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69화 (69/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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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Hypocri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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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뱀.

그녀의 안에 들어있는 그 녀석은 똬리를 틀고 혀를 낼름거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알'도 아니었고 '작은 새끼'도 아니었다. 기나긴 몸. 무서운 눈. 영락없는 뱀의 모습.

그렇다면..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얼마남지 않았다.

지현누나때와 틀리다. 지현누나는 '작은  새'였다. 그래서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완전히 성장한 뱀'이었다. 머지않아 그녀의 '마음'을 부셔버리고 뛰쳐나와 그녀의 '존재'는 사라질 것이다.

'연세희'라는 소녀는 더 이상 그 누구의 기억 속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연예인. 그것은 사람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직업. 관심이 없다면 자연스레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운명.

나는 그것을 판단할 여유도 없었다. 어서 빨리 검은 동물을 없애버리지 않으면..!!!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4교시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쫓아가서 나는 그녀에게 어떠한 행동을 할 것이지? 라는 것도 생각지 아니하고..그저 내 주위에 또다시 사람이 사라질 지 모른다는 공포에 필사적으로 계단으로 내려갔다. 이 녀석..어디 간거야?

재빨리 2층 복도 창문을 봤다. 창문 너머엔 그녀가 보디가드들의 호위를 받으며 정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직 늦지 않았어...나는 계단을 내려가고 1층에 있는 문을 박찼다.

"연세희!!!!"

"……정우?"

나의 외침에 보디가드들도 고개를 내 쪽으로 홱하니 돌려 경계하고 있었고 그녀는 놀란 토끼 눈을 하고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차 일 났다. 그녀를 부른 다음에 어떻게 해야되지? 그것을 생각 안 해버렸다..어떻게 해야되지..?

"정우…?"

"…그게…그러니까…"

"어이"

내 뒤에는 나에게 얼굴 한 방 날린 그녀의 매니저가 살기를 내비치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또다시..

퍽!!!!

패스트푸드점에서 처럼 나의 왼쪽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다행히도 저번처럼 널부러지진 않았지만 바로 나의 멱살을 잡았다.

"야이 새꺄. 더 이상 세희한테 관여하지 말라고 했을텐데? 사람 말을 개같이 알아처먹냐 앙!!!!!! 그 때 너때문에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 알아!!!! 화보촬영도 취소되고 구설수 때문에 다른 광고의 계약도 모두 끊겨버리고!! 이 새끼가 나한테 죽고싶어 안달이 났나…왜 이렇게 깝치고 있어!!!!"

퍼억!!!

"너 따위 놈이 세희의 '친구'라고?"

퍽!!!! 퍽!!!!

"네 주제를 알아야지. 너 같은 새끼가 세희의 친구라고? 착각도 유분수지. 스토커같이 달라붙지마라. 너 같이 얼굴을 가리고 음침한 데다가 친구랍시고 세희에게 피해를 줘?"

"오빠 그만해요!!!!"

그녀가 매니저를 만류하려고 뛰쳐나가려고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보디가드들의 제지에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였다.

"넌 가만히 있어!! 어디 그 잘난 입으로 씨부려봐. 너, 왕따라면서?"

"…"

"말 없는 거 보면 인정하는 눈치네? 그러니까…"

빠각!!!

"다시는 친구라는 말도 꺼내지마라. 아무런 친구도 없으면서…귀찮게 들러붙기나 하고…친구 한 명도 없으니까 새로 들어온 친구 한명 꼬셔보겠다고…그것도 유명한 연예인을? 니 주제에? 가진 것도 쥐뿔도 없으면서…감히…"

퍼억! 빠각!!! 퍼억!!!

"그만해요!!!! 이제 그만해요!!!!"

그녀의 절규소리가 들림에도 매니저는 나를 패는 데만 집중하였다.

빠각!! 빠각!! 꾸욱!!!!!

"차라리 이렇게 밟히고 사람들한테 왈왈 거리면서 개처럼 굽신거리지 그래? 그러면 혹시 몰라? 이런 너한테 말을 걸어줄지도…?"

꾸욱!!!!!!

"왕따라면 왕따답게 살아라. 그리고 다시는 세희와 나의 눈 앞에 띄기라도 한다면…"

뻐걱!!!

"정말로 개박살 날지도 모르니까… 다시는 회복하지 못할정도로…"

"그만해요!!!!!!!!!!"

"세희 때문에 봐준거다. 시간도 없고…빨리 촬영장 가야되니까 말이야…"

빠각!!!!

