. 아직도 이해 못 하겠어? 분해하고 있지만 '생기있는 표정'이지 않나? 그것은 '살아있다'는 증거. 그것이 '밝다'라는 것이지…생기있고…활달한…분노하고 있지만 그 감정 속에는 '밝음'이 숨어있다는 것이지…더 이상 우리에게 착한 척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생기있고 살아있다고…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야…어디까지나 모순 적인 말로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은 말이지…"
"…"
"게임 셋!!!! 15:7!!"
"와아!!!"
"에잉. 녀석들 시끄럽게시리. 이런 헛소리 그만하고 게임구경이나 해야지…"
"…"
"…고맙다"
"뭐가요?"
"저 녀석. 네 녀석덕분에 살아난 것 같으니까 고맙다고 말하는 게다"
"…아니요…저 녀석이 마음을 먹어서 그런 것이겠지요…저는 그저…그 녀석의 곁에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고맙다는 게지…도움을 억지로 하려는 것이 아닌…어찌보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그래서 네 녀석에게 감사하는 거다"
"…"
"지금 손녀녀석. 즐거워하고 있을 테니까… 지고 있더라도 말이지…"
결국 세트스코어 3:0으로 그녀는 졌다. 게임이 끝난 선언이 울려퍼지는 순간. 주변은 함성을 지르지 않았다. 행여나 그녀가 상처받을까봐 였을 것이다. 그녀는 졌다라는 것을 직감하고 손에서 라켓이 떨어지며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서 계속 멍해있었지만 머지않아…
"고맙습니다. 저랑 게임해주셔서…"
그녀는 웃으며 함께 게임을 한 아줌마에게 악수를 건넸다.
"덕분에 즐거웠어 고마워 세희야…"
"아니요 저야말로…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다음 번에는…위험하겠네?"
"다음 번에는 절대로 지지않겠어요"
"그 날. 기대하고 있을게"
"…와아!!!!"
악수가 되고 있는 순간에 이제서야 함성이 울려퍼졌다. 애초에 그녀가 지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이것은 '친선게임'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검승부로 느껴지도록 그녀는 필사적으로 노력을 했고 그 결과에서 패배했다. 그녀의 승부욕에 크나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웃고 있다. 패배하고 있어도…웃고 있다…
이제야 그녀는 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고 진정으로 웃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게임이 끝난 이후에 치킨파티가 벌어졌다. 내가 처음으로 들어온 그 날처럼 농담과 장난을 일삼으며 모두 즐기고 있었다. 유쾌하고도 유쾌한 치킨파티.
"…건배하자"
그녀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맥주 캔을 들었다.
"…건배"
나도 보이지 않는 얼굴 뒤에 미소를 지으며 맥주캔을 들었다. 맥주 캔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마시는 맥주 한 모금은 맛있었다.
"…그리고 모두에게 건배!!!"
"건배!!!!"
모두 맥주 캔을 들고 환호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먼저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건배요청을 한 것이다. 그녀의 원래 쾌활하고 활달하던 성격이 이 곳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 파티는 10시에 청소하는 아줌마가 와서 돌아가라고 말해도 무시하며 지속되었다. 마시고 마셨다. 12시가 되어 스포츠센터 관계자가 직접 찾아와서 돌아가라고 쫓아낼 때까지..
12시가 지난 늦은 밤. 나는 그녀와 함께 걷고 있었다.
"…하! 오늘 정말 즐거웠어!!"
"즐거웠다면 다행이네…"
살짝 그녀는 취기가 올라온 듯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취하지는 않은 듯 했다.
"이봐 박정우!"
"…왜?"
"정말 고마워!!!!"
그녀는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 녀석..취했다...
"…고마워 할 필요까지야…우리는 '친구'잖아?"
"…그렇지…그래야지!!! 우리는 친구니까!!! 있잖아!! 고맙다는 표시로 노래 한 곡! 이 연세희가 뽑겠습니다!!!"
