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31화 (3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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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길게 쓰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은, 정작 안되는 현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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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이 기세를 타고 시험을 본다면, 나는 더 이상 이미지하락을 겪지 않게 될 것이다. 첫 단추를 잘 꿰맸으니 이제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담임선생이 시험이 끝나고 종례시간 때에 시험들 잘 보았냐고 묻자 다들 침묵하자  담임선생은 애써 웃음을 지으면서 다음부턴 잘 보면 된다는 소리와 함께 내일 시험 잘 볼수 있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덕담으로 종례시간을 마쳤다.

학교를 하교하는 나의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 없었다. 일단 시험을 잘 본 것에 대한 안도감이라고 해야할까 기분이 좋다고 해야 할까..어쨋든 기분이 좋은 것만은 사실이었다.

시험을 보고나니 햇빛이 쩅쨍하고 더워졌다. 4월. 본격적인 봄의 시작을 알리는 달.

아침에 추워서 목도리를 둘러매고 왔더니 괜히 가지고 온 듯하였다. 날씨가 더워지니까 어쩔 수 없이 목도리와 교복 마이 그리고 교복 조끼를 벗고 가방 안에 꾸역꾸역 집어 넣었다. 넥타이도 거추장스러워서 가방의 보조주머니에 넣어두고 해외여행을 가는 관광객인 듯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빵빵한 가방을 메고 와이셔츠차림으로 교문을 나서고 있었다.

시험이 끝나고 난 뒤에 학생들의 패턴은 똑같다. 시험이 끝나고 난 뒤에 친한애들끼리 모여서 떠들며 각자 자기 집이나 학원으로 가거나 아님 스트레스를 풀려고 모여서 pc방이나 노래방과 같은 오락시설로 직행하거나.. 나도 귀가하고 있는 쪽이었지만 주위와는 다르게 나의 곁에는 말을 걸만한 친구가 하나도 없다. 나라는 놈이 그렇지 뭐..

"야호~♡"

누군가를 봐서 반기는 듯한 여자목소리. 이건 뭐 산 꼭대기에서나 하는 것도 아니고..

목소리가 너무도 커서 주위의 이목이 그녀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으니 신경끄자..일단 집에 돌아가서 잠시 쉬고 내일 볼 시험공부 해야지..

"박정우~"

엥? 나?하고 순간 여자애가 나를 부른다는 것에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나랑 같은 학교의 여자애가 나를 부르는 이유가 없었기에 그냥 나랑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부른 거겠지..하고 다시 내 갈길을 가고 있었다.

"지금 제 말 무시하고 있는 거 맞죠~ 와이셔츠 차림의 박.정.우.군~?"

와이셔츠 차림이라..더워서 똑같이 와이셔츠차림으로 있었나..게다가 나랑 이름이 똑같지 않았나..신기하네..

그런데..주위를 둘러보니 어째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눈빛에는 살기가..?

"잡았다~♡"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턱하고 잡았다. 생각해보니..진짜로 나를 부르고 있었냐!!!

멀리서 들리다보니 잘 몰랐지만 가까이서 말하고 있으니 목소리가 매우 낯이 익다. 설마...

"정.우.군~♡"

젠장.. 기분이 좋다가 갑자기 기분이 확 깨지는 순간이었다. 어느 새 내 앞에는 학교의 여신인 지현누나보다는 아니었지만 2학년 중에는 가장 예쁘다는 소문의 그녀가 있었다.

물론, 내가 절대로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어쩐지 내 주위의 살기가 가득한가 싶었다. 이 녀석도 상당히 인기가 있었지..그것도 남자애들한테 많이..

"너가 왜 나를 찾고 있는데?"

나는 상당히 보기 싫다는 말투였다. 절대로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는데 반가울리가 있겠나?

"그냥~ 정우 얼굴 보고 싶어서 그랬지~♡"

일단 말끝마다 달고 있는 하트부터 치우시지 그래요? 으..닭살 돋을 것만 같아..

"게다가, 네가 무슨 일로 나한테 친한 척을 다하고 있냐?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에이~♡ 알.면.서"

.....이 곳에서 빨리 벗어나는 게 좋겠다. 이제 인근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저 자식…지현 누나도 모자라서 시하까지…"

"어째서 저런 왕따녀석에게만 미소녀들이 달라붙고 있는거야!! 왜!!"

"신이시여.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왜 미소녀 여자친구가 없는 걸까요…"

"정말 짜증나지만 부럽다. 심히 부럽다."

"…젠장 맞을 녀석…시하한테까지 마수를 펼친거냐 어떤 수를 쓰길래 지현누나는 물론이고 시하까지 약점을 잡은거야?"

"휘유~ 하렘이네 하렘. 친누나에 동급생…2명을 하렘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란가?"

"잠신이시여…저에게도 그 비법을…"

"척결!!!"

"척결!!!"

어째 지현누나의 광신도들까지 척결이라고 외치고 있다. 이럴 때에만 쏟아지는 부러움과 시기의 시선들. 에휴..오늘도 편하게 넘어갈 것 같지가 않다.

"가자~"

갑자기 기분 잡치게 만들어놓고 주위 사람들의 욕을 먹게한 장본인은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손이 잡힌 상태인지라 자연스레 속도가 빨라질 수 밖에 없었고..

"거기서!!!"

덕분에 한창동안 하굣길에서 부터 남학생들의 거친 러쉬(?)를 받아야만 했다.

"헉..헉..헉.."

여긴 또 어디다냐..몇 분동안 달렸는지 모른다. 이 녀석..갑자기 뛰어가놓고서는 정작 추격받고 있을 때 안뛰었어..그래서 내가 앞장서서 손을 잡고 도망치다보니 이 녀석을 납치한다(?)는 오해까지 받게 되었다.

