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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Hypocri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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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악!!
얼굴이 돌아갔다. 맞은부분은 화끈하다. 그녀는 굳게 다문 입을 좀처럼 열지 않았다.
그것도 믿었던 친구에게 이런 것을 당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나를 믿었던 신뢰의 양만큼 그 배이상으로 배신감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녀의 화가 모두 풀릴 때까지 때리길 원했다. 그래야 쌓인 것이 모두 풀릴테니까. 나는 잠자코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바보였어…친구라고 생각했는데…이런 인간이었다니…매니저 오빠의 말대로…너는 쓰레기야…버릴 가치도 없는…내 눈이 어떻게 되었나보다. 이런 놈을 믿었다니…너와 상종한 내가 잘못이야…"
"…"
그녀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제는 자기의 손이 아픈 듯 나의 얼굴을 더 이상 후려치지도 않았다. 때려도 때려도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는 보지 않길 바랄게…그럼…"
그녀는 고개를 휙 돌리며 쿨하게 떠나려고 했다.
"…어디로 갈 거야?"
"네가 알아서 뭐하게?"
"만약에 돌아가도…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 니 집에 들어가서 인질이 되라고? 대체 무엇때문에 나를 여기에 끌고 온건데!!! 너도…내 몸이 탐나? 납치를 할 만큼? 잘도 참았네!!!! 여태까지 옆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버틴 것 보면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나보네!! 집에 나를 끌고가서 당장에라도 옷 벗길거야? 섹스할거야? 해 봐!! 할 거면 해봐!!!!"
"…"
어째 이런 말을 소리를 지르면서 말하냐..
"그런 거 아니야! 내 말좀 들어!!!"
"…얼마든지 들어줄게…네 변명따위…!!!"
"확실히 변명이 맞아! 하지만 내가 너한테 그런 짓을 할 줄 알아?"
"똑같지 않아? 남자라는 생물은?"
"…솔직히 말할게. 나는 너의 몸이 탐나서 납치하려는 게 아니었어. 네가 예쁘고 몸매가 좋다는 건 확실해. 나 같은 남자라면 누구나 음심이 들 만큼. 그러나 그런 게 아니야. 나도 너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납치를 한 거야?"
"…네가 힘들어보였어!!!!!"
"…!!!"
"너가 사람들한테 웃는 모습보면 정말로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정도로 너무나 슬퍼보였어. 사람들대할때 정말로 착해서 그런 건지 억지로 그런 건지 너무나 위선적이었어.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모두 이렇게 한다는 것 쯤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알아. 하지만 이거는 너무 심하지 않아? 이것이 오지랖을 떠는 건지도 모르고 …정작 너는 그렇게 느끼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어. 너는 웃고 있지만…그 웃음뒤에는 고통스럽고 힘들고 슬퍼하는 것 같아서…"
"…"
"그래서 내가 너를 납치한거야. 아니…너를…"
"…나를…?"
"너를…구해주려고 왔어… 그 곳에서…"
결국.. 이 대사를 말하는 구만..차마 꺼내지 않으려고 했었는데..나는 정의의사도가 아니니까..
"친구…라서?"
"어. 친구라서"
나는 말하고 말았다. 내 모든 진심을..친구라서 구해주러 왔다고...이것이 구해주는 건지 오히려 절벽으로 밀어넘기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연예인 연세희를 구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 박정우의 하나뿐인 친구인 '연세희'를 구해주러 왔다고.
"…잘도 그런 짓을…"
"…내가 봐도 무리한 짓이었지…"
"…그래도…했잖아?"
"…어"
"진작에 그렇게 말했다면…나는…"
때리지도 않았을 것이라고..사실 납치는 맞지..그것도 온 남자들의 로망인 그녀를..
"멋대로 너를 끌고 온 것은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더 이상 보기가 싫었어. 겨우 만난지도 별로 안 된 주제에 너무 깝치고 있지만 나는…하나 뿐인 친구가 힘들어하는 것은 절대로 보기 싫었으니까…"
"하나 뿐인…친구…?"
"매니저가 얘기했잖아. 왕따라고"
"…"
"맞아. 나 왕따야. 학교에서 나는 친구 한 명없는 왕따야. 누구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 오히려 증오해. 반 아이들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있지만 나를 싫어하는 건 마찬가지이고. 그런데 이번에 너를 알게되었어. 그래서 나는 네가 연예인인지도 전혀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스쿼시에서 잠시 같이 쳤다고 멋대로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어. 이번에 고2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라고…"
"…"
"나도 모르게 기뻤어"
"…?"
