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74화 (74/318)

0074 / 0318 ----------------------------------------------

Part 4. Hypocrisy

==============================================

그렇다고해도 나는 무엇보다 큰 문제에 직면해있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대기실로 가야했는데 어떻게 가야할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길도 모르는 데다가 이런 차림으로 돌아다녔다가는 추방당할 게 뻔한데.. 변장이라도 해야 이곳 저곳 돌아다닐 수 있었다.

나를 사람들이 봐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야한다. 이렇게 얼굴을 머리로 가리고 있으면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받을 수 있었다. 머리를..걷어내야하나..?

일단은 연예인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나는 궁리를 해야했다. 연예인과 가장 옆에 붙어있는 사람..보디가드? 보디가드들이면 항상 연예인들을 보호하려고 가까이 있지...만약에 보디가드로 변장을 한다면...사람들이 나를 봐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보디가드가 입는 정장과 바지 그리고 넥타이를 구해야 했다. 어쩔 수 없지만..강제로 옷을 바꾸는 수 밖에..가만, 보디가드들이 입는 옷으로 꾸미기만 하면 된다는 거잖아? 정장과 바지 넥타이만 구할 수 있다면..그렇다면..

나는 방송국 안에 있는 화장실로 갔다. 대부분 방송국의 사람들은 수트차림으로 돌아다녔기 때문에 화장실로 씻으러 오는 사람들도 수트차림이었을 것이리라라고 생각하고 화장실에서 숨어있었다.

때 마침 어떤 사람이 소변을 보러 이곳에 들어왔다. 사람도 아무도 없는 상황. 당사자에게는 미안하지만..

"누구야?"

팍!!!

나는 소변을 다 보고 돌아서는 그의 뒤로 조용히 다가가서 수도로 뒷목을 내리쳤다. 컥!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쓰러졌다. 그리고 기절한 것을 확인하자 나는 칸막이로 그를 질질 끌고가서 사람이 들어왔는지 둘러보고 문을 잠근 뒤,  그의 옷을 벗겼다. 그리고 내 옷을 벗어서 변기뚜껑에 놓아두고 나는 그의 정장과 바지를 입었다. 당한 사람은 팬티 꼴이었지만..깨어나면 내 옷을 입으면 되겠지..정말로 죄송합니다..하지만 저에게는 사정이 있어서..

그녀를 구해야만 해요. '친구'니까.

나는 칸막이에서 나와서 당사자에게 들리지 않을 사과의 말을 하고서 나는 거울 앞에 섰다. 매니저는 내가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라는 것을 알고있다. 그러면 내가 얼굴을 대놓고 돌아다닌다면 나를 모를 것이다.

나는 넥타이를 제대로 매고 앞 머리를 손으로 걷어올렸다. 거울에선 회색의 눈동자가 있었다. 회색의 눈동자는 렌즈라도 갖고와서 가려야했지만 렌즈도 갖고오지 않았다. 그래서 눈동자가 보이지 않게끔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나는 방송국으로 들어갔다.

변장은 클리어. 이제 연세희가 있는 곳을 알아내야했다. 가요프로그램 MC데뷔를 한다고 했으니까.. 그 스튜디오 안에 있는 대기실에 있을 확률이 가장 높았다. 아직 프로그램이 시작하려면 아직 여유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 안에 그녀가 있는 장소로..

다행히도 돌아다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가면서 스튜디오를 알아낼 수 있었다. 정장을 입고 있어서 사람들도 그냥 '방송국 관계자 인가보다..'하고 나를 아무렇지 않게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있을 지 모르는 출연자 대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장애물이 있었다. 매니저..나를 죽일 듯이 팼던 인간..

'쓰레기'

전에 매니저가 하는 말에 순간 울컥했다. 살인충동도 일어났다. 후...심호흡을 크게 내쉬며 그 살인충동도 억눌렀다. 겨우 얻어맞은 걸로 인해서 이런 감정까지 생겨나다니..마음을 다스리고 나는 다시 움직였다.

나는 주변의 경계망을 뚫으며 어찌어찌해서 대기실이있는 복도로 왔다. 사람들이 방송 준비전이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각 방에 있는 문마다 출연자 이름표가 적힌 종이가 붙어있어서 나는 쉽사리 구별을 해내며 움직일 수 있었다.

찾았다.'연세희님'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여진 방문 앞에 도착했다. 드디어..그녀를 만날 수 있는 건가..?

"잠깐"

나는 옆을 살짝 보았더니 빌어먹게도 그 매니저가 내 앞에 떡하니 서 있었다.

"당신 누구야? 세희한테 무슨 볼일이 있는 거지?"

"…"

제길. 하필이면 걸려도 이 인간한테 걸릴 줄이야..조용하게 만나려고 했는데..

"귀가 안 좋아? 다시한번 얘기해줘? 당신 누구야?"

처음부터 존댓말이 아니라 반말로 사람을 대하는 매니저. 그 매니저의 얼굴을 보니 겨우 억눌렀던 마음이 다시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혹시 매니저이십니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매니저냐면서 일단 주변사람들의 의아해하는 시선들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다. 사람한테 큰 소리로 반말을 하고 있었으니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그렇다만"

이 자식...끝까지 반말로 하네...어른이면 다야?

"연세희양한테 볼 일이 있소만…혹시 안 계십니까?"

나는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어른인 척하고 공손하게 매니저를 대했다. 일단은 단 둘이 있게 해서 매니저를 '처리'해야했다.

"안에는 있어. 대체 무슨 볼 일이 있길래 세희를 보려고 하는 것이지?"

"일단 아무도 없는 곳으로…"

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어두운 비상구로 갔다. 그리고 매니저도 순순히 나를 따라왔다. 나는 매니저가 들어오고나자 비상구의 문을 닫고 잠갔다. 우리끼리 처리해야 할 일이 있잖아?그것도 아주 조용히...

