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68화 (68/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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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Hypocri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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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 나는 피로에 지쳐 잠이 들었다. 행여나 그녀가 나의 잠을 방해할까 조심조심 엎드렸지만 그녀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수업을 듣고 필기를 했다.

쉬는 시간에는 반 아이들도 그녀에게로 몰려들지 않았다. 그녀의 기분을 알면서도 다가가는 파렴치한 짓을 할 만큼 그들은 어리석지 않았다. 그녀가 왜 모두 자기의 잘못이라고 말했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여전하였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녀에게 말을 걸어주면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너무도 착하고 상냥하게..어제 나를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폭력을 쓰지도 않았고 어디까지나 청순한 소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제와는 확연히 틀렸다. 애써 밝은 모습을 유지하려고 안간 힘을 쓰는 것처럼..

그렇게 평일은 흘러갔다. 나도 그녀도 학교에서 서로 대화를 거의 하지도 않았고 마주칠 때마다 그녀는 말 없이 미소만 짓고 나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더 이상 나에게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고 회전을 먹인 펀치로 때리지도 않았고 나에게 장난도 치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tv와 마찬가지로..

줄곧 '연예인'이었다. 마치 주변으로 다가오면 안된다는 분위기. 그저 신성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과 같았다.

그녀가 학교에 온지 겨우 하루..너무나도 달라져버린 그녀..나에게만 보여준 그녀의 성격은 '거짓'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마치 '성녀'처럼 행동했다. 주변에서도 그러한 모습에 쉽사리 다가오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나도 밝았다. 너무나도 환해서 다가갈 수 없고 접근하면 되려 자신이 벌을 받게되는 그런 느낌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녀의 주변은 황량해져만 갔다. 하교할 때에도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는 매니저와 보디가드들의 보호아래 고급 밴으로 하교를 하였고 학교에 있을 때 말수는 갈수록 줄어만 갔다.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

그래..그녀는 '외톨이'가 되어갔다.

"어이 오타쿠"

밥을 먹고 난 금요일 저녁, tv를 보고 있던 민정이가 나를 불렀다.

"왜?"

"오타쿠 학교에 연세희 왔다며?"

"…어"

그것도 우리 반으로 왔지.

"혹시 봤어? 실물도 예쁘지?"

"…어"

"그렇구나! 데뷔한지도 별로 안됬는데 프로그램에서도 광고에서도 모두 모셔가려고 난리부리던데..얼굴도 예쁘지 가창력 좋지..게다가 여러 불우한 이웃들을 도우려고 콘서트도 열고 막 기부도 하고..세간에서는 '기부천사'라고 불린다면서? 인터뷰도 하는 거 보면 상냥해보이고…이미지 관리가 아니냐는 소리도 많긴 한데…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진짜로 성격이 착해서 그런 것 같아. 신인가수인데 팬클럽도 몇 십만명이고…광고도 벌써 여러 개 찍고…음악프로그램에서도 1위를 몇 주동안 계속 하고…얼마나 완벽한지…"

"…그래?"

나야 tv를 전혀 안보니 그런 것을 알 리가 있겠냐고. 그리고 연세희가 그렇게 착했었나? 전혀 아니었는데…짓궃고…장난도 치고…성질 부릴 줄도 알고…게임에서 이기려고 나한테 가르쳐달라고 할 정도로 승부욕 있고…폭력적이고…겉 다르고 속 다른 내숭녀이지만 여느 평범한 소녀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것이 그녀의 진실된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모습은 어느 곳에서든지 볼 수 있었다. 한번도 들어보지도 못했던 그녀의 노래, 그녀가 찍은 광고들. 대형할인마트에서든 tv를 파는 전자상가에서든 어느 곳에서든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버스정류장에 붙어있는 화장품 광고 속에서도 그녀는 밝게 웃는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자극했다. 여태까지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것이 이제는 다르게 보이고 있었다. 그녀에 대해 알게되서 내가 그러한 것을 보는지는 몰랐어도..

"세희가 왠일로 안 오는 것일까?"

"그러게 말이여…혹시 어디 아픈감?"

"아프다고 할 지라도 이틀동안 계속 빠지는 아이는 아니였는데…"

"어이! 신입! 너 뭐 아는 거 있냐?"

"정우야 혹시 세희가 이틀동안 빠진다고 그랬니?"