"이렇게 혼자 밖에 없는 곳에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생겨서…그 사람은 귀찮게 나를 괴롭히고 나를 당황하게 만들지만…그래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생겨서…혈연관계가 아닌 생판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
"모두 잃어버린 나에게…너는 아무렇지 않게 온 거야…너도 그런 건 몰랐겠지만…그래서…"
나는 그 뒷말을 생략했다. 그러나 그녀는 모두 알아들었으리라.
"…"
나도 그녀도 모두 말이 없다. 침묵. 그녀도 나의 진심을 듣고 충격에 빠진 모양이었다. 자신과 생각했던 것과 달리 너무나도 이상하게 전개된 이 상황. 나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제는 나의 진심을 모두 들었으니 어떻게 할 것인지. 내가 원하던 대로 할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 것인지.
"나를 납치한 다음에…그 다음에는…?"
"너만의 시간을 가졌으면 해. 연예인이 아니고. 평범한 일반인의 생활을 마음껏"
"…그래서 네 집에 데려온 거야?"
"마땅히 떠오르지 않더라. 그렇지만 내 집은 넓으니까…방이 무척이나 많거든…"
"가난하다면서?"
"그건 반 놈들의 편견일 뿐이고"
"…만약에 돌아간다면?"
"막지않아. 나는 모든 것을 말했어. 의도같은 것도 모두. 그래도 내가 싫어서 떠나길 원한다면 할 수 없어. 남았으면 좋겠지만, 그런 걸 강요해도 안되니까"
"…"
그녀는 깊이 고심했다.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이미 방송은 늦었다. 되려 방송국 관계자들에게서 질책을 받을 것이 뻔하였지만..그녀는 '연예인'이다. 연예인은 연예인만의 삶이 있다. 나는 그런 것까지 간섭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멋대로 끌고 왔지만..그녀의 존재가 사라질까봐 납치한 거지만..그렇지만 그녀가 자신 본연의 삶을 원한다면..나는 막을 수 없다. 그것은 그녀가 원하는 선택이었고 나는 그것을 막을 권리가 없다.
머지않아 사라져도..그녀가 남은시간을 그녀 자신이 한 선택에 따라 즐길 수 있다면...나는 그걸로 되었다.
"…나는…"
"…"
식탁에서는 젓가락 움직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녀는 배고픈 듯 허겁지겁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보고 있는 나도 그리고 집에 없을 줄 알았던 민정이도 두 눈뜨고 멍하니 식탁에서 그녀가 밥 먹는 것을 보고 있었다.
"머 바? 사라 바 머느 거 처으 바?(뭘 봐? 사람 밥 먹는 거 처음 봐?)"
이봐...일단 다 씹어먹고 말해...
쿡! 쿡!
민정이는 자꾸만 내 옆구리를 찔러왔다. 이것이 현실이냐면서..평소에 그녀에 관해 동경하는 듯 했던 민정이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냐면서 무언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붙은 온갖 수식어들도 지금 상태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평범한 사람처럼 먹는 것 같았는데 밥 한 공기와 반찬들이 빠르게 사라져갔다.
그녀는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리 집에 들어오자마자 정말로 놀라워했다. 이게 네 집 맞냐고..맞다고 대답하자 믿지 않은 듯 했다.
"어이 오타쿠. 일찍 왔네? 어라…"
하필이면 민정이가 있었다. 아무도 없을 줄 알고 데리고 왔더니만 빈둥빈둥 tv를 보고있던 민정이. 그녀를 보자 휘둥그레하며 아무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이 20분 전이었다.
지금은 보시다시피, 연예인 밥 먹는 거 구경하고 있었지만.
"푸하~ 잘 먹었다!"
아까 전에 배신감에 치를 떨던 표정은 어디가고 여기에 몇년 산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는 그녀.
"…박정우…너 요리 잘하는데? 정말로 네가 모두 만든 거야?"
"속고만 살았냐…"
"저기…정말로 세희언니 맞으세요?"
"맞아. 보고도 못 믿어?"
"아니…진짜인가 싶어서…"
"그럼 내가 가짜라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왜 이렇게 떨고있냐...원래 이런 인간이 아닐텐데..박민정이란 사람은..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뭔데?"
"우리 오타쿠…아니 오빠랑 어떤 사이세요?"
"…그야 친…"
"연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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