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71화 (7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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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Hypocri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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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의 포옹이 끝나고 난 후, 그녀가 머뭇머뭇거리며 나의 곁에서 떨어졌다.

"방에…들어갈게"

"으응…공부 열심히 해…"

그녀는 살짝 미소짓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뭔가 어색하기만 했다. 뭐랄까..친하게 지내고 있지만 그녀와 나 사이의 아직 허물어지지 않은 투명한 벽이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다정하게 위로도 해주었고, 충고도 해주었지만..아직 엉킨 실타래가 남아있는 듯 싶었다.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지 뭐..나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기로 하였다.

"세희…오늘 또 학교 안 왔어?"

"안 온것 같은데…"

"계속 결석처리가 되는 건가…"

"활동 안 한다면서?"

"맞아. 휴식기라고 했는데…"

"아니면 구설수때문에…"

"그럴 수도…"

"혹시…오늘 주말이라서 그러는 거 아닐까?"

"그건 뭔 소리야?"

"그러니까…오늘을 놀토로 착각하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모를 리가 없잖아?"

"…주말기간에도 연예인들은 바쁘지 않나? 특히 가수같은 경우에는…"

"생방도 많고…"

어제 금요일에 3교시를 조퇴한 뒤, 주말인 오늘에는 아예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나오는 가 싶더니 다시 학교를 휴식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시간은 정말로 얼마남지 않았고…내가 어떡해야 되는 지도 모르는데 그녀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은 갈수록 줄어만 갔다.

"그런데 요새 tv 안 나오잖아?"

"맞아. 그런데 왜 학교에 안 나오는 거지?"

"학교에 나오고 싶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저 녀석 때문에?"

"나도 공감. 저 녀석과 얽히기 싫은 것일수도…"

나를 원망하는 목소리들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연세희가 학교에 안 나오는 이유가 모두 나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이다. 오늘도 변함이 없다. 나를 욕하는 것은..이러한 내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소리다. 다가갔다가는 몰매를 맞을 것이 뻔하다. 그래도 돌파구를 찾아야했다.

비록... 나는 아무 것도 못하겠지만은..

파캉!

주말의 저녁. 나는 어김없이 스쿼시장을 찾았다. 그런데 스쿼시장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저씨 아줌마들도 어디갔는지 스쿼시장에 배치된 의자는 휑하기만 했다. 나는 라켓을 꺼내고 코트에 들어가 공을 두들겼다. 역시나 혼자치면 심심했다. 공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코트를 메우고 있었다.

정말로 생각없이 쳤다. 그냥 본능적으로 마구 휘두르기만 했다. 잠깐 스트레스를 풀고자 이곳에 왔는데 스트레스가 더 쌓이기만 하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30분동안 코트를 날뛰다가 제 풀에 지쳐버려서 코트에 누워버렸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심장박동수은 한계를 모르고 끊임없이 두근거렸다. 헉..헉..하는 가쁜 숨을 내쉬며 지쳐버린 심신을 달래주고 있었다. 나는 한참동안 누워있었다. 더 이상 연습할 엄두도 내지 않고 땀이 이곳 저곳에 묻어있는 이 코트에서 멍하니 위에 붙어있는 전등 몇 개와 벽을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불면증인데도..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이 너무나 피곤해서..

"어이 학생! 학생!"

나를 흔들며 깨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떠보니 청소부 아줌마가 나를 깨우고 있었다.

"10시야! 문 닫는 시간 됐어! 자려면 집에가서 자야지 왜 이곳에서 자?"

"…죄송합니다"

긁적긁적거리며 내팽개쳐진 라켓을 들고 코트를 나왔다. 진짜로 시계를 바라보니 10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에 자러왔는지도 모르겠다. 30분동안 미친 듯이 뛰었을 뿐 제대로 된 연습하나 한 것이 없었다.

끼기긱하고 1층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깜깜한 밤. 많은 양의 차들이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집까지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아서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정우야"

내 앞에는 익숙한 얼굴이 서 있었다. 오랜만에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화장을 하고 어른스러운 옷을 입은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척하니…

"…오랜만이다"

"…응…잠깐 얘기 좀 할래?"

그녀와 나는 조용한 놀이터로 갔다. 그리고 그녀는 자판기에서 음료수 두개를 뽑아서 하나는 나에게 주고 하나는 자기가 마시면서 벤치에 앉았다.

"…그 동안 뭐하고 있었어?"

"…촬영도 하고…인터뷰도 하고…바쁘게 보냈어"

"학교도 빠질만큼?"

"…응"

"휴식기…라고 하지 않았었나?"

"휴식기였어. 그런데 매니저 오빠가 학교에 등교하는 것을 막고 있어…"

"…막고 있다고?"

"응…학교에 등교하면서 구설수가 생겼다면서 소속사에 말해서 등교하는 것을 제지시키고 있어 강제로…"

"…"

"괜…찮아?"

"뭐가"

"맞았잖아…"

"딱히 아프지도 않았어"

"…미안해"

"너가 뭐가 미안한대?"

"내가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하는 바람에…너가 괜히 매니저오빠한테 찍혀버리고…"

"자책할 필요 없어"

"하지만 너가…!!"

"너야말로…지금 욕 먹고 있다면서?"

"…!!"

"애들이 그러더라. 악플도 달리고 약속을 안 지킨다는 구설수에 시달리고…너가 힘들어 하고 있다고"

"전혀…힘들지 않아…내가 원해서 하는 일인걸…"

"원해서 하는 일인데…왜 계속 원하는 일을 하지 않았던 거야?"

"…?"

"스쿼시를 치고 학교를 다니고…원해서 연예계에 뛰어든 것이라면…이런 거 안해도 되잖아?"

