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55화 (5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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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Hypocri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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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나도 아저씨도 모두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오직 공에만 집중했다. 랠리를 할 틈도 없이 한 번 실수하기만하면 점수를 잃기때문에 자기의 차례에 올 때마다 힘껏 받아쳤다.

"10:8 !!!"

"접전인데?"

"움직임이 너무 빨라. 공도 보이지도 않고."

"신입이 잘해주고 있는데?"

"역전은 못했지만 예상 외로 잘해주고 있어."

"게임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지?"

"20분 정도.."

"이제 지칠 때 안되었어?"

"확실히. 저렇게 이쪽 저쪽 움직이다보면 아무리 체력좋은 사람이라도 지칠 수 밖에 없지…"

"동석이 땀 흘리는 것좀 봐."

"저 꼬마도 땀이 비 오듯 내리고 있어."

"땀 때문에 미끄러져서 사고가 발생하지 말아야 할 텐데…"

파캉!!!!

"10:9 !!!"

"오! 1점차까지 좁혔어!!"

"신입!! 동점 만들어버려!!!"

"동석아!! 상대는 어린 아이다. 밀리지 마라!!"

"완전 청춘이야!! 청춘!!"

"어이. 왜 그렇게 청춘에 집착해?"

"저런 시합을 보고 있으면 나도 젊었을 적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어서!"

"할아버지도 충분히 젊으세요."

"예끼! 세상 거의 다 살은 늙은이한테 그런 망상 집어넣어주면 안돼!"

"푸하하하!!!"

헉..헉..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나도 지쳐버렸나..아저씨도 땀이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이제 1점만 얻으면..동점이다..

"이렇게까지 잘하는 줄은 몰랐다. 정우"

"아저씨야말로 정말 잘하시는 걸요."

"아니, 여태까지 이런 호적수는 만난 적이 없어서…처음이다. 이렇게 궁지에 몰린 적은"

"아직 1점 리드하고 있잖아요?"

"이번에 동점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럼 계속 할 까요?"

"얼마든지"

땀이 뚝뚝 바닥에 떨어졌다. 이제 서브를 할 힘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질 수 없다..나도 아저씨도 모두 승리를 원하고 있었다.

파캉!!!!

남아있는 힘을 쥐어짜서 강력한 서브를 날렸다. 아저씨는 이런 서브를 손쉽게 발리로 막아내었다.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높게 날아오는 공을 나는 발리로 받아쳤다. 하지만 너무 높게 쳐서 왼쪽 옆벽에 표시된 아웃선 위로 공이 날아갔다.

"아웃!!! 11:9!!!"

"다시 2점차!!!"

"이렇게 보고있는 나까지 땀을 쥐고 지켜보는 경기는 처음보는 것 같다."

"둘 모두 필사적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아웃이다. 젠장..!! 15점까지 앞으로 4점. 허무하게 점수를 잃었다. 다시 2점차로 돌아왔다. 계속 리드를 지키고 있는 아저씨.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동점을 만들어서 기회를 엿볼 수 밖에 없었다.

이어지는 아저씨의 서브. 땀이 쏟아지고 있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데도 강력하게 공이 날아왔다. 이 아저씨..초인인가..?

뒷벽으로 빠르게 반동되는 공을 터닝샷으로 받아친 뒤 맨 중앙으로 이동해서 어떤 공이 날아오든지 받아쳐야한다. 아저씨는 옆벽을 치는 보스트로 맨 왼쪽 앞벽구석으로 공을 낮게 깔았다. 나는 왼쪽 구석으로 뛰면서 드롭을 준비하고 있었다. 보스트의 단점은 반대편으로 낮게 공을 주는 것이라서 상대방이 드롭같이 약하게 치기만 해도 반대편에 있었기 때문에 더 체력이 소모가 되니까.

톡.

나는 약하게 드롭 샷을 쳤다. 예상 외의 드롭샷에 아저씨도 당황한 듯 허둥지둥 쫓아왔지만 이미 바운드가 2번 되었다.(스쿼시는 테니스와 마찬가지로 바운드가 2번이 된 상태에서 치면 점수를 잃는다.)

"11:10!!"

"다시 1점 차. 정말 피말리는 경기구만."

"이젠 치킨이고 뭐고 아무나 이겨라!!"

체력이 지쳐서 그런지 아저씨의 집중력이 약해졌다. 그래서 드롭 샷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 말을 나눌 만큼 여유가 없었다. 말 없이 서브를 하고 받아치는 것이 반복이 되었다.

파캉!!!

"14:13!!!"

"드디어 매치포인트(게임을 끝내는 마지막 포인트)!!!"

"동석아!! 치킨이 걸렸다!! 여기에서 끝내!!"

"정우 다시 동점 만들어내!!"

"여기까지 온 정우가 잘했다. 체급도 다른 데  그것도 잘 치는 어른을 상대로…"

"신입…끄헝헝!!"

