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8화 (28/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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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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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종의 알람이 울렸다. 항상 울리는 시각은 6시. 예전과 변함없이 나는 방을 나왔다.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가는 순간에 누군가가 화장실 문을 열었다.

촉촉히 젖은 기나긴 검정색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닦으며 나오는 그녀. 지현누나였다.

"…안녕"

"…응"

멋쩍게 서로 인사.

"…씻고 밥 준비할게."

"응"

서로에게 어색해 했다. 아마도 그 날 있었던 일 때문일까..

그 날, 우리는 바닷가를 벗어나 새벽기차를 타고 돌아왔다. 아무도 없는 새벽기차 안에서 바닷가에서 부터 우리는 손을 잡은 채 누나가 피곤한 듯 나의 어깨에 기대며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서울에 도착한 후에야 우리는 감정에 휩쓸려 손을 잡고 걸었다라는 것에 얼굴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워져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녀와 나 사이에는 3m 정도의 거리를 벌려두고서 걷고 있었다. 특히나 누나의 얼굴에는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로 빨개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안에 있던 작디 작은 검은 아기 새는 사라졌다. 누나에게 더 이상 '과거에 대한 후회'라는 감정이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그 검은 새도 자연스레 사라진 것 같았다.

'용서'라는 것을 통해서 말이다.

집에 돌아온 후, 현관에서 민정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누나에게 달려들며 연락이 안되어서 걱정되었다고,계속 보고 싶었다고 엉엉 울면서 우리들을 반겨주었다.

이제, 이 집에도 '일상'이라는 것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밥을 먹고 난 뒤에 우리는 서로 방에서 교복을 입고 학교 갈 준비를 했다. 개학 한 지 한달이라는 시간이 훌쩍지나갔다. 4월 초. 많이 따뜻해지기는 했지만 아침에는 무척이나 추운 날씨. 나는 목도리를 둘러매고 가방을 든 채 현관문을 나섰다.

누나도 그 때 학교로 가려는 모양인 듯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고 있었다.

"…"

다시 서로 어색해진다. 하필이면 나도 집을 나서려는 데 누나도 집을 나선다. 어쩐다..?

"같이…갈래…? 학교…"

"아…응…"

누나의 급작스러운 제안에 나는 얼떨결에 '응'이라고 대답해버렸다.

학교가는 길에 나는 누나에게가까이 다가가려 하지 않고 그녀와 나 사이에 무언가 벽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 평행선을 유지하며 걷고있었다.

"…"

침묵과 어색함. 우리를 둘러싼 분위기는 이러하였다. 10년 동안의 시간은 '무관심' 이외에도 '어색함'이라는 것이 존재했었나보다. 화해를 했음에도 이렇게 다가가기가 힘들 줄은..

콜록콜록,.

기침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누나를 찾기위해 하루종일 돌아다닌 덕분인지 감기에 걸렸다. 게다가 바닷가를 다녀온 이후라서 피로가 더 쌓인 탓에 면역력이 약해져 감기가 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행여나 누나에게 전염이 되었을까 걱정이다.

"괜찮아…?"

누나가 기침소리에 나를 바라보며 걱정이 된다는 듯 물어보았다.

"아…괜찮아…이 정도 쯤이야…곧 있음 나아지겠지…콜록콜록."

"민정이에게 들었어…너 하루종일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나를 찾았다면서…? 괜히 나 때문에…너가 그렇게…"

"누나가 자책할 필요는 없어…걱정하지 마. 괜찮아 지겠지…콜록콜록."

그녀는 내가 괜찮다고 대답해도 눈에는 금방 눈물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눈빛이었다.

동생의 건강을 자기가 아픈 듯 온 힘을 다해 나를 신경써주었다. 생각해보면 참 여린 사람이었다.. 그녀라는 사람은..

교문에 도착하니 누나를 기다린 듯한 사람들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왔다."

"왔어!!!!!"

"우오!!!!"

친구들도 광신도들도 지현누나가 등교한 것을 보자 교문 앞에선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그리고서 우르르 누나에게로 달려온다.

"먼저 갈게."

이럴 때에는 빠져주는 것이 예의였다. 그들도 그녀를 계속 보고 싶어했으니까.. 이런 기쁜 만남의 시간에 불청객은 빠져줘야겠지? 라는 생각으로 그녀에게 먼저 교실로 간다고 대답하고는 서둘러 교문을 지나갔다. 그곳에 서 있던 신입학생부 선생과도 눈이 마주쳤지만 그는 죽일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지, 나를 제지하진 않았다.

교실로 들어오자, 반 학생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지현누나가 왔다면서?"

"이렇게 오랜만에 보아도 변함없는 여신님의 미모에 눈이 청정되는 것 같애~"

역시 저마다 누나를 예찬하고 있다. 남자들이라는 놈들이 다 그렇지 뭐.

