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59화 (59/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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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Hypocri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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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어디까지 할 줄 알아?"

"터닝샷 까지."

"그럼 다 했는데? 게임하는 데는 별 문제 없어."

"그렇지만…다른 기술들을 배워보고 싶은 걸."

"…어떤 거?"

"기본적인 발리. 보스트 터닝샷 했으니..드롭이나 터닝샷하면서 보스트 치는 거.그리고 킬 샷이나 드롭 발리(발리로 공을 바운드없이 받아치면서 드롭샷 같이 공을 아웃 아슬아슬하게 앞벽 낮은 코스로 약하게 떨구는 기술)같은 뭐 그런거.."

"너 어느정도 배웠냐?"

"한 2년 됐어."

"하아…너 정도면 터닝샷하면서 보스트 칠 수 있고 드롭 샷은 조금만 배우기만 하면 쉽게 익혀. 하지만 킬샷이나 드롭 발리는 고급기술이라 쉽게 못 배워. 나도 컨트롤이 잘 안되는 기술인데…그런 건 한 10년 배워야 제대로 쓸 껄?"

"그래도 어떻게 하는 지는 알잖아?"

"알기야 하지…그렇지만…이건 정말 노력이 필요하다고…"

"노력…?"

"게다가 나 같은 제대로 익히지 않은 사람에게 허술하게 배우면 오히려 독이 돼. 배우려면 선생님한테 확실히 배워. 하지만 터닝샷 보스트나 드롭 정도는 가르쳐 줄 수 있어."

"그 정도면 만족해…어차피…"

"…?"

"…으응. 그나저나 터닝샷 보스트 어떻게 해?"

"배우기 전에 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겠어."

나는 그녀에게 조그만 고무공을 건넸다.

"시합공으로 쳐본 적 있어?"

"아니."

"…보통 연습공은 반동이 크게 튀어. 하지만 시합 공은 달라. 낮게 튄다고. 그러니까 라켓으로 스윙을 할 때 공을 잘 살펴서 무릎을 굽히고 스윙을 해야 돼. 보통 연습공이라면 반동이 크게 튀어서 무릎을 굽히지 않고 스윙을 해도 되지만, 보통 스쿼시에서는 무릎을 굽히고 정확하게 치는 것이 정석이야."

"…그렇구나"

"일단 랠리를 하면서 가볍게 연습을 할게. 그러면서 네 실력도 알아보고."

"응"

나는 시합 공을 달궈서 그녀에게 약한 서브를 했다. 그녀는 무릎을 굽히고 정확하게 스윙을 했다. 포핸드(손금이 있는 곳)는 괜찮게 스윙하네..그러면 백핸드(뒤집어진 곳)는 어떨까?

나는 그녀와 반대방향으로 공을 약하게 줬다. 그녀는 순간 당황하더니 백핸드로 라켓을 휘둘렀으나 낮게 튀어온 공 때문에 헛스윙.

"…백핸드부터 해야겠군."

나는 기본부터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포핸드는 잘 치지만, 백핸드가 안 돼."

"…그건…"

"포핸드와 백핸드 모두가 잘 되야 제대로 스쿼시를 할 수 있어. 테니스도 비슷해. 기본적인 휘두르는 기술이 있어야 발리라든가 보스트 같은 것을 제대로 구사 할 수 있어."

"…"

"연습공으로 할 때, 백핸드로 공을 정확하게 잘 쳤어?"

"…"

"…역시나…생각을 해봐. 상대방이 무조건 포핸드로 치게끔 공을 보내겠어? 그 반대방향으로 줄 수도 있잖아."

"…"

"보통 게임을 할 때에는 상대방이 불리하게끔 백핸드 방향으로 공을 친다고. 손을 뒤집어서 휘두르는 건데 쉽겠어? 어른들이랑 게임을 잘 하고는 싶은데 정작 게임을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뭔데?"

"백핸드 때문이야. 어떻게보면 스쿼시, 아니 라켓으로 하는 운동중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이야. 백핸드가. 그 만큼 기초가 가장 어렵다는 거지"

"…"

"터닝샷 보스트를 하기 전에, 백핸드부터 확실히 하고 발리와 보스트를 먼저 해야겠어."

"잠깐만!"

"왜?"

"나는 그렇게 심각히 배울 필요가 없어."

"그래서?"

"그러니까! 나는 그런 기초 닦는 것은 필요없다고!"

"게임을 하려면 백핸드가 필수적이야."

"하지만…나는 이곳에 오는 이유가 게임을 하려는 것이 아닌 걸…"

"…그러면 뭔데?"

"…이곳에서 스트레스를 날리려고 왔어"

"스트레스?"

"매일매일 스트레스가 쌓여서 자꾸만 미쳐버릴 것만 같아. 그래서 스쿼시가 스트레스해소에 정말로 좋다고 하길래 여기에와서 치는 거고 정말로 스트레스해소가 돼. 하지만…"

"정작 스트레스를 정말로 해소할 수 있는 '게임'을 못하고 있다?"

"그래! 혼자서 치다보면 해소는 되지만 뭔가 개운치가 않아. 상대방이랑 게임을 하며 공을 팡팡!하고 세게쳐서 상대방을 이기는 거. 그런 것을 느끼고 싶었어."

"어른들이랑 하면 무조건 질 텐데…?"

"그러니까 내가 가르쳐 달라고 하는 거 잖아! 이 바보 폐인 자식아!!!!!!!!!"

커헉! 이봐요..저랑 만난지 겨우 이틀 밖에 안되었는데 바보 폐인이라니..ㅡ.ㅠ..

"아…"

"…"

"미안…내가 말이 너무 심했다…"

"아니…폐인소리야 계속해서 들어왔던 거라서 괜찮아…"

"그래도…만난 지 겨우 이틀 밖에 안됐는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그 말이라고요..