"잘 있어라. '쓰레기'"

"정우야…"

"가자"

매니저의 명령에 보디가드들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끌고 갔다. 그녀는 정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줄곧..나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1층 현관문 앞에서 모든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나는 흠씬 두들겨 맞았다. 충분히 반격할 수 있었는데도 반격할 수 없었다. 어째서일까... 그냥 이런 거 맞아주면 되지 뭐..라는 미련한 생각때문이었을까? 매니저가 현관문을 나선 몇 분뒤에 나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자리에서 툭툭 아무렇지 않게 바지를 치며 일어났다. 옛날부터 맞아온 터라 이런 솜주먹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쫓아가서 죽일까?'

심장이 두근하고 순간 살인충동이 일어났다. 안돼지 안돼..겨우 이딴 일에 살인충동이 일어나면..그녀를 태운 밴이 부르릉하고 학교를 빠져나갔다. 이미 늦어버렸구만..

나는 계단을 올라갔다. 나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들은 꼴 좋다는 식으로 키득키득 웃으며 나를 비웃고 있었다. 그래..신나게 비웃어라..나는 그것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교실 뒷문을 드르륵하고 열자 4교시가 아직 끝나지 않은 듯 선생이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가 내가 들어오자 곧바로 차갑게 보고 있었다.

"어이 박정우"

"…네?"

"뭐하고 있다가 이제 들어온거냐?"

반 아이들도 갑자기 뛰쳐나가더니 돌아올 때는 옷과 바지에 신발자국이 잔뜩 묻은 나의 상태를 보고 대체 뭔 일이지 하고 의아해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뭐가 아무것도 아니긴 아니야? 이리로 와!"

나는 말 없이 뚜벅뚜벅하고 선생의 앞에 섰다.

퍼억!

곧장 출석부가 나의 머리를 강타했다.

"계속해서 수업 이딴 식으로 받을 거야? 이럴 거면 자퇴나 하지? 맨날 잠이나 퍼자고 있다가 오늘은 뭐? 아무것도 아니라고? 수업 시작한지 30분이 흘렀다!! 30분이!!!"

"…죄송합니다"

"죄송한 거는 알고 있나보군?"

"…"

"너는 조금 있다가 교무실로 와라. 일단 들어가"

'무슨 일이야?'

내가 말없이 창가 맨 뒷구석인 자리에 앉자 앞자리 옆자리 뒷자리에 앉은 놈들이 모두 무슨 일이냐며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묻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피식 미소만 짓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곧 있으면 알게 될 터였다. 연세희의 매니저한테 신나게 맞았다고.

4교시가 끝난 직후 점심시간에 그 선생이 나를 끌고가더니 교무실에서 온갖 잡소리들을 지껄였다. 대놓고 욕을 하는 것은 물론이요 나를 매로 때리기까지 했다.

옳지! 드디어 꼬투리 잡았다!면서 나를 싫어하던 그 선생은 아주 좋은 기회를 포착한 듯 나를 신나게 갈구고는 내일까지 반성문을 작성하라는 명령과 함께 밥이나 처먹으라고했다.

그런데 빌어먹게도 그 선생이 지껄이느라 밥 먹을 시간이 지나버렸다. 굶어야지 뭐..매점 갈까하고 발걸음을 옮기기도 했었지만 도중에 그만둬버렸다. 돈도 아깝고..그냥 집에서 밥 먹어야지..

"저 새끼 연세희매니저한테 맞았다면서?"

"정말? 봤어?"

"계속 때리던데?"

"꼴 좋다…저 새끼…아주 연세희한테 들이대더니…아주 임자 만났어…"

교실로 돌아오면서 주변은 당연히 수군수군. 교실에 있던 놈들도 수군수군. 죄다 내 뒷담화를 하였다. 그냥 무시하자..평소처럼..매일 그래왔듯이..

방과 후, 집에 돌아온 나는 간단히 라면을 끓여먹었다. 그리고 소파에 TV를 켰다.

"네! 오늘의 특별게스트는 새로 떠오른 광고계의 블루칩이자 하늘이 내린 천상의 목소리!! 연세희양입니다!!"

"안녕하세요! 연세희입니다!

tv속에서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있었다. tv속에서나…현실에서나…그녀는 항상 밝은 모습이었다.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자기가 데뷔했던 과정..가족얘기..취미..이상형..온갖 질문에 성심성의껏 환한 미소로 대답하였다. 그리고 가끔가다 터져나오는 짓궃은 질문에도 표정의 변화없이 항상 웃으면서..'연예인' 답게..

나는 tv를 픽!하고 꺼버렸다. 더 이상 보고싶지 않았다.

절망감에 빠졌다. 그녀와 나는 '남'이었기에.. 그리고 만날 기회 조차도 없다. 그녀와 나는 사는 세계가 틀리니까..그녀는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니까..

이제 더 이상 그녀를 볼 수는 없다. tv속에서도.. 그리고..현실에서도..

머지않아 그녀를 알고 좋아하던 사람들 모두 그녀에 대해 모르게 되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녀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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