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43화 (4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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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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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등장할 때가 되었다. 잘할 수 있을까라는 두근거림보다는 일단은 욕을 먹고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한숨을 내쉬고 무대 위에 또각또각하는 구두소리와 함께 무대에 섰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은 화려한 귀족차림과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왕이 정한 혼약자는 바로 이 왕국에서 가장 젊은 귀족인 크리스토퍼 백작이었습니다. 그는 젊은나이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백작의 자리에 올라서 언젠가 이 나라를 짊어질 기둥이 될 사람이라고 주위 사람들의 칭송을 받을만큼 그는 다재다능하였고 사람들 사이의 사교관계도 좋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절대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서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있을 지 모르는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소문이었지만 그를 둘러싼 안 좋은 소문들을 들은 공주로써는 여간 찜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등장하자 주위의 관중들은 모두 경악. 그리고 단체로 '우~'하는 야유소리도 들리는 듯 하였다. 그리고 지켜보고 있는 선생들도 모두 놀란 듯 휘둥그레 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수 많은 관중 사이로 그녀가 보였다.

'잘 해.'

그녀는 그런 말을 해주고 싶은 듯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직 한 사람이라도 나를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다면..나는 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가 바라봐주고 있다. 집에서 밤 늦게까지 열심히 나를 도와주었던 그녀가..

나는 대사를 말하기 시작했다. 이런 야유 속에서도 내가 외웠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외치고 있다.

"반갑습니다. 공주님. 이러한 하찮은 저를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한 쪽 무릎을 꿇고 윗 계급의 공주의 손등에 입을 맞추며 경의를 표하였다. 마치 진짜 귀족처럼…여자주인공은 정말로 불쾌한 듯 보였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 있었다.

연극일 뿐이야. 참으라고..관중의 야유는 더 심하게 들리고 있었지만..

"예…반가워요…일단 자리에 앉을까요?"

"예 그러죠."

"아버님께 들었어요 당신이…저의 혼약자라고…"

"국왕폐하께서 공주님의 혼약자로 이런 하찮은 저를 감히 선택해주신다는 것에 대해 폐하께서 내려주신 은혜에 깊은 감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꽃들도 나비도 동물들도 고개를 숙일 정도로 아름다우신 공주님이 저의 짝이 되어주신다니..저는 그 생각에 밤을 새웠습니다.. 하하..."

느끼하고 능청맞은 내 말투에 관중들이 단체로 '우욱!'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나는 무시하고 다시 능청맞고 간악한 백작으로 돌아와 능글맞게 여전히 불편한 표정의 공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혼약에 대해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결혼을 해야 되겠지만 아직은…혼약을 할 때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여기에 오라고 한 것입니다.."

"…공주님의 심정. 잘 알고 있습니다. 갑자기 정해진 혼약에 마음이 당황해진 탓도 있을 탓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공주님이 혼약을 하기에는 너무 어리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공주님을 한번 만나 뵙자마자 바로 허락을 구하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으니 괜히 심려치 마십시오. 저는 남녀간의 혼약이라는 중대사를 하루아침에 하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있으니 차차 공주님도 저도 서로에 대해서 알아갔으면 합니다."

"…고마워요…저의 마음을 알아주셔서…"

"하루라도 빨리 공주님의 허락이 떨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 때까지 기다릴 것이니까요…어차피 머지않았지만…"

"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공주님. 피곤해 하시는 것 같으니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편안한 오후 보내시길…"

나는 무대 뒤로 퇴장을 하였다. 이로써 나의 첫번째 파트는 끝났다. 아직 내가 등장할 부분들은 산더미 같이 쌓여있었지만 어느 정도 스타트를 잘 끊은 것 같았다.

"의외로 잘 하는데?"

"그러게…의외야 의외 저렇게 하기를 바라지도 않았었는데…"

"느끼한 거 잘 소화하기 힘들잖아? 무엇보다 다른 연기하는 애들보다 훨씬 잘하는 것 같아.말도 긴장하는 것 없이 부드럽게 잘했고 진짜 연기자 같았어."