"토요일도 그렇고…일요일도 그렇고…세희가 없으니까 허전하구만…이런 나이 든 사람들만 모여있으니…"

혹시나해서 주말 저녁에 스쿼시를 치러 오지 않을까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토요일 저녁에도 오늘 일요일 저녁에도 오지 않았다. 결국 매니저가 그녀의 유일하게 허락된 시간마저 막아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아마 연예활동이니 뭐니 해서 막아버린 거겠지..

그녀와 같이 스쿼시를 치던 어른들도 갑자기 그녀가 스쿼시장에 오지 않자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틀 연속으로 빠진 것인지 저마다 걱정스러워했다. 이 곳의 마스코트나 다름없던 그녀가 오지 않았으니..허전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였다.

할아버지 2분 도, 아줌마도 아저씨를 포함한 12명 모두 게임을 즐기지 못하였다. 그 유쾌하고 왁자지껄하던 분위기는 어디가고 조용히 공을 치는 소리와 함께 묵묵히 운동만 하고 있었다. 그 만큼 그들에게 있어서 그녀의 존재는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녀는 소외되어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그들은 그녀를 소중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가 전혀 다르게 느꼈을지는 몰라도..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그녀를 아꼈던 것이다.

왠지 모르게 그녀가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는 이 즐겁고 유쾌하던 곳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없으니까..그녀 단 한 사람이 없으니까..

나는 홀로 구석진 코트에서 공을 두들겼다. 그녀를 가르쳤던 곳에서..나도 허전함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었다. 나에게 모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녀를 미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의 두가지 상반된 모습이 어떠했건..나도 모르게 즐거워했었던 건 사실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돌아왔다. 보통이면 스포츠센터가 문을 닫는 10시에 청소하는 아줌마가 나가라고 말하고 나서야 나갔었는데..오늘은 지루해서 일찍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길가를 걷다 커다란 밴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순간적으로 보았지만 그것은 확실히...그녀가 타는 차였다. 또 어디론가 급하게 가고 있었는지 빠르게 휙하고 지나가고 있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상당히 힘들겠구나..이런 늦은 시간까지 밴으로 이동하고 있으면..게다가 여린 여자인데도..밤 늦게까지..촬영장에 가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더 이상 내가 상관할 바가 못되지..이제 그녀와 대화를 할 수 없으니까..이제 그녀를 만나는 장소는 학교밖에 없으니까..

이제..그녀와 내가 이어진 '인연의 사슬'은 끊어져 있을 테니까..

"세희 오늘도 학교에 안 나왓지?"

"벌써 수요일인데…연예인 활동이 그렇게 바쁘나?"

"휴식기라면서…그래서 학교에 오는 거 아니였어?"

"요새 연예기사 보니까…막 구설수에 올라있던데…멋대로 화보촬영 펑크내고 패스트푸드점에 갔었다는 것이 기사가 되서…그것도 남자랑 같이 갔었다는…"

"그러면 스캔들?"

"아마 그러겠지? 박정우 녀석…그런 스캔들에 휘말릴 줄이야…그것도 엄청 유명한 아이돌이랑…"

"구설수에 상처받고 있겠지? 세희…"

"사람들 얘기로는 연세희가 이럴 줄은 몰랐다고…평소에 성실하다고 했었는데…실망했다고…"

"결국은 이미지관리였다…라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어"

"연예인이라면 이미지관리 해야지…그런데 그것이 너무 심한 게 문제잖아?"

"뭔가 구속받고 억압되어 있다는 느낌도 들어…교실에서도 늘 조용하게 있었고…학교 온 첫 날에는 그렇게 밝고 활달했었는데…"

"매니저도 뭔가 문제있지 않아? 패스트푸드점에서 어떤 학생의 얼굴을 쳤다고…게다가 뭔가 안좋은 소문도 많이 있고…"

"그 맞은 사람. 박정우 일걸?"

"결국에는 저 새끼가 문제야…괜히 연세희까지 피해를 입히고…"

"세희 얘기로는 자기가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했다지만은…그것은 정우랑 친하니까 덮어주려고 그런 거 아니었을까?"