"무슨 짓이야? 왜 비상구 문을 잠가?"

퍼억!!!

나는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다. 갚아야 될 거 아냐? 나를 그 때 아주 제대로 패 놓았던 것을..

쿠당탕!!!

나는 바로 벽에 부딪혀 쓰러진 매니저의 멱살을 잡았다.

"너…대체 누구야…"

주먹이 꽤나 아팠나본지 충격이 가신 얼굴이었다. 내가 운동 좀 했거든...그것도 아주 많이..

"아직도 기억 못해?"

퍽!!

"컥…!!"

나는 곧바로 주먹으로 복부를 쳤다. 고통스러운지 배를 부여잡고 쓰러진 매니저. 회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연속으로 발로 얼굴을 후려쳤다. 다시 쾅하고 벽에 부딪혀서 쓰러진 매니저. 큭큭큭...어른이랍시고 괜히 깝쳤다가 이런 꼴 나는 거 아냐?

"아직도 기억 못 하나보네…"

"…너…대체…"

"기억 못한다면 가르쳐주지. 당신. 학교에서 이렇게 학생을 패지 않았던가? 그것도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말이지…"

"…설마…!!"

"그래. 그 때 당신이 쓰레기라면서 비웃어댔던 놈이 바로 나야. 기억하겠어?"

"…!!"

"아아…거추장스럽게 변장까지 하면서 조용하게 만나려고 했었는데…그 누군가가 방해를 해서 말이야…그래서 어쩔 수 없이…이렇게 하는 거지…"

"…아직도…세희를 만나려고 하는 거냐…쓰레기 주제…"

퍼걱!!!

쿠당탕!!!

"맞아. 연세희를 만나려고 왔어"

"…어떻게…하려고…"

"구해줘야되거든"

"…뭐…라…고…?"

"구해주려고 왔어"

"뭐를…구해준다는 거지…세희의 친구도 아니고…왕따에 쓰레기주제에…"

빠악!!!!

"당신은 맞고있는 주제에 잘도 그런 소리가 나오고 있군"

"…크윽…"

"당신이 얘기했지? 다시는 세희의 눈 앞에 띄기라도 한다면 회복 못 할정도로 개박살이 날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이거 어쩌지? 당신이 지금 '쓰레기'라고 말한 인간한테 '개박살'나고 있는데?"

"…"

"나도 이러고 싶진 않았어. 조용히 만나고 해결할 참이었는데 당신이 나타나서 일이 틀어졌을 뿐이야"

"…대체…만나면 뭐를 하려고…게다가…구해준다고…? 어떻게…구해준다는 거지…?"

"납치"

"…!!!"

"당신들의 눈으로는 그렇게 보이겠지. 나는 그녀와 이곳에서 나갈 생각이거든"

"…오늘은 MC데뷔를…"

"알고있어. 하지만 그런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야 그러니까…당신은 지금 내가 할 일을 함구하고 있으면 되는 거지…"

"내가…그럴 것…같아?"

"전혀. 그러니까 '협박'하고 있는 거잖아? 당신이 전에 회복못할 정도로 개박살낸다고 했었지만 나는 지금 까딱하면 당신을…"

"…"

"죽여버릴 지도 모른다고? 개박살이 아니라…지금 여기서…"

"…!!!!"

"그러니까 내가 당신의 살 길을 권하고 있는 거야…당신이 할 일은 별로 없어.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하지말고 그 누구도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 나라는 존재를 경찰에게 신고하지 않을 것. 그거면 돼"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런 일 아니니까 걱정하지마. 이 일이 끝나고나면 바로 돌려보낼테니까…"

"그걸…어떻게…믿지?"

"내가 얘기하지 않았어? 나는 그 녀석과 '친구'라고…그리고 어차피 당신은 경찰한테 신고할 거고…찾기위해 무슨 짓이든 할 거 아냐?"

"…"

"나는 당장에라도 나에게 '쓰레기'라고 말한 당신을 죽여버리고 싶지만…참고있는거야…그리고 당신에게도 이로운 일일거고…"

"…나에게…이로운 일?"

"당신의 돈줄이 끊기지 않는 거야"

"…돈줄?"

"당신의 돈줄이 끊긴다면…어떤 일을 해서 먹고 살려고?"

"…"

"그러니까 잠자코 있어. 당신의 돈줄인 그 녀석의 존재가 사라지기 싫다면…"

"…돈을 바라고 있는 거냐…세희를 이용해서…?"

"전혀. 난 돈 많아. 평생 먹고 놀 만큼 돈은 충분해"

"그러면…"

"그 녀석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막아야 돼"

"…사라진…다?"

"친구라서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것 뿐…나쁜 목적으로 그녀를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야…당신이 절대로 믿지 않겠지만…"

"…"

"그 정도로만 알고 있어. 그 이상으로는 얘기해도 당신은 전혀 모를 거야. 그러니까…당신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다시…그 녀석이 밝게 연예인활동을 하길 원한다면…"

"정말로…세희가…사라지나?"

"틀림없이 사라지게 되어있어"

"…어째서…"

"마음이…병들어서…"

"…?"

"하여튼간. 나는 그 녀석을 구하려고 여기 왔어"

"…"

"이만 갈게. 머지않아서 그 녀석은 돌아갈 거야…그러니…기다려"

나는 쓰러져있는 매니저를 내버려두고 그 말만 한 뒤에 비상구의 문을 열고 연세희가 있는 대기실로 걸어나갔다. 그 뒤에 똑똑하고 노크를 했다.

"들어오세요"

그 녀석의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확실히..있군..

나는 문을 열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