"그러게…저 자식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서 짜증이 나긴 했는데 등장할 만 하네…"

나의 등장으로 기사와 공주의 애정전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귀족들과 모의하여서 나와 뜻을 달리하고 있는 반대파들을 숙청하거나 그리고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 공작에게 역모를 뒤집어 씌워서 처형하면서 귀족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지혜로운 왕에게서 믿음이라는 것을 얻어서 최고의 신하가 되어가는 과정이 흘러갔다. 그리고 국왕에게서 '공작'이라는 왕족을 제외한 귀족의 최고지위를 얻으면서 극적 긴장감은 더하였다. 신뢰받는 신하의 뒷모습으로는 돈을 이용해서 범죄조직을 전두지휘하고 있었고 여자 편력이 심하였으며 거슬리는 자가 있으면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버리고 서서히 공주와의 혼약을 기다리는 데 싫증이 나서 왕에게 고하여 하루 빨리 혼약을 해달라고 하면서 공주를 옥죄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힘들어하는 공주와 그를 바라보고 있는 기사의 마음은 더욱 더 안타까워하고 그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애절해져만 갔다.

연극이 그렇게 흘러갈 때마다 관중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 연극에 동화가 되어서 기사와 공주와의 사랑을 안타까워 하고 있었고 내가 비열하고 간악한 짓을 할 때마다 '죽어라!'라던가 '기사!! 이딴 쓰레기 빨리 죽여버려라!'라는 격한 음성을 외쳤다.

"백작있잖아. 정말로 잘하는 것 같지 않아?"

"그러게..진짜로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짓을 잘 해.. 보통 연극하면 어색한 데 실감이 나고.."

"천성이 저래서 그렇지 않아? 천성이 저러지 않으면 어색하지.."

"의외로 연기라는 부분에 소질이 있는 것 같은데? 박정우 녀석.."

"주인공 연기가 상당히 어색한 데 박정우 때문에 연극이 재밌어져."

"뭔가 은근히 매력있어..백작 캐릭터.."

"음흉하고 비열하지만 한 여자에게만큼은 진심이라서 그런 거야?"

"정우군..잘하고 있잖아? 욕먹고 있을 줄 알았더니.."

극의 긴장감은 어느 새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드디어..공주에게 강제로 키스하려는 신.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아놔..결국 이런 신이 오고야 말았다.

"나는 당신을 가지겠어."

팔을 붙잡고 강제로 얼굴을 다가가면서 키스를 하려는 나를 버둥거리며 저항하고 있지만 힘 때문에 빠져나갈 수 없는 공주.

"어메..저런 느끼한 말을 어떻게 잘하고 있는거?"

"백작..뭔가 불쌍해.."

"그러니까…적어도 진심인데…그래도 강제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

이 때 천금같이 나타나 백작을 밀치고 공주를 구해내는 기사.

"오오!!!! 기사 떴다!!!"

관중들도 덩달아서 열광과 환호를 했다. 그런데..연극에 불과한 데 이렇게까지 호응할 줄이야..누가 알았겠어? 발로 차인 백작은 화가나서 칼을 빼들고 기사를 죽이려고 한다.

"감히...공작인 나에게 이런 짓을 해?"

"잠깐만요 공작님! 그만둬 주세요..부탁이에요.."

"설마.. 당신이 좋아하고 있는 사람이 이 하찮은 호위기사 였소?"

"그래요!  저는 이 기사를 사랑하고 있어요. 안되나요?"

공주의 용기있는 발언에 모두 박수갈채. 정말 나만 나쁜 놈이 되었다..

"이런 나를 팽개치고 선택한 것이 고작…이런 것이었소? 공주…그렇다면…"

나는 칼을 빼들고 기사를 죽이려고 하였다. 하지만 기사는 막아내었다.

"감히…네 놈이 감히…나의 검을 막아내? 죽어라!!!"

당연하게도 몇 차례 칼싸움 끝에 칼이 멀리 튕겨나가면서 패배. 그리고 기사는 나를 죽이려고 하였지만 공주가 이래뵈도 나라의 공작이라면서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바람에 굴욕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기사는 공주를 안은 채 조용히 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큭큭큭…나에게 이런 굴욕을 안길 줄 이야…공주…나를 살린 것에 대해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이야…내 발밑에서 기어다닐 것이야…나를 이렇게 까지 만들었겠다…"

광소를 내지으면서 공작은 비참하게 웃었다. 그리고 이런 비참함을 안겨준 공주와 기사에게 복수를 할 계획을 세우면서 숲에서의 파트는 끝이 났다.

이제 연극은 점점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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