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77화 (77/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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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Hypocri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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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이야"

"…에…?"

"나랑 정우는 사귀는 사이라고"

"…!!!!!"

"어이 잠깐…"

"…진짜…오타쿠랑…"

민정이는 정말로 믿는 듯 보였다. 아니야 아니라고!! 저 녀석이 또...

"그래"

해 맑게 웃는 세희양. '혹시 진담인가?'라고 무리수를 생각해보아도 절대 아니었다. 저 녀석은 나 같은 인간을 좋아할 리도 없고 무엇보다 나를 놀리기 좋아했다. 그러면 아무것도 모르는 민정이를 낚으려고 하는 장난임이 틀림없었다.

"…어이 민정…내 얘기를 잘 들어…"

"오타쿠는 좀 닥쳐있어!!!!"

에고 무서워라..왜 갑자기 성질이야?

"…"

다시 침묵. 식탁에서 셋이서 앉아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냐만은 그 누구도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거실에서는 시계 째깍거리는 소리가 주방까지 울려퍼져 내 귀에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아니..갑자기 왜 이런 분위기가 되는 거냐고..

"…그러니까…언니가 저 망할 오타쿠…아니 오빠랑 사귄다구요?"

"그래"

어이. 민정이를 언제까지 낚을 거야? 응?

"취향…독특하시네…"

"그런 소리 많이 들어"

"…"

"여자친구 데리고 온 거 처음이지? 정우가…"

"네…항상 집 안에만 처박혀있구…"

"역시 방구석폐인이었구나…"

"그런데…언니는 어떻게해서 오타쿠…아니 오빠랑 만난 거에요?"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첫 눈에 반했다고나할까? 하지만 어차피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금방 포기했었는데…정우랑 다시 만났어. 같은 반이 되어서…"

네가 나와 영화같이 그렇게 운명적으로 만났다고? 언제? 게다가 첫 눈에 반했다고? 만난 지 이틀만에 폐인자식아!!!라고 한 주제에..

"연세희. 그만 해. 민정이가 진짜로 믿잖아…"

"이름이 민정이야? 이쁘네…얼굴이 귀엽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박민정양? 당신은 그런 이미지가 아니잖아? 왜 부끄러워 하는 거야?

"민정아…?"

"오타쿠…잠깐 나 좀 볼래?"

왜 웃으면서 뒤에서는 흉흉한 살기가..나를 끌고가서 뭐를 하려고...

"언니…잠깐 오빠랑 '대화'좀 하고 올게요…"

"그래"

민정이는 웃으면서 나의 손을 잡고 강제로 질질 끌고갔다. 그것도 자기 방(지현누나와 함께 쓰는 방)에 문을 걸어잠그고..아주 준비를 단단히 먹어야겠구만..위험해...

"오타쿠?"

살기가 등등한 미소로 나를 째려보고 있는 민정양. 여태까지 저런 포스를 발휘한 적이 없었는데..

"우리 조금은 기나긴 '대화'가 필요할 것 같은데?"

그 대화라는 소리가 무섭게 느껴지는 이 기분은 뭐지..소름이 끼칠 정도야..

"솔직히 말해. 오타쿠…언니를…어떻게 꼬신 거야?"

"꼬시고 자시고…친구라니까? 저 녀석이 너한테 장난치는 거야…"

"장난?"

퍼억!!!!!!

"언니가 말하는 게 장난…?"

퍼억!!!!!

"아니 민정아…진짜로 친구야. 친구…"

퍼억!!!!

"친구인데…왜 우리집에 데리고 왔을까나?"

"…"

이런..사망플래그 확정이다...이제는 빼도박도 못하게 생겼다. 하필이면 왜 이 시간에 녀석이 있냐고..분명히 내 예상대로라면 친구랑 어디론가 싸돌아댕길 시간인데..

"그것도 여자를…응?"

"민정아…"

"나 없었으면 어떻게 할 거였어? 응?"