"후…그러니까 스쿼시에 대해서 뭔가 진지한 태도로 배우지 않는다면, 상대방을 이길 수 없다는 얘기야. 한 마디로. 보스트라든가 발리 같은 그런 허울좋은 기술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기본적인 기술로 받아치면서 상대방의 실수를 유도하는 것이 스쿼시의 게임이야."

"…"

"포핸드, 백핸드만 정확히 할 수만 있다면 너는 언제든지 게임을 해서 이길 수 있다고."

"정말?"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돌며 반갑다는 듯 말하고 있는 그녀.

"보스트.발리,터닝샷  그런 것은 모두 포핸드 ,백핸드를 치다보니까 생긴 거라고. 솔직히 보스트나 발리같은 거 몰라도 포핸드 백핸드 공을 보고 정확하게 칠수 있다면 거의 90%이긴 것이나 다름없어."

"…진짜지?"

믿기 힘들다는 눈치. 그냥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이길 수 있다는 데 믿을 사람이 어디있겠느냐 만은..

"정말이야"

"진짜로?"

"정말이라니까"

"진짜 진짜 진짜로?"

"진짜 진짜 진짜 진짜라니까."

"뭐 그렇게 말해준다면…믿을게"

휴..이제야 수긍한다는 듯 이제 더 이상 기술을 가르쳐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가르치는 입장이 되지는 않았지만, 내가 배운 대로 성심성의껏 그녀를 가르쳤다. 자세를 교정해주기도 하고(참고로 입으로만 말했지, 직접 만지면서 교정해주지는 않았다. 나도 남자였고 생판 남남인 사람이 만지는 데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으니까)직접 백핸드로 공을 치는 시범을 보이면서 이렇게까지 휘두르지는 못하더라도 정확하게 공을 멀리보내기만 하면 된다라고 몇 십번이나 강조했다.

그녀는 열정적으로 열심히 배웠다.내가 보여준 백핸드 휘두를 때의 자세를 따라하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공도 정확하게 치면서 파워가 붙었다. 그리고 백핸드를 정확하게 치지 않으면 멀리 날아가지 않는데, 점점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그녀도 그러한 성취를 맛 볼때마다 기쁜 듯 즐거운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후…차차 백핸드가 완전해 질 때까지 계속 익혀가면 되겠지…"

"정우야."

"응?"

"이제 백핸드도 괜찮아졌는데, 점점 더 나아지면 게임해서도 안 져?"

"너는 이미 보스트나 발리 터닝 샷을 배웠어. 그렇지?"

"응…그렇긴 하지만…어른들이 하는 거 보고 이 기술이 뭐냐고 어떻게 하냐고 물어만 봤지…정확하지도 않아…"

"그럼 됐어."

"뭐가 됐다는 거야?"

"너는 이미 배운 상태야. 포핸드로 터닝 샷 할수있지?"

"응…"

"백핸드도 이대로 손에 익으면 백핸드로 터닝 샷할수 있고 보스트도 할 수 있고 발리도 할 수 있어."

"…그거야 그렇지만…"

"내가 말했잖아? 게임을 하기위해서는 백핸드와 포핸드가 기본 조건이자 필수 요소라고."

"그런 말은 안한거 같은데?"

"아니 필요하다고 얘기했었잖아. 똑같은 얘기야."

"…"

"넌 백핸드만 제대로 익히기만 하면 얼마든지 사람들과 게임을 해서 이길 수 있어. 장담할게."

"…알았어"

그녀는 다시 열정적으로 나의 되먹지도 못하는 가르침에도 계속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하다보니 어느 덧 10시였다. 스포츠센터가 문을 닫는 시간. 청소부아줌마가 와서 빨리 문 닫는 시간이라며 우리들보러 나가라고 얘기할 때까지 계속 나는 그녀를 가르치고 있었고 그녀는 계속 연습을 하였다.

그녀와 나는 이러한 아줌마의 강제조치로 어쩔 수 없이 스포츠센터를 나왔다.

깜깜해진 밤. 달은 반달이었다. 그녀와 나는 집이 비슷한 방향이라 같이 걷고 있었다.

"…고마워. 가르쳐줘서."

"뭐가."

"사실. 나도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데…사정 상 안되서…"

"사정 상 안되더라도 틈틈히 배울 수는 있잖아?"

"그거야 그렇지만…그 배울수 있는 틈이 없어서…나도 겨우 주말의 밤에만…원래 안 되는데…내가 억지로…"

"그렇군."

"그래도…즐거워. 스쿼시를 하다보면"

"운동은 즐기는 거잖아? 즐기지않으면 하지도 않아."

"그렇지…"

"너도 소외감 들 필요 없어. 얼마든지 사람들과 즐겁게 게임할 수 있으니까."

"그 전에 백핸드는 완전히 익히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해야되고?"

"잘 알고있네."

"이제 헤어져야겠네."

"잘 가라"

"응…오늘은 고마웠어."

"고마워 할 필요없어. 어차피 나도 계속 혼자쳤었으니까.심심했는데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지 뭐."

"뭐야 그런 거였어?"

"나는 여기에 '처음'들어오는 사람이니까. 어색함이 드는 건 당연한 거잖아?"

"하기야 그렇지…그럼 잘 가…"

그녀는 횡단보도를 건너며 저 멀리 사라져갔다.

나도 가르치는 것에 보람은 있었나본지 자꾸만 가르치는 모습이 상기되었다. 다음주에도, 그 다음주에도 그녀는 배울까? 아니겠지…나는 잠시 길을 가는 데 도와주는 사람이지 그 길을 인도하는 선생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스쿼시를 혼자서 하는 심심함이 당분간은 사라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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