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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Hypocrisy
허접작가 Scribbler입니다..
'너'가 아니라 '네'라는 오타지적이 많이 있는데요..지적 감사드리구요. 앞으로 '네'라고 사용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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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대로…사람 바보 취급 하지 말라구…"
그녀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놀이터에 울려퍼졌다. 더 이상 나를 때리지도 않고 털썩 주저앉아 펑펑 울기 시작했다. 화장한 게 모두 번져버려서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꼴을 나에게 보이기 싫었나본지 뒤로 돌아서 자기의 옷으로 슥슥 닦았다.
"자. 이걸로 닦아"
나는 주머니에 있던 내가 쓰던 손수건을 건넸다. 그녀는 홱하고 받아버리더니 얼굴을 닦고 코를 팽하고 풀었다.
"…괜찮냐?"
"이게 괜찮은 것으로 보여!!!"
퍼걱!
정확하게 구두로 내 정강이를 차주시는 세희양. 이 와중에도 성질내면서 때리냐? 에휴..
"…내가 너무 심한 말을 했어 미안"
나는 사과를 할 수밖에 없다. 사과라도 해야하지 않은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녀에게 심한 말을 했으니…
"흥!"
그녀는 사과도 받아주지 않는다. 아아..이걸로 게임오버구만..the end야 the end. 나는 그녀를 구할 기회는 커녕 그것을 끊어버렸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고있는데도 …너무나도 쉽게 날려버렸다.
우리는 30분동안 말 한 마디도 나누지않고 벤치에 앉아있었다. 내가 말을 걸려고 해도 그녀는 고개를 바로 돌려버렸다. 얘기하기도 싫다는 듯. '나 삐졌어'라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내일…시간 있냐?"
나는 어찌어찌 말을 꺼냈다. 오늘이 안된다면..내일이라도 그녀를 다시 만나야했다. 그래도 이런 소리 내뱉기 참 오묘했다. 이거는 아무리봐도 데이트신청으로 밖에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네 주제에 나에게 데이트신청하는거야?"
"…그게…"
"우물쭈물 거리지 마. 게다가 지금 상태를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아직도 풀리지 않았나..내가 이런 말을 한 것이 바보였다. 급한 마음에 말을 내뱉었지만 역효과. 오히려 기분을 상하게 만들어버렸다. 젠장..!! 사람과 대화를 해 봤어야지 뭔가 통하는 게 있는데 내가 사람이랑 거의 대화를 안 하다보니..그것도 여자랑..대화하는 사람 해 봤자 지현누나나 가끔 민정이..그 둘 뿐인데..게다가 그들은 가족이지 않은가? 전에 정시하와 조금 얘기했던 것을 제외하면 단 한명도 없었다. 같은 나이의 여자아이와 대화를 하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었다.
"없어"
"…뭐?"
"시간 없다고. 내일 또 방송해야 해"
"…"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이 마지막 기회를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발버둥을 친 것이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갈래"
그녀는 벤치에서 갑자기 일어났다. 나는 그녀에게 실망만 안겨주었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서 나를 만나려고 온 것 같았는데..되려 기분만 상하고 돌아가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붙잡을 수도 없었다.
그녀는 나에게 인사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놀이터를 빠져나왔다.
"잠깐…!!"
나는 쫓아가면서 멈추라고 얘기했지만 이러한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사거리의 횡단보도를 지나 자기 갈 길을 가고 있었다. 더 이상 나와 얘기할 가치도 없다는 듯..나는 그녀를 잡을 수 있었지만 잡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딸칵하고 집 앞의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나의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버렸다. 무기력하다..힘이 모두 빠져버렸다. 생각지도 못하게 우연히 나를 찾아온 그녀를 구할 기회도 날려버렸고..스쿼시를 치면서 체력은 다 소모되었고..또 잠이 들 것만 같았다.