"아니아니…그게 아니라…"

"사귄다면서…? 그러면…단 둘이…집에서…섹…섹…"

잠깐!!! 뒤의 단어는 좀 생략하지? 성질은 괴팍했어도 순수하던 민정이가 이렇게까지 타락할 줄이야..이 오빠는 한탄을 금할 길이..아니..이런 말 할때가 아니잖아...

"오해야…그냥 장난치는 거 뿐이라니까…?"

"내가 없을 줄 알고…일부러 데리고와서는…감히…오타쿠주제에…언니를…감히…"

이런...튀어야되는데...문을 잠가버렸네...? 하하...

"죽어!!!!!!!"

젠장.

평화로운 대화(?)가 끝이 났다. 어디까지나 한 쪽에서만 평화를 강조했지만 말이다. 결과는 참혹. 평화는 어디가고 무슨 핵폭탄이 터진 것 같았다. 내 몸에는 수 많은 멍이 새로이 생겨났다. 멍이야 상관이 없었지만은...민정이녀석이 새겨버린 이빨자국은 당분간 오래갈 것 같았고 아직도 따끔따끔하기만 하다. 이로써 오해는 확정. 민정이는 내가 연세희와 사귀는 걸로 알 것이다. 학교에서는 시하와 사귀는 걸로 되어있는데..

오해가 쌓이고 쌓여 눈덩이처럼 불어나버렸다. 전부 사람들의 오해로 인해서 나는 몇 몇여자들과 사귄다고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도 아니고..엄연히 나는 2D의 미소녀들을 추구하고 있는 편인데...이상하게도 일이 꼬여버렸다. 고2에 들어오면서...

방의 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서자 어느 새 친해졌는지 세희와 민정이는 깔깔 거리며 여자들의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일요일의 나른하기만한 늦은 오후. 나는 방에 들어가서 미연시나 할까..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니! 그러니까 오타쿠가 멋대로 언니 방송하는 거 펑크내버렸다고요?"

"응. 대기실에서 쉬고 있는데…갑자기 정우가 들어오는 거야. 정장을 입고…"

"언니 만나려고 정장까지 입었다구요?"

"그렇다니까. '연세희'라고…부르면서…그런데 있잖아…"

"…네?"

"혹시. 너는 정우의 얼굴을 본 적이 있어?"

"…아니요…몇 년동안 보지 못했어요…"

"…그래?"

"언니는 보셨어요? 얼굴을?"

"…아니…머리로 항상 얼굴을 가리고 있는게 이상해서…"

"…사정이 있겠죠…"

"…그렇겠지?"

"그건 그렇고! 언니! 가수하면서 연예인들 많이 만나보셨을 텐데 얘기 좀 해주세요!"

"얼마든지. 그러니까…"

그녀들의 수다는 민정이가 '밥 만들어 오타쿠!'라고 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밥 진짜 맛있다!!"

"…입맛에 맞으세요 언니?"

"맛있어! 진짜 정우가 만든 건지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오타…아니 오빠가 이런 면에서는…"

오타쿠가 입에 붙어서 오빠라고 말하기 힘든가보지? 자꾸 오타쿠가 붙어...

"민정이는 오빠를 항상 오타쿠라고 부르는거야?"

"…"

"왜?"

"그야…방 안에서 줄창 처박혀서 미연시만 하고 있으니까…"

"정우는 항상 그런 게임만 해?"

"네…그래서…"

"정우는 변태네?"

"네?"

"미연시만 한다잖아? 그러면 변태지"

당사자가 있는 앞에서 잘도 그런 소리가 나온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은..

"헤에…정우한테 그런 취미가 있었구나…"

어이. 진짜로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의 취미를 알아보는 것 같다?

"…언니가 좀 고쳐주세요…"

이봐 민정양? 왜 그런 것을 세희한테 고치라고 하는 거지?

"남자친구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당신은 왜 팔을 걷어붙이는 겁니까?

"뭐야 오타쿠. 이런 예쁜 여자친구가 있는 데도 그런 취미를 아직도 유지할 거야?"

이제는 도중에 오빠라고 말해주는 것도 생략. 여자친구 아니라니까 그러네..