"왜 우는거야?"

"너무 감동적이야…신입인데…저런 모습을 보여주다니…끄헝헝!!"

"그렇다고 울 필요까지야…"

"정우…포기하지마…"

드디어 매치포인트다. 이 1점을 잃으면 나는 패배한다. 더 점수를 잃을 수없는 벼랑 끝에 서있는 상황. 여기서 물러서면 안된다.

"정우…여기까지 정말 잘해주었다…하지만 이만 끝내야 될 것 같군…"

"아직… 모르잖아요?"

"그래…하지만 너는 아까전보다 움직임이 많이 느려졌어…"

"느려진 것은 아저씨도 마찬가지잖아요?"

"그래도 체력은 남아있다."

사실 나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힘들었다. 라켓을 쥐고 있는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한 번 힘을 뺀다면 라켓을 바로 떨굴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나는 절망적이었다.

그렇다고해서 물러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이 포인트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했다.

아저씨의 서브가 강력하게 날아왔다. 지쳐서 힘이 떨어진 것 같지가 않다. 오히려 처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아저씨도 이 포인트에 모든 것을 쏟아부는 것 같았다. 나는 뒷벽에 반동되는 공을 터닝 샷으로 받아쳤다.

랠리가 시작되었다. 터닝샷하고 상대방도 터닝샷하고 계속 번갈아가면서 오른쪽 왼쪽 뒷벽에 구석에서 반동되는 공을 터닝샷으로 받아쳤다. 상대방의 실수를 유도해서 끝내기 위한 랠리. 이렇게가다가는 내가 지쳐서 진다. 나는 승부수를 띄워야만 했다.

맨 왼쪽 구석 뒷벽에서 반동되는 공을 보스트로 오른쪽 맨 앞벽 구석으로 낮게 보냈다. 여기에서 아저씨가 어떤 공을 치던지 이 다음에서 끝내야했다.

아저씨도 승부수를 띄운 것을 알고있다는 듯이 빠르게 앞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강하게 킬 샷을 내리찍었다. 이제 이 한수로 끝내기 위해서..하지만..

"아웃!! 14:14!!"

"다시 동점이다!!!"

너무 낮게 쳐서 쾅하고 앞벽 아래 에 있는 철로 된 벽을 강타했다. 아웃이었다. 아저씨도 컨트롤이 안된 것이었다. 그 만큼 급했겠지..급하게 처리하려다가 실수를 범한 것이다.

"셋팅?"

셋팅. 게임을 하고 있는 둘 모두 매치포인트였을 때,게임을 끝내기 위한 방법.

"단판승부. 1점으로 가죠."

"그럴 줄 알았다."

셋팅은 두 가지 였다. 1점 혹은 3점. 하지만 3점을 하기에는 체력이 너무 없었고 더 이상 질질 끌고 싶지도 않았기에 1점으로 승패를 가리자고 하였다.

다시 나에게로 서브권이 넘어왔다. 이 1점. 반드시 따내주고 말겠어.

서브를 강력하게 날렸다. 지칠 대로 지쳤지만 강력하게. 아저씨는 발리로 받아쳤다. 그리고 나는 재빨리 드롭. 하지만 아저씨는 뛰어가서 그걸 손 쉽게 처리하였다. 그리고 뒷벽으로 반동되는 공을 터닝샷으로 쳤다. 그리고 드롭으로 아저씨는 되받아쳤다. 나는 헉..헉 하며 앞쪽으로 다가가서 끝내기 킬샷을 날렸다. 하지만 아저씨는 몸을 아래로 숙이면서 낮게 깔리는 공을 위로 올려쳤다. 로브(공을 위로 높게쳐서 상대방의 키를 넘기거나 상대방이 치기 어려운 곳으로 보내는 기술)였다. 위로 날아오는 공이 왼쪽 맨 뒷벽 구석으로 날아온다. 하지만 뒷벽으로 반동되지는 않는 로브.나는 로브가 뒷벽에 반동이 안된다는 것에 당황하였지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반동되지 않는 공을 옆벽으로 강하게 쳤다.

하지만 아저씨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보스트가 날아오고 바운드가 되는 지점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드롭 샷을 한다면 나는 진다. 앞벽으로 뛰어갈 만큼 더 이상 체력이 남지 않았다.

아저씨는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확정이 된 듯한 승자의 미소.

"…!!!!!"

하지만 공이 바운드가 되지않고 옆벽에서 바닥으로 반동없이 미끄러졌다. 우연찮게 닉 샷이 된 것이다. 그래서 아저씨의 스윙은 헛스윙이 되었다.

그대로 공은 미끄러져내려와서 나에게로 데굴데굴 굴러왔다.

"15:14!! 게임 셋~!!!"

코트 밖에서 게임의 종료를 알리는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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