'그녀는..나의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나를 찾아온 그녀. 대체 무슨 이유에서 나를 기다렸는지 이제와서 궁금증이 들었다. 각종 구설수와 악플에 시달리는 그녀. 웃고는 있었지만 속으로는 웃고 있는 게 전혀 아니었다. 화가 나고 우울하고 무엇보다 팬들한테 실망의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 마음 아파했을 것이다. 그래서 위로를 받고자 나에게 찾아왔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너에게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
미안 지현누나. 나는 그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을 잃어버릴 것 같아. 그 녀석과 즐겁게 지내지 못할 것 같아. 누나가 바라는 대로 되지 못할 것 같아..
'용기를 내 먼저 다가가서…얘기도 해보고…네가 노력을 조금이라도 했으면 해…'
지현누나가 어젯밤했던 말들이 자꾸만 뇌리에 지나간다. 그녀의 말에 용기를 얻었지만 정작 세희와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밤 갑자기 세희가 나를 찾아왔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기회에 노력도 하지 않고 가만히있어서 그녀의 검은 뱀을 없애려고 온갖 궁리를 해왔던 것이다.
검은 뱀이 나에게 혀를 낼름거리며 똬리를 틀고 나를 노려보는 것이 떠올랐다.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나라는 존재를 누가 달가워하겠는가? '위선'의 껍질로 꽁꽁 둘러싼 검은 뱀.그 겹겹이 쌓인 껍질을 탈피시켜야했다.
내가 그 껍질을 벗겨내야했다.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외출을 준비했다. 내가 생각해도 별 짓을 다한다..지현누나와 만나려고 밑도 끝도 없이 버스터미널에서 표를 끊었더니 이번에는 방송국에 쳐들어가려는 계획을 세웠다. 정말 아무런 과정도 생각하지도 않고 무턱대고 그녀를 만나려고..
"어이 오타쿠 어디 가?"
"놀러"
"혼자서?"
"…"
"누구 만나러 가?"
"…어"
"누구?"
"…몰라도 돼"
퍼억!!!!
갑자기 이단옆차기로 나의 옆구리를 시원하게 밀어내시는 민정양.
"오타쿠주제에!!!! 기껏 물어봐줬더니 뭐? 몰라도 돼? 그런 말을 여동생에게 해도 돼?"
"…간다"
"빨리 가기나 해! 칫!"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역에 도착했다. 어떤 방송국에 있는 지도 모르는데 나는 무턱대고 아무 방송국에 찾아갔다. 아마 직업이 가수이니까..가요프로그램과 관련된 스튜디오에 가면 되겠지..? 아니지..지금 가요활동을 안 하고 있으니까..
"오늘 연세희 MC데뷔 한다지?"
"그러게…가수도 힘든데…MC까지…"
"소속사도 정말 무리하지…지금 루머가 떠돌고 있는 와중에도…"
"이제 신인인데…"
"요새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저기…"
"네?"
"말씀 중에 죄송한데 연세희가 MC데뷔 하는 곳이 어디죠?"
"무슨 가요프로그램이던데…저도 잘 몰라요…팬이 아니라서…"
"여기 방송국에서 하는 것이 맞나요?"
"아마도 맞을 걸요? 그런데 왜 물어보시는 건지…"
"팬이거든요…팬이 된지는 별로 되지 않았지만…얼굴 한번 보려고 왔어요…"
"얼굴 꼭 보시길 바랄게요. 딱 한번 직접 봤는데 정말 예뻐요…"
"팬클럽도 많이 온 것 같았는데…따라들어가시면…"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나는 방송국 안으로 들어갔다. 팬들이 구경하는 스탠딩석이 아니라 가수들이 대기하고 있는 대기실로 가야했다. 이제 어떡하지...어떻게해서 대기실로 간다고해도 매니저가 옆에 있을 것이 뻔하였다.
이런 매니저라는 장애가 있어도 나는 움직여야 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그리고...
지쳐버린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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