"그런데, 너는 왜 어제 안왔냐? 학교?"

절대로 지현누나랑 둘이 손 잡고 바닷가에 있었다고 얘기한다면 안된다.

"아, 잠깐 병원에서..화상 때문에 말할 것이 있다고 하룻동안 입원해 있었어.."

"그렇군. 담임이 연락도 없이 빠졌다고 무단결석처리를 한 것 같지만..그런 것 이었나.."

일단 거짓말한 것이 통했나 본지 수긍을 했다. 그리고 담임이 들어오는 조회시간. 나는 병원에 입원해있었다고 선생한테 얘기하고 결석계를 내겠다는 것과 함께 어제의 일은 잘 마무리가 되었다.

"아 그러고보니까. 4일 뒤에.. 중간고사라는 거 알고 있지?"

"…"

침묵. 시험기간이라는 소리에 조금씩 들리던 말 소리도 한순간에 끊겼다.

"아~~~"

그리고 들려오는 한탄소리. 중간고사가..벌써..4일 밖에 안남았나... 공부는 하고있었지만 이렇게 벌써 시험기간이 다가오는 것은 까맣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마다 공부는 잘 하고 있었겠지. 여태까지? 조금 더 시험공부에 박차를 가해서 이번 2학년 처음 보는 시험. 잘 볼수 있도록. 이상."

"차렷. 경례."

"안녕히가세요."

담임이 나가자마자 다시 시끄러워졌다. 보통 시험 2주전에는 선생들이 언급은 하고 있었지만 대충 흘려들은 2-c반 이었는데 갑자기 담임이 4일 밖에 안남았다고 하니까 급해진 모양이었다. 이러한 원인으로 여학생들이나 남학생들이나 쉬는시간의 화젯거리는 시험에 대해서 였다.

"아씨..공부 하나도 못했는데.."

"뭐..알아서 되겠지 뭐.."

"여태까지 뭐 공부했어?"

"뭐 공부했더라..수학이랑..영어랑..한국지리랑..또..일본어 조금.."

"그래도 그 정도 공부한 게 어디야? 나는 처음부터 봐야되는데..맨날 자서.."

"맨날 자는 놈이라면 저기 있잖아. 너는 자는 축에도 안 들어가."

그렇다. 나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1교시부터 7교시까지 불면증으로 인한 피로로 나는 맨날 뻗어서 자고 있었다. 선생들이 별 수를 다 써서 깨워보려고 했으나 아무 반응도 하지 않자, 애들은 이러한 나에게 1학년 때부터 '시체'라거나 '잠신'으로 불렀다.

"어이 시체. 너 공부는 했냐?"

"뭐..공부는 했지만.."

"너야 1학년 때부터 맨날 뻗어있었음에도 시험성적이 좋잖아? 그래서 선생들이 얼마나 놀라워 하는지 원.."

"맨날 자고 있었는데 시험성적은 좋았다고?"

"어떻게..? 설마..너..천재라든가.."

나는 새벽에 잠을 못자니까 너네들은 보통 16~18시간 활동하는 데 나는 24시간 활동하잖아. 그러니까 미연시를 하고 틈틈이 공부를 하지. 학교에서는 맨날 뻗고 있지만..잠깐씩 수업은 듣고있었다.

"그러고보니..중간고사 끝나고 바로 문화제시작이잖아?"

"그러게. 우리학교 곧 있음 문화제네."

"슬슬 문화제 뭐 할지도 정해야.."

시험에 대한 얘기는 금방 끝이나고 중간고사 끝나고 바로하는 문화제에 대한 얘기로 갑자기 바뀌었다. 어이어이..일단은..중간고사 끝날 때 쯤에 얘기하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거든..?

우리학교 문화제는 3일 동안 진행되었다. 다행히도 주말을 끼지 않고 평일에 3일 동안 수업을 하지 않고 문화제를 시행하였다. 연극이라든가 유령의 집이라든가..그리고..

"문화제하면..?"

"메이드카페!!!!"

그렇다. 미연시에서나 현실에서나 남자의 로망. 메이드였다. 우리학교 여자학생들은 저마다 한 미모 하였다. 성형인지 자연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은.. 어쨋든 우리 학교 문화제 하면 메이드카페였다. 그 소문에 인근과 다른 지역의 남자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것이 우리학교의 전통이다. 그 만큼 3일동안 문전성시를 이루는 우리학교 문화제였다.

나야 뭐..3일 동안 수업 안 하고 좋지 뭐..메이드카페라는 곳에 들어가고 싶긴 합니다만은 나에 대한 소문때문에 나를 반기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라서 나는 문화제를 즐기지 않고 집에 돌아가서 미연시를 한다.

그래서 나에게 문화제는 전혀 상관없는 동 떨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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