"…그건…휴식기라서…계속 활동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휴식기라는 거. 누가 정하는 거야?"

"…"

"너가 정하는 거 아냐? 소속사가 이 정도면 되었다. 이만 쉬어라라고 강제로 휴식기를 정해? 그건 아니잖아. 너가 활동에 지쳐서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해 쉬는 거 아니었어?"

"…그렇지만"

"나는 연예인의 속사정따위 전혀 몰라. 하지만 휴식기일 때는 제대로 쉬어줘야 되는 거 아냐? 왜 촬영을 가고, 인터뷰를 하고 그러는 건데? 돈을 계속 벌고 싶어서? 인기를 더 높이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강제로 하는 거야? 어쩔 수 없이?"

"…"

"너가 정말로 원해서 이 일을 하고 있다면…왜 스쿼시를 치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거지? 왜 학교에 다니고 있고 촬영약속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나랑 같이 밥 먹자는 약속을 하고 있는 거지?"

"…그건 단지 쉬고 싶어서…"

"너는 원하지 않았을 뿐이야"

"…!!"

"이런 일들을 과도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너무 힘들고 부담스러워서…"

"아니야…나는 정말로 연예인이 되고 싶었고…그 꿈을 이루었어…"

"하지만…이제 지쳐버린 거겠지…꿈은 이루어졌지만…"

"…아니야!!!"

"그렇다면…너의 진정한 모습은 왜 보여주지 않는 거야?"

"진정한 모습이라니…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보시다시피 나는 너를 별로 알고 지내지 못했어. 하지만 사람의 '느낌'이라는 것이 있잖아? 내가 느끼는 너는…진실된 모습을 숨기고 과도하게 착하고 상냥한…그런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서 있어"

"…대체…무슨…"

"너, 나를 대할 때와 다른 사람을 대할 때가 전혀 틀리잖아"

"…?"

"tv속에서나 학교 안에서의 모습에서의 그 여리고 착하고 청순한 '연세희'가 아닌, 폭력적이고 자존심있고 장난기가 있고 자기의 하고 싶은 말을 내뱉을 수 있는 그런 '연세희'…가 아니었어?"

"…"

"내가 싫어서 그런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지…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그래. 나는 어떤 모습이 너의 진정한 모습인지 알지 못해. 하지만 이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정말로 즐기고 있다면…그렇게까지 이중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을까?"

"무슨 말을…하고 싶은거야…"

"'위선'이라고"

"위선…이라니…?"

"사람들 앞에서 착한 '척'을 하고 있다는 거야. 너는"

"…착한 척?"

"그래. 본질적으로 너가 나쁘다는 것은 아냐. 나는 너가 착하다고 생각해. 하지만…과도하게 '착한 척'을 하고있다고  생각해. 너가 나에게까지 보여주었던 모습이랑 tv에서의 모습이랑 너무 차이가 컸으니까…내가 지금 섣부른 판단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지만…"

"…"

"너는 지금 힘들어하고 있잖아?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야. 구설수니 악플이니 이러한 것들 때문에 너가 상처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 그래도 너는 변함없이 이러한 것을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듯 대중들 앞에서 어디까지나 상냥한 '연세희'가 되려고 안간 힘을 쓰어. 그래서…위선이라고…"

"…"

"내가 보고 있는 너는…평범한 여고생이야…착하기도 하고…때로는 성질을 부릴 줄도 알고 장난도 칠줄 알고 미안해할 줄도 알아. 항상 웃는 얼굴로 마치 광대같이 있는 너가 아닌, 인간으로서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연세희'라는 사람이야…헤실헤실 사람들 앞에서 잘 보이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악플에 상처를 받고 그런 악플들을 써놓은 사람들에게 화가 나고 …기자들이 멋대로 써놓은 구설수에 힘들어해서 그런 놈들을 모두 때려잡고 싶은…그런 감정표현을 할 수있는…'기계'가 아닌 '사람'이라고…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실제로 그녀의 성격이 너무나 착하고 상냥해서 나의 말이 모두 틀렸을지 모른다. 사람을 멋대로 자신의 잣대로 표현하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고 위험한 일인지도 알면서..그래도 나는 내가 보고 있는 연세희라는 아이에 대해서 솔직히 말했다. 옳고 그름을 따지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냥 나의 심정을 말했다.

어찌보면 '위선'이라는 것은 옳은 일일지도 모른다. 어쨋든 남들에게는 '착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할 수 있으니까..그것이 진심이든 진심이 아니든..

하지만 그 '위선'이 지금 그녀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있었다. 그녀의 안에 생겨난 이 다 커버린 검은 뱀도 이 '위선'이라는 것 때문에 생겨나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너가 뭘 알고 있다고…"

"아아…나는 아무것도 몰라…"

"진짜로…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너랑 나는 별로 알고 지내지 않았잖아? 그러니 모를 수 밖에…"

"아무것도 모르면서…나를 그렇게 말하고 있는거야? 음침하게 생겼고… 폐인이고… 왕따주제에!!"

퍽!!!

오랜만에 스크류펀치가 복부에 작렬했다. 젠장..기습에 제대로 가드를 하지 못했어..

"너 말야! 안 지도 별로 안되었으면서 사람 모두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지 말란 말야!!! 나에 대해서 뭘 알고있어? 집을 알아? 취미를 알아? 내 신체사이즈를 알아? 대체 뭐를 알고 있는 건데!!!!"

퍽! 퍽!

나를 계속 때리고 있었지만 그 파워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아아..맞을 짓 했지..?

또 울려버렸어..여자를..정말로 쓰레기일지도..나라는 놈은..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사람을 멋대로 바보취급하지 말라구…"

그녀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나 밖에 없는 이 황량한 놀이터에서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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