"정우야?"

"…왜?"

"변태 오타쿠"

"…"

어느 덧 해는 지고 있었고 오후 7시 30분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스쿼시에 가야하는 시간. 사실 이 곳에 데리고 오는 이유 중에 하나가 여기에 있었다.

'그녀를. 스쿼시에서 함께 치는 사람들과 진정으로 어울리게 하는 것'

나는 이런 계획을 세워두었다. 먼저 매니저에게 건드리지말라고 협박하고 그녀를 방송국에서 나오게해 일반인처럼 자유의 시간을 갖게한뒤에, 스쿼시를 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그녀가 원했던 사람들과 게임을 하면서 어울리고.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

나는 그렇게 할 셈이었다. 사실 완전히 그녀의 안에 잠들어있는 '위선'을 없앨 수는 없었다. 직업이 직업이다보니..하지만 그것을 어느 정도 풀어줘야한다. 진정한 자신의 성격을 발산해낼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그녀가 위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것이 내가 생각해둔 계획이었다.

"연세희"

"…응?"

"가자"

"어디를?"

"스쿼시 치러"

"하지만… 라켓이랑 트레이닝복이…"

"민정아"

"왜 불러?"

"세희한테 트레이닝복 좀 빌려줘"

"알았어"

"…라켓은?"

"거기에 얼마든지 있어. 없으면 빌려달라고 하면 되겠지"

세희도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도 오랜만에 치는 것이라 반기는 눈치. 내가 현관문을 나가자 그녀 역시 민정이가 빌려준 트레이닝복을 입고 따라왔다.

"있잖아 변태오타쿠"

이제 나에관한 호칭도 확정이구만. 변태오타쿠로..이 호칭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영원히..

"…뭐?"

"민정이한테 들었어…"

"뭘 들어?"

"얼굴.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면서?"

"…그래서?"

"사실 궁금했어. 왜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지"

"이제 알고 있잖아?"

"그거야… 렌즈로 가리면 되잖아?"

"…해 봤어"

"렌즈로도 했는데…안 되다니?"

"가리지 못해. 처음에는 가릴 수 있지만…'거울'을 보면 다시 원 상태로 돌아와. 렌즈가 계속 껴져있는데도 불구하고…그래서 귀찮아. 렌즈를 써도 안되니 머리로라도 가릴 수 밖에"

"…마법같아…"

"…"

"화상이 있다는 거… 거짓말이었구나? 어디까지나 '눈'때문에…"

"나는 어렸을 때. '눈'때문에 멸시를 받았어"

"…!!"

"당연하잖아? 다른 사람들과 다른 '눈'…"

"…"

"이방인이 되는 느낌이야…마치 이 조직에서. 이 사회에서 소외되어있다는 느낌…"

"…"

"너는 그런 느낌을 알아?"

"…대충은…"

"'소외'…라서…?"

"그럴 지도…"

"그러니까 비밀이야. 나에게 '회색의 눈'이 있다는 거"

"…알았어. 그런데…왜 나에게는 보여준 거야?"

"변장"

"…?"

"매니저가 내 얼굴을 알고 있잖아? 그래서 매니저를 피할려고 얼굴을 보여준 거야"

'물론. 매니저를 만나서 두들기고 협박했지만 말이야..'

"…그렇구나…나는 또…"

"…?"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런데 진짜 가깝다…네 집이랑 스쿼시하는 데랑…"

"가깝지?"

"응. 나도 가까이 살았으면 좋았을 걸…"

"지금은…얼마든지 즐길 수 있어"

"…고마워"

"고맙다니?"

"그냥. 이렇게 운동도 할 수 있게하고…평범하게 살게 해주어서…어디까지나 잠깐이겠지만은…"

"…"

"그럼…치러 갈까?"

"…얼마든지"

지금은 이 시간을 즐기고자 한다. 나는 물론 그녀 역시도..이 자유의 시간이 너무나도 짧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기에..어찌보면 이 시간이 진정한 마지막 기회였다. 그녀가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나의 계획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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