"얼마나 착해…저런 새끼까지 감싸주고…"

"세희가 불쌍해…고작 저런 놈때문에…"

"신인가수인데…데뷔한지 얼마나 되었다고…모두 저 놈 때문이야…"

"이번에 안티도 생긴 것 같애…악플도 많이 달려있었고…"

"후…뭔가 씁쓸하다…"

"게다가 휴식기였는데…"

벌써 수요일. 그녀는 계속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스쿼시에서도 볼 수 없었는데, 그녀는 학교도 나오지 않았다. 그것을 둘러싼 같은 반 애들은 물론이고 다른 학년 전체 모두 저 마다 수군수군 거리고 있었다. 결국에는 모두 나를 욕하고 있었지만..그건 내가 여태까지 쌓아왔던 '업보'때문이었으리라. 내가 포함된 사건이 잘못될때마다 전부 나를 욕했으니까.. 나라는 놈은 욕 먹는것이 당연하다면서…비록 대놓고 욕하지는 않았지만 뒤에서는 나에대한 신랄한 뒷담화가 오가고 있었다. 모두 그녀를 동정하고 있었다. 불쌍하다는 둥 너무도 착해서 손해본다는 둥 그녀를 모두 걱정하고 같은 학교였기 때문에 그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세희 안 왔냐?"

"예…"

"…대체 무슨 일이지…집에도 전화해도 받지도 않고 소속사에 전화를 해봐도 응답하지도 않고…"

담임의 조회시간에도 수업시간에도 선생들이 그녀가 오늘도 안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전부 걱정해주고 있었다. 태도도 바른 데다가 착실한 학생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더더욱..

시간은 어느 덧 4월 마지막 주. 금요일이 찾아왔다.

오늘도 그녀가 안 오겠지 라는 실망감이 역력했는데, 드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갈색머리의 아름다운 소녀가 들어왔다.

"세희야!"

"세희다!"

"세희양!!!"

"진짜 몇 일만에 보는 거야…거의 일주일?"

"그 동안 뭐하고 있었어?"

"집 전화도 안 받고 소속사도 뭐라 말하지도 않았다고 선생이 얘기했는데…"

"끄헝헝…세희양…"

오랜만에 들어온 그녀가 너무나도 반가워서 우르르 몰려왔다. 다른 반에 있던 아이들도 모두 오랜만에 온 그녀를 보겠다고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미안해…그 동안 많이 바빠서…"

"아니 그런 건 상관없는데…괜찮아?"

"…괜찮아"

"막 기사에 너를 욕하는 기사도 많이 뜨고 사람들도 악플도 많이 달았는데…진짜 이때다 하고 승냥이떼처럼…"

"고작 박정우 녀석 떄문에…얼마나 힘들어했을까…"

"세희양!! 힘을 내요!!"

"그러니까 힘 내!! 우리 모두 응원하고 있으니까!!"

"그런 기사에 신경쓰지 말고…"

"모두…걱정해줘서 고마워…하지만 괜찮아…괜찮아져서 학교에 왔잖아? 나는 그런 기사 신경쓰지 않아. 그리고 펑크나지도 않았어. 좀 늦었을 뿐이지…그러니까 괜찮아!"

모두의 격려를 받으며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밝게 웃으며 화답하고 있었다. 기사와 악플에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이 뻔한데도 괜찮다면서 아이들의 걱정을 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조용히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왠지모르게 그녀를 보기가 미안해져서 고개를 창가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어차피 대화도 하지도 않았었고 그리고 차라리 나를 안보는 것이 더 났겠다는 생각이었다.

"안녕…"

"…"

"정우야…"

그녀가 나를 부르고 있는 데도 대답하지 않았다. 더 이상 나와 엮일 이유가 없었다.

"정우…"

"…안녕"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린 채로 응답을 해주었다. 조회시간에도 수업시간에도 창가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지 않았다. 그리고 책상에 엎드려서 새벽까지 쌓아온 피로를 풀어냈다.

"어디 가?"

"벌써 가는 거야?"

"3교시 밖에 안 지났는데…가는 거야?"

"많이 바쁜가 보다…"

"세희 잘 가"

"세희양 잘 가요!"

"갈 게…"

3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 같은 반 놈들이 그녀를 배웅해주고 있었다. 담임선생이 3교시 쉬는시간에 갑자기 들어와서 매니저가 그녀를 부르고 있다고 얘기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촬영제의가 들어와서 지금 빨리 가야된다고..

"정우야…"

가는 순간에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엎드려 있었다.

"…"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서 그녀가 나를 슬프게 바라보고 있다 가방을 들고 교실 뒷문으로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째서…"

나는 보고야 말았다.

떠나는 그녀의 안에는 어느 샌가 생겨난 검은 뱀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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