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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Reg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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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누나와 행복했던 어린시절, 얼마남지 않은 희미한 추억의 장소.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나는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때,내가 느끼고 있었던 것은 나의 손을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은 너무나도 따뜻했었다는 것.
도박이었다. 설마 그런 곳에 누나가 있을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끌린다'. 그 장소에. 4일. 그녀가 사라진 시간. 얼마든지 그곳에 갈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포기 반 기대 반으로 민정이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고 나는 그 때 별이 총총히 밤 하늘에 박혀있었던 것을 단 둘이 바라보고 있었던 그 곳으로 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냥 밑도 끝도 없이 그녀를 만나겠다는 생각 하나로 나는 버스터미널에서 표를 끊었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사람도 별로 타지 않은 버스에 몸을 내맡긴 채, 빈 손으로 아무것도 없이 그냥, 단지 그냥. 그녀가 혹시 있을 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에 저질러놓고 보는 나였다.
빠르게 달리는 버스의 창가에는 오직 깜깜한 어둠만이 보이고 있었다.
작은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잡고 그 바닷가가 있는 곳에 데려가달라고 했더니 택시기사 아저씨는 아무도 없는데 그곳에 왜 가냐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저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그곳에 있어요."
나는 아저씨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장소는 그다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않은 조용한 곳이었다. 그 때 우리가족 모두 바다를 가보고 싶어했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특성 상 사람 많은 곳을 꺼려했기에 가족들만의 여행을 꾸미고자 그 곳으로 갔다.
오직 띄엄띄엄 서 있는 가로등의 불빛만이 나를 인도해주고 있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 나는 뛰어가지 않았다. 천천히 차가운 바람에 조금씩 기침소리를 내며 다가가고 있었다.
걷다보니 모랫사장에 도착했다. 파도가 철썩철썩 해안가로 밀려오며 모래들을 적시고 있었다.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둘 이서 밤 하늘을 보고싶어서 몰래 새벽에 바닷가에 놀러갔었을 때에는 마음의 안에 뭔가 꽉 차고 있는 듯한 만족감이 있었는데, 혼자서 와보니 쓸쓸하기만 한 이 바닷가였다.
역시 없었다. 그녀는.
모랫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보았다. 아무도 없어도, 나 혼자만이 있어도..
둘의 발자국은 하나가 되었어도..
별이 구름에 가려져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해안선을 따라 걷다보니 누군가가 바닷가를 보면서 서 있었다. 뭔가 반갑기만 하다. 나랑 똑같은 상황을 겪고 있을 줄이야..
달빛이 구름에 가려져있어 잘 보이진 않았다만은, 그 누군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 누군가가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외로우니까 말동무라도 되어주었으면 했다.
"별이 보이지 않네요."
내가 사박사박 걸으며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듯 어느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게요."
목소리..실루엣..
"…예전에, 아주 예전에, 저는 누군가와 함께 별을 바라보았지요. 그 때, 손을 맞잡고 모랫사장을 걸으면서 둘의 발자국을 새기는 데 여념이 없었는데.."
이야기..모두 까지도..
"저도…그런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아요. 그 때 그 누군가와 함께 손을 잡았었는데, 그 누군가는 저에게 미소를 지어주었어요. 너무나도 다정했던 미소를.. 저는 그 미소를 추억하려고 여기 이 곳에 와 있지요."
"…!!"
"잠깐 세월이라는 것에 잊혀져 살고 있다가 꿈이라는 너무나도 허망한 것에서 생각이 났어요. 기억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행복했던 추억들. 저는 잠깐이나마 그런 경험을 다시하고 싶어서 왔는데 그 때처럼 제 옆에는 누군가가 없네요.."
"…어떻게…"
그녀는 천천히 나를 돌아보았다. 아아..그래..내가 몇 일동안이나 헤매고 헤매였던, 그리고 꼭 '미안해'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그녀..
"지현 누나."
"…기억하고…있었어?"
"잊었지…그런데…우연히 생각나더라. 그런 것. 지나간 과거의 시간에는 연연해 하지는 않았었는데 말이야…"
"…"
"과거의 시간을 잊고 싶어도 그 과거는 결국 못 잊어. 그래서 여기에 와본 것 뿐이야,"
"…괜히 걱정끼치게 만들었나봐…너에게…"
그녀의 안에는 이미 검은색의 '새'가 있었다. 아주 조그맣고 여린 새끼 새. 다행이야..
아직 성장하지 않아서..
"…민정이도 누나의 친구들도 누나를 응원해주고 있는 남자들도 선생들도 모두 기다리고 있어. 누나를…민정이는 혼자 자는 게 외롭다고 행여나 누나에게 혹시 위험한 일이 생겼을까봐 안절부절하더라. 그래서 나랑 같이 밤 늦게까지 찾아다니고.."
"…미안"
"…"
"…혹시 너도…걱정했어? 나를…"
"아아…걱정했어…서울을 하루종일 돌아다닐 정도로…"
"…그래"
"있지."
"…응?"
"내가 누나를 원망 많이 한 거 알고 있어?"
"…응"
"누나가 너무나도 싫어서 얼굴도 보기 싫다고 생각한 거 알고 있어?"
"…응…알고 있어…"
"그런데…계속 원망하려고 해도 말야…그래도…있지…한 마디 말해주고 싶은 게 있었어."
"…?"
"미안해."
"…!!"
"그 말 한마디, 꼭 해주고 싶었어. 누나가 나를 용서하지 않아도 말야. 그 동안 내가 너무 심하게 굴었던 거 깨달았으니까..누나에게..계속 상처를 주었으니까.."
"…아니…"
"잠자코 들어줘."
"…"
"10년 동안 우리는 말 한마디도 없었고 항상 이 날씨처럼 싸늘하고 황량하기만 했었지만.. 앞으로도 그럴 지도 모르지만..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나는 천천히 다가가서 그녀를 껴안았다. 내가 어렸을 때 아이들에게 맞고 집에 돌아왔을 때 누나가 아무런 말 없이 껴안아주었던 것처럼..
그 때 나의 체구는 무척이나 작아서 누나의 품에 들어갔었는데...
"'미안해'라고 말해주고 싶어.이 바닷가, 누나와 새벽에 몰래 단 둘이 걷고 있었던..이 장소에서."
그녀에게는, '용서'가 필요했다. 지나친 '후회'에 대응되는 감정은 '용서'였다.
누군가의 '용서' ,자책하는 자신에 대한 '용서'
이 '용서'를 해주기 위한 말로는 미안하다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았지만..
이런 '후회'의 감정 털어버릴 수 있도록..나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얘기했다.
그녀는 갑자기 안아오는 것에 대해서 놀랐지만 머지않아 손을 감싸쥐고 안겨왔다.
감싸쥐고 있던 어깨를 꽉 잡고 있었다. 그녀는..나의 옷에 묻고있는 눈물을 억누르려고..
나는 말 없이 눈을 감고 미소지으며 그녀의 검은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빛도 서서히 떠올라 단 둘 밖에 없는 이 바닷가를 비추고 있었다.
새벽은, 너무나도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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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도 긴 Part 2가 끝났습니다.. ㅠㅠ...
이제는 조금은 밝은 내용을 써볼까 하는데..잘 될런지..