"기분좋다~ 운동 제대로 한 것 같애~"

이보슈. 안 지쳐요? 정작 나는 힘들어죽겠는데..

그녀는 전혀 지친 기색없이 기지개를 쫙 펴고 나를 장난기 어린 웃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정우군~나를 그렇게 싫어했는데 사실 좋아했나보네? 이렇게 손 잡고 남자들에게서 나를 구출하려고 뛰는 거 보면..혹시..우리..사랑의 도피..?"

전혀.아주 전혀 안그렇거든요? 사실 목숨의 위협때문에 필사적으로 도망친 것 뿐이거든요?

"그리고…지금 단.둘.이. 조용한 곳에 있는데 뭐하려고 하는 걸 까나~ 꺄악~♡"

이봐. 당신. 지금 뭘 상상하고 있는 거야?

혼자만의 망상에 아주 제대로 빠졌구만 빠졌어..필사적으로 도망치다보니까 숨을 곳이 필요한 거지 정작 단 둘이 있는 것을 바라진 않았다고. 젠장..

"그래서, 날 부른 용건이 뭐야?"

나는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힌 채 냉정하게 갑자기 찾아온 그녀에게 물었다. '옥상'에서 때의 우연한 만남을 제외하고는 '그 사건'이후로 나와 그녀는 전혀 대화를 하지 않았다. 2학년 때에는 다른 반이라서 기회조차도 없었고 또 대화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왜 이제와서 갑자기 친한 척을 하는 그녀의 속을 알 수가 없었다.

"데.이.트♡"

이건 또 뭔 소리다냐..그리고 그런 말하는데 붙이는 하트 좀 빨리 치우지?

"내가 왜 너랑 데이트 해야돼?"

"그냥~♡ 내가 바라고 있으니까…"

"뭐?"

"내가 바라고 있잖아. 너랑 데이트하는 거. 그래서 하교길에서 데이트하려고 부른거야."

"왜 이제와서 친한 척인데? 우리 관계야 이제는 아무것도 없다는 거 몰라서 물어?"

"너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나는 정작 끝장내지 않았다구~그리고 친한 척한게 아니야. 옥상에서도 먼저 자고 있는데 깨워주었잖아? 계속 친했었던거야. '우리'는."

"그런 소리 할꺼면 당장 꺼지지 그래? 너랑 데이트하기도 얘기하고 싶지도 않아."

"또 내숭부린다 또~속으로는 바.라.고.있.으.면.서.♡"

"…너가 언제부터 그렇게 넉살좋게 되었냐?"

"…글쎄? 언제부터였을까나~원래 이랬을지도~"

"옥상에서는 전혀 그러지 않은 것 같았는데?"

"데헷~♡ 들켰네~"

어이.귀여운 척하지마. 역겨워..

"정우군은 나에 대해서 잘 알고있네? 내가 일부러 이러고 있었다는 거 모두 다 아는듯.."

"…너랑 내 사이가 그렇게 친한 관계가 아니란 것 쯤은 확실히 알고있지"

"…그래? 조금 아쉽네…그래도 명색이 '전' 남자친구 였는데…"

"너가 '남자친구'라고 생각했을지나 모르겠지만은 말이지. 무엇보다 남자친구가 아니라 너는 날 '이용'했을 뿐이었잖아?"

"…어땟을까나…"

"빙빙 돌려서 말하지 말지? 나를 찾아온 용건이 뭐야? 왜 나를 귀찮게 구는 건데?"

"그냥~ 현실판단 잘 하지 못하고 자기 친누나랑 히히덕거리며 등교하는 네가 눈.꼴 시려워서~"

"…!!!"

"왜 틀린 말 했어? 나는 그게 눈꼴 시려워서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야. '너는 그렇게 뻔뻔하게 사람들과 같이 등교할 가치가 없잖아'?"

"원인제공자는 너였을 텐데…"

"확실히. 원인제공자는 나였지만 '너'하기 나름이었잖아? '그 때'는…"

"겨우…그런 말 하려고 그렇게 날 귀찮게 군거냐?"

"아니~ 그것 뿐만이 아니지"

그녀는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아주 코 앞까지..그리고 그녀는 갑자기 나의 와이셔츠 단추를 풀고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래. '그 때'의 일은 잊었어?"

"얘기했을 텐데…잊었다고 그런 일은…"

"내가 보기에는 '아직도 잊지 못했어'라고 들려. 잊었다고 얘기하고 있어도.."

서서히 내 얼굴을 끌어당겨서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려고 하고 있었다.

젠장..!! 내가 그 꼴 당할 것 같아? 나는 서둘러서 그녀를 제지시켰다.

"에이~~할 수 있었는데 '키스'"

"너랑은 하고 싶지않아."

"우리 '사귀었을 때'키스 한번도 안했잖아? 그래서 마저 하지 못했던 거 하고 싶어서 말이지~"

"전혀.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한테 하기는 싫은데?"

"…그래? 나는 하고 싶었는데…진심으로 말이지…"

"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아쉽네. 아직도 잊지 못한 거 보면 너 꽤나 소심하다?"

"소심해서 미안하네."

"ㅋㅋㅋ…아직은 나랑 제대로 '대면' 할 준비가 안된 것 같네…그럼 갈게. 너 집에 돌아가는데 귀찮게 굴어서 미안해."

"…"

"그럼 또 보자. 그 때는, 제대로 '나'를 볼 수 있기를 바래."

"보고 싶지도 않아."

"…그럴지도…그럼…"

정말, 기분만 버린 날이었다. 모처럼 기분 좋은 날이었는데 이 여자는 알 수없는 말과 기분만 상하게 만들어놓고는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대체 나한테 바라는 것이 뭐야? 저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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