나의 의사를 전혀 무관하게 그녀는 길을 걸으며 자신의 노래를 불렀다. 나에게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노래하는 모습. 청아하고 고운 목소리는 나의 심금을 울리고 있었다. 그래서 매스컴들이 천상의 목소리라고 떠들었군..그럴 만도 해..화사하고 마치 이 봄 날씨와 어울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있잖아"
노래 한 곡 모두 부르더니 뭔가 진지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뭐?"
"나…돌아가야 되겠지…?"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망설임'이 깃들어있었다. 이 즐거웠던 시간이 끝나고 나자 아쉬웠지만 그녀는 돌아가기 싫지만 돌아가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에게 대답을 구했다.
"…어…너의 '일상'이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언제든지. 네가 원하면 이 시기는 지속될거야…"
"…영원히?"
"영원히는 있을 수 없어…모두 나이를 먹고…각자 자기의 사정으로 안 나오게 될 수 있으니까…하지만 네가 있다면 얼마든지…계속 있을 거야…이 주말 스쿼시 저녁 8시부의 사람들은…"
"…그랬으면 좋겠다"
"…"
"그럼 이만! 연세희는 가보겠습니다!"
"너답지 않게 왜 그래?"
"당분간은 만나지 못할테니까!"
그렇지..이 녀석은 자유의 시간을 즐기는 대신에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했지..(솔직히 말하자면모두 나 때문이었지만..)
"…곧 있으면 만나게 되겠지. 학교에서도 그리고 스쿼시장에서도"
"응!! 알고 있어!! 돌아올테니까!! 그 때까지…잘 있어야 되는 거 알지? 변태오타쿠?"
"어이 이 자식아. 끝까지 변태오타쿠로 나오냐…"
"그럼!!! 나는 계속 너를 변태오타쿠로 부를 건데?"
"맘대로 불러라…"
"푸하하하!!!"
그녀는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그럼 잘 있어라"
"…잘 가…"
우리가 스쿼시장에서 나오고 난 뒤에 헤어지곤 했던 사거리에서. 그녀와 나는 헤어졌다.
예상대로 그녀는 볼 수 없었다. 학교에서. 스쿼시장에서. 검은 뱀이 뛰쳐나와서 존재를 지워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그녀는 다음 날 오후.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서 그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사죄하고(나는 그것떄문에 진짜로 찔렸었다)자신은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라며 그 동안에 쌓아왔던 이미지들과 팬들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그녀는 그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사죄하고 있었다.
그것을 놓칠 사람들이 아니었다. 자연스레 결국에 이미지관리였냐면서 안티카페들이 생겨났고 무수히 많은 악플이 그녀에게 달렸다. 이제 그녀는 누구나 좋아하는 그런 요정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몇 주동안 자숙의 기간을 가졌다. 원래는 몇 개월동안 반성을 하겠다고 공언을 하였지만 그녀의 진심을 알아준 팬들이 돌아오라며 아예 기도성명문까지 내고 모두 그녀가 컴백할 수 있게 도와달라며 협조를 요청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조금 짧은 기간안에 컴백할 수 있었다. 예정대로 음악프로그램의 mc로 활동하고 다른 예능프로그램에서도 과거의 '연세희'가 아니라 지금의 '연세희'를 보여주며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다.
"어이 들었냐? 곧 있으면 연세희가 이 학교에 돌아온다는 거?"
"정말? 진짜 보고 싶었는데…"
"크헝헝…세희양…"
"세희오면 환영파티라도 열어줘야 되지 않아?"
"찬성!"
"어이 박정우"
"…엉?"
"결국에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잖아"
"맞아!!"
"맞아!!!"
"감히 세희양을 힘들게 만들었겠다? 척결!!"
"척결!!!"
뭐. 나를 질타하는 욕들은 계속되었지만 말이다.
하교하는 길. 나는 새싹이 이제 완연히 자라고 있는 6월의 길을 걷고 있었다. 점점 더워지려 하는데..더위를 잘 타는 나로써는 큰일이었다. 길을 걷다 버스정류장을 보니 그 버스정류장에 붙여져있는 포스터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찍힌 사진.
'검은 뱀은 위선의 껍질을 탈피하고 새로이 태어났다'
나는 피식 웃고는 다시 미련없이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곳에서 본 그녀는 너무나도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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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Part 4.Hypocrisy. 종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