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44화 (4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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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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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이제 끝을 향해 치닫는다.

공주에게 배신감을 느낀 백작은 모종의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고 그 계획의 일련으로 우선 왕의 독살이었다. 왕과 왕비를 아무도 모르게 독살시켜버리고 그 비어있는 왕좌를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허수아비인 왕족을 앉힌 뒤에 자신은 공작보다 높은 '대공'의 위치에 올라서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공주와 강제로 혼인을 한다는 칙령을 발표하고 다른 나라의 사신들이 오게끔 만든 뒤에 성대하게 결혼식을 열었다.

허무하고 우울한 표정으로 결혼식을 맞게되는 공주.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말을 탄 그녀를 사랑하는 호위기사가 나타나 그녀와 함께 멀리 도망쳐버린다.

그래서 노발대발한 백작은 온 군대를 소집해서 기사와 공주를 찾으라고 명령을 한다.

좁혀오는 포위망에도 서로에 대한 사랑은 깊어져만 갔고 이제는 함께 죽을 것이라는 각오와 함께 머나먼 시골 성당에서 조용히 단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고 키스를 하였다.

"꺄악!!!!"

키스를 나누었을 때(사실 키스하는 척) 여학생들의 반응은 가히 절정이었다. 이런 로맨틱한 연극. 여학생이 만든 것이니 당연하겠다만은 관중들의 수가 많았기에 '꺄악'이라는 고주파는 크게 울려퍼졌다.

결국 무수히 많은 군대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던 탓에 외딴 시골마을에서 발각되어 공주는 별궁에 갇히고 기사는 차디찬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깊은 독방에 처박혔다. 이제야 공주가 내 수중에 들어왔다는 희열에 대공이 된 백작은 크게 웃고 이제 모든 것이 내 것이다라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은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평소 백작의 행실을 잘 알고 있던 귀족들은 뭉치기 시작했고 가혹한 세금 때문에 백성들의 반발은 극심해져갔지만 백작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대공에 오르게 되면서 남자주인공의 동료들인 기사단을 해체했는데, 그 기사단이 모여서 감옥을 습격하여 독방에 갇혀있던 기사를 구해주고 별궁으로 바로 진격하여 공주를 구해주면서 그 둘은 극적인 만남을 이루었다.

"오오!!!"

그 만남에 다시 한번 관중들은 열광. 연극과 관중은 모두 하나가 되어있었다.

기사단과 주인공일행은 귀족들과 백성들을 하나로 모아서 대공이 있는 궁전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고 대공과 왕은 필사적으로 군대를 소집하여 저항을 하였지만 무용지물. 결국 대공은 패배하고 말았다. 왕은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공주와 기사가 왕위에 오르고 결혼식을 올리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흔하디 흔한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도망치다가 붙잡혀서 모든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처형이 되었다.

디즈니에서 만든 애니메이션만큼 우려먹을 만큼 우려먹은 소재를 사용했지만 연극이 끝나자 관객들은 모두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칠 만큼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휘익하고 부는 사람도 있었고 박수갈채를 받으며 성황리에 오후 8시 40분. 기나긴 연극이 끝이 났다. 내일에 있을 연극도 이대로 간다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무대에서 배우들이 손을 잡고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였고 장막은 다시 무대를 가렸다.

무대 백 스테이지에서 우리반 애들은 수고했다면서 서로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고 성공적이라면서 조그만 자축연을 열었다. 즐겁게 웃고 떠들고...

나는 이러한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아직도 문화제를 즐기고 싶은 듯 학교 안에서 아직까지도 빼곡히 남아있었다.

나는 귀족복장을 방송실에 놓아두고 교복으로 원래대로 갈아입은 다음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빠져나왔다. 나는 이러한 자축연에 참가할 가치도 없었고 그리고 애들이 싫어할테니까..

그들에게 있어서 나는 '불청객'이니까 빠져줘야지.

아무도 없는 학교후문쪽으로 을 조용히 걷고 있었다. 그러고보니까..지현누나가 연극을 보고 있었지. 뭐 됐어..지현누나가 즐겁게 봐주었다면 충분해..

나름대로 의의를 찾으며 나무가 둘러쌓였고 깜깜하기 그지없는 밤을 만끽하면서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처음으로 사람과 함께 호흡을 맞추었다. 그거면 충분하다. 이 이상 바라는 것은 없었다.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였다. 내일 연극을 하고 나면 나는 다시 '혼자'가 된다. 어차피 적응된 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쓸쓸히..옥상에서 혼자서 잤던 것처럼 나는 혼자 있게 되겠지..

이대로 계속..

교문이 슬슬 보이기 시작하자 멀리서 누군가가 교문에서 서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기나긴 머리카락 실루엣을 보면 여자인 듯 싶었다.

남자친구 기다리나...부러운 놈이네..여자친구가 이렇게 까지 기다려주다니..

나는 멋대로 그렇게 생각하고는 교문을 향해 걸었다.

"정우."

"…!!!"

"역시 여기 올 줄 알았어."

"지현…누나…어째서 여기에…?"

"너네 반 애들 자축연 열고 있던데 너가 없어서 혹시나 해서 여기에 있었는데 맞았네."

"…연극 끝나고 계속 기다린거야?"

"…응"

"친구들끼리 같이 놀지…왜 기다린 거야…"

"그건…"

꾸무적꾸무적하고 얼굴이 빨개져서 말을 잇지 못하는 지현누나. 왜 그런거지..?

"집에…갈까?"

잠시동안 침묵이 흐른 후에 지현누나가 집에 가자는 말을 꺼내었다.

"…아"

우리는 학교후문을 나섰다.

우리는 집으로 가기위해서 30분동안 길을 걸어야만 했다. 가로수가 둘러쌓이고 차츰차츰 잎이 자라나기 시작하고 있는 4월의 밤. 우리는 서로의 일정거리를 유지한 채 걷고 있었다.

"연극 재미있었어…"

집에 갈까는 말 이후에 한참동안 서로 말이 없다가 지현누나가 연극이 재미있었다며 분위기를 어떻게든 밝게 이끌려고 노력을 했다.

"고마워…재미있게 봐주었으면 다행이야"

"…너가 제일 인상깊었어…"

"악역이라서?"

"으응…그냥 너가 제일 머…멋…멋…멋졌어…"

"…!"

멋졌다는 말 한마디에 나의 얼굴은 빨개졌다. 누나에게서 들은 의외의 칭찬에 부끄러워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아마도 당황해서 더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누나도 덩달아서 얼굴이 빨개지고 말을 덜덜 떨었다.

"…제일 연기 잘한 것 같고…"

뭐야 그런 것에서 멋졌다고 한 건가. 하긴..누나는 연극을 좋아했으니까..어떻게 보면 멋져보였을 수도..그런데..내가 그렇게 연기를 잘한 것이었나? 멋져보였다는 말까지 들을만큼 잘했었나?

"…고마워"

아...정말로 고마워. 너무나도 고마워.. 오직 한 사람. 지현누나만이 나를 바라봐줘서 고마워. 고마워라는 말 말고도 어떻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데 도무지 생각이 안 날만큼 고마워. 무엇보다도...

나에게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해줘서 고마워.

이 쓸쓸함에서..이 외로움에서..벗어나게 해줘서..

4월의 밤에 함께 걷고있던 나와 그녀 사이의 거리는 3m가 아닌 3cm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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