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42화 (4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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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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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옥상. 바람은 산들산들. 태양은 따뜻. 환한 빛무리가 비추고 있는 곳.

넓은 장소에서 얻는 편안함에 누구나가 잠이 들 수 있는 이 곳.

하지만 이런 장소에서 느끼는 황량함과 적막함은 어째서일까.

오직 혼자 나 자신을 달래기 위해서 쉬려고 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서 도망치고 있었다.

경멸. 증오. 두려움. 냉정.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감정을 담은 시선들. 오랫동안 그 시선들을 받으며 자라왔다.

그리고 이렇게 살고있다. '나'라는 존재는.

아직 외로움을 채우지 못해서. 아직 따뜻함이 부족해서. 아직 바라봐주지 않아서.

'차라리 이러고 있는게 나아…사람들에게도…그리고 나에게도…'

끝없는 자기합리화.

나 자신을 그렇게 달래고 어르면서 나는 옥상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어차피 결국에는

'이 현실에서 도망치고 있는 것 뿐이었다.'

잠에서 눈을 떠보니 나를 쬐던 햇살은 어느 새 수그러들어서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워있다가 일어서보니 나 혼자만이 있는 넓은 옥상.

그렇구나..나 여기서 계속 잠이 들었었구나..

손목시계를 바라보니 5의 시침이 6을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고 10과 11사이에 분침이 아슬아슬하게 11을 향해 걸터앉아 있었다. 그러고보니 나..뭔가 중요한 일을 해야 되지 않았나..?

아.. 그러고보니 오늘 우리 반 연극하는 날이었지..그런데 몇 시에 시작이었지...?

크헉[email protected]!!!!!!

나는 이제야 내가 배우로 연극무대에 서야된다는 것을 깨닫고 옥상 문을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잠겨있다. 어라...왜 잠겨있지? 그리고 어떻게 내가 들어간거지?

열쇠. 내 주머니에 있는 열쇠를 꺼내서 재빨리 문을 열고 계단을 미친듯이 질주를 하였다.

학교 현관을 뛰쳐나가고 보니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포장마차에서 뭔가를 먹고 있었거나 모여서 잡담을 떠들고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무리를  뚫고 강당으로 뛰어갔다.

"왜 이렇게 늦어…"

"젠장 박정우새끼. 뭐 도움이 되는 게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말이야…"

"어이 혹시 대본 외운 사람없어? 대신 백작역할 할 수 있는 사람?"

"방송실에서 잠시 연기한다고 공고할까? 어차피 늦어질거 같은데…"

"펑크나 안 났음 좋겠다."

"…일단 기다려보자"

"어? 누군가 오는데?"

"박정우다."

"이 자식 어디서 띵가띵가 하고 온 거야?"

"어이 박정우!!!!!"

"헉헉…미안…"

"어디에 있었어?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구만."

"옥상에 있었어"

"옥상 잠겨있었잖아?"

"수가 있지. 어디로 가야 돼?"

"강당 뒤쪽에 대기실이 있어 그쪽으로 빨리 가 이놈아 몇분 안남았어!"

"어쨋든 늦어서 미안!"

"알았으면 됐다고 이 새끼야.."

"마침 잘 왔네. 얼마나 사람 긴장하게 만들고.."

"너 왜 이렇게 늦었어?"

"미안…"

"사과할 틈도 없어. 빨리 옷이나 갈아입기나 해. 자세한 연유는 끝.나.고.보.자."

어째 여학생들의 포스가 남학생들보다 압도적이냐..나는 재빨리 엄청나게 화려한 귀족의 옷을 입고 무대 뒤에 있는 백스테이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거기에 준비하고 있던 우리 반 놈들도 내가 들어오기가 무섭게 전부 째려보고 있긴 하였지만..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연극 시작 2분 전이었다. 무대를 가린 큰 커튼에 빼꼼 고개를 내밀어서 강당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의외로 객석이 꽉 찼다. 어쩐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은 사람들이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는 눈빛으로 곧 있으면 시작되는 연극에 웅성웅성 거리고 있었다. 화려한 드레스차림의 여자주인공도 무거워보이는 기사갑옷을 입은 남자주인공은 물론이고 다른 애들도 긴장을 하고 있었긴하였지만 나름대로 긴장을 풀기위해 서로 농담거리를 주고받는 등 노력하고 있었고 나 역시도..

어차피 더 이상 이 학급에 동참하는 일은 없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람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 함께 일하는 것이니 후회없이 할 것이다.

장막이 걷어올려지면서 연극이 시작되었다.

"옛날 어느 한 왕국에 지혜로운 왕과 아름다운 왕비 사이에 예쁜 공주가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나레이션의 시작과 함께 우리들이 만든 중세시대의 배경이 조명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서 배우들도 차례차례 등장.

공주의 성장 그리고 공주와 기사와의 만남이라던가 은밀한 데이트 그리고 사랑고백 등 애절한 사랑 신이 나올 때마다 관객들은 탄성을 지르고 연극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고등학교 문화제의 연극이라 연기는 실감나게 전달은 하지 못하였지만 나름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연기를 다해서 점점 좋은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이 공주에게 너도 나이가 결혼할 때가 다 되었으니 이제 혼약자를 구해야되지 않겠냐면서 좋은 신랑감을 찾았다고 만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아직 저는 결혼할 마음이…"

"공주는 거절하였지만 그래도 간곡한 아버님의 부탁에 한 번은 만나보겠다는 선에서 해결이 되어서 다음 날 오후에 그를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이제, 연극의 중반쯤이 되자,내가 등장할 차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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